현대인 Today Human Being

김건예_김윤섭_박형진_서옥순_이원경展   2018_0410 ▶ 2018_04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전시기획팀 / 김채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_10:00am~05:00pm

수성아트피아 SUSEONG ARTPIA 대구시 수성구 무학로 180 Tel. +82.(0)53.668.1800 www.ssartpia.kr

1. 21세기 초(超) 연결 시대는 촘촘한 네트워크로 전(全)지구적인 정보의 공유가 가능하다. 이렇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이중의 소통 구조가 일상화되고 있지만, 그에 따른 속도와 공간적 거리감이라는 차이는 보다 더 깊은 소외를 만들기도 한다. 사회 문화 시스템의 급속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환경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어떤 모습일까. ● 현대인의 사전적인 의미는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 특히 현대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이른다." 그리고 물질적 풍요에 비해 정신적으로는 무척 빈곤하다고 부언한다. 현대인의 빈곤은 비물질문화의 속도가 물질문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보가 발달하는 속도에 비해 그에 따른 결함이나 문제를 걸러내는 시간 역시 느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의 현대인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물질과 비물질의 불균형이라는 문화지체 속에서도 정보는 경쟁력이자 일상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 나아가 정보의 시대를 사는 21세기의 현대인은 컨버전스(Convergence), 즉 융합이라는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미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4차 산업시대는 빅 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으로 삶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바야흐로 곧 다가올 미래는 초연결 초지능의 시대를 넘어서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살아가야한다. 급격한 문화적 변동이 이루어지는 시대, 인간적 감수성에 대한 회복이 보다 더 필요하다. 그 출발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가치를 발굴하고 공유해 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 비물질적인 가치를 시각적인 이미지로 드러내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시대적 감성을 그림과 조각 그리고 설치물에 투영해 놓은 예술가의 시선과 마주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 현대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선에는 현대인의 몸뿐 아니라, 몸을 주제로 정신적인 요소까지 확장되어 있다. 몸과 정신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대한 정신도 몸을 통해서 소통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몸 몸속에 정신이 깃들어 있고 또 정신은 몸을 통해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몸과 몸을 시각화 하는 작가적 시선에는 보이지 않는 심연이 자리한다. 이 심연의 깊이는 개인적인 사유의 깊이가 만들어 내는 작가적 시선이자 몸을 통해 사유하는 시각적 울림이다. 그래서 저자(화가)와 독자(감상인)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인간의 모습을 담아 놓은 작가적 시선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자와의 사이에도 생각의 차이와 깊이만큼의 심연이 존재한다. ● 심연은 말 그대로 깊은 연못이다. 깊은 연못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리고 들여다 보아도 보이지 않고 그래서 바닥을 알 수가 없다. 역설적이지만, 나를 보기위해 거울 앞에 선다고 해서 그 거울에 비친 내가 진짜 내가 아닌 것과 같다. 타인의 눈은 나의 얼굴 나의 눈을 볼 수 있지만, 나의 눈은 나를 볼 수가 없다. 나의 얼굴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거울도 나를 비춘 한 순간의 잔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짜 나는 어디서 어떻게 볼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의 신체 구조는 나의 눈으로 나를 볼 수가 없다. 다만 나의 눈으로 너의 눈을 보는 것만이 가능하다. 내가 나를 보거나 만날 수 있는 것은 신체적인 눈 너머에 있는 마음의 눈만이 비로소 나를 볼 수 있다. 나와 나 자신의 심연 속에서 나를 볼 수 있을 때, 그 심연 역시 나를 보게 된다. 심연 속에서 마음의 눈으로 보고 만나는 나, 아마도 그런 내가 진짜 나이지 않을까. ● 해부학적 의미의 눈이 보는 세계, 언제 어디서라도 접속이 가능한 시대를 산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그중 가장 일반적인 얘기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마음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위해서는 깊은 통찰(insight)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어쩌면 우리가 본다는 것,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같은 현실 속에서도 어떤 이는 행복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 생각과 감각의 차이는 가깝지만 멀고 또 멀지만 가까운 것이다. 이러한 감각과 사유의 차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가 있다. 현대인에 대한 작가들의 시각차는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것을 보고 생각하고 감각하는 작가적 감성에서 출발한다. 그 차이 속에서 작가는 창작활동을 통해 그만의 존재감을 획득한다. 그 존재감 속에서 보고 감각하는 것을 시촉각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작가의 존재감이 투영된 작품은 개인의 기억과 다수가 공감 가능한 객관적인 기억들이 서로 교차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간극 속에 위치하고 있다. 이 간극을 연결하고 또 새롭게 길을 열어가는 것은 창작과 감상이 만나는 자리, 바로 전시를 통해 가능해 진다. ● 이번 전시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미적 사유방식이 투영된 현대인에 대한 은유가 담겨있다.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일상 속의 인물, 익명의 현대인의 표정이 담겨 있는 회화, 조각, 설치작품에 '나' 혹은 '너'를 투영해 보기 위한 전시, 현대인이다.

김건예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130.3cm_2011

2. 김건예의 그리드, 회화적 그물망 ● 현대인의 삶의 구조를 바라보는 작가의 회화적 방식인 '그리드, 다층적 의미의 관계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망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상징이자 은유다. 현대인에 대한 상징과 은유가 드러나는 그의 회화적 방식은 칼로 자른 듯 뚜렷한 인물의 윤곽선과 그물망 속에 드리워진 인물의 볼륨이라는 이중성으로 이루어진다. 인물을 감싸고 있는 섬세한 결의 그물망은 다시 붓이 지나간 흔적 따라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그리드를 이루는 방식으로 '그물망'과 '그리드'의 교차를 통해 하나이면서 여럿인 의미의 층을 형성한다. ● 그것은 자아와 타자, 안과 밖, 정신과 육체,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적 구조가 만나 하나의 '회화적 그물망'을 통해 생성 변화하는 유기적 생명인 나와 너의 관계가 갖는 회화적 시선으로 마주한다. 어쩌면 이러한 작가의 회화적 시선은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는 지점으로 화엄경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의 회화적 표현이 아닐까. 하나 속에 여럿이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다는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이라는 원효대사의 화쟁(和諍)사상처럼, 김건예의 '회화적 그물망'은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연결하고 반영하는 관계에 대한 인드라망의 표현일 것이다.

김윤섭

김윤섭의 낯선 이미지 ● 구글어스에서 보았던 거리의 사람들 이미지처럼 주변에서 마치 사물처럼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한 인간의 사물화 감각을 생각하며 그들이 주변 사물들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 시점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인간이 자신을 하나의 이미지 플랜으로 보는 구글어스, 인터넷의 시각으로부터 인간은 곧 물질과 사건이 중첩된 결과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각을 보여주길 바란다. 또한 인간이 곧 하나의 이미지 판넬이거나 곧 하나의 물질이라면 주체적 인간의 객관적 수치화로 말미암은 시각은 과연 무엇일까? 그러한 평면적 시각의 틀이 곧 인간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정서적 특징은 어떤 것일까? 에 관해 숙고할 수 있는 회화 설치 연구를 기대한다. 이 작품들은 '사물-인간-평면 회화-캔버스 천-사물' 로 이어지는 흐름을 가지고 있다. 사물은 이미지요. 인간도 이미지요. 그것을 재현한 회화도 이미지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들이 레이어처럼 공간 안에 설치되어 있는 낯선 이미지를 만든다. (김윤섭의 작가노트)

박형진

박형진의 유기적 조각 – 촉각적 '간섭' ● 박형진은 창작과정을 통해 인식의 고정성을 벗고자 한다. 인식의 고정성이란, 조각을 위한 재료와 그 재료에 투영된 선입견에 관한 것이다. 조각을 전공한 이 작가는 재료에 투영된 의미가 가진 고정성 혹은 고착화되기 쉬운 경계,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를 견고한 이미지에 유연한 재료를 결합시켜 유기적인 조각으로 변화를 꽤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작업과정에서 촉각적 '간섭(干涉interference)'을 시도했다. 이 지점, 재료와 재료에 투영된 촉각적 '간섭'은 재료를 다루는 작가의 손맛이 주는 끌림과 낯선 거리감이 동시에 작용하는 지점이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재료와 형상을 물(物Thing)과 감(感Sense)의 중첩을 통해 고착화된 감각의 틀을 유연하게 요리한다. 물성을 다루는 감각, 형상의 틀을 작가는 기본적으로 인체나 얼굴 등 인간(Human Being)의 신체나 그 일부를 시·촉각적인 방식으로 입거나 벗고 재구성한다. 물질이면서 복잡한 유기물의 집합인 인간의 몸, 그것을 감각하는 박형진의 작업은 그가 체험한 삶과 예술의 관계 속에서 이성과 감성, 아는 것과 감각하는 것,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반성적 인식을 통해 종합하고 통일하는 작용인 통각(apperception)을 시도한다. 이러한 시도에는 인간의 형과 상을 입고 벗고 또 채우고 비우면서 자신을 통해 자신 밖의 신체를 시·촉각적으로 접촉하는 '간섭'의 지점에서 인식의 고정성 혹은 선입견을 벗는 촉각적인 사유가 자리한다.

서옥순_존재 나의시선_2016

서옥순의 이미지와 질료 ● 커다란 얼굴에 작은 얼굴들이 솟아나 있고 마른 나뭇가지가 움터 있으며 봉합된 상처에는 검은 나비가 앉아있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얼굴, 서옥순은 이 작품이 오히려 꿈과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몸에 난 상처는 언젠가 아물 것이고 아픔처럼 기쁨도 늘 옆에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아픔만큼 성숙해 진다는 것, 존재는 상처를 전재하고 있기에 아픔을 극복하면 더 단단해 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만든 얼굴, 그 자신이자 익명의 현대인이기도 한 하나인 여럿의 얼굴에는 아픔을 녹여낸 부드럽고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하나인 몸이 된다. ● 또한 캔버스 위에 풍성한 볼륨과 화려한 색으로 작업한 「몽상의 명암」시리즈는 마치 인간 내면의 속살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이 살갗은 부드러운 것 같지만 표면은 상처의 흔적으로 더 단단해진 모습이다. 서옥순의 이번전시 「이미지와 질료」는 촉각적인 시각이 결합되는 경계, 몸 혹은 존재의 안과 밖, 아니마 속에 내재된 아니무스와 아니무스 속에 내재된 아니마의 상처가 서로를 봉합해 놓는다. 그리고 이 균형감은 촘촘하게 한 땀 한 땀 바늘과 실이 지나간 자리는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자 몸이 빛이 되어 그만의 존재감을 발한다. 이렇듯 서옥순의 이번 전시는 억압받고 상처로 얼룩진 자아를 스스로 정화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투영한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아픔 뒤에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존재의 상처와 억압을 넘어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이미지'와 마주하는 시간이다.(아트스페이스펄 전시 정명주의 글 인용)

이원경_두개의 문-낯설고 익숙한

이원경의 두 개의 문 ● 인간의 '신체'는 물질이면서 생명을 담는 그릇이다. 살아있는 신체는 복잡한 유기물의 집합체로 자신과 자신 밖의 세계를 지각하는 능력을 가진 생명체이다. 무엇보다 복잡한 유기물의 집합체인 인간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를 연결하는 신체에 깃들어 있는 소중한 가치, 그것은 마음(mind)다. 사람과 사람이 상호의존 관계를 통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작가는 마치 껍질을 벗은 신체, 몸의 부재 혹은 텅 빈 몸, 열린 신체이미지로 제시해 놓았다. 이원경이 만들어 놓은 인체형상은 마치 껍질처럼 벗겨진 신체, 신사복을 입은 하얀 형상에 파란 눈이 화룡점정이다. ●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도 한다. 전시의 주제이자 작품명이기도한 '두개의 문'중에서 파랗게 빛나는 두 개의 눈과 마주한다. 나의 눈으로는 나를 볼 수 없지만, 나의 눈을 통해서만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 눈에 대한 두 개의 의미가 곧 두 개의 문은 아닐까. 나의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은 거울에 비친 나의 허상이기 때문이다. 나의 눈은 나 이외의 다른 곳, 나의 밖을 향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본다. 그런 나를 보고 만나게 하는 것은 타인을 통해서만이 가능해 진다. 이렇듯 이원경의 '두 개의 문'은 신체의 껍질, 그것을 보는 이의 시선, 그 시선을 담고 있는 몸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내가 보는 타자의 몸, 정확히는 껍질이 된 몸의 파란 눈빛과 마주하는 순간, 나를 보는 눈, 신체의 밖이 아닌, 신체의 안, 마음을 보는 눈이 된다. ● 이번 전시 현대인 그리고 현대인의 몸은 나의 몸이든 타자의 몸이든 간에 그만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예술가가 보고 느낀 인간의 모습, 현대인의 몸에 대한 시각은 작가적 시각에서 해석된 몸으로 주관적 경험에 대한 상징이나 은유의 방식이다. 그것은 몸을 보고 감각하는 나와 미술과의 관계, 타자화된 나 혹은 너를 지각하는 방식, 미술 속에서 발견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 김옥렬

Vol.20180410a | 현대인 Today Human Being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