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UREHED 선수상

김아영展 / KIMAHYOUNG / ??? / painting   2018_0412 ▶ 2018_0513 / 월요일 휴관

김아영_방주_허니컴 종이 패널 팔레트에 연필, 파스텔, 오일스틱_ 121×160×12.5cm×10_201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8 Thinkartkorea 선정작가 기획 초대展

주최 / (주)신한화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포네티브 스페이스 ponetive space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34 Tel. +82.(0)31.949.8056 www.ponetive.co.kr www.thinkartkorea.com/gallery

니닉 : 균열의 바다에서 좌표 찾기 ● 일상의 삶에 예술이 끼어들어 날카로운 각성을 자아내는 것처럼 작가에게는 예술의 세계에 삶이 끼어든다. 2016년 전시장에 「시공여행 상품」을 제시하며 김아영은 "우주를 바라보고자 하는 예술가의 작은 행성에도 삶은 혜성처럼 날아와 부딪친다."고 했었다. 일상을 일상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작품이 일상인 작품의 세계를 자각시키는 날카로운 생활의 찌름에 의해 탄생되다니.

김아영_방주_허니컴 종이 패널 팔레트에 연필, 파스텔, 오일스틱_ 121×160×12.5cm×10_2018_부분

팔레트, 항해의 근원 ● 일상에서 작품을, 작품에서 일상을 보는 우리의 세계는 만다라처럼 각각의 세계는 하나이자 다른 세계로 우주의 테두리 안에서 요동치며 분화한다. 김아영의 『니닉판타지』 삽화 시리즈는 거침없는 드로잉으로 펼쳐져 북구의 신화를 담은 타로(Tarot)의 상징을 담은 한편 어딘지 모르게 정제된 형태들은 우주의 질서를 담은 만다라를 연상시켰다. 지나간 그의 작품들을 스쳐보던 중, 필자가 들여다본 화면 속 그의 드로잉 「멘디의 초상화」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필자에게 위로를 건네었다. ● 스튜디움(studium)을 넘어선 푼크툼의 순간은 오로지 개인의 것이어서 언어로는 설명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의연하고도 부드럽게 두 팔을 들어 내면으로 향하는 힘을 지시하는 멘디를 응시한 순간이 바로 그러하였다. 만성적인 어깨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터여서인지 관음보살과 같이 빛나는 몸의 광채를 가진 멘디는 현재를 지나 미래의 바램을 펼쳐 보이는 타로 카드의 상징으로 보였다.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맨몸으로도 시공여행이 가능했던 고대종족 멘디의 유전자지도를 표현한 것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공여행 후 흐트러진 여행자의 정신과 정체성을 회복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시공여행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수호 토템이다."라는 설명문을 발견한 순간, 나의 이 통증이 지구에서의 시공여행에서 흐트러진 어떤 상황의 결과라는 데 동의하게 하였다. 그렇게 작가의 우주적 세계는 현실의 균열된 틈에 내려앉아 실재와 꿈, 희망과 사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오래된 신화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었다. ● 작가는 어느 날 타자를 치다가 오타를 내서 만들어진 '니닉(Ninnik)'이란 단어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라데이션된 팔레트에서 건져올린 어떤 색채처럼 그것은 구체적인 이미지로 인지되었고, 그리하여 작가 스스로 이야기구조를 만들어가는 '개념공상예술가(Conceptual Imaginary Artist)'가 되었다. 구체성을 담보로 하는 개념(concep)과 환상적 요소가 있는 공상이란 단어를 그는 '허상의' 의미가 있는 'Imaginary'로 사용한다. 수많은 상징과 기호 그리고 섬세한 감정의 기술로 구성된 니닉의 세계를 구성하기 위하여 아마도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기초하여 상징계와 실재계를 구분한 '상상계'의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 니닉에서 시작한 세계는 거침없이 자라나 물질과 현상, 꿈과 이미지, 서사와 낭독의 세계를 열어젖힌다. 그가 만들어낸 니닉의 세계 안에서 모든 것은 창조되고 생명을 얻어 세상으로 뛰쳐나온다. 「시공여행상품」에서 실현된 우주를 넘어 여행을 하고 가져온 기념품에서 만난 생명의 이미지들은 통상적인 고어스타일의 드로잉을 닮아 있기도 하고, 게임의 주인공 혹은 정말 기념품인 그릇이나 장신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것의 구체성이야 어떻든 이 허상의 세계에서 기념품이라니.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답이 바로 거기에 있다. ● 작가가 마치 벽돌처럼 쌓아올려 만든 탑 안을 탐험하는 「인공합성세계」는 관객의 참여로 진행된다. 누군가 간여해야만 이루어지는 그 실천의 걸음은 벽돌 하나하나가 픽셀로 화하는 디지털의 세계로 환원된다. 구체적인 현실의 세계에 존재한 굳건한 탑은 그렇게 바벨탑이 되어 의미를 찾아 헤매게 만든다. 그 지난한 모험의 캐릭터가 원주민 형태라는 점은 작가가 매혹된 세계가 원시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상상이 살아 움직이던 그 시간 어디쯤에 대한 소환을 의미한다. ● 공간을 넘어서 시간의 경험을 달리하는 이 작업은 가공의 세계와 현실의 이 모든 것이 탑 속을 더듬는 세상의 탐험과 다를 바 없을 거라는 믿음을 남긴다. 그런 점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의 현상계에 대한 관심을 읽어낼 수 있는데 세계지도 형태로 나타난 「팔레트월드」는 가상의 공간을 가시화함으로써, 현상으로 나타난 현실 또한 가상의 것일 수 있음을 은유한다.

김아영_방주_허니컴 종이 패널 팔레트에 연필, 파스텔, 오일스틱_ 121×160×12.5cm×10_2018_부분

균열의 바다를 건너는 힘 ● 근작에서 작가는 방주를 만들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실어 부유하는 세상에 띄울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이자 자신의 세계를 의미한다. 미니멀리스트가 자연적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좌우대칭의 법칙처럼 화면은 그가 만들어낸 가공의 세계임을 드러내는 방식인 좌우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다. ● 오디세이가 탔던 배처럼 고대의 모습을 지닌 방주는 뱃머리에 선수상(船首像)을 지니고 있다. 전통의 세계를 거슬러 올라 상징계의 의미를 채택하여 자신의 장소를 화면 속 방주로 위치시킨 뒤 선수상의 조룡(鳥龍)은 위에서, 옆에서, 아래서 본 모든 모습이 결합되어 편화된 것이다. 니닉의 이야기 구조에 의해 작업이 진행되기에 봉황이나 조룡도 의미를 새기고 형상을 찾아 즉 캐릭터를 찾아낸 다음 위치시키는 것이다. ● 방주는 우주의 자궁에서 태어난 알처럼 중앙에 위치한 타원형을 중심으로 구조화되고 벽돌탑 안으로 흘러들어간 형체에 의해 결합되었음이 분명하다. 검고 각진 카오스적 세계에서 빛을 지니지 못한 채 해와 달 그리고 별자리들은 갇혀 있다. 각진 구획의 중간에서 터져나온 검은색은 좌우에서 쑫아져 들어오는 흰색과 결합하여 분수처럼 용출하여 허공의 알을 생산한다. 좌우로 열린 발코니 창밖에는 에메랄드 그린의 바닷물이 일렁이는 낮과 푸른 밤이 드리워져 있다. 다시 위로 열려진 여섯 개의 아치문과 태양을 담은 듯 붉고 둥그런 물체를 닮은 흰색의 보울 형태는 크리스탈 잔을 상징하는 듯하다. ● 마법사의 지팡이에서 시작한 형태들은 뼈로 자라나고 조룡의 날개는 뇌의 주름으로 구성되었고 배의 선수는 우주의 자궁을 보여준다, 이 모든 상징계는 실상 작가가 만들어낸 탑의 내부인데 벽돌체 내부에서 기둥을 받친 선수상 등은 더욱 그러한 심증을 굳히게 한다. 결국 이 작품 앞에서 관객은 얼룩덜룩 줄이 그어진 채 통통한 모습의 캐릭터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하나 감각하며 그 형상을 추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곳에는 죽음의 이미지를 넘어 애정, 감정, 꿈, 가족을 나타내는 물의 상징, 잔의 이미지가 상단에서 빛을 내뿜으며 목표지점을 알려준다. ● 작가의 방주라 명명하였지만, 실상 관람자의 항해를 위한 바다임은 의심할 수 없는 이유이다.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기초로 한 「모노리스」는 그의 작업이 항해를 의미함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 항해의 목적은 물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오디세이아가 그러했듯 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인생의 항해란 원래 그런 것이니 여행길에 만난 평원, 황무지는 축제로 가득할지라도 그것은 죽음의 이미지일 뿐이다.

김아영_방주_허니컴 종이 패널 팔레트에 연필, 파스텔, 오일스틱_ 121×160×12.5cm×10_2018_부분

삶, 상상력 그리고 언캐니 ● 현재를 의식적으로 떠난 마음은 심적 시간 여행(mental time travel)을 한다. 시간을 거슬러 소환한 기억들은 쉴 틈이 없이 언제나 현재의 어떤 자리의 실체와 같은 의미와 무게를 지닌다. 그것은 구름을 쳐다보노라면 일어나는 망상처럼 코끼리가 되기도 하고 코브라가 되기도 하며 위대한 강가신처럼 우주에서 떨어져내라는 물이 되기도 한다. 「팔레트 우주:목성의 기억」은 바로 이러한 상상,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사실과 다를 바 없는 친근함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어딘지 낯선 그 장면들마다에서 언캐니(Uncany)의 덫을 본다. '아담의 뼈처럼'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상상계의 상징은 그가 펼친 「방주」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 '억압된 무의식이 의식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낯섦의 언캐니는 반복적인 귀환을 통해 일상을 비집고 들어온다. 호미 바바는 언캐니는 혼혈성(hybridity)이어서 문화적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하였다. 매혹적인 것이란 익숙하면서도 다른 것이어서 김아영의 화면이 갖는 작동원리는 바로 잊어버린 신화적 세계의 이야기 구조, 욕망의 귀환이다. 여러 사건을 경험하고 죽음과 사랑의 유혹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이아처럼 그 낯섦은 생명력을 회복시키고 삶에 집중하게 한다. ● 고대 마야나 아즈텍 문명의 이국적인 신들과 전통 일월오봉병으로 구성된 팔레트는 혼성의 세계가 갖는 힘을 보여준다. 초현실주의의 현실을 넘어선 그 어딘가의 세계에 대한 이상과 만다라의 근원적 힘이 결합한 아이콘 시리즈의 무한 공간은 지난 시간의 그 어디쯤이자 현재의 어디도 될 수 있다. 하위문화의 캐릭터, 이방인의 표식, 원주민의 신체와 성적 욕망의 억압된 것들의 귀환은 작가의 견고한 탑 안에서 보호되고 증식되어 혼성의 공간은 팽창되어 간다. 이상향(Utopia)은 항해중일 때만 가능한 개념이다, 정박한 순간 그곳은 잃어버린 낙원(Arcadia)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의 방주에 우리는 아직 더 머물러야 하고, 벽을 더듬어 유물을 탐구하듯 이 가공의 세계에서 억압된 것들에 속한 우리 자신을 내려다보는 캐릭터로 존재할 것을 권유받는다. ● 작품과의 만남은 경험의 차원을 넘어선 감동, 위로 혹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격한 동요를 일으켜 스탕달 신드롬에 이르는 격렬한 관람자의 감정적 반응을 통해 더욱 의미 있는 것으로 자리매김 된다. 때때로 예기치 않은 순간에 비집고 들어와 마음을 쿡 찌르고 지나는 이미지들이 있다. 롤랑 바르트는 이를 일러 푼크툼(punctum)이라 했는데 '무방비 상태로의 찔림에 의한 적나라함'이란 바로 아무런 보호막 없이 작품에 의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일 게다. 김아영의 작품이 주는 불편함은 의식의 각성과 함께하는 시각적 경험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 조은정

김아영_방주_허니컴 종이 패널 팔레트에 연필, 파스텔, 오일스틱_ 121×160×12.5cm×10_2018_부분

'FIGUREHEAD' 선수상: 배의 앞머리에 붙이는 사람이나 동물의 상像 - 배와 선수상 ● 인생의 긴 여정 중에는 자신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불현듯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최근 작업실을 이전하면서* 내게도 그 순간이 찾아온 듯하다. 예술가로서의 삶이라는 바다를 이제쯤이면 꽤 멀리 항해해왔으리라 생각하며 뒤를 돌아본다. 그런데 다사다난한 십 여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처음으로 미지의 목적지를 그리던 항구에 내가 그대로 서있다. 그간의 열정을 통해 바다를 가로질렀다 생각했지만 이제야 한 척의 배를 얻었고, 그 배를 타고 비로소 떠날 준비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 본격적인 출항에 앞서 중요한 일이 하나 남았다. 순항을 기원하고 배에 고유성(character)을 부여해줄 배의 수호상, 선수상(船首像, figurehead)을 제작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김아영_메아이네이 구릉지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130cm_2018

선수상과 토테미즘 ● 세계 각지의 선수상의 역사를 보면 정착 이전의 삶 속에서 피어난 뿌리 깊은 토템 신화를 읽을 수 있다. 인디언의 카누에 장식된 동물상, 바이킹의 용수상, 중세의 대항해 시대를 누빈 배들의 앞길을 이끈 여인과 신의 형상, 신화 속 신들을 본 딴 동양의 선수상, 그리고 우리 거북선의 용수상까지, 형식은 다양해도 잔잔한 바다, 안전한 항해를 위한 인류의 기원과 믿음은 한결같았다. ● '심청전'이 풍랑을 헤쳐가는 해신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과, 영화 '타이타닉'에서 여주인공이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는 유명한 장면이 선수상을 상징한다는 해설도 존재한다.(실제 타이타닉에는 선수상이 없었다고 한다.) 뉴욕의 자유여신상이 맨하탄에 들어오는 모든 배들의 행운의 선수상이 되어준다는 설도 있다. 고사상의 돼지머리, 상여나 가마의 꼭두, 전통 기와지붕의 추녀 끝 토수, 하늘 높이 솟은 솟대까지도 그 기원을 선수상과 함께 하며, 전통은 끊임없이 계승된다. ● 남태평양의 신화와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에는 필연적으로 배가 많이 등장하는데, 어쩐지 눈에 띄는 선수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공인 모아나가 섬을 떠날 때 그녀의 사이드킥(sidekick, 보조나 들러리,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데리고 다니는 동물 캐릭터)인 수탉이 마침 배에 오른다. 수탉은 중요한 물건을 삼켜버리기도, 위기의 순간에 지켜내기도 하며 작은 카누를 타고 바다를 누비는 주인공의 모험에 함께 한다. 어쩌면 깊은 토템문화에서 기인한 영화 제작자들의 무의식이 수탉으로 하여금 카누의 선수상 역할을 하도록 이끌었던 것은 아닐까?

김아영_Nova Flux(신성의 선수상)_캔버스에 먹물, 잉크, 파스텔_80×100cm_2018

봉황을 닮은 선수상 ● 고대 모험가들의 기원pray이 담긴 토템 선수상 문화가 나의 상상의 세계 '니닉'의 기원origin과도 상통하리라 생각한다.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 온전한 화합,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티끌 없는 믿음, 이같은 메시지가 담긴 과거와 현재의 스토리텔러들이 들려주는 판타지야말로 인류의 선하고 진화된 의식을 깨울 것이라는 희망, 이것이 곧 니닉이다. ● 희망을 싣고 출항하려는 거대한 배(방주), '니닉 크라프트'의 앞머리를 장식할 상징물로 새의 형상, 특히 '봉황'을 선택했다. ● 봉황은 부활, 불사, 재생의 공통된 상징이다. 연금술에서 불사조는 '대작업'의 완성을 의미하고, 과거의 여러 문명과 국가에서 '태양, 은총, 시리우스별, 승리, 신앙' 등을 상징했다. 중국에서는 기린, 용과 마찬가지로 음과 양을 동시에 뜻하고 다양한 요소의 조합으로서 우주 전체를 나타낸다. '분리될 수 없는 화합'을 나타내는 결혼의 상징일 뿐 아니라 이원세계에서의 음양의 완전한 상호의존을 상징하는 것이다. ● 상상으로 만들어낸 니닉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카'와 '니'라는 두 존재의 재회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명제가 있다. 나는 이것을 현실에서는 소울메이트 혹은 짝을 찾는 과정과 유사한 맥락으로 여기곤 했다. 그래서 카와 니의 재회에 봉황이 더 없이 좋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했다. 또, 봉황은 니닉의 세상 속 창조물인 '조룡'의 모습과도 닮았다. 조룡은 허상의 영물로, 각종 새와 공룡을 섞어 닮은 형상에 그 크기가 무척 크고 모습이 아름다우며 여러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정되어 있다.

김아영_암초_허니컴 종이 패널에 연필, 파스텔, 오일스틱_32.5×40cm_2018

출항 ● 나는 개념공상예술가*다. 희망적인 메세지, 선한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꿈과 이상이 함축된 공상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관과 이야기의 요소들을 다양한 시각매체로 구현해 선보여왔다. 추상적 개념을 실체화함으로써 무의식의 감각화, 창조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에 니닉의 느낌을 담은 새로운 형상(선수상)은 고유성을 증명하고, 앞으로의 긴 항해에의 포부를 새롭게 부풀리며, 주제관에 브랜드 가치를 더해주리라 생각한다. ● 나는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와 전통으로부터 큰 영감을 얻는다. 옛 모험은 새로운 이야기의 씨앗이 되고, 계승된 전통은 그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드림 스토리'가 바로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다. 니닉이 모험심과 긍지를 잊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는 현 시대 판타지의 수호상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 문득 궁금해진다. 하나의 별에도 나아갈 궤적이 있으니, 지구에 선수상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 김아영

Vol.20180412c | 김아영展 / KIMAHYOUNG / ???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