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

조은령展 / CHOEUNYOUNG / 曺恩玲 / painting   2018_0420 ▶︎ 2018_0430

조은령_20180417–시간의 문_벽면에 흑연_200×50cm_201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217e | 조은령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_갤러리 정 다방 프로젝트

관람시간 / 12:00pm~06:00pm

THE 3rd PLACE 남산 서울 중구 동호로17길 178 Tel. +82.(0)2.2633.4711 www.jungdabang.com

'...도시는 달린다...' 무연고 사망자의 흔적을 기록한 기사 중에 유독 머릿속에 남는 한 줄의 글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멈추어 섰고, 누군가는 뒤돌아보며, 누군가는 잊혀졌다. ● 서울 중구 동호로 17길 178의 「THE 3rd PLACE」는 골목길 세 번째에서 마주쳤을 흔한 벽돌집이었다. 물론 20년 전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2018년 서울 한복판에서 이 집은 낯설다. 삶의 흔적이 가득한 채로 기념비처럼 서 있다. 십년 혹은 이십년 전에 멈추어 선 공간이며 돌아보게 하는 공간이다. 이곳에 '시간의 문'을 열어 두었다.

조은령_계절의 순환과 시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고찰과 180319 – 시간의 문_ 트레이싱지에 펜_250×57cm_2018
조은령_1712 – 시간의 문_리넨에 분채_100×100cm_2018
조은령_시간의 문展_THE 3rd PLACE 남산_2018

歸去來兮 ● 도연명陶淵明은 지쳤다. 달려 온 지난 모든 날들이 잘못되었으니 돌아가는 것만이 바른 결정이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간의 흐름 속에 돌아온 고향은 기억 속에 그 곳이 아니었다. 뜰은 황폐해졌다. 하지만 잡초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소나무와 국화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었다. 그 안도함 속에 전원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가 돌아가려 했던 것은 고향이었을까? 그가 돌아가고 싶었던 것은 어긋나기 전의 자신이다. 도연명에게 소나무와 국화는 '시간의 문'이다.

조은령_180129,170927,171227,180201 – 시간의 문_장지에 먹_25×35cm×4_2018
조은령_시간의 문展_THE 3rd PLACE 남산_2018
조은령_180322 – 시간의 문_리넨에 분채_200×50cm×4_2018

시간의 문 ● 작업을 하면서 화면에 쌓이는 흔적이 현재現在라고 생각했었다. 화면의 끝은 균열이며 현재에 끼어드는 기억이었다. 그러나 이제 완결 된 지난 작업들을 들여다보니 2009년에 그린 난蘭은 여전히 2009년에 남아 있으며 2017년에 그린 蘭은 2017년에 남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연명에게 소나무가 그랬고 국화가 그랬듯이 완결된 화면 속의 난과 대나무는 나에게 '시간의 문'이다.

조은령_180415 – 시간의 문_벽면에 흑연_120×30cm_2018
조은령_Echoes 170825와 171111 – 시간의 문_리넨에 분채_120×30cm×5_2017
조은령_Echoes –대나무 숲으로 그리고 대나무 숲으로부터 170820_ 리넨에 분채_160×60cm×4_2017

이상한 나라의 작은 문 ● 엘리스는 작은 문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작아졌다. 그러나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높은 탁자 위에 있었다. 그래서 엘리스는 다시 커져야했다... 지루했던 순간에 나타난 수상한 토끼를 따라 엘리스가 들어간 곳은 이상한 나라였다. 작은 문을 크게 만들지 않고, 높은 곳을 사다리로 오르지 않았다. 엘리스는 스스로가 변해야 했다. '이렇게 변하면 누가 엘리스인지, 혹은 엘리스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 엘리스는 두려워졌다. 그러나 엘리스는 이상한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었다.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혹은 작은 문으로 들어가기. 기술의 발전은 정보의 확산을 도왔지만 정보에 대한 불신을 키운 듯하다. Echo-chamber의 시대 - 서로 다르면 서로 틀렸다고 한다. 다른 의견은 듣지 않고 보지 않는다.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대화한다. 치우처진 주장은 확산되고 증폭된다. 지난 몇 년간 세대 간의 불신은 더욱 커져서 한 집안에서도 말을 아끼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과거는 부조리하기만 한가? 아니면 과거는 바르고 현재는 틀렸는가? 내가 변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또 내가 변해서 작은 문으로 들어 가야한다. 그렇게 과거로 현재로 미래로 들어 가보면 어떨까. '시간의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 조은령

Vol.20180420i | 조은령展 / CHOEUNYOUNG / 曺恩玲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