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연.자갈마당

김주연展 / KIMJUYON / 金周姸 / installation   2018_0425 ▶ 2018_0916 / 월요일 휴관

김주연_김주연.자갈마당展_.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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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425_수요일_06:00pm

기억정원 .자갈마당展 이후, 별☆ 스토리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 대구시 중구 북성로3길 68-5 Tel. +82.(0)53.421-0037 www.djdrcf.or.kr/space01.htm blog.naver.com/jagalmadang_art

'.(닷)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온 성매매 집결지역(속칭 '자갈마당')의 중심부에서 예술을 통한 변화變化를 실험하는 시작점(.)이라는 기대의 상징이며, 또한 사회, 경제, 문화적 변화를 거쳐 '성장成長'이라는 지속적인 기대를 받아온 도시가 봉착한 머뭇거림에 대하여 또 다른 '재생再生'을 고안하려는 미술적 장치이다. ● 이 곳, 자갈마당은 100년 이상의 삶과 흔적과 기억이 축적된 공간이다. 1909년 공창으로서 최초 영업을 시작하였고, 해방 이후에도 6.25전쟁 기간 연합군의 위안소로, 1960년대부터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던 시기까지 특별 관리구역으로 존재해왔다. 현재까지 자갈마당에는 인권과 생존, 주거환경 개선, 정치와 경제적 이익 등 복잡한 삶의 문제들이 얽혀있는 상태이며, 최근 인근 주상복합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의 자갈마당 폐쇄 요구와 이 지역의 도시재생과 개발이라는 첨예의 상황이 대두해있다. 우리는 이 곳 '자갈마당'을 어떻게 기억하고 변화시켜야할지를 질문하는, 100년의 삶이 담긴 장소를 깨끗이 지워버리기 전에 과거와 미래를 잇는 창조적 기억의 원림園林으로서 '.자갈마당'을 기록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2017년10월18일부터 2018년3월18일까지 진행되었던 이곳의 개관전시, '기억정원 .자갈마당'에 이은 2차 전시, 1층의 '뮌&이명호.자갈마당展'과 2층의 '김주연.자갈마당展'은 원치 않는 문화적 유산을 어떻게 미래를 위한 기대감으로 전환시킬 것인가의 문제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질문을 내재하며, 특정 장소의 일상을 낯선 지각으로 발견하려는 뜻밖의 개입intervention을 통하여 지역과 도시 전체의 변화를 배양하려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창조적 기억에 주목한다. 이는 폐업한 과거 성매매 업소 공간에 전시로 개입하는 물리적인 문제와 복잡한 사회적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 환경들에 대하여 예술가의 시간이 어떻게 개입하고, 그 기억 속에서 자기내면과 외부세계의 합일에 의한 예술가 각자의 생각이 어떠한 예술 설계로 시각화되느냐의 지점이다. '자갈마당'이라는 특수한 장소의 선택적 공간에 대한 대응은 흰 캔버스 혹은 빈 공간을 마주한 예술가의 생각과 기억, 신체행위, 그 결과적 흔적에 비유할만하다. 이렇게 이번 전시는 참여 예술가의 별別 이야기와 그 행위를 기억하는, '기억정원記憶庭園'이후의 원림으로서 '.자갈마당'을 그리고 있다. ● 황폐한 땅이나 척박한 도시 어디에나 뿌리를 내리며 점차 주변을 감싸 안고 치유하는 식물 본연의 특별한 능력은 변화와 생명에 관한 자연의 경외로 해석될 수 있고, 이번 2개의 전시 역시, 그 식물의 능력을 차용한다. 식물을 닮은 예술의 기억들을 채집하고 우리 앞에 조심스럽게 펼쳐 보이면서, 도시 한가운데에서 숲이 이어진 산맥의 태도를 떠올리는 것, '.자갈마당展'은 거대한 산맥을 도심의 폐쇄된 건물 안으로 그려내면서 이 장소를 다시 창조적으로 기억하고, 결국 우리 본연의 자신을 만나는 기대를 담아낸다. ● 두 번째 거대한 산맥과 같은 참여 예술가의 상상과 설계의 지향은 이렇다. 첫째, 콘크리트 건물로 둘러싸여 정체된 도시의 중심지역, 이곳이 깊은 숨을 내쉴 수 있는 원림으로서 치유의 예술 공간으로 될 수 있을까? 둘째, '.자갈마당'이 원시와 현대, 자연과 도시문명, 음과 양이 결속하는 하나의 살아있는 예술적 유기체로서 지속할 수 있을까? 셋째, 탐사하듯 거닐듯, 건물 내부의 공간 곳곳에서 참여 예술가의 태도와 신체행위를 발견하고, 이를 미래의 기억으로 껴안을 수 있을까? 넷째, 변화의 기대로서 '.자갈마당'이 확산되어, 동네주민들이 참여하는 '식물' 생태 프로젝트로 나아갈 수 있을까? 다섯째, 결국에는 동네와 지역이 서서히 치유되고 변화, 성장, 기록, 보존의 과정을 개방적으로 현실화하는 미술적 장치로 지지받을 수 있을까? 등이다. ● 씨앗, 풀, 나무, 숲, 산을 닮은 식물성의 태도로서, 이곳 장소의 '기억과 치유와 성장'을 나누려는 김주연의 설계는 다음과 같다.

김주연_Metamorphosis VIII_신문, 앵글선반, 씨앗_226×810×40cm_2018

.자갈마당에 관한 김주연의 설계Metamorphosis VIII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 2층은 '살아있음'의 성장을 기대하며, 기억하고 치유하려는 김주연의 설계를 선보인다. 2층에 들어서면 먼저, 초록색 싹으로 덮여있는 8m 길이의 신문지더미 축대를 만난다. 이것은 생명성에 관해 새롭게 창조된 성장의 현재 풍경처럼 보이는데, 이는 동양철학의 태도에서 모든 존재의 다른 성장, 다른 방식의 성숙과 생장을 주목해왔던 김주연의 대표적인 작업 주제, '이숙異熟'의 확장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배추, 겨자, 브로콜리 등 9종의 식용식물 씨앗이 2톤 규모, 약10,000부의 신문지더미 표면에서 생존과 성장, 변화의 과정을 드러내는 이 작업은 시간성과 세계와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질문을 담은 과정 중심의 진행형 작업이다. 또한 전시 몇 개월 전부터 여러 사람들(대구광역시립대봉도서관, 대구광역시립중앙도서관,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경북대학교도서관, 대구신문사, 대구광역시중구청, 대구광역시중구도심재생문화재단, 남산1동주민센터, 봉산문화회관, 김미경, 김영필, 김채윤, 정선영 등)의 도움으로 수집하여 모았던 신문이 810×40×226cm 크기 선반 위에 지층의 결을 만들며 커다란 산 모양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협력과 유대 역시, 성장 과정에 관한 중요한 덕목이다. 싹을 틔우는 지반으로 신문지를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작가는 신문지의 원료가 나무라는 근본적 연관성이 있기도 하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기상환경 등 다양한 일상의 사건과 동시대 역사를 기록하는 매체에 씨앗을 심어 생명을 기르는 생태적 작업의 의미 때문이라고 한다. 씨앗은 일정시간 비춰오는 간접 자연광과 인공조명, 적당한 온도와 습도, 주기적으로 분무되는 수분에 의해 싹을 틔우게 된다. 신문을 모으고 물을 공급하는 수고와 애정을 비롯한 다양한 환경적 여건들이 씨앗의 발아에 관여하는 것이다. 무성한 초록식물 생명체의 활기, 설레는 감격의 맥박이 느껴지는 새싹의 변화는 생명성과 다음 과정의 성장을 위해 움직이는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전시기간 동안 씨앗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의 주기에 따라 '발아, 성장, 소멸'하는 형상 풍경은 자연의 순환에 대한 감각 경험을 불러일으켜 우리의 성장과 변화를 공감시키고, 그 공간과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김주연_잡초의 발견_잡초, 텍스트_가변설치_2018

잡초의 발견 ● 2층 콘크리트 바닥의 가장자리 몇 곳에는 작은 흙덩이에 의지한 채 생존하는 식물 몇 포기와 그 앞에 표시된 글귀들이 눈에 띈다. 잡초란 보통, 이름이 지정되지 않고 하찮게 여겨지는 식물군이지만 땅을 성글고 기름지게 하며 아스팔트나 콘크리트의 틈새에서도 그 강인한 생존력의 위용을 보여주는 생명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작가는 대구 인근의 금호강과 팔공산에서 직접 채취한 잡초에 강한 생명력이라는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의 상담사례와 인터뷰, 자활지원센터에서 게시한 성매매 여성들의 글들을 참조하여 그들의 상황과 심리적, 정서적인 부분들을 공감하고, 강인함과 치유의 상징적 글귀들을 선별하여 준비한 잡초와 함께 설치하였다. 바닥의 단어들은 이곳 자갈마당에서 생활했던 여성들이 사회에 나와서 강인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기원하며 작가의 방식으로 발견한 가치들이다. 이들 잡초와 함께 바닥에 적힌 글자들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스스로의 구제, 땅에 스며든 호흡, 자신과의 포옹, 빛이 끼어든 틈, 굽은 버팀목, 따스한 바닥, 자갈 속 질경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온기, 마주선 거울, 내면의 적요, 출구를 향한 날개 짓, 움직이는 섬, 부스러진 기억, 돌아서 만난 길.

김주연_수놓은 침묵_장롱, 텍스트_210×100×60cm_2018

수놓은 침묵 ● 신문지에 싹을 틔운 'Metamorphosis VIII' 작업의 가장자리와 몇 곳의 잡초를 지나 다음 동선의 작은 공간에 다다르면 문이 조금 열린 100×60×210cm 크기의 흰색 옷장이 있다. 김주연은 이번 전시를 위하여 이곳 공간의 특정적 장소성과 역사성, 또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을 주목하였고, 신박진영의 '성매매 집결지의 장소성에 대한 여성 주의적 연구' 논문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쓴 글과 인터뷰들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관련 자료를 읽으면서 주목했던 단어 하나하나를, 이곳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옷장의 안팎 표면에 나름의 방식으로 옮겨 놓았다. 이 옷장에는 희미하게 읽혀질 정도의 가슴 아픈 과거의 슬픔과 절망, 기억이 언어화되어 씌어있다. 이 글자들은 '아픔'을 상징한다. 먼지처럼 내린 우울, 소외된 생존, 살아내야 하는 절망, 몸의 기억, 굴절된 자존감, 의식이 잠든 불면증, 부유하는 트라우마, 납으로 만든 추, 살찌지 않는 나비, 내면과 단절된 소통, 수놓은 침묵, 기억의 통증, 100년의 상흔, 질퍽한 함정, 유리관 빨간 등불, 자라지 않는 풍경, 옹이가 만든 무늬.

김주연_낯선 풍경 II,III_피그먼트 프린트_80×100cm_2015

낯선풍경 Ⅰ, Ⅱ, Ⅲ ● 옷장이 있는 '수놓은 침묵' 작업의 우측 작은 방 공간에 설치된 2점의 100×80cm 크기 선인장 사진과 그 바깥 벽면에 걸린 1점의 67×100cm 크기 잡초 사진은 '낯선풍경'이라는 주제의 작업이다. 이 작업도 역시 작가의 작업 주제, '이숙異熟'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바깥 벽면에 있는 잡초 사진은 이름 모를 잡초들이 하나의 건물을 덮는 과정에 주목하는 작가의 시선을 선보이고, 방 공간 내부에는 선인장을 테이블이나 박스에 이식한 이미지의 사진을 선보인다. 이 사진 작업들은 '이동'과 '이식'의 의미이며, 전혀 다른 세계의 삶을 살아가려거나 혹은 적응하려는 이곳 출신의 여성들에게 전하는 작가 자신의 메시지라고 한다. 이 작업들은 식물의 사생활이라는 주제로 낯설고 다른 풍경을 설계해온 작가의 식물성 프로젝트 작업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특수한 상황에 처한 이곳 여성들이 강인하게 살기를 바라는 주문을 담고 있다.

김주연_기억의 통증_옷에 유리조각_138×56×46cm_2018

기억의 통증 ● 사진이 설치된 '낯선풍경'의 우측 방 공간에는 몸이 가녀린 여성이 입을만한 44사이즈의 붉은색 드레스 형태의 조형물이 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46×56×138cm 크기의 이 입체물은 깨진 유리조각으로 만들어진 드레스처럼 보인다. 아마도 성매매 여성이 입었을법한 옷이며, 그 옷 위에 깨진 유리조각을 덧대어 고형화한 이 작업은 유리조각이 은유하는 아픔 혹은 통증이 몸에 익숙해져서 갑옷처럼 된 상태를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는 투명하고 단단한 갑옷이 되어버린, 상처받은 몸과 정신과 심리에 관한 시각화로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피부가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이 같은 유리 갑옷을 제작했다고 한다.

김주연_기억지우기VI_소금, 의자, 소금섬(책)_가변설치_2018

기억지우기VI ● 계단의 우측에 위치한 긴 전시공간에는 672×230×240cm 크기, 2톤 분량의 소금과 7개의 오래된 나무의자가 있다. 그리고 입구 벽면에는 소금에 얽힌 전 세계의 설화를 수집하여 엮은 '소금섬'이라는 책을 함께 비치했다. 작가는 이곳 자갈마당을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고립되며, 폭력, 억압, 인권유린, 빈곤, 성 상품화와 절망과 분노, 우울, 불안, 트라우마와 같은 정신적, 심리적으로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야기한 장소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먼저, 이러한 공간이 형성된 시간만큼의 시간 흐름 속에서 지역민들과 원활한 소통과 치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기억지우기VI'는 치유와 정화를 상징하는 소금을 매체로 관객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그리고 자신의 내면세계와 만나는 관객 참여형 작업이다. 소금은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를 통해서 '깨끗이 하다', '정화하다', '치유하다', '축복하다', '악귀를 쫓다'라는 의미를 지녀왔다. 전시 공간에 쌓아 설치한 소금언덕 위에 관객이 맨발을 올려놓고 잊고 싶은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기억을 지워나가는 참여방식이 작가의 제안이다. 작가는 10년 이상 스스로 이 명상을 경험해왔는데, 사실은 기억이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사고로 인한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하는 명상법이라고 한다.

김주연_Metamorphosis VIII 기록(현장 작업과정 영상)_HD 비디오, 사운드_00:05:00_2018

Cosmos Sensation ● 소금언덕이 있는 전시공간을 나오면 복도 벽면에 설치된 코스모스 씨앗 봉투를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씨앗이 발아하여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무한 우주적 가능성을 펼치는 감동, 즉 생명, 성장, 변화, 희망, 꽃 등의 기대 의미를 내포한 '코스모스 센세이션' 씨앗을 원하는 관객이 가져갈 수 있도록 나누는 작업을 전시기간동안 진행한다. Metamorphosis VIII 기록 ● 소금언덕이 있는 공간의 건너편 공간에는 'Metamorphosis VIII'의 현장 작업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소개한다. 신문이 전시장에 들어오고, 구조물이 세워지고, 10,000부의 신문이 쌓이는 과정, 그리고 그 위에 씨앗이 심겨지고, 생명으로서 싹이 자라서, 무성하게 성장했다가 다시 소멸해 가는 과정을 담은 기록영상 비디오를 선보인다. ● 지난 시대의 삶을 창조적으로 기억하고 서로 교감하려는 이 전시는 우리 자신의 내재적인 반성과 성찰을 근간으로 자신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기대를 상정하고 있다. ■ 정종구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

돌봄, 생태주의 미학의 실천 ● "나는 나의 개념들을 주조하고 부순다."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중에서) "정신은 자연보다 늦게 온다." (들뢰즈 & 가타리, 『천개의 고원』 중에서) ● 김주연은 독일 유학 시기부터 식물을 매개로 한 자연과 생명의 관계를 실험하였다. 당시의 실험은 타국에서 자신의 자아를 마주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한 수양의 과정처럼 보인다. 작가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첫 개인전이었던 2002년 이숙(異熟) 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쉼 없이 생명과 소통이란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귀국 후 첫 개인전에서 보여준 흰색 드레스 위에 위태롭게 뿌리를 내린 식물들은 사물에 자연이 종묘(種苗)된 이질적인 상태를 제시했다. 유독 습하고 어두운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공간의 조건은 그의 작업을 더욱 상징적이고 기이한 장면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다소 표현적이었던 당시 작업 이후부터는 이식의 대상, 형태, 장소의 변화에 따라 표현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생명과 소멸이라는 존재에 관한 본질적 물음이 주는 울림이 커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가 이숙이라 명명한 이 작업 과정을 직역하면 '다르게 익어가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이것은 불교 개념 중 하나로 어떤 원인이 원래와는 다른 형태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의미라고 한다. 특히 이숙은 말 그대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열매를 맺는다는 해석과 맞닿아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 개념을 어떻게 작업과 연결시키는가를 살펴보자. 리좀, 다양성과 혼합 ● 김주연은 이숙이라는 단어를 해체하여 '다름'과 '익어감' 두 의미 사이의 여백에 (서로) 다름들이 (함께) 익어감이라는 확장된 해석을 제시한다. 불교의 해석은 훨씬 복합적이겠으나 개념의 문맥상 일반적으로 다름을 시간의 변화, 성질의 변화, 형태의 변화가 성숙/숙성의 결과라고 본다면 김주연은 다름을 개별적 존재의 차이로 본다. 그리고 서로 다른 존재들이 익어가는 과정을 거쳐 어떤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작가는 이질적인 터전(영토)에 이식된 각기 다른 종류의 씨앗들이 성장하면서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풍경이 되어가는 과정, 풍경으로 익어가는 과정을 이숙으로 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주목한 지점은 창작자로서 작가의 역할이었다. 그는 생명이 발아할 수 있도록 씨앗을 영토에 심는 매개자이자 그것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봐주는 존재가 된다. 하나의 작은 씨앗이 자연과 사랑의 '돌봄'의 과정을 거쳐 열매를 맺기에 그 형태의 차이야말로 삶의 과정이 생명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표상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이숙에 관한 일련의 해석은 다름들의 혼합, 이질적인 상태의 공존을 연상시킨다. 이 지점에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리좀(rhizome)과 김주연의 작업의 교차점을 발견할 수 있다. 리좀은 절대주의 체제, 이분법적 사고를 다양한 것들과의 관계 맺기로의 전환을 제시한다. 리좀 철학의 배경에는 자본주의의 광기로 비롯된 분열증을 겪는 현대사회의 현실이 드리워져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좀의 원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리좀의 어떤 지점이건 다른 어떤 지점과도 연결접속될 수 있고 또 연결접속 되어야만 한다."(『천개의 고원』, 19) 이는 현대라는 자본 중심 체제가 끊임없이 생산하는 중심과 주변, 서열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인 리좀은 뿌리를 내리고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다양한 차이들과 관계를 맺는 삶의 방식이다. 따라서 세계란 중심과 주변으로 구분된 구조가 아닌 관계에 의한 면의 생성으로 형성된 네트워크로 비유된다. ● 김주연의 이숙은 크게 두 가지의 방식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작가가 만들어낸 새로운 영토에 이식된 식물종자의 한살이 과정, 다른 하나는 2002년 이후 현재까지 이숙 작업을 다른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자는 식물들이 이질적인 영토 위에서 뿌리를 뻗고 자생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의 이숙이며, 후자는 작가가 다른 장소,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영토를 세우고 그 위에 또 다시 생명의 발아를 시도하는 이숙이다. 조금 더 정밀하게 살펴보자. 전자는 고정된 영토 안에서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이 순환하고 그 순환의 반복이 만들어낸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풍경으로 펼쳐진다. 여기에서의 풍경이란 종이 다른 종자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만들어낸 관계-맺음의 형태이기에 그 풍경들은 유사하게 보이지만 분명 서로 차이를 가진 풍경이다. 후자는 매개자로서의 작가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매개자로서의 작가는 들뢰즈가 리좀의 형성 원리를 비유한 말벌과 서양란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암컷 말벌 성기 모양과 흡사한 서양란의 모습에 이끌린 말벌이 서양란의 꽃가루를 옮기는 과정이 바로 이질적인 존재들로 형성한 리좀의 세계인 것이다. 리좀은 그 어떠한 고정된 형태의 요구도 존재하지 않기에 리좀이 형성하는 세계는 이질적인 존재들로 이뤄진다. 따라서 리좀들의 세계는 절대 고정될 수 없다. 들뢰즈는 서구 전통 존재론이 '동일자'의 재현에 사상적 기반을 둔 것과 달리 모든 개체가 차이를 가진 존재로 인식한다. 그래서 리좀의 철학은 존재에 대한 절대적 원형이 없다. 즉 들뢰즈에게 존재는 원래 비어있는 상태로 태어난다. 그리고 개인 존재들은 삶 속에관계를 형성하면서 '되기의 과정'을 겪는다. 리좀 철학에서는 존재의 원형이 비어있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비어있음에서 출발하여 삶에서 맺은 관계와 그 경험을 통하여 스스로 (자신이) 되어가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매체로서의 예술가는 이성적이고 개념적인 모더니티 이후 서구중심미술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서 그 대안으로 자주 언급된 개념이었다. 그것은 동서양이 구분을 지운 다원주의적 세계관과 이어진다. 그러니까 예술가가 인류와 문명이 만들어낸 수많은 경계 사이를 횡단하는 존재로 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 김주연은 매체로서의 예술가 개념에 하나의 차원을 덧붙인다. 그것이 바로 '돌봄'의 미학이다. 돌봄과 생태주의 실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무한반복 ● 이번 대구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의 전시에서는 특별히 장소와 작업의 관계가 보다 중요한 가치로 연결된다.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가 위치한 대구 구도심 중심가는 한 세기 넘게 성매매가 행해진,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자갈마당의 역사는 곧 20세기 한국의 굴곡진 역사와 겹쳐진다. 일제에 의하여 공창으로 조성된 자갈마당은 일제 이후 미군섭정 그리고 개발주의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의 귀퉁이에서나 만날 수 있는 잔존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은 철저히 상품화된 여성의 성과 신체를 소비하는 공간으로 국가의 암묵적 승인에 의해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전까지 특별관리지역으로 보호된 장소였다. 도심 한복판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자갈마당은 국가와 여성, 여성과 산업, 근대화와 여성의 성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일제에 의하여 탈영토화 된 이곳은 한 세기 동안 그곳을 지시하는 명칭의 차이와 상관없이('예외상태' 예외상태는 조르조 아감벤 철학의 대표적 개념으로 법의 주권이 배제된 상태를 뜻한다. 허나 이 상태가 그저 법의 외부에 위치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내부에도 포함되는 모순적 상태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예외상태는 권력의 이중성을 의미한다. 대구 자갈마당은 성매매특별구역이란 법의 예외 대상이지만 필요에 따라 법의 잣대를 적용시켜 이중의 타자를 생산하고 이를 통하여 기득권의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의 공간이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백년의 비장소(non-lieu)였던 셈이다.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의 출현은 비로소 이 지역이 장소로서의 의미를 부여받았다는 하나의 증거물이다. 예술은 서서히 이곳을 재영토화하게 될 것이고 자갈마당의 미래가 어떻게 변하게 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요컨대 제도에 의한 영토화는 균질한 상태의 장소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 사회, 가족의 돌봄에서 제외되었던 자갈마당이 수치의 역사가 아닌 실존적 삶의 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어쩌면 이숙의 실천이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숙은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김주연의 작업은 버려진 것, 기억을 품은 사물 위에서 새로운 생명의 터전으로 영토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숙의 개념이 실천되는 것은 바로 씨앗을 착종시키고 일정 기간 동안 발아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꾸준한 돌봄에 있다. 즉 이숙은 열매만을 얻기 위한 식물의 돌봄이 아닌 생명 자체의 돌봄에 방점을 둔다. 또한 전시라는 형식은 이숙의 과정에서 서로 다른 시간의 한살이 주기들이 만들어낸 지층에 의하여 돌봄이 아름다운 풍경을 유지하기 위한 기술이 아닌 서로 다른 존재들, 각각의 생명 자체를 존중하는 의지를 포함한다. ● 오늘날 자연은 인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유일한 기제로 꼽힌다. 생태계 파괴로 비롯된 환경문제는 자연의 보존이라는 국가적 차원의 돌봄 대상이다. 이처럼 과학기술과 제도로 촘촘하게 엮인 보호관찰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내재하는 영적 영역은 필연적으로 희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주연이 '개척'하는 자연은 대안적 장소로 볼 수 있다. 환경 폐기물까지는 아니지만 버려지고 외면당하는 사물들을 다시 모아 생명의 터전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은 자연의 회복성이 얼마나 강한 성질인가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어떻게든 자연과 관계를 맺고 있다. 김주연이 수많은 주름으로 이뤄진 신문지-영토의 골짜기에 뿌린 갖가지 씨앗들은 인간의 돌봄으로 발아하고 자신의 주기만큼의 삶을 살고 사라진다("Metamorphosis VIII", 2018). 김주연의 이숙은 효용성을 상실한 사물들의 표피로 침투한다. 자갈마당의 전시에서는 철지난 신문지가 이숙의 영토가 되었다. 언론의 특성은 하루를 기준으로 생성과 소멸이 일어나고, 이 과정이 쉼 없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면서 인쇄 매체 신문에만 의존하던 시대와는 달리 현재는 이러한 시간성의 제약마저도 사라져버렸다. 과거 조간의 경우는 대개 오후 4시 경에 데스크가 마감을 맺고 다음 날 신문 제작에 착수했다면, 현재는 데스크 마감이라는 의미가 희미해진 상태이고 인공지능프로그램이 단순 기사를 제작·공급하다보니 언론의 시간은 무한의 상태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사건을 얼마나 신속하게 기사화 하느냐가 관건이기에, 오늘날 신문이 하루의 소식을 전한다는 관례적인 시간 개념은 희미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김주연이 선택한 신문지들은 인쇄되어 배포되는 순간 가치가 절하되는 과정을 향하는 대상이 된다. 이렇게 철지난 신문은 지난 소식들로 채워진 매체이자 더 이상 큰 의미를 줄 수 없는 물질로 축소되고 만다. 이숙은 이처럼 존재의 이유가 모호해진 물질-매체를 생명의 발아가 일어나는 터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렇게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는 무한반복된다. 산업에 의하여, 미디어의 사회적 역할을 위하여, 아름다움을 위하여, 체온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작된 사물들은 종묘를 위한 터전으로 탈영토화하고 식물들은 이곳을 재영토화한다. 이렇듯 한 번의 순환은 이숙의 주기로 볼 수 있겠다. 그렇게 하나의 전시에서 다른 하나의 전시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숙은 이동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이숙의 매개자이자 돌봄의 주체가 된다. 요컨대 여기에서의 돌봄은 기계적인 노동과는 다른 무엇이다. 인공지능기술의 발달은 식물 돌봄에 있어서도 노동의 강도를 줄여주는 데 일조하리라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돌봄이란 의미가 노동을 강도의 측면으로 보는 것인지, 아니면 관계의 측면으로 보는 것인지에 따라 상당히 다른 견해를 유추할 수 있다. 관계로서의 돌봄은 대상과의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이숙의 과정은 때맞춰 식물에 물을 공급하는 기계적인 일이지만 발아가 시작되고 성장의 과정을 관찰하는 행위는 기계적인 반복 노동이 아닌 교감이 일어나는 순간들이다. ● 오랫동안 돌봄은 여성에게 부여된 존재론적 특질로 여겨졌다. 그래서 여성주의자들에게 돌봄은 매우 논쟁적인 개념이자 행위였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태여성주의는 가부장적 이념이 지배하는 세상의 질서를 재분배하려는 시도로 등장한다. 이러한 사회 구조 안에서 여성과 자연은 남성의 지배 아래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즉 여성은 남성의 돌봄으로, 자연은 남성중심문명의 돌봄으로 생존가능하다는 전제이다. 그래서 돌봄은 곧잘 푸코의 생명정치와 연결시켜 해석되곤 한다. 권력이 생명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는 죽음의 위협이 아닌 생명유지를 통한 권력화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봄은 일방적 통치성과는 구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푸코가 생명정치를 언급한 이유도 바로 통치의 윤리를 되묻기 위해서였다. 통치자와 피통치자들은 주종의 관계가 아닌 상호적인 관계일 때 비로소 통치의 윤리성이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돌봄에 있어 모든 이항대립적 논리가 무의미하다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따라서 이숙의 사회적인 측면도 돌봄과 돌봄의 주체 그리고 다양체가 맺는 관계에 의하여 형성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김주연의 돌봄은 한 세기 동안 반복적 착취에 노출된,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자갈마당의 슬픈 기억을 치유하기 위한 알레고리들을 배치한다. 이렇게 전시는 기억을 현재로 불러들이고 관람자들은 그 과거의 기억을 지우기 위한 공동의 치유자가 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옷장과 그 주변은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던 수치와 고통의 문장들이 흩뿌려져 있다("수놓은 침묵", 2018). 전시장 곳곳에 뿌리를 내릴 수 없이 생존하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들과 부적절한 조건에서도 희박한 생의 가능성을 내비친 문장들이 한 쌍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잡초의 발견", 2018). "기억지우기VI"(2018)는 2톤이 넘는 소금을 쌓은 후 건조시킨 공감각적 조각 설치물이다. 작가는 소금이 가진 치유 효과를 주목한다. 관람자 누구나 작은 소금 산 위에 발을 올려 놓고 그 질감과 냄새를 감각할 수 있다. 이 보이스(Joseph Beuys)적인 작업은 조형예술가로서 김주연의 입장과 태도를 조금 더 깊이 엿볼 수 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기억과 기억 너머의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을 이어주는 예술가로서의 역할이 동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 정현

Vol.20180426g | 김주연展 / KIMJUYON / 金周姸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