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이명호.자갈마당

뮌_이명호 2인展   2018_0425 ▶ 2018_0916 / 월요일 휴관

뮌&이명호.자갈마당-뮌_이명호 2인展_.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_2018

초대일시 / 2018_0425_수요일_06:00pm

기억정원 .자갈마당展 이후, 별☆ 스토리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 대구시 중구 북성로3길 68-5 Tel. +82.(0)53.421-0037 www.djdrcf.or.kr/space01.htm blog.naver.com/jagalmadang_art

'.(닷)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온 성매매 집결지역(속칭 '자갈마당')의 중심부에서 예술을 통한 변화變化를 실험하는 시작점(.)이라는 기대의 상징이며, 또한 사회, 경제, 문화적 변화를 거쳐 '성장成長'이라는 지속적인 기대를 받아온 도시가 봉착한 머뭇거림에 대하여 또 다른 '재생再生'을 고안하려는 미술적 장치이다. ● 이 곳, 자갈마당은 100년 이상의 삶과 흔적과 기억이 축적된 공간이다. 1909년 공창으로서 최초 영업을 시작하였고, 해방 이후에도 6.25전쟁 기간 연합군의 위안소로, 1960년대부터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던 시기까지 특별 관리구역으로 존재해왔다. 현재까지 자갈마당에는 인권과 생존, 주거환경 개선, 정치와 경제적 이익 등 복잡한 삶의 문제들이 얽혀있는 상태이며, 최근 인근 주상복합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의 자갈마당 폐쇄 요구와 이 지역의 도시재생과 개발이라는 첨예의 상황이 대두해있다. 우리는 이 곳 '자갈마당'을 어떻게 기억하고 변화시켜야할지를 질문하는, 100년의 삶이 담긴 장소를 깨끗이 지워버리기 전에 과거와 미래를 잇는 창조적 기억의 원림園林으로서 '.자갈마당'을 기록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2017년10월18일부터 2018년3월18일까지 진행되었던 이곳의 개관전시, '기억정원 .자갈마당'에 이은 2차 전시, 1층의 '뮌&이명호.자갈마당展'과 2층의 '김주연.자갈마당展'은 원치 않는 문화적 유산을 어떻게 미래를 위한 기대감으로 전환시킬 것인가의 문제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질문을 내재하며, 특정 장소의 일상을 낯선 지각으로 발견하려는 뜻밖의 개입intervention을 통하여 지역과 도시 전체의 변화를 배양하려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창조적 기억에 주목한다. 이는 폐업한 과거 성매매 업소 공간에 전시로 개입하는 물리적인 문제와 복잡한 사회적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 환경들에 대하여 예술가의 시간이 어떻게 개입하고, 그 기억 속에서 자기내면과 외부세계의 합일에 의한 예술가 각자의 생각이 어떠한 예술 설계로 시각화되느냐의 지점이다. '자갈마당'이라는 특수한 장소의 선택적 공간에 대한 대응은 흰 캔버스 혹은 빈 공간을 마주한 예술가의 생각과 기억, 신체행위, 그 결과적 흔적에 비유할만하다. 이렇게 이번 전시는 참여 예술가의 별別 이야기와 그 행위를 기억하는, '기억정원記憶庭園'이후의 원림으로서 '.자갈마당'을 그리고 있다. ● 황폐한 땅이나 척박한 도시 어디에나 뿌리를 내리며 점차 주변을 감싸 안고 치유하는 식물 본연의 특별한 능력은 변화와 생명에 관한 자연의 경외로 해석될 수 있고, 이번 2개의 전시 역시, 그 식물의 능력을 차용한다. 식물을 닮은 예술의 기억들을 채집하고 우리 앞에 조심스럽게 펼쳐 보이면서, 도시 한가운데에서 숲이 이어진 산맥의 태도를 떠올리는 것, '.자갈마당展'은 거대한 산맥을 도심의 폐쇄된 건물 안으로 그려내면서 이 장소를 다시 창조적으로 기억하고, 결국 우리 본연의 자신을 만나는 기대를 담아낸다. ● 두 번째 거대한 산맥과 같은 참여 예술가의 상상과 설계의 지향은 이렇다. 첫째, 콘크리트 건물로 둘러싸여 정체된 도시의 중심지역, 이곳이 깊은 숨을 내쉴 수 있는 원림으로서 치유의 예술 공간으로 될 수 있을까? 둘째, '.자갈마당'이 원시와 현대, 자연과 도시문명, 음과 양이 결속하는 하나의 살아있는 예술적 유기체로서 지속할 수 있을까? 셋째, 탐사하듯 거닐듯, 건물 내부의 공간 곳곳에서 참여 예술가의 태도와 신체행위를 발견하고, 이를 미래의 기억으로 껴안을 수 있을까? 넷째, 변화의 기대로서 '.자갈마당'이 확산되어, 동네주민들이 참여하는 '식물' 생태 프로젝트로 나아갈 수 있을까? 다섯째, 결국에는 동네와 지역이 서서히 치유되고 변화, 성장, 기록, 보존의 과정을 개방적으로 현실화하는 미술적 장치로 지지받을 수 있을까? 등이다. ● 씨앗, 풀, 나무, 숲, 산을 닮은 식물성의 태도로서, 이곳의 장소 특정적 '상황'을 그리는 이명호의 행위 설계와 그 상황의 '가려진 구조'를 그려낸 뮌의 설계는 다음과 같다.

이명호_미제 #1_앵글(철), 실, 흙, 식물(덩굴장미)_280×220×120cm_2018
이명호_미제 #2_앵글(철), 실, 흙, 식물(덩굴장미)_275×200×200cm_2018
이명호_미제 #2-1_종이에 잉크_60×40cm_2018
이명호_미제 #2_부분

.자갈마당에 관한 이명호의 설계미제 #1, #2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 1층의 입구와 유리방 안에 각각 200×200×275cm와 280×120×220cm 크기의 육면체 구조물이 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낯선 설계이다. 속이 들여다보이도록 구축한 이 구조물에는 총 길이 4,400m에 달하는 수천가닥의 흰색 목실이 이리저리 촘촘하게 매어져있다. 멀리서 언뜻 보면 그저 하얀 캔버스처럼 보이는 이 목실 조직 사이사이로 덩굴장미 식물이 몇 그루 보인다. 좀 더 들여다보면, 식물은 위태롭고 불안정한 임시적 생태를 은유하듯 비닐로 싼 분갈이용 흙 속에 심겨져있다. 이명호는 이곳 현장에서 5명의 스텝과 함께 4주 동안 이 구조물의 기초를 세우고, 흙을 채워 식물을 심고, 구조물에 목실을 감아서 묶는 행위를 진행했다. 사진작가로 알려진 이명호는 그동안 자신의 사진이 다룰 수 있는 진정한 실체로서 '신체행위身體行爲' 자체에 주목해 왔다. 그는 실체를 지향해 온 지금까지의 회화와 사진, 미술의 역사에서 나아가, 예술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서 과정과 행위를 중요시한 것이다. 이번 작업에서 구조물을 설치하는 작가의 행위에 이어지는 진행과정은 작가의 또 다른 시도이다. 이후 과정은 자연에 의한 작업 즉, 시간이 흐르면서 잎과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고 또 이내 꽃이 져서 떨어지는 과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켜켜이 엮어놓은 실들 때문에 꽃들이 시들어 줄기에서 떨어지더라도 땅에 떨어지지 못하는 상태를 제시하며, 어떤 불편한 감성을 야기하는 상황을 설계한다. 마치 사진에서처럼 꽃과 꽃잎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지고, 덩굴장미 줄기는 어느새 실의 틈과 틈을 찾아서 계속 자랄 것이다. 작가는 이곳 자갈마당의 기억, 못 다한 청춘의 별別 이야기가 얽히고설킨 흰 실들의 캔버스 안으로 스며들고, 어느덧 또 다른 사연이 캔버스 밖으로 배어날 것이라고 설명한다. 덩굴장미 식물이 틈 사이를 비집고 살아가는 상황은 100여 년 동안의 이곳 장소와 성매매 여성을 둘러싼 비가시적인 관계들의 별別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 이명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나무 연작' 작업이 들판의 나무가 지닌 '살아있음'에 주목하기 위해 피사체의 뒤편 배경에 캔버스를 설치하여 촬영한 행위이자 작가의 의도를 중시하는 '인위적' 작업이라면, 이번 덩굴장미 작업은 엮어놓은 실의 틈 사이로 덩굴장미가 생존하는 상태의 시간과 공간을 정지시키는 사진적 행위이자 배경으로 삼던 캔버스와 식물이 하나가 되는 상황을 설정하여 식물이 자라면서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는 '자연 의존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명호_Tree #1_종이에 잉크_155×130cm_2016

Tree #1 ● '미제 #1'을 지나서 맞은편 벽에는 125×100cm 크기의 '나무 연작' 사진이 있다. 사진 속 풍경에는 나무 한 그루가 거대한 캔버스를 배경으로 들판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그 한 그루의 나무는 사실적으로 그려놓은 회화繪畫처럼 캔버스 화면에 가득 채워져 있고, 그 뒤편으로 하늘이 무한히 펼쳐져있다. 이 낯선 풍경은 거대한 캔버스 천을 야외 들판으로 들고 나와 실제의 나무 뒤에 세워 두고 촬영한 작가 행위의 결과이다. 이는 자연 그대로를 다시 볼 수 있도록 환기시키는 예술의 '현실現實' 재현再現을 탐구하기 위한 작가의 행위에 관한 기억이다. 이명호는 자신의 작업을 '예술-행위 프로젝트Art-Act Project'라 명명하고, 자신의 '행위'에 주목하며 예술의 개념에 관하여 반복적으로 질문과 답을 던져왔다. 나무 뒤에 캔버스를 설치함으로써 나무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는 '나무 연작Tree Series'과 '나무… 연작Tree… Series'은 '재현' 행위를 의미하고, 사막 위에 캔버스를 설치함으로써 사막의 한 켠에서 넘실거리는 바다 또는 일렁이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신기루를 만들어내는 '신기루 연작Mirage Series'은 '가상假象' 재현으로서 '재연再演' 행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딘가에 캔버스를 설치한다는 점은 동일하나 어떤 것도 담고 있지 않아 비가시적이지만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모든 것인 연작Nothing but Everything Series'은 '사이 혹은 너머'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술-행위'라는 작업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명호는 완성된 '결과물'만으로서의 사진 작업이 아닌, 결과를 포함하는 과정인 동시에 전체이기도 한 '축적물'로서의 행위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 이명호의 이번 작업은 제한이 없는 미술의 또 다른 가능성에 관한 식물성의 태도로부터 파생한 '신체행위'의 주요 흔적이며, 작가의 생각이 세계의 장소 특정적 상황과 결합하는 행위 과정에 의해 상상, 현실, 기억의 스펙트럼 속에서 자신만의 독자적 원림으로 구현되어 우리 자신의 태도를 환기시키는데 기여하는 별별 스토리이다.

뮌_Gold Mold_금도금, 브론즈_36×16×16cm_2016

.자갈마당에 관한 뮌의 설계Gold Mold 이명호의 'Tree #1'을 지나 좌측으로 들어가면, 관객의 접근을 막고 동시에 매료시키는 황금빛 교통 통제용 러버콘 하나가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 대하여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보통, '명확한 것'이 가려져 있는 경우, 그 구체적인 윤곽을 그리고자 끊임없이 열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경계'에 위치하면서 자유롭게 또한 섣불리 발언을 일삼는다. 2001년에 뮌Mioon이라는 이름으로 아티스트 듀오를 결성한 김민선과 최문선은 네트워크 미디어 시대에 존재하는 군중과 집단, 스펙터클한 사회로 대변되는 이 시대의 풍경과 그 속에 살아가는 개인의 문제를 영상 미디어를 통해 제시하며 사회적 발언으로서의 작업을 해오고 있다. 보이지 않는 사회 제도와 그것이 파생시키는 여러 의미들을 비평적 시각으로 작품 속에 적극 개입시키는 이들의 작업은 일견 도시, 군중, 개인 등의 문화적 텍스트에 대한 시각적 해석으로 읽힌다. 뮌은 이번 전시에서 스스로 명확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끝없이 무너지고 그것들이 끊임없이 말꼬리를 잡는 상황을 설계한다. ● 공공의 기억 속에서 '가려진 구조'를 상징하려는 듯한 16×16×36cm 크기 브론즈 작업 '골드 몰드'에 대하여 작가는, '주차금지콘'이 자신의 것을 보호하며 결속을 강화하고 동시에 타인을 배타적으로 쫒으려하는 목적의식을 분명히 드러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뜻을 함께 할 때는 우리였다가 반대의견을 드러내는 순간 남이 되는 무리의 속성과 유사하다. 관계가 더욱 밀착되어 있을수록, 일사분란하게 움직일수록 경계는 짙어진다. 굳건하고 변치 않는 속성을 가진 금색의 이 오브제는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에 따라서 두 가지 상반된 뜻 중 하나를 선택적으로 굳건히 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라고 설명한다.

뮌_Public Theater_스테인리스 스틸, LED, 미니어처 오브제_280×460×460cm_2016

Public Theater ● 연이어 다음 공간에서 마주하는 460×460×280cm 크기의 구조물과 5개의 의자로 구성된 '공공극장'은 관객에게 이곳 자갈마당과 같은 특정 상황의 '가려진 구조'를 제시한다. 이 작업은 오래전부터 벌어졌던 어떤 공공의 사건에 대하여 지금, 각각 개인 극장의 자리에서 관찰되고 있다고 발언한다. 작가는 이렇게 설명을 덧붙인다. "사고는 보통 공공을 위한 길에서 일어난다. 불의의 것이며, 당한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가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을 겪는다. 그리고 각자는 그 현장을 조금씩 다르게 보고 기억하게 된다. 빛 방향에 있어 세부의 디테일이 안보인 사람, 우연히 사고 직전 상황을 목격한 사람, 이미 사고가 일어난 후의 실랑이를 본 사람, 들이 받은 차의 시선에서 본 사람, 사고를 당한 차량의 입장에서 본 사람 모두 똑같이 상황을 보고 판단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면 모두가 실루엣만 본 것과 다름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눈앞의 상황이 아무리 공공의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각자는 마치 개인 극장에서 바라보듯 보고 판단하기 쉽다는 것을 뜻한다. 이 작품을 통해 직접 5가지 시선으로 한 사건을 바라보는 경험을 함으로써 이러한 현상들을 상기해 볼 수 있다."

뮌_Character(Point.Line.Plane)_스테인리스 스틸, 백열 전구 80개, 플렉시 유리_100×180×40cm_2014

Character (Point.Line.Plane) ● '공공극장'의 옆 공간 벽에는 80×100×40cm 크기의 설치작품 '캐릭터(점.선.면)가 있다. 여러 가지 사건 상황의 중심에 있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네트워크 구조를 아주 은은한 조명 빛으로 그려내는 이 작업은 80개의 조명 불빛과 아크릴 판, 철제 선들의 복잡한 연결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캐릭터'는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가문의 혼맥도의 이미지를 변형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전구는 연극 속의 주요 등장인물을 뜻하는 '캐릭터'로서, 혼맥도를 구성하는 정계·재계·언론계의 주요 인물에 위치한다. 다양한 내러티브 속 등장인물 관계도가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는 형태로 시각화된 이 작품은 다양한 결속을 지향하는 네트워크로서 우리 사회의 특수한 단면을 시각화한다.

김주연_기억지우기VI_소금, 의자, 소금섬(책)_가변설치_2018

세트(대구) ● 바로 옆 좌측의 어두운 방에 설치한 5'32" 분량의 비디오 영상과 사운드, 벽에 그린 야광안료 그림으로 구성된 2018년작 영상 작업 '세트'는 현재의 이미지를 과거 기억의 잔상에 의존해 인식하는 우리의 기억과 사유 구조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뮌은 이곳 자갈마당에서부터 청라언덕, 그리고 동성로를 걸어 다니며 근대와 현대가 만나는 모든 건물과 도로, 사람과 자연을 촬영한 10여개의 영상들을 상영하면서, 연속된 화면이 아니라 20초 영상과 영상 사이에 4초 암전을 넣는 기본 구조로 설계한다. 또 야광물감을 이용해서 영상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영상이 프로젝션되는 전시장 벽면 위에 회화적 방식으로 그려 넣어, 암전되는 4초 동안 관객이 암흑 속에서 야광안료가 발광하는 이미지와 마주치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야광안료가 발광하는 회화적 풍경 이미지가 이전 풍경 영상의 종류와 밝기에 따라 시지각적으로 다르게 인식된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세트'가 보여주는 영상 이미지와 회화적인 야광 이미지 사이의 중첩과 잔상은 기억의 팔림세스트palimpsest 효과에 다름 아니다. 하나의 기억은 다른 기억 위에 중첩되고 이전의 기억은 이후 경험 및 기억의 흔적과 잔상을 머금은 채 떠오른다." 이 전시공간의 입구 벽면에는 4초간의 암흑동안 촬영한 야광안료 그림의 A5크기 사진이 설치되어 있다. ● 전체를 아우르는 공공의 기억과 가려진 구조의 조형화에 관한 별별 이야기의 원림, 그리고 숲을 보는듯한 식물성의 태도로서 뮌의 설계는, '캐릭터(점선면)'가 조명의 형태로 벽면에 걸려서 공간 안에서 꾸준히 빛을 내고 있고, '세트'의 영상속의 여러 장면들은 측정 할 수도 없는 미세한 광량으로 연명하며 가까스로 벽에 붙어 있고, '공공극장'은 많은 사건들, 지금 이곳 전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혹은 자갈마당과 그 밖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많은 '명확한 사건'들을 작은 무대라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제자리에서 돌고 있고, 몇몇의 사람들이 그 무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 지난 시대의 삶을 창조적으로 기억하고 서로 교감하려는 이 전시는 우리 자신의 내재적인 반성과 성찰을 근간으로 자신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기대를 상정하고 있다. ■ 정종구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

두 개의 예시 : 한국미술의 최전선 ● 나는 전시서문을 제안 받기 전에 이미 자갈마당 스페이스의 이번 전시에 초대된 작가가 이명호와 뮌(Mioon)이란 걸 알고 있었다. 뮌이 혼성 듀엣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인 탓에 이 전시를 2인전이라고 할 수 없고, 그렇다고 3인전은 아니고, 그냥 더블 매치라고 해둘까? 아무튼 그들의 연합 전시가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난 처음부터 '으응?'이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 둘의 작품이 하나의 공간 속에서 어떤 식으로 결합될지 궁금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들의 관계는 다름 아닌 말 그대로 '관계'로 묶였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명호 작가와 뮌 듀엣은 우리 미술계의 가장 앞자리를 두고 다투는 경쟁적 위치일지언정 서로가 불편한 관계가 아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그들이 펼쳐낸 작품을 꿰뚫는 주제는 불편하게 엮인 관계(들)이다. ● 전시 공간에 들어오면서 처음 보게 되는 작품은 이명호의 설치 작업 「미제」다. 이는 사진작가 이명호라는 존재가 갖는 비중을 알고 있는 이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부터 평범하지 않다. 그것은 예컨대 무제가 아니라 「미제」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제목. 이것은 어떤 뜻일까? 사진가 이명호가 거의 처음으로 시도하는 설치 작업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불확신? 시간이 흘러감에 꽃을 피우고 비로소 완성되는 미완의 프로젝트? 뭐라도 좋다. 작가는 그가 머릿속으로 빚은 이미지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생길지도 모르는 실패에 따른 불안을 떨쳐버리는 듯이 육면체 속에 하얀 실을 끊임없이 둘러치고 감쌌다. ● 실로 얼키설키 엮어 안과 밖을 구분지운 공간 속에 핀 장미. 작가의 말을 빌자면 「미제」는 자갈마당에서 청춘을 보낸 많은 삶을 보여준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은유하는 장미는 이리저리 꼬여있는 실타래 같은 관계 속에서 조금씩 자란다. 흰색은 순결함의 상징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현실 속에서 위선적인 색이 되기도 한다. 거대한 실타래는 상처 입은 삶을 가린다. 이 모습은 하얀 붕대 겉으로 스민 한 방울의 피와 같다. 잘 알려진 것 그대로, 지금의 그를 있게끔 한 나무 연작 「Tree #1」은 두 개의 「미제」 사이를 지나서 관객의 시선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 굉장히 큰 사각의 천이 세워지고 그 앞에 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형식의 그 사진 작품으로부터 진화해 온 개념이 「미제」인 셈이다. ● 작가 이명호가 그 점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가 없지만, 그의 구작과 신작을 잇는 개념의 연계를 시각적 일관성으로 좀 더 잘 보여줄 방법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플레임으로 사용된 철재 플레임 대신 다른 재료를 쓰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말이야 하기 쉽지만 현장의 문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가령 목재로 틀을 잡으면 개념 접근은 더 그럴 듯 해보이더라도 휘어짐 같은 문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평면 작업을 공간 속에 설치 개념으로 변주하는 게 「미제」의 목표였다면, 이 작업은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 전시공간의 도입부로 훌륭하다. ● 그의 신작은 주제와 현실을 무리하게 끼워 맞추려고 자극적인 프로파간다에 기대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을 드러내는 사진이라는 수단이 있다. 사진은 그가 벌이는 행동인 동시에 확인되는 실체이기도 한 예술이다. 사진의 다른 한편에 놓인 인스톨레이션은 그렇다고 사진에 종속되어 있고, 예외적으로 벌인 이벤트가 아니라, 작가의 미적 세계를 선명하게 완성시키는 긴 흐름 속에서 나온 작업이다. 따지고 보건데 작가는 사진은 그 자체가 이미 설치작업을 바탕으로 촬영한 작업이다. 이번 전시는 그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단순함의 반복으로 풀어냈으며, 그것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현장에서 벌인 수고가 굉장히 큰 이 작업은 작가가 그것을 완성해가면서도 어떤 형태의 실패라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부응한 결과로 비로소 드러났다. ● 1층 전시 공간 깊숙한 곳을 돌아서 왼쪽을 향하면 관객들은 뮌의 작품들과 마주친다. 김민선과 최문선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뮌은 이곳에서 자신들이 그동안 벌여온 일종의 실험을 축약해서 보여준다. 그들이 점한 이 공간을 말하자면, 어떤 곳은 벽을 틔우고 또 어떤 곳은 방을 그대로 살려 놓아서 전체적으로 오밀조밀하면서도 그리 넓지 않은 장소다. 내 생각으로 여기에 뮌은 미디어아트로 이루어진 놀이공원을 꾸미려고 마음먹은 것 같다. 각각의 작품은 감각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더없이 아름답다. 볼거리로서의 면모를 가진 작업이 실은 가볍지 않은 내용을 품고 있지만, 그 속내를 알지 못하는 관객들도 전시의 매력을 충분히 나누어 가질 수 있다. 뮌은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에 관해 꺼내고 싶은 발언이 많은 사람들이고, 그 이야기를 정교하게 층을 쌓아가는 법을 아는 작가다. 무엇보다 뮌은 하나의 극적 상황이 펼쳐지기를 즐긴다. ● 그들이 연출하는 무대를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다. 하지만 어려워서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바로 이런 글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 모르는 게 많다는 난감함이다. 이런 점을 깔고 동선과 시선을 따라 뮌의 전시작을 하나씩 본 감상기를 소박하게 적어보자. 우리가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작품은 「골드 몰드 Gold Mold」다. 좌대 위에 오른 이 소품은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깔 모양의 표식이 도금되어 번쩍이고 있는 조형물이다. 설정만 보면 뜬금없이 단순할 수 있지만, 이는 뮌의 예술과 사회에 관한 전망을 잘 축약시켜 놓은 작품이다. 요처럼 작고 간단한 뿔 형태는 포개어 쌓을 수도 있고, 뾰족한 끝이 품은 위협의 기호도 가진다. 그 기표와 기의가 이를테면 '다가오지 말 것' '이곳은 당신이 점유할 공간이 아님'을 전하는데, 이런 내집단과 외집단의 경계 두기는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에 관한 은유가 가능하다. 또 이것은 전시장 전면에 있는 이명호 작가의 작품과 공간을 가르는 유머 있는 표식이 될 수도 있다. ● 뮌이 드러내는 연극 무대 장치에 관한 취향은 「공공극장」에서 잘 드러난다. 관객들은 다섯 개로 나눠진 구멍을 들여다보며, 그 공공연한 염탐을 통해 관음증적인 분위기가 교통사고와 같은 혼란을 재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사실 내부 장치가 투영하는 그림자가 몇 개의 구멍을 통해 바깥벽에 비치기도 하는데, 상당히 엉성해 보이기도 하는 기계장치는 초기 영화 시대를 연상시키고, 스팀펑크(steampunk)적 취향까지 부추기기도 하지만, 사실 이건 아주 현대적인 문제를 환기시킨다. 미디어아트라는 개념 속에서 디지털의 요소를 거의 빼버린 이 작품은 순전히 배치의 능수능란함을 보여준다. 점점 빨라지는 템포는 그 속에서 펼쳐지는 희비극의 디오라마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다섯 개의 보는 구멍은 그만큼 다양한 입장과 관점의 차이일 것이다. 내가 이 작품을 착실히 보지 않은 탓이겠지만,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시각을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아니면 작가의 시각을 보여주는 균형 잡힌 포인트가 다섯 개 가운데 어느 하나일까? 음, 잘 모르지만 없었으면 좋겠다. 이 세계에 관한 전망은 정치인이나 성직자 아니면 과학자 그 누구도 이야기를 하지만 실은 아무도 완벽하게 볼 수 없는 것이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 암실에 마련된 영상작업 「세트 Set」는 작품 표제를 세트 대신 세팅이라고 붙였으면 이해가 빨랐을 것 같다. 뭔가 하니까, 프로젝트가 쏜 풍경이 비춰지고 그 빛이 순간 사라지면 스크린에 남은 그림이 세팅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작가가 미국과 경기도에 이어 로케 촬영으로 카메라에 담은 곳이 대구 중구 일대다. 일체의 설명이나 극적 연출이 없는 그 풍광에 흥미를 가진다면, 그는 다름 아니라 장소가 어디가 어딘지 가려낼 수 있는 거주민들뿐일 것이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경탄은 그 다음이다. 위에서 밝힌 것처럼, 작가는 자신들이 촬영한 정적인 동영상을 형광색으로 윤곽을 따서 그렸다. 여러 개의 영상인 만큼 그 흔적을 모두 합한 벽화는 추상화에 가까워 보인다. 우리는 카메라가 포착한 이미지 밑에 깔린 회화를 본다. 「세트」는 같은 시간을 보여주는 와중에 겉으로 드러나고 밑에 숨겨진 두 개의 다른 상을 나타낸다. 그 이미지도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사태와 관점이 겹쳐진 신기루다. ● 그리고 벽에 걸린 채 빛을 발하는 작품 「캐릭터」. 수많은 전구는 서로가 이어져 있다. 물론 그 연결은 구조물이 은근히 안내한, 별자리 형상을 상상하는 우리 인식의 선이다. 어쩌면 더 뻗어 무한을 향해가는 이 별들은 말 그대로 스타이자 캐릭터다. 우리는 「캐릭터」를 통해 반짝임의 밑바닥에 깔려있을지도 모르는 암흑을 떠올린다. 그로 이 역설적인 어둠은 그들의 관계다. 믿음, 의리, 배려, 헌신, 협조와 같이 표면적으로 좋은 관계조차도 그 이면에는 거기에서 배제되어 관계 맺지 못한 다수에게 더 가혹한 태도가 숨어있다. 작품은 우리 사회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파워엘리트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예컨대 미술계 안에서 빛을 발하는 경향이나 제도 혹은 작가 개인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캐릭터」를 보면서 현실 인식을 하고, 동시에 그 링크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실을 아쉬워하기도 한 속물성을 드러내었지만, 그렇다고 이게 작가가 의도한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뮌은 「캐릭터」를 통해 이 전시의 주제를 추스른다. 형식상 서로 다른 작품들을 칸이 나뉜 이 공간에 따로 떼어 놓고 나머지 것들과 거리를 만든다. 드러나고 숨겨진 작품들은 그 자체가 느슨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관계가 아닌가. ■ 윤규홍

Vol.20180426h | 뮌&이명호.자갈마당-뮌_이명호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