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기억

김이수展 / KIMYISU / 金利洙 / painting   2018_0427 ▶︎ 2018_0522 / 일요일 휴관

김이수_Inframince-Landscape_아크릴보드에 아크릴채색, 투명테이프_99×165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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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427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살롱 아터테인 SALON ARTERTAIN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32(연희동 708-2번지)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이미지의 기억, 반복과 차이의 풍경 ● 물질과 정신은 이미지를 통해 합일될 수 있다. 말하자면, 이미지를 통해 물질과 정신은 서로 소통하고 접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기억의 저장 방식이면서 동시에 밖으로 드러나는 방식이기도 하다. 또한 기억은 신체와 같은 물질적 에너지들의 경험 (우리가 지각한 모든 이미지들)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들을 지우고 저장한다. 즉, 우리의 기억은 모든 경험의 정보들을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미지의 형태로 저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억은 우리 정신의 본질적 특징이면서 의식 그 자체다. 다시 말해, 우리는 거대한 의식의 흐름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흘러간 기억이라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에 이미지로 저장되어 있다. 이런 의미로 기억은 곧 의식이다라고 말 할 수 있다. 다만 현재 우리가 느끼는 의식은 현재 행동에 필요한 기억만을 선택하기 때문에 기억은 과거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지속의 개념을 통해 기억은 과거와 현재 모든 것에 작용하고 있으며, 이미지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

김이수_Inframince-Landscape_아크릴보드에 아크릴채색, 투명테이프_80×120cm_2018
김이수_Inframince-Landscape_아크릴보드에 아크릴채색, 투명테이프_50×110cm_2018

김이수는 기억을 그린다. 엄밀히 그린다는 것 보다 이미지를 쌓는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 하다. 기억을 쌓는다. 무의식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던 기억들을 켜켜이 쌓아서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그의 작업은 반대로 이미지의 기억으로 점착된다. ● 작가는 반투명 아크릴 소재의 테이프에 색을 입히고 그 색테이프를 겹쳐 색의 밀도를 높이거나 테이프와 테이프 사이의 경계를 도드라지게 하는 방법으로 그의 기억들을 재현한다. 기억의 재현은 거의 추상화된 회화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색의 깊이와 내면을 바라보는 성찰의 공력을 느낄 수 있는 추상 회화다. 기억은 지속의 개념에서 이미지를 조직할 수 있는 기능을 확보할 수 있다. 그의 기억 역시 삶의 지속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감각과 신체의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이미지의 조각들은 기억의 기능 없이 의미를 가지거나 현실에 유용하게 적용될 수 없다. 따라서 작가는 지속되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면서도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의 미세한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를 들어, 각각의 색테이프들이 그의 이미지의 조각들이라면 작가는 그 조각들을 그의 기억에 의존하여 추상한다. 이미지 조각들이 기억을 통해 의미화 되고 시각화 된다는 것. 작업에 임하는 작가의 철학적 배경이 아닐 수 없다.

김이수_Inframince-Landscape_아크릴보드에 아크릴채색, 투명테이프_50×110cm_2018
김이수_Inframince-Landscape_아크릴보드에 아크릴채색, 투명테이프_50×110cm_2018

김이수의 색테이프 회화는 반복과 차이를 조형언어로 사용한다. 반복적인 레이어 작업은 이전의 종이 작업이나 색실작업에서도 이미 사용되었던 것으로, 삶의 지속성에 대한 표현 방식이다. 우리의 삶은 질적으로 변화하는 지속의 세계의 일부분이다. 기억의 조각을 이루고 있는 이미지들은 그 지속의 세계에 순간적으로 기록되는 단면에 불과하다. 지속의 세계의 무한한 반복이야말로 우주 전체의 질적인 변화를 이루게 되는 중요한 운동에너지 중 하나다. 그의 반복 역시 이 부분에서 그 의미와 조형언어로서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색테이프 하나하나의 의미는 그 자체로서는 그냥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물감이 화면에 옮겨지기 전에는 그냥 물감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색테이프를 화면에 반복적으로 겹치면서 색테이프는 작가의 추상회화로 그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는 진화와 같은 폭발적인 변이가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면서 물질의 영역에서 정신의 영역으로 창작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김이수_Inframince-Landscape_아크릴보드에 아크릴채색, 투명테이프_50×110cm_2018
김이수_Inframince-Landscape_아크릴보드에 아크릴채색, 투명테이프_50×120cm_2018

김이수의 차이는 그의 작업 전 영역을 통해 드러나는 '엥프라멩스(inframince)' 와 그 의미를 같이하고 있다. 엥프라멩스는 쉽게 얘기해서 눈으로 감지할 수 없을 만큼의 미세한 차이를 나타내는 뒤샹의 신조어다. 이것이 지니는 철학적 의미를 파고드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작가가 이 개념을 자신의 작업 전 영역에 차용하는 것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즉, 그 엥프라멩스는 작가의 또 다른 조형언어인 차이를 설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색테이프를 반복적으로 중첩시키는 동안 한편으로 색테이프의 두께에 집중한다. 색이 겹치면서 드러나는 차이, 테이프와 테이프의 경계가 겹치면서 드러나는 차이 등,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도저히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미묘한 차이, 그 엥프라멩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반복적 레이어 작업이 작가의 창작 행위라면 이 차이에 대한 집중력은 작가의 미적 감성의 발현이다.

김이수_Inframince-Landscape_아크릴보드에 아크릴채색, 투명테이프_27×55cm_2018
김이수_Inframince-Landscape_아크릴보드에 아크릴채색, 투명테이프_27×55cm_2018

반복과 차이만으로 작가의 조형적 감성과 사고들을 설명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우선, 이 두 개의 조형언어의 결합으로 작가의 창작행위와 미적 감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은 그 만큼 작가의 작업이 사변적이기 때문이다. 기쁨, 슬픔, 괴로움과 같은 단순한 감정들은 우리의 이성적이고 명상적인 사고를 방해한다. 따라서 명상이나 기도와 같은 일종의 정신수양을 통해 이와 같은 단순한 감정 기복들을 없애는 것. 정신활동의 시작이다. 작가의 반복과 차이 역시 이러한 정신활동과 궤를 같이 한다. 모든 감정적인 기억들을 가장 안정적으로 정제하고 그것을 다시 반복적으로 쌓고, 색과 두께의 차이를 통해 우리에게 가장 평온한 공간으로 인도하는. 이는 작가의 가장 깨끗하고 편안한 기억의 풍경이면서 동시에 절제된 열정의 풍경이다. 우리의 기억 한편에 아직 꺼내보지 못한 막연하지만 먹먹했던 젊은 날의 기억들. 그 이미지의 기억이 오롯이 새겨져 있는. ■ 임대식

Vol.20180427e | 김이수展 / KIMYISU / 金利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