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봄

오영숙展 / OHYOUNGSOOK / 吳英淑 / painting   2018_0501 ▶︎ 2018_0513

오영숙_봄I_나무에 혼합재료_100×85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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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이노갤러리 INNO GALLERY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20 Tel. +82.(0)2.722.2610 www.galleryinno.com

ㅇ : 안녕하십니까? 우리의 대화가 시작된 지 거의 20년이 되어가는데 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한 것은 겨우 두 번째군요. ㄱ 씨가 그 동안 좀 외형적으로 다른 작품을 하긴 했지만 처음 시작한 '이분법적 사고의 해체 내지는 유보'라는 컨셉은 변함이 없어 보이네요. 우선 작품 제목을 '또 다른 봄'이라 하였는데 봄 Spring 인가요? ㄱ : 그렇게 느끼셨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건 관객이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읽어나가면 됩니다. 다만 저는 '바라봄' '보여짐' '응시' 이런 단어들을 염두에 두고 지은 제목입니다.

오영숙_봄II_나무에 혼합재료_110×110cm_2018
오영숙_봄III_나무에 혼합재료_110×110cm_2018
오영숙_봄IV_나무에 혼합재료_90×90cm_2018

ㅇ : 그렇다면 그건 관객의 몫으로 남겨 두기로 하고, 작가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하죠. 작품의 컨셉이 처음과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고 하셨습니다. ㄱ : 그렇습니다. 큰 컨셉 안에서 조금씩 작품의 명제나 소재가 변화되고 있습니다. 2008년에 남대문이 소실되었을 때 온 국민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문화유산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런 질문으로부터 남대문을 형상화한 작품을 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 '진품', '원본', '유일무이', 이런 단어들에 관한 관심이 작업과 연결되었다 할 수 있죠. ㅇ : 그러한 관심이 지금과 같은 작업의 출발점이 된 거군요. ㄱ : 네 그렇습니다. 가끔 세계적으로 명망 있다는 작가들의 작품이 대중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가격으로 옥션에서 낙찰 되었다는 뉴스를 듣곤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뉴스들은 현실적으로 전혀 와 닿지 않는 가격과 함께 대중들의 입에 그저 우스갯소리 정도로 회자되곤 하기도 하지요. 아마 그들에겐 너무 먼 나라의 이야기들 이니까요.

오영숙_봄V_나무에 혼합재료_100×85cm_2018
오영숙_봄VI_나무에 혼합재료_100×85cm_2018

ㅇ : 그렇죠 보통 대중들은 가십거리 정도로 여기죠. ㄱ : 그렇다면 그 유명한 작품의 작가들은 작금의 현실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작가들이 그 어마 어마한 가격에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할까요? 또한 그 작가들이 그 작품을 할 당시 어떤 생각, 어떤 태도로 이 작품들을 구상하고 임하였을까요? 그들의 작품을 오리지날리티라 한다면 지금의 무한 복제 시대에 오리지날리티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미 진부해져 버린 이 논의를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한 작가의 입장에서 저는 그 작품들의 오리지날리티는 작가가 만들어낸 오리지날리티가 아닌 소유자의 욕망이 만들어낸 독점적 오리지날리티로써 오만이며 남과 타협하지 않는 절대 권력의 주체가 갖는 유일무이한 독불장군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원작자와의 의도와는 별도로 세상에서 독불장군이 된 오리지날리티의 아우라는 어떤 의미 일까요? ㅇ : 이런 생각들이 그 대단한 오리지날리티의 아우라를 해체하고자 하는 작업으로 이어진 것 이라는 말씀인가요. ㄱ : 네 맞습니다. 이분법적 사유의 원천이 되는, '유일무이' '원작' '진품' 이라는 단어들에 반해 이 시대의 작은 목소리가 되어 대중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새로 탄생시키고자 함이 이 작업들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죠 이러한 작업들이 원작자들에게 누가 될까요? 아마도 그들이 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태도가 저와 비슷하다면 해방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ㅇ : 좀 표현이 강하게 느껴지네요. ㄱ ; 말 주변이 없어 얘기를 하다 보니 많이 강한 표현이 됐네요. 표현 능력 부족이라 이해하시고 작품으로 봐 주시길 바랍니다.

오영숙_봄VII_나무에 혼합재료_65×133cm_2018
오영숙_봄VIII_나무에 혼합재료_65×133cm_2018
오영숙_봄IX_나무에 혼합재료_133×63cm_2018

ㅇ :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 다른 바라봄, 보여짐, 다른 시선? 그것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그럼, 작품 전반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한글 모음은 없고 자음만 있는데 그 의도에 대해 다시 한번 짧게 설명해 주시죠. ㄱ : 우리말 한글의 자음은, 우리 모두 알다시피 혼자서는 의미와 발음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모음과 만나야 비로서 완전한 발음과 의미가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작품에 자음만 쓴 이유는 자음이 모음과 만나면 가질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많은 가능성이란 감상자들의 다양한 모음성(母音性)을 말합니다. 다양한 모음성 하면 생소한 말 같은데 의미 전달에 있어서 한가지 언어가 갖는 한 가지 의미 전달 방식이 아닌 다양한 의미 해석방식이라고나 할 까요. 쉽게 이야기 하자면 감상자들이 작품을 감상할 때 자신의 역량과 감성만큼의 모음으로 자음과 만나 그 순간 각각 다른 의미의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는 이야기입니다. ㅇ : 네 관객이 작품을 만나는 순간 각 각 다른 작품이 완성된다니, 열심 모음성을 발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눌 것이 많을 것 같은데 특히 기회가 된다면, 작가의 생각과 의도와는 별도로 관객의 시선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Vol.20180502d | 오영숙展 / OHYOUNGSOOK / 吳英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