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집 사이

최윤미展 / CHOIYOONMI / 崔允美 / installation   2018_0509 ▶ 2018_0622 / 주말,공휴일 휴관

최윤미_집_한지_가변크기_2018

초대일시 / 2018_0511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스페이스 D SPACE D 서울 강남구 선릉로108길 31-1 로프트 D B1 Tel. +82.(0)2.6494.1000/+82.(0)2.508.8400 www.space-d.kr

인테리어 잡지가 넘쳐나고 화려한 물건으로 치장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시대에 집은 마치 옷이나 차처럼 거주자의 성격과 취향, 심지어 계급까지 보여준다. 그러나 들어온 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펜트하우스에도, 단 하나의 방으로 이루어진 원룸에도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있어도 편안한 나만의 보금자리라는 주인의 생각이 없다면 집은 그저 한낱 공간일 뿐이라는 점이다. ● 그리스인들은 집에 대한 기억이 있는 한 집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집과 인간의 관계는 공존한 시간을 통해 주체와 객체라는 물리적 실재를 넘어선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한 개인에게 집은 단순히 아름답게 치장한 물리적 구조가 아니라 자신이 일상을 보내는 공간이자 자아라는 주체를 형성한 공간이며 그 공간에서 주관적 경험을 얻고 그 경험을 인식의 중요한 동기로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기억으로서 이미지화한다.

최윤미_집과집_한지, 돌, 전구_가변크기_2018
최윤미_집과집_한지, 돌, 전구_가변크기_2018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일찍이 「공간의 시학(The Poetics of Space)」(1958)에서 집안의 가구, 방과 같은 공간을 들여다보며 물건을 담거나 열면서 얻은 심리적 경험을 통해 인간의 의식에 수용되는 시적 이미지를 추적한 바 있다. 너무나 유명해진 이 글은 일종의 공간에 대한 심리학적, 현상학적 분석으로 공간에 대한 의식의 구축과정과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했다. 한 개인이 주관적으로 만든 이미지가 다른 이에게 전달되는 통주관성(transsubjectivity)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인간의 의식이 작용하는 지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 시발점을 집과 집안의 구성물에 초점을 두고 접근한 것이다. ● 그에게 집은 파편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그 공간 전부를 아우르는 독특한 경험을 통해 이미지 체계를 형성하고 결국 개인의 기억, 인식의 구축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집은 인간의 지각과 분리할 수 없는 중요한 현상학적 사물이 된다. 집이라는 공간의 현상학을 통해 개개인이 시간을 걸러내고 현재의 경험에 초점을 두면서도 개방성을 허용하는 상상력이 통주관성에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최윤미_기억의섬_돌_가변크기_2018
최윤미_집집집_한지_가변크기_2018

최윤미의 최근 작업은 집에 대한 사유를 다룬다. '집이란 무엇일까?' 가족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과거의 집, 이사를 통해 경험하는 집의 가변성, 그리고 유학시절 거주하던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누출 사건으로 인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집까지 여러 곳을 이주하며 겪은 공간에 대한 경험들은 그의 의식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어릴 적 할아버지 집에 대한 파편적 기억뿐만 아니라 자라면서 거쳐 간 집까지 일상을 보낸 집이라는 존재는 어느 사이엔가 그와 불가분의 관계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관계에 대한 깨달음은 최근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작업실과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다시 통렬하게 다가온 것 같다. 새로운 보금자리가 과거의 집들을 연상시키고 그 연상과정을 통해 집에 대한 기억은 단순히 기억을 회상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바슐라르가 집이라는 공간을 현상학적으로 읽어내며 상상력을 강조했다면, 최윤미는 집에 대한 상상력을 가동하면서 창작 의욕을 발산한 것이다. ● 최윤미는 사실 후쿠시마 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형상을 멀리했었다. 예기치 못한 재해로 인해 사람을 읽고 집을 읽고 떠나고 방랑하게 되었던 사건은 그에게 트라우마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한지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공간을 점유해가는 여백의 유희로 반경을 축소했었다. ● 그러나 추상적인 패턴이 반복되면서 강박적인 반복의 굴레가 작가 스스로에게도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번 전시는 그 반복적 추상패턴을 넘어 과거처럼 설치 작업으로 돌아간다. 공간의 다양성을 읽고 창작의 모티프로 삼았던 과거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창작을 펼칠 시발점을 집에서 찾은 것이다. 그래서 고향에서 주운 돌과, 종이로 겹겹이 구축한 집을 통해 기억 속의 집을 더듬어 본다. 당연히 그 집들은 그가 '집'이라는 개념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유인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타자와의 소통과 상상력을 가동시키는 매개체이다. ■ 양은희

최윤미_소원쌓기_상자, 돌_가변크기_2018

집과 집 사이 저기 대청호 물길 아래. 내가 태어난 집이 있다. 보이지만 닿을 수 없는. 집. 그래서 "집"에 대한 작품을 만드는가 보다. 집을 주제로 한 네 번째 작품을 만들기 위해 빗길을 뚫고 내 고향땅에 다녀왔다. ● 냇가에서 눈길 가는대로 주워 왔는데... 왜 돌이여야 될까? 생각해보니 대청호 아래 집은 내가 태어난 곳이란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 실질적인 고향의 집은 대청호 옆동네 회인 할아버지 집이었다. 할아버지 집은 본채, 사랑채, 광, 헛간이 있는 동네에서는 제법 큰 한옥집이었다. 본채에는 마루가 살짝 위로 올라온 곳 누마루가 있었는데 여름에 참 기분 좋은 곳이었다. 한옥집은 특이하게도 평평한 돌이 많이 나오는 지역특성상 기와가 아닌 평돌을 올린 집이었다. 내 기억은 그랬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억에는 기와집이었다고 한다. 회인 할아버지 집은 아버지가 황토집으로 벌써 10여년 전에 새로 지어졌다. 잘 관리가 돼서 지금도 남아있었으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과 함께 가족 모두에게 각자 다른 기억으로 추억으로 남아있다. 집의 형태는 달라졌어도 할아버지가 쌓아올린 울타리인 돌담과 장독대가 그 기억을 추억하게 만들고, 아버지가 텃밭 주변에 나란히 놓아놓은 돌은 대청호 저아래 잠겨있는 집에서 가져온 돌로 나로 하여금 태어난 곳 물속에 잠겨있는 그 집과 연결시켜주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돌들은 이사를 할 때마다 나와 함께 했었다. 어렸을 적 문득 마당 한켠에 화분들과 나란히 놓여있던 돌들을 보며, 참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었다. 멋있게 전시해 놓은 것도 아니고 그냥 놓여있었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갈 때도 베란다에는 그 돌들이 있었다. 어쩌면 태어난 곳을 잃은 나에게 그곳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게 돌들을 내 곁에 두셨던 것 같고, 아버지도 그곳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 아버지, 나 사이에 돌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만든 돌담. 아버지의 정원석 돌. 그래서 한국에서 집을 주제로 한 작품에 돌을 넣고 싶었던 것 같다. ■ 최윤미

Vol.20180509a | 최윤미展 / CHOIYOONMI / 崔允美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