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공원에서 만난 반영과 직면

이성수展 / LEESOUNGSOO / 李聖洙 / painting.sculpture   2018_0509 ▶ 2018_0527

이성수_목이 마르다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97×130.3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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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홈페이지_www.soungsooleeart.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5,6층 3,4전시장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서울 도심의 중앙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공원, 그 곳에서 경험하는 짧은 구도와 사색의 시간을 그림으로 담아보았습니다. 도시의 치열함에 반비례하여 공원은 더욱 많은 이야기와 쉼, 치유와 신비를 베풀어줍니다. 특히 모두가 떠난 밤의 공원에서 만나는 자연은 작가에게 근본적인 철학적 직면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 곳의 수면에는 노자의 문장이 반영되었고, 조심스러운 고양이는 동심의 상상력을 자극하였으며, 무리를 떠난 사슴은 성인의 어떤 성찰을 연상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영감들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는 저의 마술적 사실주의적인 관심과 만나 작품들이 되었습니다. 작품 안의 어둠 속에서 신선한 미풍이 풀어 전시장 안을 채웠으면 좋겠습니다.

이성수_왕관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97×130.3cm_2018
이성수_각성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97×130.3cm_2018
이성수_실행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97×130.3cm_2018

어둠은 모든 가능성이다. ● 언제나 신비는 밝히 드러난 곳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공간 속에서 시작된다. 어둠은 세계를 내 내면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 그것을 경험한 것은 20대 초반 그리스에서 배낭여행을 하던 어느 밤 중이었다. 거대한 페리호를 타고 나간 애게해 바다에 어둠이 내리고 구름이 달을 가리며 파도도 잔잔하여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 순간 그 바다 저편, 무한한 어둠 속에 가능성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곳엔 내가 언젠가 신화집에서 읽었던 수 만척의 배와 괴수들과 영웅들과 신들이 굉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 신화집이 아직 씌여지지 않았더라도 내가 만약 이야기꾼이었다면 그 때 떠오른 위대한 몇 단어를 부풀려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서 닫혀있는 이 작은 세계를 무한한 미지의 세계로 확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야기꾼이라기 보다 화가, 어둠의 신비에 대한 내 관심은 그 이후로 수년간 조금씩 이야기가 아닌 이미지로 캔버스 위에서 실현되었다.

이성수_자정산책_캔버스에 유채_125×195cm_2017
이성수_옥상에서 커피를 마시며 꾼 꿈_캔버스에 유채_162×260cm_2017
이성수_Balloonman_캔버스에 유채_160×90cm_2017

관심을 갖고 둘러보니 저 멀리 위대한 신들이 산다는 애게해 밤바다에서 처음 발견된 이 신비의 암흑 공간은 생각보다 가까이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동네 골목 모퉁이, 한번도 관심 가져보지 않은 외진 구석, 작은 그늘에서도 영원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 작은 그늘 속에서 살인마가, 말하는 고양이가, 벌레가 된 동네 아저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름으로 규정되지 않는 나만의 상상 공간, 나는 그 작은 암흑을 '그늘 공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그늘 공간'에는 어디나 신비의 기원들이 웅크리고 있다. 그리고 도심에서 이 그늘 공간을 가장 풍성하게 갖고 있는 곳은 공원이다. 공원의 구석에는 많은 그늘 공간이 있다. 모두를 위해 제공된 공원公園은 장소적 특성상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빌 '공'자 공원(空園)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원에 있는 조금의 그림자나 그늘, 어두움만으로도 그 곳은 충분히 신비의 소재가 될 수 있었다. 더구나 밤의 공원은 놀랄만큼 거대한 곳이다. 밤공원, 설계되었으나 규정되지 않은 공간, 이름 없는 인공과 자연. 그래서 그곳은 가장 영적이며 가장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한 공간이라 느껴졌다. 나는 생각이 막히고, 기도가 되지 않으며, 내가 더이상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마다 공원으로 짧은 구도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많은 동물과 꽃과 사람들을 통해서 내가 세계에 반영되는 경험을 하였다. 그 횟수는 점점 잦아져 구도를 위해 다른 곳에 가는 것이 별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이 무렵 마침내 나는 공원에 한동안 살기로 결정했다. 그 곳에서야 비로소 그림을 통한 나의 짧고 영원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성수_미소 짓는 사슴 사육사_캔버스에 유채_210×135cm_2017
이성수_Gardenner_캔버스에 유채_190×95cm_2017
이성수_Cottoncandyman_캔버스에 유채_220×165cm_2017

나는 공원 담벼락에 붙어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럴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그 집은 옥상에서 발을 헛디디면 내 몸이 공원 영역에서 발견될 정도로 공원에 딱 붙어있는 집이었다. 위치의 성격상 그 곳은 일상과 휴식의 경계가 첨예한 곳일 수 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나는 옥상에 올라가 고기를 굽다가, 지하에 내려가 그림을 그리고, 작업이 잘 되지 않을 땐 계단에서 책을 보다가, 창을 통해 공원에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들을 한참 관찰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들이 마치 공원 안과 밖이 다른 차원인 것처럼 자기만의 의식을 행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공원 경계에서 폴짝 뛰어 넘어 공원 안으로 들어가거나 경계에서 갑자기 뒤를 돌아 들어가기도 하고 크게 헛기침을 하거나 앞뒤로 크게 손벽을 치며 들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비슷한 의식을 하게 되었다. 나의 의식은 큰 심호흡과 기지개이다. 그리고 나는 매일 공원에서 새로운 세계, 구도적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매일 매일 새로운 존재들과 장소들을 알게 되고 그곳에서 나는 정령들, 즉 신의 호흡이라 부를 수 있는 영감(inspiration)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안개가 끼거나 황사가 심할 때, 비가 시간당 60미리 이상 올 때, 특히 늦은 밤엔 공원의 정령들이 나를 애타게 부르는 듯했다. 그런 날이면 나의 구도적 기대가 너무 커져서 공원 입구에서 심장박동으로 현기증이 나기까지 할 정도였다. 낮엔 평범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영감이 채워지고 밤엔 조심스레 움직이는 동물들과 식물, 연못에 비친 자연과 나를 통해 깊은 생각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공원을 나올 때엔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쉬움을 감추고 공원의 밤이 준 영감만을 동행하여 나와 작업실 의자에 앉게 된다. 그리고는 공원에서 미처 채우지 못한 신비를 내 상상으로 채워 그림을 그려내었다. 그 자체로서는 평범할 수 있는 경험의 빈 공간이 숲의 영감으로 채워져 완성된 그림을 보며 스스로 만족하며 되뇌인다. '내일은, 내일은 또 새로운 영감의 반영과, 새로운 나를 직면하겠지? 이 공원의 어느 그늘 안에서.' ■ 이성수

Vol.20180509b | 이성수展 / LEESOUNGSOO / 李聖洙 / painting.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