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시대

원정숙展 / WONJEONGSOOK / 元貞淑 / painting   2018_0509 ▶ 2018_0520

원정숙_아현동1993_캔버스에 나무, 모래, 흙_60×129cm_1993~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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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50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갤러리 낳이 GALLERY NAHE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5(관훈동 196-3번지) 돌실나이 3,4층 Tel. +82.(0)2.745.7451 www.gallerynahee.com

멸종된 것들에 대한 추억그 동안 나는 여러 개인전을 통해 멸종된 것들에 대한 추억을 주제로 일련의 작품들을 전시해오고 있다. 멸종된 동물들이 가상적으로 인간과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 이미 사라져 이름만 남아 전해지는 동물들이 홀씨가 되어 다시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휘파람 뜰',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아 위기에 직면한 북극곰의 눈물을 생각하며 그린 '북극에 띄운 종이배', 마른 땅을 적셔주는 반가운 단비와 최후를 맞이한 북극의 재앙의 비를 대조시킨 '후두둑, 비' 등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멸종」이라는 주제를 담은 작품들이다.

원정숙_나는 집을 갖고 싶다3_캔버스에 나무, 모래, 흙_72.7×91cm_1994
원정숙_나는 집을 갖고 싶다1-1_캔버스에 나무, 모래, 흙_50×72.7cm_2018

이번 전시에선 멸종동물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살아오며 바라본 집의 풍경을 멸종의 의미를 담아 인간의 따뜻한 시선으로 담고자 했다. 연탄 한 장으로 온 가족이 옹기종기 아랫목에 모여 나누었던 따스함과, 얼어붙은 골목 빙판길에 누군가를 위해 뿌려졌던 연탄재는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지난날의 정을 추억하게 한다. 내가 「연탄 시대」라고 부르는 일련의 작품들은 빈곤과 결핍, 공허함 뒤에 든든히 깔려있던 따뜻함과 정을 그려내고자 한다.  바람이 지나가는 벽. 세월의 흔적을 덧댄 지붕, 나무 전봇대 등으로 표현되는 낡은 집은 거칠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투박하고 고단한 삶을 표상한다. 고도의 기술로 지어진 현대의 아파트는 편리함과 세련됨을 뽐내지만 벽돌 하나, 돌담 하나, 수공예품처럼 한땀 한땀 지어진, 과거의 허름한 집들은 오늘날 새로운 정감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가파르고 비좁은 오르막길,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도시 변두리 지역이나 달동네에 흔한 풍경이었지만 이후 가속화된 산업화로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것은 잊고 지낸 과거의 나를 만나는 추억이고, 오래된 친구들과 가족을 떠올리는 추억이기도 하다.

원정숙_나는 집을 갖고 싶다2_캔버스에 나무, 모래, 흙_63.2×78.2cm_1994
원정숙_연탄시대2 _캔버스에 나무, 모래, 흙_45×53cm_2018

하지만 나는 낡은 집을 추억의 향수로 그리진 않았다. 따뜻한 정 가운데 엄연히 실존했던 가난함과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는 시선 또한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유년시절 우리 집은 유복했지만 점점 가세가 기울어 달동네를 지나 산동네로 이사했다. 이후 나는 미술대학 입학을 목적으로 상경한 6년 동안은 다 쓰러져 가는 집의 방 한 칸이라도 마음 편히 얻기를 소망하는 떠돌이였다. 그러기에 이 풍경은 관찰자, 구경꾼으로서의 향수어린 바라봄이 아닌 체험자로서의 경험을 고통스럽게 녹여낸 것이다. 힘겨웠지만 희망을 꿈꾸며 살았던 과거의 내 자신에 대한 응원이기도 하다.나무를 붙인 집 그림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렸다. 1992년 대학교 4학년 그때부터 시작한 이 그림은 마치 한 채의 집을 짓듯이... 나무젓가락으로 형태를 잡고 낡은 나무 조각을 붙이고 모래, 흙으로 마감한다. 이 소재는 우리 주변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재료비 걱정을 덜게 해주어 오랜 시간 지속할 수 있었다. 이후 나무를 붙인 낡은 집 그림을 그리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최근 다시 그 주제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원정숙_판자산수_캔버스에 나무, 모래, 흙_126.5×58.7cm_1999

나의 이십여 년간의 그림 작업은 멸종되는 것들에 대한 추억을 모티브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변주 과정이었다. 과거와 만나는 것은 추억이기도 하지만 고통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것은 그 안에 내가 들어있기 때문이고, 기억을 더듬어 떠올리고 싶은 마음과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갈등하며 일어나는 것이리라. 그림을 마주하며 가슴 시리고 괴로운 마음이 강해질 때면 작품을 외면하고 소홀히 하여 작품이 손상되기도 했다. 계속되어 온 치열한 작업의 시간을 통해 이제 그 고통도 점점 옅어지며 치유되는 과정을 겪는 듯하다. 이번 전시는 온전한 작품들을 모아서 새로운 마음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25년 전의 그림은 오랜 세월 동안 유독 손상되지 않고 잘 보존되었다. 낡은 집의 표현은 내 혼란스런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오래된 상처를 치유하듯 그려졌다. 그 동안 내가 그림 속의 풍경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을 보냈듯이, 그림 속의 집들도 나를 오랫동안 묵묵히 지켜보았고, 이제 그 추억의 시간까지도 그림 속에 아로새겨져 있는 듯하다. ■ 원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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