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 The Mechanic

정직성展 / JEONGZIKSEOUNG / 正直性 / painting   2018_0511 ▶︎ 2018_0610 / 월요일 휴관

정직성_20175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89.4×130.3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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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511_금요일_05:00pm

주최 / 장안평 자동차산업 종합정보센터 기획 / 예문공(A.C.S._대표 정필주)

관람시간 / 10:00am~05: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JAC GALLERY JAC 서울 성동구 용답동 234-1번지 장안평 자동차산업 종합정보센터 3층 Tel. +82.(0)2.2213.1370 jac.or.kr blog.naver.com/jac4u

많은 화가는 자신의 경험, 자신의 감정이 움튼 장소와, 시간을 보고, 기록하고 재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오며, 그 재현에 대한 욕구는 일변 강박적이기까지 한 표현 충동에 대한 물아일체적 순응을 통해 충만한 환희로 보답 받곤 한다. 다만, 이러한 경험의 기록은 대상 혹은 풍경의 기록이라는 이중적 필터에 의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야기하곤 한다. ● 일찍이, 덧바르기(overpaintings) 시리즈에서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자연 풍경 위에 우연성을 가미한 물감 덧칠을 통해, 즉 다시 말해 자연(自然, 혹은 표현의 대상)과 우연(偶然)이 구축한 구조를 통해 보편 경험의 공감각적 잔류물들의 권리 요구를 타파하고자 시도한 바 있다. 이러한 권리 요구를 대리하고 있는 (혹은 국선변호인의 그것과 유사한 처지의) 기록과 재현은 그 시선의 대상을 진실로부터 유리시켜 박제화하는 과정에 참여하곤 한다. 그것이 적극적인 부역(附逆)이든, 수동적 방조(傍助)이든 진실로부터 유리된 거짓은 결국 거짓 증언의 연쇄를 통해서만 지켜질 수 있다. 또한, 박제의 목적이 숭배이건, 경멸이건 혹은 망각이나 외면이건 이는 리히터의 말처럼 진실적이지 않다(untruthful). ● 표현에 대한 정직함을 고민해온 정직성에게 있어 이러한 진실성의 문제는 회화라는 표현수단을 택한 이상, 그의 미술세계를 설명하는 키워드와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진실성에 대한 엄격주의에서 비롯된 수많은 실험을 거듭해 나간 리히터가 그랬듯 기법(method)의 연구에서부터 주제 본질에 대한 탐구에 이르기까지 여러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며 정직성이 이룩해온 그의 미술세계가 현재 다다른 지점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기술'과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정직성_20175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89.4×130.3cm_2017

기록이 아닌 기술 ● 정직성에게 있어 회화적 표현은 해당 대상의 역할을 통해 유지, 보수, 연결 그리고 동작되고 있는 관계의 재현이다. 이 시도의 성공여부는 형태의 재현을 요구하는 시각적 익숙함을 효과적으로 절제시킬 수 있는 추상 문법의 구성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형태의 무비판적 기록과 그 재현은 필연적으로 대상의 물리적 결과, 그리고 그 결과를 야기하거나 추동한 사회적 조건을 극히 한정적인 찰나의 순간을 통해 추론하도록 요구하고, 이는 곧잘 사회적 조건과 그 물리적 결과의 인과관계를 뒤섞는 문제로 이어지곤 한다. 정직성 작업의 주요 테마이기도 한 도시는 수많은 표현욕구의 대상물로써 기능해 왔지만, 과거 '자연'이 박제되어 있던 성상(聖像)의 위치를 물려받은 숭고한 대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10년여 전 연립주택 시리즈를 대표로 이 숭고함의 비진실적 양태에 마주해온 정직성은 공사장 추상 및 기계 시리즈를 이어나가며 자신의 추상 문법을 통해 도시에 대한 숭배나 경멸을 요구하는 모든 시각적 익숙함, 그리고 보편 경험의 독점적 지위 주장을 거부해왔다. ● 수많은 주택들이 붙어있는 '연립주택 시리즈' 그림에서 그 집에 살고 있는 혹은 살게 될 사람들은 그 공간의 숨막힐 듯한 구성에 진저리 치면서도 동시에 그 공간에 공감한다. 이러한 부정 이후의 긍정의 효과는 우리의 발화(發話) 학습 경험과 시각 수용 경험이 그물망처럼 펼쳐있는 보편경험이 얼마나 개인적(사람은 물론 무생물적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진실에 억압적인지를 증명하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연립주택 시리즈로부터 약 10여년이 흐른 기계 시리즈에서도 결국 정직성이 진행하고 있는 (사회적) 작업은 그리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연립주택 시리즈에서, 그 작품들은 그 외관의 재현을 목적으로 두고 있지 않았다. 주택을 매개로 한 사람들의 '삶'의 조건과 그 관계성의 양상을 보편경험이 아닌 주관적 진실의 앞에서 정직하게 드러내고자 한 그의 의도는 기계 시리즈에서도 여전하다. 물론, 그의 주관적 진실 또한 대상에 대한 제 3자적 관점에서는 하나의 억압기제일 수 있다. 실제로 회화나 조각은 물론 판화나 사진에 이르기까지 '경험'이 표현을 좌우하는 시각예술에 있어 주관성의 반영은 예술의 창조력을 유지하는 원동력임이 분명하다. 다만, 앞에서 말한 보편경험에 의한 대상의 성상화(星像化)는 결국 개별적 주관 경험의 자기표현욕구(혹은 자기복제욕구)에서 출발하기에, 작가의 주관적 경험이라 할지라도 리히터류의 엄격한 진실주의의 검열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 그렇다면 건물, 공사장 구조물에서 흐르는 강이나 꽃나무 그리고 자동차 부품에 이르는 주관적 풍경에 대한 정직성의 기술은 어떻게 대상에 대한 숭배나 경멸, 혹은 망각과 같은 성상화의 쉬운 길로 빠지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경험을 반영한 관계성의 구조를 제시하고 있을까?

정직성_20175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89.4×130.3cm_2017

재현이 아닌 구성 ● 2017년 리안 갤러리를 출발점으로 그리고 2018년 갤러리 JAC에서 선보이고 있는 자동차 부품을 중심으로 하는 기계 시리즈는 자동차 부품이 맺어주고, 유지시켜주는 그 관계성의 경험, 혹은 그 조건을 구성하는 데 있다. ● 자동차 부품은 남편의 자동차공업사에서의 일상 혹은 풍경을 기록한 것이기도 하다. 다만 작가의 삶, 그에 대한 단순한 자전적 기록이자 기억의 반추만으로 볼 수는 없다. 혹은, 자동차 부품을 둘러싼 보편경험이 내놓은 사회적 조건에 대한 정답을 충실히 학습하여 복기하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삶의 풍경 속에 문법적 풀이를 담는 것, 여성의 경험은 항상 개인적인 것이며 그 경험은 오직 가부장제 사회 내의 보편경험을 통해 공인된 '풍경' 속에서만 숨 쉴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 내의 여성미술가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풍경 숭배의 일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직성의 기계 연작은 여성에게 있어 개인적 삶의 반경에 대한 주의 깊은 탐색 또한 사회적일 수 있음을 말한다. 즉 가부장제에서의 보편경험이 공인하고 있는 자동차공업사라는 남편의 직장에서의 풍경-가장의 헌신, 남성의 기술우위, 노동의 남성성 등-을 정직성의 주관적 시선과 경험을 통해서 새롭게 비판적으로 구성하면서도 남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려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균형점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 지점에 대해서만큼은 정직성의 자신감을 매우 뚜렷이 느낄 수 있다. 사실, 사회적 발언의 정교함과 그 울림을 담아내면서도, 주관적 경험의 반경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잇따라 선보인 '녹색풀' 시리즈나 '매화' 시리즈가 바로 그 자신감을 증명해 보인 증거라 할 수 있다. ● 기계시리즈 또한 여성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삶의 반경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자동차 기계부품으로 상징되는 의무적 삶의 기록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상화된 시각문법이 강제하고 있는 삶의 풍경에 대한 독해법, 기억법에 대한 정직성 특유의 (다년간의 노력과 연습으로) 체화된 자동기술적 화법(畵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 정직성의 작품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동기술적 화법이 객관적 사실의 제시나, 그 존재 증명을 약속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초현실적 지평면에 세워진 주관적 현실들에 대한 정직성류의 단 하나의 거울이라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 그가 마주하는 거울은 단순히 보편경험이 공인한 풍경에 대해 입을 모으는 대중연설적 사회발언의 방법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사건과 경험에 대한 주관적 기억에 약간의 어드밴티지를 부여할 수 있는 초현실적 공간으로의 초대라고도 볼 수 있다. 사회적 계급, 젠더적 억압구조에 대한 논의가 이미 초현실주의를 넘어 대중적 소프오페라로 통용되는 현실에 있어, 정직성의 이러한 자세는 어쩌면 다소 고지식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편경험의 풍경숭배 경향이 도시를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가부장제의 공인 풍경 중에 하나인 자동차 공업사의 자동차 부품에 대한 '기술'은 자신이 재구성해 낼 풍경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풍경에 연결되어 있는 관계의 진실성에 대한 작가의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단순한 가부장적 풍경의 재현으로 그치지 않고 있다. ● 주관적 시선에 기반한 광범위한 추상화를 대상에 적용하며, 그 물성의 관계성을 비약(축소하거나 부풀리는 등)하는 것은 (연립주택시리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정직성 특유의 메소드 화법이며, 이는 개인적 감정의 투사를 반영하는 것으로 즐겨 사용되고 있는 정직성 특유의 색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가족, 나아가 자동차 부품이라는 대상이 연결하고 있는 사회적 관계성에 대한 믿음은 특히, 남편과 정직성 간의 관계성을 대변하는 '색감'의 부여를 통해 자신만의 진실성을 구성하고 있다. ● 보편경험의 풍경숭배 요구로부터 자유로운 '재현'에 관한 정직성만의 숙련된 기술은 그 색감의 부여에 있어 거의 무의식적 자동기술의 상태로까지 진화한 듯하다.

정직성_20176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50×50cm_2017
정직성_20176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50×50cm_2017

자동기술적 추상화 그리고 진실성 ● 이러한 색감 선택을 포함한 주관화된 풍경에 대한 정직성의 자동기술적 추상화 과정은 드디어 리히터식의 엄숙한 진실주의에 요구되는 보편경험의 비진실성을 다뤄야 할 단계에 이르게 된다. ● 이번 [기계 – The Mechanic] 시리즈에서 다뤄진 자동차부품의 물성, 기름, 차가움, 금속성은 물론 그것의 상태, 즉 깨끗함, 더러움도 모두 정직성의 추상화 과정에 의해 지워져있다. 이는 해당 개체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탈시키는 효과가 있다. 자동차 부품이지만, 그것이 새 제품인지 오래된 제품인지, 중고제품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또한 그것이 부품 수리를 마친 것인지 혹은 다른 부품들과 연결된 상태인지도 알 수 없다. 이는 곧 그것의 '정물'(Still-Life) 상태를 유예하거나 거부한다. 오히려, 그 역동성은 정지된 부품 수리공장 혹은 가부장제에서의 남성적 노동 현장에 대한 '풍경'을 쉽게 뛰어넘어, 정직성의 주관적 경험이 세워놓은 초현실적 지평면에 그 존재를 물질화한다. 보편경험 속 풍경의 '일원'일 수 있는 일부 정물화에 있어 대상의 물성 재현은 곧 시간의 파편화를 초래하고, 결국 관계성의 단편화를 야기한다. 우리는 대상의 '그 때'를 앎으로써, 그 상태를 익숙해하고 안도한다. 그리고는 그 대상을 숭배할지, 경멸할지 혹은 잊을지를 선택할 뿐이다. 우리는 이 선택을 방조하고, 때론 적극적인 부역자의 역할을 자처하는 재현 그리고 기록 범람의 시대에 살고 있다. ● 천 킬로미터, 오천 킬로미터 혹은 일만 킬로미터 보증과 수리기준 외에는 본네트를 열어 기계를 확인하지 않는 우리의 일상, 무관심은 일상에 박제된 형태와 구조에 켜켜이 쌓여 본래의 역할. 관계성의 유지, 보수. 나아가 그 관계의 너와, 나마저 흐릿하게 지워나간다. ● 정직성은 관계성에 대한 진실적이지 못한 우리의 '그 때'를 그리는 대신, 자신의 주관적 시야 속에서, 대상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진실하기 위한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 속에서 흐려진 것은 대상의 형태가 아니라, 그 자동차 부품, 그 기계 그리고 그 도시가 잊혀져왔던 그 모든 시간일 것이다. ● 끊임없이 연소와 폭발을 반복해 나가는 자동차 부품, 그 기계를 수리하는 '메카닉(Mechanic)', 수리공에 대해 정직성이 그려낸 주관적 풍경은 어쩌면, 우리 시대 사회적 관계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계속하는 화가 정직성의 작품세계와 함께 하게 된 우리의 주관적 풍경으로도 다가와 있을지 모른다. ■ 정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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