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밝은 곳 A clean, well-lighted place

이지연展 / LEEJIYEON / 李知硏 / painting   2018_0515 ▶ 2018_0526 / 월요일 휴관

이지연_No.109-1(사진.박동균)_캔버스에 유채, 스프레이_72×90cm_2017

초대일시 / 2018_0515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무욕한, 조형에의 집요: 실재實在와 실제實際의 경계에서 ●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이지연은 더럽고 어두운 작업 공간에 자기를 가두듯이 하고 지난 1년간 그림을 그려왔다. 여느 작가의 삶이 그러하듯 자신의 미술과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고 고립되었다. 그는 여러 사람이 거쳐 간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작업실 바닥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겨야 할 여러 싸움 가운데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잠시나마 현실에서 도망쳐 머물도록 허락된 자리는 바닥의 버려진 것들에 있었다. 학부를 졸업하기 전까지 작업을 했던 나는 작가적 삶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와 분투하다 한없이 작아진 작가라는 인간은 작업실 바닥에 버려진 낙서된 휴짓조각이나 눌어붙은 물감 자국에 집중하면서 안락과 평온을 찾았을 것이다. 사소하고 조그마한, 버려진 '조형'에 안착하자 그의 작업 공간은 깨끗하고 밝은 곳이 되었다.

이지연_No.109-10(사진.박동균)_캔버스에 유채, 스프레이_33×53cm_2017

2015년부터 최근까지의 작업 전반을 살피면, 작가가 회화의 소재로 삼는 대상은 도시의 자연, 거리, 건물 그리고 최근의 작업실 바닥과 화단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다양하며 소재 선택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 이지연은 본능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비례와 균형, 조화와 율동, 통일과 변화 등 순수조형 요소들 사이의 어울림과 시각적 리듬감 같은 회화의 시각적 흥미 획득에 관심이 있는 듯하다. 이러한 작가적 특성은 흥미롭게도 결과적으로는 회화의 '환영'과 '자기 지시성'의 문제를 생각하도록 한다.

이지연_화단5_캔버스에 유채, 스프레이_65×45cm_2018
이지연_철판_캔버스에 유채, 스프레이_65×53cm_2018

캔버스는 자기 앞에선 관객에게 '실재'實在:(인식 주체로부터 독립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것)한다고 믿고 있는 환영의 공간을 펼친다. 그러나 작가에 의해 강조된, 회화의 조형미는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이로 인해 환영을 일으키기 위한 전제 조건인 원근이나 비례 등은 무너지고, 관객은 시각적인 어색함과 불명료함으로 회화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한 채 어느 정도의 단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갈 곳을 잃은 관객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세계를 다시 살핀다. 이는 작가의 개입으로 인해 '실제'實際:(개인의 직접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직접 행하거나 느끼는 것)가 된 '실재'가 사실 자신은 '회화'라 말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 작업실 바닥을 다룬 그의 최근 회화가 주는 시각 경험은 환영과 비환영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홀로그램hologram을 바라볼 때와 유사하다. 이는 작가의 회화에서 다층적인 기능을 하는 물감의 역할에서 연유한다. 넓게 펴 발라져 작업 공간의 바닥 자체로 혹은 바닥의 뜯겨나간 타일 조각으로 환영을 일으키고, 화면의 조형미를 획득하는 조형요소 중 하나로 그 모습을 드러내거나 물감이 가진 질감은 어느 순간 그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되어 환영을 해체하기도 한다. 특히, 그려지거나 묘사된 것이 아니라 꼭 그런 모양으로 있어야 했던 것처럼 뻔뻔하게 캔버스에 '물감으로' 얹혀 있는 물감 자국은 환영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고, 그것이 조형요소로서 두드러질 때는 환영을 해체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마지막의 경우, 모더니즘이 말했던 회화의 자기 지시성이 강해진다. 그러나 물감 자국이 실은 진짜 물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또 다른 자기 지시성에 의해 자국은 다시 환영의 옷을 입는다. ● 이지연의 회화는 실재와 실제의 경계를 동시다발적으로 넘나들며 회화 스스로 주체가 되어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더럽고 어두운 작업 공간에서 바닥을 주시하며 자신이 안착할 곳을 찾았을 때, 조형이 작가에게 그 자리가 되었다. 작가라는 한없이 작아진 인간에게는 자신의 생존과 미술을 위해 사랑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것은 자기에게 단순하고 조용했던, 순수 조형요소들과 그들이 내포한 미의 가능성에 있었다. 이후 그의 회화에서 그들이 커져 버렸을 때 이지연의 회화는 활기 넘치며 유의미한, 실재와 실제의 각축장이 되었다. 회화로서의 말을 건네는 이지연의 회화는 무욕하고 집요한, 차가우며 본능적인 회화이다. ● 끝으로, 이 모든 이지연 회화 읽기는 미술 동료이면서 인간으로도 꽤 오랜 시간 그를 알고 지낸 박이주라는 한 개인의 시각일 뿐이라는 점을 주지하고 싶다. 따라서 글을 쓰는 동안 친밀하면서도 거리감 있는 비평의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한 작가의 작업세계의 지향은 언제나 그렇듯 비평과 함께하되,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밝히는 바이다. ■ 박이주

Vol.20180515c | 이지연展 / LEEJIYEON / 李知硏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