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경 2018-觀 Wood scripture2018-Watch

전항섭展 / JEONHANGSUB / 全項燮 / sculpture   2018_0522 ▶︎ 2018_0602

전항섭_나무경2018-잔영2 Lingerd image_박달나무_157×24×24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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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항섭 홈페이지_www.art500.or.kr/blog/jeonhangsub.do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설미재미술관 협찬 / 더스테이힐링파크 기획 / 플라스크

관람시간 / 10:00am~06:00pm

아트스페이스 플라스크 ARTSPACE PLASQUE 서울 성북구 정릉로6길 47 Tel. +82.(0)10.2631.2889 www.plasque.co.kr

한국 현대미술은 바닷가에서 형성된 지층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조류의 흐름에 따라 비스듬히 퇴적되었기 때문에, 수평으로 잘랐을 때엔 연원을 달리하는 단층(斷層)들이 동시에 드러난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나타나는 미술 현상들을 단일한 잣대로 가늠할 수가 없고, 하나의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품고 있는 과거의 단층들을 사면(斜面)을 따라 개별적으로 탐색해야 한다. ● 이는 한 개인의 작업을 살펴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이질적인 과거의 단층은 단기적인 미술 현상보다는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개인의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지난 반세기의 한국 현대미술처럼 내재적인 요인보다는, 외재적인 요인에 의해 패러다임이 계속 바뀌었던 풍토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아마도 한국에서 '작가'로서 활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작업 속에 이질적인 과거의 단층을 여럿 품고 있을 것이고, 그들의 작업의 의미를 정합적으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이상의 관점이 필요할 것이다. ●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미술의 담론에서 다층(多層)적인 시선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관성에 대한 요구는 여전히 강력한 실효성을 지니고, '작가'들은 단일하고 선명한 정체성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작업에서 파생되는 이질적인 요소들은 표출되기도 전에 억압되고 제거된다. 이와 같은 사정은 한 사람의 '작가론'이 구성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도 전제되는 것은 동질성과 연속성이다. 이질성과 불연속성에 근거해서 형성된 미술 담론은 찾아보기도 어려울 뿐더러 환영받지도 못한다.

전항섭_나무경2018-잔영1 Lingerd image_박달나무_157×24×24cm_2018

II 이 글에서 다루는 전항섭의 작업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고민이 발생한다. 전항섭은 1960년에 태어나 청소년기인 1970년대 중반에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40여 년 동안 미술 활동을 펼쳐왔던 인물이다. 그 세대에 속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미술에는 이질적인 과거의 단층이 여럿이다. 그 단층들은 한 데 종합될 수 없으며, 별도의 역사적 맥락을 가진다. 그것들은 각자의 독립성을 유지한 채, 그의 미술에 영향을 끼쳐왔다. 이제까지의 작업을 돌아보더라도 특정한 미술의 맥락이 단일하게 부각되기보다는, 상이한 미술의 맥락들이 시기마다 다른 조합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전항섭의 미술은 일직선으로 전개되기 보다는, 자신이 형성된 자리에 머물며 환경의 변화에 따라 부단히 재편성된다는 인상을 준다. ● 아마도 전항섭 미술의 다층적인 성격을 논의함에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나무라는 질료일 것이다. 그가 지속적으로 나무를 다뤄왔다는 사실은 그의 미술 활동을 '나무 조각'이라는 단일한 맥락 속에 환원시키도록 만든다. 일관성에 대한 강박이 여전한 한국 미술의 장(場)에서 이와 같은 환원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특히 그의 나무 조각은 전통적인 목조(木彫)와 연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솔깃한 일관성의 계기가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항섭은 '평생 나무 조각의 외길을 걸어온 예술가'로 자리매김한다. 결국 우리는 그의 미술을 풍성하게 만들었던 핵심적인 요인(要因)을 놓치게 된다. 그것은 이질성과 불연속성에서 오히려 생명력을 얻는 전항섭 특유의 조형 능력이다. ● 나는 전항섭의 작업이 동질적인 환경에서 놓였을 때 보다 이질적인 환경에 접어들었을 때 더욱 풍부해졌다고 생각한다. '나무 조각'은 그가 지속적으로 선택했던 작업의 방식이었지만, 그는 시기마다 다른 방법론으로 나무를 깎았고, 자신의 나무 조각을 전통적인 목조에 귀속시키지도 않았다. 그에게 나무는 자신의 다층적인 예술 활동을 넉넉하게 수용할 수 있는 매체였지, 예술 활동의 목적은 아니었다. 실제로 전항섭의 작업은 그의 조형 의지를 자극하는 외적인 요인에 의해 추동되는 경우가 많았고, 나무라는 질료 자체에서 모티프를 얻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 까닭에 '나무 조각'은 전항섭의 미술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 일뿐, 그의 미술 전체를 아우르는 맥락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의 미술에서 핵심적인 것은 과거의 단층들이 시기마다 다르게 공명(共鳴)하는 불연속적인 양상이다.

전항섭_전령 1_박달나무_93×30×13cm_2018
전항섭_전령 2_박달나무_45×23×20cm_2018

III 앞서 언급했듯 전항섭의 미술에는 이질적인 시간의 단층이 여럿 존재한다. 그 단층들은 제 나름의 고유성을 지니며, 다른 단층들과 공명(共鳴)한다. 그들은 인과관계를 맺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일시적인 착시일 따름이다. 설사 연대기 순으로 배치된다 할지라도, 그들은 엄연히 분리되어 있다. 그 단층들의 공명은 혼란스러운 불협화음으로 그칠 수도 있지만, 생기 있는 다성(多聲)의 음향이 될 수도 있다. ● 나는 전항섭의 미술에서 공명하는 단층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단층들은 개인사의 진행에 따라 차례로 형성되었지만 서로 독립되어 있고, 시기마다 다른 조합으로 전항섭의 작업에 영향을 끼쳐왔다. 그들을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다 . ● 첫 번째는 모더니즘 조각의 단층,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브랑쿠지(Constantin Brancusi), 아르프(Jean Arp), 헨리 모어(Henry Moore), 김종영과 같은 조각가의 계보로 나타낼 수 있는 생명주의 조각의 단층이다. 이것은 전항섭이 서울대학교 조소과에서 수학했던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 사이에 집중적으로 형성되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항섭이 나무와 돌과 같은 자연 재료로 작업하게 된 배경, 또한 그가 사람이나 동식물처럼 살아 있는 존재를 나타내는 데 힘쓰게 된 배경에는 그가 미술대학을 다녔던 시절에 배우고 익혔던 생명주의 조각의 모더니티가 놓여 있다. 표피적인 사실성에서 탈피하여 형태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추상적인 지향, 육체적인 조각 작업을 정신적인 구도(求道)의 행위로 고양시키고자 하는 태도,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은둔하여 자신의 예술에 전념하고자 하는 내향적인 삶의 방식 등, 전항섭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견지되는 미적·윤리적 가치들이 여기에서 생성되었다. 이 단층은 그의 미술이 두 번째 단층에 접어들면서 그 비중과 영향력이 잦아들었지만 항시 작업의 저류(底流)를 이루고 있었고, 최근에 와서는 가장 두드러진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전항섭_절심 1 Severity mind 1_대추나무_39×26×23cm_2018
전항섭_희망의 천사 A uplifting angel_주엽나무_102×35×21cm_2018

두 번째는 현실 비판/참여 미술의 단층, 즉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에른스트 발라흐(Ernst Barlach), 오윤, 박희선와 같은 예술가들이 이름으로 대표할 수 있는 저항적인 휴머니즘 미술의 단층이다. 이것은 첫 번째 단층이 자리 잡았던 시기에 겹쳐서 형성되었고, 동향(同鄕) 선후배로 함께 서울대학교 조소과에서 수학했던 박희선과의 교감 하에 강렬한 존재감을 획득하였다. 특히 학교를 졸업한 전항섭이 청년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쳤던 1980년대 후반에서부터 1990년대 중후반까지 두 번째 단층은 전항섭의 미술을 온전하게 주도하였다. 그는 박희선과 함께 한민족(韓民族)의 삶에 뿌리를 내린 '한국성'을 추구해야할 조형이념으로 삼고 역동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다. 그의 작업에 자리 잡은 두 번째 단층은 몇몇 요소에서는 첫 번째 단층과 순조롭게 공명하였지만, 대부분의 요소에서 첫 번째 단층과 상충되었다. 1990년대에 진행된 전항섭의 미술이 '비판'과 '참여'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보다는 '한국성'의 조형적인 본질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도 이질적인 두 단층의 마찰과 굴절이 빚은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강력했던 두 번째 단층은 신실한 동반자였던 박희선이 요절하고, 한국사회의 세계화로 인해 저항적 민족주의의 시의(時宜)성이 사라짐에 따라 급격히 위축되고 쇠퇴하였다. 물론 전항섭의 미술에는 지금도 여전히 '한국성'의 맥락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천적인 소명의식과 함께 열정적으로 추구되었던 과거의 조형이념이 아니다. 그것은 세 번째 단층이 형성된 2000년대 이후의 시기에, 전항섭의 작업에 간헐적으로 활기를 불어 넣는 모티프이자 소재로서 자리 잡았다.

전항섭_슬픈천사 A sad angel_박달나무_96×32×14cm_2018

세 번째는 포스트모던 미술의 단층, 즉 '회화', '조각', '건축'과 같은 장르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에 나타난 혼성적인 미술의 단층이다. 사실, 이것은 전항섭의 작업에서 첫 번째, 두 번째 단층처럼 두드러지는 존재감을 나타내는 단층은 아니다. 아마도 이것을 하나의 단층이라기보다는, 동시대 미술을 따라가고자 하는 미약한 제스처로 정도로 파악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전항섭의 작업에는 아주 이른 시기에서부터 혼성적인 미술의 단초가 나타나 있었고, 두 번째 단층이 주도적이었던 1990년대에 그의 작업은 이미 조각이라고 할 수도 건축이라고도 할 수 없는 확장된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다만 '나무'라는 전통적인 재료와, '한국성'이라는 민족주의적인 이념이 그의 작업에서 표출되는 포스트모던한 속성을 가렸을 따름이다 (실제로 1996년에 금호미술관에서 개최된 전항섭의 개인전은 조각 전시라기보다는 설치 전시에 가까웠다). 이와 같은 세 번째 단층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전항섭의 작업에서 '한국성'의 영향력이 잦아들었던 2000년대 이후이다 (2003년 김종영 미술관에 개최되었던 초대전과 2013년 아라아트센터에서 개최된 개인전은 전항섭의 미술에 내재되어 있었던 동시대적인 면모를 선명하게 확인시켰다). 물론 이러한 가시화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단층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인식되거나 평가되지 않는다. '나무 조각'이라는 단일한 맥락이 첫 번째 단층과 어울려 그의 미술의 전통적인 성격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항섭의 작업은 '나무 조각'이라는 최후의 울타리마저 편안하게 넘나들고 있다. 그의 스튜디오 한 구석에 조용히 축적되고 있는 그 작업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가시화되어 전항섭의 미술에 잠재되어 있는 '탈근대성'을 공론화시킬 것이다.

전항섭_아기천사 A baby angel_박달나무_108×40×34cm_2018

네 번째는 가장 오래되었으면서도 가장 은폐되었던 단층이다. 그것은 문학에 뿌리깊이 동화되어 있는 미술의 단층이다. 전항섭의 미술은 문학적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도 그렇고, 부정적인 의미에서도 그렇다. 그의 미술은 문학과 친밀하게 결속하기 때문에 미술임에도 불굴하고 섬세하게 함축될 수 있고, 풍요롭게 얘기될 수 있다, 반면에 그의 미술은 문학과 친밀하게 결속하기 때문에 미술임에도 불구하고 형언할 수 없이 거칠어지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하게 핍진해질 수 없다. 전항섭의 작업은 보여지는 것과 말해지는 것 사이에 가교(假橋)를 설치하는 데, 다리 아래로 내다보이는 심연은 너무나 깊어서, 그 가교 위를 왕래하는 의미들을 항시 위태롭게 만든다. 그의 작업은 즐거이 시(詩)와 교감하고, 서사(敍事)에 접속한다. 하지만 그러한 교감과 접속은 매번 불일치의 쓰라림을 각오해야 한다. 시각적인 것과 언어적인 것은 어긋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전항섭의 미술이 계속되는 불일치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문학에 대한 각별한 애착과 지향이 전항섭이라는 한 개인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그 세대의 미술인들에게 폭 넓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미술의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전무 했었던 1960,70년대에 어떻게 미술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중고등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을 갖게 만든다.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유력한 정답은 '문학'일 것이다. 물질적으로 빈곤하고, 대중예술의 발달이 미미했던 1960,70년대에 한국사회의 청소년들에게 문학은 풍요롭게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문화였다. 그래서 문학에 심취했건 그렇지 않건, 이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은 문학이 깃들어 있는 시공간에서 살았고, 문학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세상사를 받아들였다. 학교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 말고는 미술을 향유할 방법이 궁했던 시절에 미술은 문학을 통해서 상상되었을 것이다. 전항섭 작업에 스며 있는 문학성은 그러한 시대적인 환경 속에서 형성되어, 그의 미술에 드러나지 않게 영향을 끼치는 단층이 되었을 것이다.

전항섭_무술년_박달나무_98×25×13cm_2018
전항섭_기상 起想 Wood scripture_박달나무, 알루미늄 철사_82×45×45cm_2018

IV 전항섭의 미술에 내재된 네 개의 단층은 그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시점에 따라 다르게 편성되었고, 다르게 공명(共鳴)했다. 그렇다면 그 단층들이 공명하는 양상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주목되는 점은 하나의 단층이 주도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나, 여럿의 단층이 서로를 상쇄하여 경우가 점차 줄어들고, 각각의 단층이 고유의 속성을 유지한 채 화음(和音)을 이루는 빈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단층과 단층 사이에서 파생되는 이질성과 불연속성이 그의 작업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고, 그의 조형 욕구를 자극하는 요인으로서 역량을 높여가는 것도 눈여겨 볼만 하다. ● 전항섭이『나무경 2018』이라는 표제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공명의 양상은 두드러진다. 이 전시에 제시된 작업들은 형태를 구현하는 측면에서 있어서는 생명주의 조각의 모더니티(첫 번째 단층)를, 소재를 선택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한국성(두 번째 단층)을, 재료의 사용과 공간 배치의 측면에서는 탈(脫)장르적인 혼융(세 번째 단층)을, 작업의 모티브와 전시 주제를 설정하는 측면에서는 시(詩)적인 함축(네 번째 단층)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속성들은 어느 한 요소가 두드러짐도 없이, 또한 서로 뒤섞여 상쇄함도 없이 다(多聲)의 조화를 이룬다. ● 전항섭의 미술은 지난 반세기의 한국 현대미술에 나타났던 이질성과 불연속성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고, 그 속에서 형성된 시간의 단층(斷層)들을 세심하게 보존하고 있다. 그의 미술은 동질성과 연속성의 잣대로 보았을 때엔, '나무 조각'의 혼란스러운 변주처럼 느껴지지만, 이질성과 불연속성을 긍정하는 중층(重層)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땐, 한국 현대미술을 가로질렀던 시간의 단층들이 절묘하게 교차하며 화음(和音)을 이루는 공명의 장(場)으로 나타난다. ●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가 일관적이었다는 주장이 상당부분 허구이듯이, 그 속에서 작업했던 개인의 미술이 일관적으로 발전하였다는 주장도 허구적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대부분 공들여 일말의 일관성이라도 찾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는 사태는 호전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왜 일관성만이 가치가 있는 것인가?'이라고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일관성의 환영이 사라졌을 때, 우리가 맞이하게 되는 미술의 양상은 무엇인가?' 라는 물어야 한다. 이러한 성찰과 모색의 순간에 전항섭의 다성(多聲)적인 미술은 적절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 강정호

Vol.20180522d | 전항섭展 / JEONHANGSUB / 全項燮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