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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원展 / SHINDONGWON / 申東媛 / ceramic   2018_0524 ▶︎ 2018_0608 / 일요일 휴관

신동원_inside-scene #24_자기, 자작나무 합판, 우드스테인_189×262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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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원 홈페이지_www.dongwonshin.com

초대일시 / 2018_0524_목요일_05:00pm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에이루트아트플랫폼 AROUTE ART PLATFORM 서울 강남구 학동로3길 41(논현동 21-10번지) 1층 Tel. +82.(0)2.6958.7777 www.aroute.co.kr

도자기의 목소리를 전하는 일 ● 몇 해를 지나는 사이, 이 부지런한 작가는 퍽 많은 숙제를 남겼다. 더러, 보는 사람이 좋아하는 작품 하나만을 과할 만큼 오래도록 하는 이들도 있는데, 오랜만에 방문한 신동원의 작업실에는 서로 모양새를 달리 하는 세 개의 시리즈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벽과 선반 가득 놓여 있었던 것이다. 4년이라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질 만큼 많은 수였다. 도자기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이토록 끝없이 많을 수가 있을까. 마당의 잡풀들이 만들어내는 거친 생명력이 푸른 상감으로 가득 차 있던 2014년의 작품 이후 그녀의 작업이 어떻게 새로운 물꼬를 터갈지 궁금하던 터였는데, 작업실의 광경이 던져준 적잖은 충격은 이미 내 호기심의 크기를 넘어서고 있었다. 본인의 오랜 작업인 도자기와, 그 도자기를 가능하게 하는 흙에 대한 깊은 연구로 점철돼 있던 4년 전의 작품들은 긴 작업 여정에서 잠시 제 역할을 다하고, 작가는 이미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건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신동원_inside-scene #13_자기, 자작나무 합판, 우드스테인_85×206cm_2016
신동원_inside-scene #18_자기, 자작나무 합판, 우드스테인_102×229cm_2017
신동원_inside-scene #23_자기, 자작나무 합판, 우드스테인_83×262cm_2017

「산, 흐르다」, 두 개의 근원 ●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산, 흐르다」 연작이었다. 분명 하얗고 납작한 도자기들이 겹겹이 서로 사이좋게 모여 있는 것은 신동원 작가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그들이 모여 전하는 말은 사뭇 결이 다른 느낌이다. 텅 비어 있어 그 어떤 것이라도 담을 준비가 되어 있는, 혹은 이미 무한히 많은 이야기가 넘나들었을 도자기들이 때로는 덤벙덤벙 흩어져 있거나, 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는 이파리처럼 빼곡히 서로의 어깨를 기대면서, 먼 능선이 되었다가 어느새 가까운 언덕이 되기를 반복한다. 흙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의 근원으로 삼은 작은 풀들이 서로 모여 풍경이 되고 하나의 산수화를 이루어낸 지난 연작의 연장선에서, 이 작품들은 흙을 토대로 생겨난 또 하나의 삶이라 할 수 있는 도자기들이 분명 그들 스스로 풍경이 되어가는 모습이었다. ● 들풀 작업이 도자기 위에 직접 그림을 그려낸 것이라면, 이 새로운 풍경은 아예 캔버스처럼 하얀 사각의 도자기 화판 위에 도자기로만 그려나간 그림이다. 간혹 사용했던 문양 전사나, 최소한의 색은 물론 전작의 상감 또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비우고 비우기를 무한히 반복하고 있는 이 작품들 속에서는 신동원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그림과 도자기라는 부정할 수 없는 두 개의 근원이 마치 종교의식처럼 경견하고 성스럽게 마주하고 있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정직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어떤 특정한 반환점을 돌아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는, 분명 그 사람인데 또한 달라진 눈빛을 지닌 사람의, 묵직한 다짐과도 닮아 있다. 그것은 신동원이라는 작가의 목소리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녀가 다루는 도자기들이 스스로 제 존재의 바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오히려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본래 그들이 어떠했는지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신동원_familiar yet unfamiliar #3_자기, 자작나무 합판, 우드스테인_78×123cm_2017
신동원_낮설고도 익숙한 #5,#6_자기_58.5×38cm×2_2018

끝없이 비워지는 자리 ● 이 순백의 반환점을 돌아 펼쳐진 또 하나의 작품들 속에는 신동원 작가의 지난 작업의 여정이 조화롭게 스며 있다. 마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회고록처럼, 또는 「inside-scene」이라는 제목이 직접 말해주는 것처럼, 제각각 목소리를 내던 작품들이 한 화면 속에서 조우하며 만들어내는 내면의 풍경이다. 작가가 다루는 도자기는 애초에 무언가를 담아내기 위해 비워져 있다. 그리고 근작을 통해 그녀는 삶의 터전이 되어주는 집도, 들풀의 생명을 잉태하는 흙도 도자기와 같은 그릇이라 전해준 바 있다. 「inside-scene」 연작에서는 바로 그 비어 있는 것들, 즉 집, 의자, 그리고 예의 그 신동원의 도자기가 한 작품 속에 자리하고 있다. ● 그것은 무언가로 채워질 것을 생각하며 꽉 차게 비워 둔 자리이다. 텅 빈 집 안에는 도자기들이 홀로, 혹은 여럿이 제 자리를 잡고 들어차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어느새 하나의 생명체처럼 여러 가지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누군가를 위해 비워 둔 의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어느새 그 안에 담아낼 것들로 자리를 내어주는 일을 잊지 않는다. 잠시 어떤 의미가 되었다가, 주저없이 기표로 미끄러지면서 치환되어가는 삶의 이치를 그렇게 살뜰히 담아 놓았다. ●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작품이 「familiar yet unfamiliar」 시리즈이다. 삶이 지닌 내밀한 이야기의 구조를 보여주었던 「inside-scene」 시리즈가 조금 더 구체화되어, 단일한 장면으로 특정화된 작품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자기의 근원을 찾기 위해 흙을 헤매다 잠시 삶의 공간 너머의 풍경으로 옮겨졌던 시선이, 다시 그 흙을 통해 자연스럽게 내면의 공간으로 되돌아오면서, 작가는 그간 다양한 방식으로 전해주었던 이야기들을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여러 장면이 이어지는 내러티브로 풀어냈다. 그간의 작업들이 서로 다르게 보여주었던 모습을 하나의 장면으로 연결하면서, 작가는 그 긴 여정이 별개의 것이 아니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일들의 근원적 구조를, 서로 연결되고 넘나드는 공간의 연속성 위에서 도자기를 통해 말할 수 있는 이는 단언컨대 신동원이 유일하다.

신동원_낮설고도 익숙한 #7_자기_54×29cm_2018
신동원_낮설고도 익숙한 #9_자기_48×38cm_2018

도자기가 전하는 이야기 ● 가장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낯설고도 익숙한」 시리즈를 보면, 이제 한동안은 신동원이라는 작가가 더 이상 뭔가를 애써 만들어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조금 더 확신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어쩌면 그녀가 도자기 자체의 근원으로 시선을 옮겨간 하나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도자기를 만들기 이전부터 그것은 인간의 오랜 삶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잉여의 산물을 보관하기 위한 저장용기였던 도자기는 그 스스로 하나의 미디어(media)가 되어 그와 연계된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온 문명사적 산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낯설고도 익숙한」 시리즈에는 이제 도자기의 오랜 문화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 작가는 도자기가 무엇인지 알아가던 오랜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 역사상 가장 발달한 도자기 문명의 번성지였던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 남아 있는 도자기는 물론, 근래 많은 사람들이 애호하는 유럽의 유명 도자기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도자와 함께한 문명사는 길고도 다채롭다. 신동원은 그 복잡한 여정을 특유의 위트로 풀어낸다. 완전 환조인 도자기를 부조로 만드는 것은 기본인 데다가, 조선의 도자기를 영국 왕실 도자기인 웨지우드 스타일로 치환하거나, 고려의 청자 매병을 덴마크 왕실 도자기인 로얄 코펜하겐의 시그니처 문양으로 장식하는 등 그녀의 작품 속에서 동서양 도자기의 역사는 혼성과 치환의 변주를 즐긴다. ● 이러한 변주는 현대미술의 역사 속에서 흔히 볼 수 있긴 하지만, 그 누구의 작품이 아닌 신동원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것은 남다른 면이 있다. 무엇보다 도자기는, 아이디어와 개념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장인의 수공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변주는 동서양의 모든 도자기 제작 기법의 숙련도는 물론 도자기와 얽혀 있는 문명사 모두를 근간으로 할 때에만 가능하다. 심지어 그 이야기를 도자기로 전하는 것은 오직 신동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 오래된 혼성의 문법은 지금껏 그 어떤 작품에서도 다뤄지지 않은 새로운 언어다. 끝없이 미끄러지는 기표의 자리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면서도 화수분처럼 샘솟는 도자기의 끝없는 이야기는 이제 시작되었다.

신동원_낮설고도 익숙한 #13_자기_54×34cm_2018
신동원_낮설고도 익숙한 #14_자기_53×38.5cm_2018

어쩌면 신동원의 작품은 도자기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가 제 목소리를 펼치는 무대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녀의 근작들 모두는 작가가 의도하고 표현해낸 의미가 아니라 도자기가 제 스스로 내는 목소리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다만 그녀와 오래도록 깊은 관계에 있던 도자기들이 전하는 소리를 가장 세밀하게 듣고 기록하는 일을 장인처럼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그녀는 20여 년 간의 여정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덤덤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그 길은 그녀 혼자만의 길이 아니다. 그 길 위에서 펼쳐질 도자기들의 새로운 목소리가 궁금해지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갈증은 아닐 것이다. ● 문학이 뭔가를 표현하려는 적극적인 능동성의 결과가 아니라 말하려는 것들이 이끌어내는 끝없는 수동성 결과라 했던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처럼, 신동원이 도자기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것은 도자기와 그림이 스스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들을, 그 타인의 목소리를 가장 솔직하게 수동적으로 건져 올려주는 일이다. 그녀는 작가이자 매개자이다. 도자기로 자신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전하는 일, 도자기라는 텅 빈 미디어(media)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전하는 또 하나의 미디어가 되는 일,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신동원의 도자기 작품이다. ■ 황록주

Vol.20180524b | 신동원展 / SHINDONGWON / 申東媛 / ceram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