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풍경

임규보展 / LIMGYUBO / 林奎甫 / painting   2018_0524 ▶︎ 2018_0530

임규보_Mountain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이공갤러리 IGONG GALLERY 대전시 중구 대흥로139번길 36(대흥동 183-4번지) Tel. +82.(0)42.242.2020 igongart.co.kr

감추는 것이 보여져야만 한다. 내가 당신에게 뭔가 감추는 중이라는 걸 좀 아세요, 이것이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하는 능동적인 패러독스이다. - 나는 손가락으로 내 가면을 가리키면서 앞으로 나아간다.(롤랑바르트-사랑의 단상 중에서) ● 나는 시력이 나쁘고 색각이상 - 색약 - 이 있다. 그래서 내가 바라보는 대상들은 형태가 불분명하거나 희미하고 여러 색들이 조합되어 있는 경우 색의 구분이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색각이상이 있는 시각예술가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아마도 색채가 갖는 고유한 특성을 작가는 일단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관점에서 파악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상에 대한 인지는 사람에 따라 차이를 갖기 마련일 것이다. 정상적인 시력을 가진 사람들도 같은 대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각하는 경우를 종종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다름에 대해 받아들이기를 인정하지 않거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지각방식을 요구할 수 있는가. 정확한 지각이란 것이 가능한 일인가.

임규보_Mountain(Green)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30.3×387.8cm_2017
임규보_Mountain(Pink)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17
임규보_Mountain(Violet, Pink)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8

그러나 이 질문은 미술에 있어 전혀 새로운 질문은 아니다. 19세기 인상주의자들, 20세기 미니멀리즘 작가들도 이같은 질문을 제시한 바 있다. 그들은 각자 그 시대에 부합하는 방법을 구현했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다른 지각방식이 요구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색각이상이라는 증상은 흔히 결여나 결핍의 상태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상태를 오히려 세상을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의 지점으로 여긴다. ● 주변에 '늘' 존재하는 풍경은 나에게 '있는 그대로'의 재현을 벗어나 색과 질감으로 무한히 변주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이미지로 다가왔다. 정상 시각과 다르게 지각한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유도하기 위해 풍경을 두, 세가지 색으로 혼합하거나 더 많은 색들의 점과 선들을 중첩시켜 캔버스로 옮겼다.

임규보_Mountain(Green)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7
임규보_Mountain(Ivory)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17
임규보_Mountain(Green)2_캔버스에 유채_97×324.4cm_2018

전체적인 이미지는 색의 변주에 의해 변형되거나 혹은 부분적으로만 드러나게 했다. 각기 다른 붓 터치의 방향은 관객이 바라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색과 이미지로 드러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관객들에게도 다양한 지각방식으로 인지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 보았다. 하지만 내가 숨겨놓은 이미지 그 자체로 지각되는 것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질감은 바라보는 각도마다 이미지를 다르게 지각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며, 동시에 반복적이고 중첩된 붓터치는 이미지를 드러내면서 또한 동시에 숨기는 장치로 작용한다. 내가 무언가 숨긴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손가락으로 가면을 가리키는 모순처럼 내가 지각한 방식을 관객들도 체험하기를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이미지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정확한 지각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제시하고 있다.

임규보_Mountain(Red, Green)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8
임규보_Forest_캔버스에 유채_70×162.2cm_2017
임규보_Mountain and Blue Sky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16

하나의 이미지가 다양한 이미지로 보이게 하는 작업은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제작된다. 가는 붓으로 캔버스를 빼곡히 채워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나를 채워가는 느낌이었다. 색을 다르게 본다는 사실은 괴롭지는 않으나 분명히 고단한 일이긴 하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정확히 보기 위해서는 색을 면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를 화폭에 옮기는 과정에서 나는 또다시 내 눈을 의심하고 색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해야만 했다. 색과 면을 구별하기 위해 애를 썼고 그 결과 한 획의 붓터치는 색이자 동시에 면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연스럽게 회화에서의 색과 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나의 그림은 이러한 고민을 일정부분 보완해주고 충족시키는 장소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대체 정확한 지각이란 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눈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 임규보

Vol.20180524d | 임규보展 / LIMGYUBO / 林奎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