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메시지

배정은_송정임_이주희_정수미_채선미_하소영展   2018_0604 ▶︎ 2018_0614 / 수요일 휴관

배정은_Warming2_혼합재료_53×43cm_2018

초대일시 / 2018_0604_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수요일 휴관

뮤온 예술공간 Art-space MUON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418 (문래동3가 54-41번지) 203호 artmuon.blog.me

만약 영화 「1987년」의 학부생 여주인공 연희의 전공이 회화였다면,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2018년의 현재 그녀는 어디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 "어느날, 메시지"는 문래동 갤러리 뮤온에서 열리며, 홍익대 출신의 6인의 작가들이 출품했다. 이 전시는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일종의 상태 메시지로 기획되었다. 그 메시지는 그 자신 무엇을 쓰려 했는지 반드시 쓰여지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그런 메시지이고, 시작되고 나서야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 깨닫게 되는 절친들과의 다정한 대화이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 이 전시에서는 현재 회화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들에 대해 볼 수 있다. 정수미의 점철(點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점들이 선을 이룬다. 5월 『도로시 살롱』의 개인전에서 보였듯 점으로 이뤄진 매트릭스(母體)이며 그 사이로 언뜻언뜻 화사한 색의 기미가 보인다. ● 이전 작업에서 그는 옥구슬로 이뤄진 베일의 틈 사이로 숨결같은 미세한 바람이 불도록 했다. 하소영의 흐르는 타오르는 듯한 레이스 사이로는 여인의 신체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관록있는 작가인 배정은은 이번에 펭귄 드로잉을 내놓았다. 작가의 말로는 펭귄들이 열을 짓고 교대해가며 꿋꿋이 혹독한 남극의 추위를 견디는 방식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오랜 기간의 영국 생활로부터 2015년 시인 키츠의 집이나 맑스의 무덤 같은 런던 곳곳의 명소를 찾아다니며 세밀화로 글과 함께 그려냈던 『블루 플라크, 스물 세 번의 노크』 책을 출판한 적도 있는 송정임은 이번에는 「해적선」과 해적선이 찾아낸 보물 「금, 은, 동」과 상관된 연작을 선보인다.

송정임_해적선_캔버스에 유채_53×72.5cm_2018
이주희_4월.3분의2_혼합재료_53×33.5cm_2018

그런데 그 "해적선"은 마치 동요에 나오는 나뭇잎 배 같다. "엄마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는, 푸른달과 흰구름과 함께 떠가는" 약한 종이배, 스며든 물에 젖어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는 그 섬약함이 사랑스러운 종이배인 것이다. 송정임은 블루 플라크와 같은 기념비뿐 아니라 물웅덩이 위에 잠시 떠있는 비누방울 같은 그렇게 금방 사라지는 덧없는 순간들을 세밀화적 필치로 포착해왔다. ● 채선미는 이번 전시에서는 화면보정 테스트 같은 색면띠 시리즈를 보인다. 뭔가 시야에 포착되기 앞서 주의깊은 예민한 시각 상태를 기록하는 듯한 채 작가의 순수주의가 돋보인다. 순정한 것만을 보내고자 하는 결기를 보는 듯하다. 예전에 위안부 할머니 한 분을 이경신 작가와 함께 돌아가실 때까지 돌보았고 현재는 혜화주민을 위해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주희는 잔잔한 잎 그림자 내지 바람의 물결, 파문의 잔영과 같은 반추상 반구상적인 작업을 선보인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마음의 형상이다.

정수미_점철(點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9×27cm_2018
채선미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16.8cm_2018

무의식은 시간을 모른다고 한다. 첫 만남 이후 30년이란 거대한 시간이 이들 사이에 있고 우리들 일부는 한동안 만나지 못했고 다른 시공간을 살아왔다. 물리적인 간극은 언제나 마음의 간극이기도 한 것이어서, 영어불어라면 진행형이라거나 완료형인, "방금-과거"라 말해지는 막 지나간 순간과 반과거 혹은 사랑의 시제라는, 아직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결국 그래왔음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언제나-이미"와 "아직-아닌"의 시간을 내포한 전미래나 미래완료형일 수도 있고, 아득한 먼 과거조차 엊그제와 그저 같을 수도 있다. 펭귄들이 추위를 견디며 서 있는 거대한 묵언의 빙산처럼. 철학자들은 시간은 일방향성으로 흐르지 않고, 미래를 먼저 사는 것이며, 결과의 결과가 원인일 수 있다는, 그래서 이제는 과거로의 피드백이 문제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우리는 메시지를 기대하며, 받지 못한 사랑의 말들을 미지의 장소에 보내곤 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받아드는 순간 흐트러져 버려서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된 편지처럼 그렇게 사건들은 항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며, 항시 놓치게 되는 무엇이다.

하소영_레드 레이스(Red la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cm_2018

그래서 시간 체험의 본질은 언제나 또한 회한의, 뭔가 "너무 늦음"의 느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의 내가 과거의 결과가 아니라 예전의 내가 되려 현재의 결과일지도 모르는 터이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항상 같이 있던 이들이 어느 순간 이렇게 변해버렸나 하고 매번 놀란다. 삶에서 시간의식이 발생하는 순간, 시간을 깊게 체감하는 순간은 대개 의도치 않게 같은 공간을 반복해 통과하는 순간이다. 예전과 거의 같은 상황인데 뭔가가 변해 있다. 정확하게 같은 말이 반복될 경우라도 맥락이 변했기에 의미는 같지 않듯이, 혹은 A와 B 사이의 차이보다도 아무리 봐도 다를 것이 없이 같아만 보이는, 그러나 시간 속에서 그 한결같음 자체가 뭔가가 예전과는 달랐기에 가능한, 이전의 A와 이후의 A 사이의 차이가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서짐 혹은 단절을 체감하며, 그래서 같은 몸짓의 반복에 의해, 처음에 다름 아닌 두 번째 반복을 다시 시작하며, 차이에 의해 공명한다. ● 문학소녀나 다름없던 학부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삶에서 장소에서 흩어져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그러나 각자의 다른 경험에 의해 그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 하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러한 다름이 이들을 공명하게 한다. 그 공명의 잔향 시간의 잔향과 더불어 그림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부서진 시간의 간극을 극복하는, 오래 가는 신선한 시간의 잔향과 더불어 누리고자 한다. ■ 최정은

Vol.20180604d | 어느 날, 메시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