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경계(Invisible border)

카입(이우준)展 / KAYIP / video.installation   2018_0501 ▶︎ 2018_1007 / 월요일 휴관

카입(이우준)_흐름_1채널 비디오_00:05:00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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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향촌문화관 HYANGCHO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중앙대로 449(향촌동 9-1번지) 1층 기획전시실 Tel. +82.(0)53.661.2331 hyangchon.jung.daegu.kr

7만년전 구문론적 언어의 획득으로 인해 인간은 단순한 사실을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보이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얘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신화, 종교, 법, 주식회사 등 추상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가상의 것을 땅, 태양, 강과 마찬 가지로 물리적 실체를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고, 오늘날 우리는 이 두 세계, 가상과 실재가 경계없이 혼재하는 세계를 살고 있다. 화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화폐의 기원 자체도 어떤 특정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기로 동의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에 가치를 부여하기로 합의가 되는 순간, 전에는 인식할 수 없었던 사물의 가치가 실재 화되어 나타난다. 이런 화폐의 가상적 속성을 고려할 때 최근 등장한 가상화폐, 암호화폐의 등장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의 연장 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전 세계 화폐의 90프로가 인쇄된 지폐가 아닌 계좌의 정보의 형태, 즉 가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최근의 현상이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는 향촌문화관의 장소적 맥락, 화폐를 보관하는 금고라는 공간의 역사성을 물리적 실체가 없는 가상의 사물로 채워진 공간이라는 맥락으로 접근하여 무언가를 인식한다는 것, 인식의 프레임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는 가에 대한 질문(가상과 실재의 경계)을 하고자 한다.

카입(이우준)+OAA_마르지 않는 샘-의식의 근원_혼합재료_130×70×60cm_2018

1층 금고안에 무한 거울과 스피커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구조물을 설치. 무한 거울을 통해서 실재하지 않는 공간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안에 같이 설치된 스피커유닛을 통해 재생된 소리로 무한의 공간이 구조물내에 실재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2층 금고안 가운데에 관람객 한명이 들어가서 앉아있을 수 있는 의자 또는 방석이 놓여있고 많은 수의 스피커 유닛(LED가 부착된)들이 관람객을 둘러싸도록 설치가 되어 마치 정원의 식물들에 둘러싸인 듯 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스피커유닛에서는 여러 소리들이 발생시키고 그 소리에 따라 스피커유닛에 부착된 LED 조명은 빛을 내어 공간을 가상의 것(빛과 소리)로 채운다. 관람객의 앞과 뒤에는 거울이 설치되어 관람객은 자신의 상이 거울에 무한이 반복되는 것을 공간을 채운 소리와 빛과 함께 지켜보게 된다. 전시장 입구의 천장에는 다수의 풍경_windchime이 설치되고, 2층 금고안에 관람객의 존재가 감지되면 작동하는 송풍기에 의해 흔들리며 소리를 발생시킨다. 풍경의 바람받이는 1층,2층 금고의 거울프레임과 동일한 형태로, 인식의 프레임을 상징하고 2층의 관람객에 의해 발생한 바람에 의해 흔들리며 소리를 낸다. ■ 향촌문화관

카입(이우준)_정견正見-소리의 정원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8

보이지 않는 경계 Invisible border ●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결과물은 미술로 바라보는 게 온당하다. 그런데 오랜 시간동안 은행의 금고로 사용되어왔던 빈 공간을 작가 카입은 단지 미술만이 아닌 총체적인 예술로 해석하고 있다. 이 작업은 빛과 소리와 그 밖에 몇몇 장치로 이루어져 있다. 이걸 우리는 미디어아트라고 부르는 건 쉽지만, 정작 이 작가를 미디어아티스트라고만 한정짓기에는 '글쎄'다. 내가 그에게 물어본다는 걸 깜빡 잊었는데, 본인이 현대 미술가라는 호칭을 좋아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카입은 현대음악 작곡가 내지 콤포우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영국에서 여러 굵직한 음악행사의 가운데에 서 있었고, 한국에서 유명한 뮤지션들의 작업에 참여하고 있고, 지금까지 네 장의 디스코그래피를 남긴 음악인이다. ● 향촌문화관에서 벌어지는 평범하지 않은 이 전시를 그가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서둘러 꺼내자면, 이 세계와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을 예술로 드러내는 작가가 대구 북성로와 향촌동, 그리고 상업은행 건물에 깃든 기억을 되새겨 펼쳐내야 한다니. 이건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한정식을 주문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주문자가 다름 아닌 큐레이터 정종구 선생이며, 그는 본인이 만들어내는 전시마다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즐겨 써 왔다는 점이 개런티 카드가 된다. 이 글을 쓰는 나보다 카입에 관한 학예연구를 치밀히 한 정 선생으로서는 분명히 작가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 기획을 가늠하자면 시간과 공간적 지시가 불분명한 작품 속 배경에 관람객들 각자가 가진 기억을 담아내길 원하는 의도가 있었을까 싶다. 날이 뭉툭한 추론인 건 나도 알지만 아무튼 작가는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최선의 방식을 자기 작품에 담아냈다. 형태나 성격이 조금씩 다른 작품들은 예컨대 하나가 다른 하나의 간접 조명이 되거나, 배경 음향이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전체가 하나의 콘셉트로 암시되는 연결 구조로 묶였다. ● 작가가 이번 개인전을 통해 착상한 콘셉트는 화폐로부터 출발했다. 상품의 가치를 매기고 그것과 바꾸는 용도로 쓰는 돈은 그 총액 가운데 지폐나 동전 같은 실물로 존재하는 게 1/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90퍼센트의 돈은 은행 계좌 속에 찍힌 정보로만 존재한다. 예전 은행 금고인 이곳에, 돈이 쓸려나가고 빈 이곳에 채워진 작품은 애당초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표현하는 작가의 작업 주제와 맞아 떨어진다. 작가 카입이 펼치는 조형성은 애당초 음악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실재의 공간이나 대상이 존재하지 않음이 당연할 수도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미술가이기 이전에 음악가인 그는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음악과 회화의 구성 요소가 가지는 인지적인 상동성을 제시한 것처럼, 한 장소 안에서 공감각적인 형식의 예술을 시도하고 있다. 그 방법이 참 독창적이다. 거꾸로 음악 제도권에서 보더라도 음악과 시각 예술 작업을 병행하는 그의 활동이 흔한 일은 아니다. ● 순수음악과 팝음악의 경계는 그 위계나 장르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발언 자체가 이미 철지난 담론이 된 지금, 카입의 음악이 가지는 다양한 스펙트럼은 미술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는 듯하다. 내 생각으로 영국 대중음악계에는 세 명의 천재형 뮤지션이 있는데,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 마이크 올드필드(Mike Oldfield),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그들이다. 카입이 창작한 사운드에는 이들 음악의 특징이 새겨져 있으며, 어찌된 일인지 내 귀에는 가장 영향력이 옅어 보이는 브라이언 이노와 작업을 같이 한 뮤지션이 그라는 사실이 그 음악가를 아는 독자가 있다면 전시 이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낭만성에 이어 서정성까지 사라진 동시대 음악 체계에 순수음악의 요소를 자극받아 공진화(co-evolution)한 대중음악의 전위적인 측면이 그의 음악에도 반영되었다면, 그 진화의 패턴은 끝내 우리가 눈으로까지 확인할 수 있는 황량한 흔적으로 드러난다

카입(이우준)_바람이 전해주는 이야기 #2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8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되는 곳은 감옥처럼 창살이 쳐져있는 금고다. 정면에 달린 모니터 액정에는 사진인지 그림인지 모를 한 폭의 풍경이 제시되다가 그 이미지가 서서히 뭉개지면서 결국에는 무수한 선들의 흐름(stream)으로 변한다. 관객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작가의 조형 형태론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된다. 화면 앞에 놓인 「마르지 않는 샘 - 의식의 근원」은 거울에 반사되어 스피커가 여러 개 겹친 듯처럼 보이는 구조 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테두리를 감싼 선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색,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며 볼거리를 연출한다. 그가 건축 스튜디오 OAA의 정규동과 협업을 해오면서 발전시켜온 이 디지털 우물은 별다른 정보 없이 공간에 들어선 관객들에게 비밀스러운 관문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리는 표식 역할을 한다. 존재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를 응축해놓은 탓에 조금은 두려울 수도 있는 공간 속으로 경계심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 말이다. 천장에는 바람에 실려 소리를 자아내는 여러 개의 풍경(windchime)들이 매달려 있다. 사람이 들어설 때 감지기에 의해 저절로 작동되는 송풍기가 바람을 일으키면 실내에는 종소리가 퍼진다. 긴 원통형의 종들이 부딪히며 소리를 내고, 여기에 따라붙은 글귀가 우리 의식을 스스로 더 깊이 파들어가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아날로그 형식으로 설치되고 발산되는 그 외형과 소리는 공간 속에서 기억의 바람의 형태로 바뀌어 일종의 명상 음악을 만드는 과정일 수도 있다. ● 계단을 올라 2층에 가면 오른쪽에 아래층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금고가 남아있다. 여기에 펼쳐진 작품 「정견正見 - 소리의 정원」은 거울로 만들어진 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연꽃이란 걸 알아차리게 되는 곡절은 위를 향해 바닥에 펼쳐져 있으며, 중간에 사람이 가부좌를 틀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어서다. 다분히 불교의 색채가 드러나는 이 인스톨레이션을 가만히 보면 연꽃들이 모두 스피커 장치이며, 여기서 시간차를 두고 퍼져 나오는 작가의 음악이 혼돈 속의 질서를 만든다. 중간 자리의 앞과 뒤에는 바로 밑 1층에 우물을 닮은 조형물과 똑같이 생긴 거울이 각각 달려있다. 우리는 누구나 경험 해봤을 법한 무한 반복되어 확장된 상을 여기에서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일상처럼 편안히 앉을 수 있는 곳이 못 된다. 작가가 의도했는지 안했는지 모르지만. 확실히 이 공간은 우리가 편안하게 앉아서 음악을 감상하는 살롱 내지 홀의 방식을 벗어난다. 우리가 예술을 소비하게끔 갖추어진 세계가 그의 인스톨레이션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 세 개의 면에서 펼쳐지는 영상은 이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Invisible border」가 그것인데, 성의 없이 감성 충만하기만 한 세속적 표현을 쓰자면 '광활한 대지에 펼쳐지는 한 편의 서사시' 쯤 될까. 하지만 여기엔 그 어떤 감동이나 감정 이입의 동기도 없다. 여기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이나 역사의 발전원리가 끼어들 곳이 없다. 딱히 우주공포증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영상이 전달하는 감정은 미적 쾌快와는 분명한 거리를 둔다. 뭐 이게 역설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줄 여지가 있긴 하다. 이 작품에서 비롯되는 쓸쓸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관객이 과연 몇이나 될까. 황량한 공간의 중간에 내 던져진, 마틴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면 기투(Entwurf/ 企投)된 존재로서 우리가 철저한 소외를 느낀다면, 이 작품이야말로 지금 내 옆에 있는 그녀, 연락만 하면 닿을 수 있는 친구들처럼 소중한 관계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화면 속에 나타나서 유영하듯 떠도는 입체 조형물은 내가 방금 이야기한 감정의 요동, 즉 무심한 반인주의에 대한 반발 작용으로서 사랑의 복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장치다. 어차피 원본이 있을 수 없는 이 경관 앞에서 글자로 대리 표현되는 내 생각은 무슨 진리를 품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이 도형들만큼 공허함 속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게 아닐까? ● 결론이 아닌 사족으로서, 나는 이 전시에서 카입이 보여준 출품작과 배치가 하나의 완결성을 가졌다고 본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전시장과는 독립된 공간에서 전시를 모두 감상한 관객들이 작가가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담은 영상 자료를 볼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만약 그 메이킹 필름이 존재한다면 여기에는 컴퓨터와 건반 앞에 앉아서 생각에 빠진 작곡자의 클리셰가 들어있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다른 전시에서 작가가 고려할 만하다. 앞으로의 전망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이 예술가에 관한 여러 비평가들의 텍스트가 축적되는 미래다. 카입의 작업이야말로 평론계에도 숱하게 있는 지적 허세의 수준에서는 비벼댈 대상이 아닌 점은 분명하다. 미술과 음악과 영화가 교차되는 지점 속에서 각각의 크리틱 사이에 생길지도 모르는 잡음이 여기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조금씩 바꿔가는 과정은 흥미로울 것이다. ■ 윤규홍

카입(이우준)_보이지 않는 경계_오디오 비디오 설치_00:06:00, 가변크기_2018

인간의 의식은 수백만 년에 걸친 삶과 죽음의 투쟁을 통해 진화하였고,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의식에 의해 조정된 현실 세계의 한 모형이다. 이렇게 구축된 세계는 가상과 실재가 혼재되어 있는 곳으로, 가상화폐의 등장과 같이 가상과 실재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는 최근 일련의 경향은 어쩌면 필연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식의 프레임은 우리에게 인간의 조건, 인간다움에 대해 말해준다. 진화적 사건이 쌓여 만들어진 장엄하지만 허약한 성취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게 될까?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이 작품을 통하여 태고의 풍경 속, 보이지 않는 경계에 서서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 카입(이우준)

Vol.20180607d | 카입(이우준)展 / KAYIP / video.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