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삼키는 뱀 Teeth on Tail

배헤윰展 / Hejum Bä / painting   2018_0607 ▶︎ 2018_0707 / 일,월요일 휴관

배헤윰_Slowly Ding Do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5×162.2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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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607_목요일_05:00pm

2018 OCI YOUNG CREATIVES展

작가와의 대화 / 2018_0630_토요일_02: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요일_10:00am~09:00pm / 일,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수송동 46-15번지) Tel. +82.(0)2.734.0440 www.ocimuseum.org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런데 가만, 생각에도 몸통과 꼬리가 있던가? ● 배헤윰은 회화로 사유한다. 회화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거나 '~로써'와 같은 수단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추상적인 사고의 과정을 시각화하여 화폭에 담아내기도 하지만, 그가 그리는 그림은 저마다 하나, 둘, 꼬리를 물고 이어져 진화하고 발전하며 또 다른 사유를 촉발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자체로 '생각하기'의 한 양식이다. ● 형태가 없는 생각에 몸을 주고 색을 입히고자 작가가 이번 전시에 빌어온 소재는 흔히 볼 수 있는 색종이다. 납작하고 얇은 종이를 찢어도 보고, 무대도 세운다. 평면으로 입체를 조형하는 과정을 작가는 다시 한번 머릿속에서 그려내고 조립하여, 자신의 상상을 캔버스 위로 옮겨낸다. 생각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그림에 담았을 뿐, 실제로 그런 종이의 구조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우리에게는 무한한 생각의 가지가 뻗어 나갈 수 있는데. 이런 그의 작업은 생각의 전개와 동시에 회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광고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인스턴트 이미지가 앞서고, 생각하기에 점점 게을러지는 이 시대에도 회화가 사고를 구축할 수 있을까, 관념을 구현하고 형상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나름의 제안이다. 진지한 고민인데, 알록달록한 색면에 눈이 먼저 즐겁다. 이건 어떤 구조일까 하고 들여다보다가 붓 터치와 색감에 빠져들고, 어떻게 그렸나 하고 보다가 생각의 줄기가 엉뚱한 곳으로 흐른다. 평면회화가 지닌 물성과 사유의 추상성 사이를 뱅그르르 휘감아 돌며, '꼬리를 삼키는 뱀'은 다시금 우리에게 회화가 주는 즐거움을 탐험하게 한다. ■ 김소라

배헤윰_Pitaya Are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93.9cm_2018

운동하는 평면, 사유의 세부 ● 회화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회화로서의 배헤윰 작가의 그림은 망설이게 한다. 망설임을 긍정하게 한다. 그녀가 그림에서 발견한 것은 그 동안의 회화의 역사가 힘주어 말하려 하던 것들을 귀 기울이게 하면서도 회화로서 불가능한 정황에 대한 사유를 솟아나게 한다. 세상의 사물을 순수의 상태로 고양시키는 그녀의 형태는 의식의 빛을 삼투시키며 회화의 존재를 자기의식적인 생명의 평면으로 전환한다. 이렇게 아무런 현실성을 부여하지 않은 회화가 화가와 일체가 됨으로써, 오히려 물성의 요소를 통해 비현실의 의식의 현실성을 획득하고 있음을 관조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순수한 사유의 내면성과 그 스스로의 본질을 대상화하는 행위 사이에서 망설이게 된다.

배헤윰_Piloti upon the Stream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81.8cm_2018

이번 전시에서 배헤윰 작가는 색종이라는 사물에 대한 관심을 회화로 표현한다. 어쩌면 회화에 대한 관념을 색종이와의 경험에 빗대어 재구성한 것일지 모른다. 그녀는 말한다. "색종이는 빛이라는 변화의 물질을 규격화하고 정량화한 사물의 상태"라고. 인간의 몸(손)이라는 우회를 거치면서 색종이 자체의 빛은 생명력을 발휘한다. 접히고 접히는 다양한 관계항 속에서 색종이 색채의 단일한 물질감은 정신의 충만함으로 수렴되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손은 색종이와의 불확정적인 (때로는 의도적인) 만남을 통해 생각의 방향을 만들어간다. 이때 같은 색의 면들은 동일성의 리듬을 가짐과 동시에 그 틈에서 꿈틀거리는 차이의 변형을 이루며 특유의 조형성을 구축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간혹 찢어지는 과정에서 관찰되는, 색면의 묵직함에 가려져 있던 하얀 흔적들은 그런 반복과 복사의 힘이 가질 권위를 해체하며 색면 조합의 존재론적인 균형을 전체적으로 안배하기도 한다. 이렇게 색종이라는 물질은 의식 능력 바깥의 주변적 가치의 범주에도 유인력을 행사한다. ● 마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뱀 '우로보로스(ουροβóρος)'처럼, 색종이를 통한 몸의 기억과 의식의 흐름은 동일성의 외피를 피해 경계를 허물어 순수의 상태로 회귀한다. 그 결과로서의 추상은 그림 속 형상들의 건축적 점유성을 무화시키면서 낯선 세계를, 즉 미로의 방황 상태인 것 같은 일상의 동일성을 나열한다. 그런데 배헤윰의 그림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는 유사한 물체의 모습은 단순한 근친(近親)의 배치가 아니며 야만적인 데칼코마니는 더더욱 아니다. 삶의 외관은 단순화되어 동일한 색면의 간명함으로 파악되고, 복잡한 물질의 조건들과 시간은 색면 안료의 미세한 차이와 중첩의 레이어(layer)를 거쳐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 이 순수 추상적 인식의 계기는 색면이라는 평면이 지니는 어떤 전망의 아득함에 갇히지 않고 매 순간 모종의 사유의 의지를 촉발하게 하는 면의 운동으로 순환한다.

배헤윰_Butterfly Foldou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2cm_2018

그런 점에서 배헤윰 작가의 추상은 화가 자신의 기억을 남겨두면서도 그것을 뛰어넘을 미적 성취의 도구로서 기능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실의 조건을 무(無)로 돌리지 않으면서도 그로 인한 자신의 오랜 사유의 세부(細部)를 관객의 시적 직관을 통해 간파될 수 있을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러므로 경험적으로 그 예술적 효과는 환원되면서도, 형이상학적인 고양의 감정과 혼융된다. 사물과 몸, 그리고 그 사이에서의 의식의 공존을 포착하게 하는 이러한 그녀의 추상은 그 외견에서 만들어 내는 가시적인 안료의 그늘보다 더욱 큰 그늘을 만든다. 화가 자신이 세상을 대하는 풍격은 그렇게 하여 오히려 미적 생태의 구체성을 사유할 상상력을 보증하는 독창적인 추상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 임산

Vol.20180608f | 배헤윰展 / Hejum B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