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logue

강석호_노충현_서동욱展   2018_0615 ▶︎ 2018_0729 / 월요일 휴관

강석호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43×45cm_2018

초대일시 / 2018_0615_금요일_06:00pm

기획 / 이은주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예술공간 수애뇨339 SUEÑO 339 서울 종로구 평창길 339 Tel. +82.(0)2.379.2970 sueno339.com

Dialogue그림에 관한 대화 사실 이 전시의 단초는 십여 년 전에 시작되었다. 당시 박사논문을 쓰려는 일념으로 연남동 주택가에 작은 주거 겸 작업실을 마련했던 나는 같은 동네에 작업실을 쓰고 있었던 강석호 작가의 전화를 받았다. 회화에 대해서 책을 읽는 모임을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맛 집 탐방을 즐기는 그의 취향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나는 글 읽기 자체 보다는 동네 친구를 얻는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모임의 자리에는 강석호, 노충현 외 몇몇 미술계 동료들이 함께 있었고, 이 모임은 애초의 내 생각보다 진지하게 그리고 꽤 오래 지속되어 현재까지도 간헐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림을 중심으로 모인 이 자리에서는 그림 이야기 외에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많은 대화들이 오갔다. 그림 그리는 일, 전시를 기획하는 일, 글을 쓰는 일 외에도 그러한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가 오갔고, 결국 계획으로 그친 여행 이야기에서부터 요즘 읽은 책이나 영화, 정치현실, 돈에 대한 걱정에서 새로 발견한 음식점과 어제 보았던 전시 이야기까지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대화들은 어쩌면 우리를 애초에 묶어주었던 그림 자체보다 더 모임을 지속시키는 힘이 되었고, 역으로 돌아와 내가 이 작가들의 작업을 이해하는 보다 넓은 터전을 만들어주었다. 결국 그림을 그리는 일도, 전시를 기획하는 일도, 공부를 하는 일도 사람의 일인 것이다. ● 힘겹게 능력에 부치는 논문을 쓰면서, 스스로 공부기계가 되고 있음에 회의를 느낄 때가 많았다.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그림을 보고 싶어 가끔씩 들쳐보았던 전시 도록이나 미술 잡지들은 어쩐지 예술을 통해 삶을 사는 것과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전문가의 영역은 이처럼 빈틈없는 논리 체계와 범접할 수 없는 세련됨에 의해서만 획득되는 것일까? 미술의 언어가 이미지의 생동감과 가까워지고, 그림 자체의 호흡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저 삶을 이야기하는 우리들의 대화나 머리를 씻어주는 시원한 바람 한 점과도 닮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은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론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실로 오랜만에 미술계의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이 전시가 그림에 대한 결과론적 해석이 아니라, 그림에 관한 대화에 가까운 장면으로 읽혀졌으면 한다. 그 대화에는 늘 고심할 수밖에 없기에 작가들 바로 옆에서 작품과 딱 붙어있는, 아주 거대하면서도 그들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그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림을 분석 대상으로 삼기보다, 작가들이 그림에 대해 생각하며 읽은 책들이나 직접 쓴 글에서 발췌한 문장들을 그림과 함께 배치해봄으로써 그림을 형성하는 주변 세계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은 이런 생각에서였다. 분명한 것은 강석호, 노충현, 서동욱, 이 세 작가 모두 현실과 그림 사이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전시가 관람자들로 하여금 세 작가들이 각기 다른 시선을 통해 만들어놓은, 현실과 그림 사이의 아름다운 세계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작은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강석호_Untitled_노란색(회색)벽에 그림_330×438cm_2018

대화의 후기 ● 이 전시에 참여한 강석호, 노충현, 서동욱은 동시대적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는 비슷한 세대에 속하며, 디지털 카메라가 일상화된 2000년대 이후 한국의 회화를 거론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들이다. 이 세 작가들이 사진으로 찍은 일상 속의 인물과 풍경은 각기 다른 시선을 통과하면서 서로 다른 세계의 위상을 얻는다. ● 강석호는 대상 본래의 특성보다 그림 자체의 미적 균형을 추출하기 위해 현실의 장면을 프레이밍하는데, 이 과정에서 인물조차도 육체적 무게에서 벗어나 담담한 풍경에 가까워진다. 그의 풍경은 현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면서도 꽉 짜여진 현실의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하게 미적인 세계, 그의 감각적 붓질로 구축한 그림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2017년부터 커플의 눈부분을 확대해서 서로 다른 피부결이나 눈 색깔과 같은 이질적 요소들을 하나의 화면 안에 조화시키는 작업을 해왔는데, 최근에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본 이미지를 그리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가시적 현실에서 한 단계 더 떠나서 이미지 자체에 가까운 회화적 장면을 구현하려는 것이라 생각되는데, 지금도 그는 이 힘든 작업을 위해 고분분투 중이다.

노충현_속삭임 A whisper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8
노충현_다리아래 Under a Bridge_캔버스에 유채_61×73cm_2018

노충현의 경우는 현실의 풍경이 갖는 분위기 자체에서 그림의 방향이 결정된다. 현실세계에 대한 그의 관심에 의해, 그의 그림 속에는 서울이 갖고 있는 몰개성하고 낮게 가라앉은, 사람을 소외시키곤 하는 생경한 풍경의 로컬리티가 드러난다. 그가 풍경을 다루는 태도에는 현실 그대로를 미화하지 않고 바라보려는 까칠하게 객관적인 시선과 함께, 그 생경한 풍경 속에서도 살아있는 무엇인가를 포착하려는 애정이 들어있다. 이것이 노충현의 작업이 담아내는 무미건조한 서울의 모습이 차갑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그 서울의 온도 그대로로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는 최근 작업실 근처의 홍제천 주변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콘크리트 다리 아래 속삭이는 연인들이 있는 그 풍경은 멋없는 근대화의 자취이면서도 살아있는 현실인, 내가 느끼는 서울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서동욱_옛날영화 Old movie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7
서동욱_녹색 터널 Green Tunnel _97×130cm_2017

서동욱은 현실의 세계를 잠재적 서사의 일부로서 바라본다. 그는 최근 단일한 회화평면 안의 회화적 요소들을 통해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미장센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그림은 그가 수차례 읽고 또 읽은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소설 『8월의 일요일들』이나 연극무대를 연상시키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와도 같이 평범한 일상 속에 미지의 사건이 잠재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이러한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 안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만의 고립된 세계 속에서 상상에 빠져있거나 어떤 사건의 시작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현실을 살면서도 방랑자처럼 보이는 그 인물들은 생활인의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작업실에서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들으면서, 그림이라는 몽상의 세계로 향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 이은주

Vol.20180615g | Dialogu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