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물성과 꽉 찬 추상

이건희展 / LEEGUNHEE / 李建羲 / painting   2018_0619 ▶ 2018_0701 / 월요일 휴관

이건희_Talking paper_수제한지에 혼합재료_90×90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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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620_수요일_06:3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30 (통의동 6번지) 이룸빌딩 2층 Tel. +82.(0)2.730.7707 palaisdeseoul.com blog.naver.com/palaisdes

이건희는 작업을 종이에서 시작하고 종이에서 끝낸다. 종이 위에 뭘 그린다기보다는 종이로 뭔가를 그리고 종이로 형상이나 형태를 만든다. 그래서 종이는 우리가 알던 그 종이가 아니라 뭔가 다른,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그런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작업을 한다. 우리가 알던 종이는,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식물성 섬유를 원료로 하여 만든 얇은 물건, 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인쇄를 하는 데 쓴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우리는 종이를 종이 자체로 경험하고 이해한 게 아니라 종이를 그 용도와 기능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다. 종이가 문풍지로도 쓰이고 옷감이나 컨테이너 용기로도 쓰이고 건축 자재로 쓰인다는 것을 듣고 보고도 예외로 치고 쉽게 잊어버린다. 그냥 종이란 쓰고 그리며 복사하고 출력하는 그런 것, 즉 이미지나 문자를 담는 매체정도로 알고있다.

이건희_paper on paper_수제한지에 혼합재료_120×163cm_2017
이건희_Talking paper_수제한지에 혼합재료_163×264cm_2018
이건희_Talking paper_수제한지에 혼합재료_80×40cm_2017

이건희는 20년이 넘도록 종이로 작업을 하면서 종이의 이 일상적 기능성을 해체/탈구축하고 그냥 물질 재료로 오브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종이가 종이로 되기 전, 닥나무를 쪄서 추출된 펄프를 가지고 애초부터 종이가 될 수 밖에 없지만 종이가 아닌, 종이라고 부르기는 상당히 애매하지만 또 종이일 수 밖에 없는 결과를 작품으로 만들어 전시를 한다. 그러면서도 기록의 매체로서 종이의 흔적을 악착같이 놓치지 않고 평면의 형태로나 입체의 형태로든 문자나 이미지의 형태를 남기고 있다. 마치 기록의 대상이 되는 이미지나 텍스트 그 자체를 담고있는 어떤 추상적 구조를 드러내듯이 작품이 제작되고 전시된다. 마치 롤랑 바르트나 자크 데리다가 주장하는 에크리튀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구어와 문어 대신에 입말과 글말로 대체하여 입말이 글말보다도 먼저라고 하는 기존 언어학의 상식을 뒤집으면서 입말을 글말의 역사적 인식적 반영이라고 주장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듯이 보이는 것이다. 언어 자체를 이미지로 형상화 시켜서 기록되는 기호 자체가 제도화의 흔적인 것이고, 이 흔적은 하나의 지시 구조, 즉 완결된 한 편의 작품 속에서 재현된 무의미한 기호들 간의 시각적 차이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이건희_Talking paper_수제한지에 혼합재료_200×240cm_2017
이건희_paper on paper_수제한지에 혼합재료_120×163cm_2017
이건희_paper on paper_수제한지에 혼합재료_40×80cm_2017

종이든 플로피 디스크든 매체는 언제나 물질적으로 분명하다. 그러나 매체성, 또는 물성이라는 것은 비가시적인 추상이다. 종이든 닥나무든 그 자체가 스스로의 물질적 본성을 드러낼 수가 없다. 결국은 그 물질을 대상으로 보거나 경험하는 사람들이 감정을 이입한 의인화의 결과이니까, 물성이니 매체성이니 하는 것은 그 물질에 대한 태도나 관념에 다름아니다. 이건희는 매체로서의 종이를 해체하여 물질로서의 종이로 재구성하면서 의미없는 기호나 물질적 흔적들이 서로 비켜나고 미끌어지게 하면서 드러나는 공간, 또는 펼쳐지는 메트릭스를 하나의 세계로 보여준다. 비선형적이고 우연적이며 임의적인 의미의 세계를 예술가는 울퉁불퉁하고 건성건성하게 만들어낸다. 이 임의와 우연에 찬 세계야말로 비결정성이 지배하는 가능성의 세계이며 자유의 공간이고 예술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건희_Talking paper_수제한지에 혼합재료_80×160cm_2018
이건희_텅 빈 물성과 꽉 찬 추상展_갤러리 팔레 드 서울_2018

기록의 매체로서 종이의 기능성을 중지되고, 매체 자체가 스스로 자립화되어 기록으로 되어가서 종이 자체는 비물질화 되어 하나의 기호로, 의미체계로 등장한다. 이건희는 2000년대 초기까지 소위 물성이라는 것을 무력화 시키고 그것을 비워내면서 작품을 제작해 왔다면, 그 이후에는 텍스트화 되어 있는 종이 그 자체를 각종 색이나 형태를 새기고 붙여가면서 종이 자체를 재맥락화 시키고 재매체화 시켜나가고 있다. 재현의 형식에서 이미 벗어나고 주체와 분리되어 구체성을 잃어버린 임의적인 기호나 흔적으로 이루어진 추상은 그 자체가 감각의 직접적 표현일 수 밖에 없는, 재현하려는 강박을 벗어난 형태를 새롭게 구상한 형상일 수 밖에 없다. 이건희가 종이를 종이 이전의 물질로 종이가 가지고 있는 매체적 성격을 환원시키면서 나무에서 펄프로 변화 시키면서 생겨나는 흔적들의 카오스적인 흐름을 통해서 일체의 형식을 제거한 뒤에 드러나는 우연적 효과를 새롭게 재배치하며 지속적으로 탈영역화 시켜나간다. 이렇게 종이라는 물성이 빠져나간 자리에 특정한 형태나 색으로 이루어진 기호들이 흘러다니며 채워지고 있고, 형형색색의 특정한 형태를이 배치되고 더해지면서 그녀의 작품들은 종이 아닌 종이와 종이 사이에서 어디론가 흘러간다. 흘러서 어디에 도착하는지 우리는 지금 기대만 가지고 기다릴 뿐이다. ■ 김웅기

Vol.20180619c | 이건희展 / LEEGUNHEE / 李建羲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