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예찬 禮讚

장승희展 / JANGSEUNGHEE / 張丞希 / painting   2018_0620 ▶︎ 2018_0626

장승희_불안예찬-red eye_한지에 석채_90.9×116.7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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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62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윤갤러리 YO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7 Tel. +82.(0)2.738.1144 blog.naver.com/yoon_gallery

작가는 불안을 예찬(禮讚)한다. 불안을 예찬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는 불안에 대해서 불안은 불쾌한 것이지만, 다른 불쾌감을 주는 정서인 긴장이나 고통들과는 같지 않다고 말한다. 그것은 위험상태의 등장을 예고하고 이러한 상황을 회피하거나 방어할 수 있도록 내 스스로 보내는 신호라고 하였다. 결국, 불안은 내 안에 내재된 것으로 인간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심리적 상태의 감정인 것이다. 이렇듯 자아가 위험을 느낄 때의 신호로써 작가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표현된다. 그 위험을 알리는 감정은 누구나 위험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상처를 더 이상 받기 싫어하는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을 작가는 예찬한다. 예찬은 누구나 다 알고 있듯 긍정을 이야기 한다. 여성으로 작가로 오랜 시간동안 활동해오면서 불안은 늘 동반자와 같이 작가와 함께 하였다. 작가는 이러한 불안한 감정을 작품을 통해 다른 태도로 바라보고 한 단계 더욱 성장하는 과정으로서 예찬이라는 긍정적 감정을 제시한다.

장승희_불안예찬-시각Ⅰ_한지에 석채_130.3×162.1cm_2018
장승희_불안예찬-시각Ⅱ_한지에 석채_130.3×162.1cm_2018
장승희_불안예찬-poppy_한지에 석채_90.9×116.7cm_2018

작가는 오랜 시간동안 가방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작업하였다. 가방은 작가에게 하나의 상징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대방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알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로 여긴다. 작품 속 가방은 내면세계와 연결해주는 매신저 역할을 하며 모든 대상은 역시 불안을 상징한다. 아마도 작가의 여성성이 더욱 반영된 부분도 있겠지만 누구나 가방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방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각자를 설명할 수 있는 물건들이 모여 하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가방은 이번 전시에서는 불안에 세계와 연결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가방이라 는 게이트를 지나면 구름이 가득한 아득하고 끝없는 환상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장승희_불안예찬-안목_한지에 석채_100×160.6cm_2018

작품 속 작가의 붓 터치는 바람이 되고 공기가 되며 구름으로 화면에 드러난다. 작가의 붓은 마치 하나의 바늘이 되어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한 올 한 올 수를 놓듯 하다. 수년간 전통기법을 사용하여 수고스러운 과정을 고수하며 작업해온 작가는 이번에도 역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작가의 색은 블루와 레드가 주조색으로 이뤄지며 이 색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정적 의미를 작가만의 감각으로 풀어낸다. 색은 결국 빛이 되고 그 빛은 수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몽환적 구름 속 하늘에 등장하는 이름 모를 나무는 땅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튼튼히 자리잡아야하지만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마치 물속을 허우적거리며 밖을 향해 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을 구해주러 온 따뜻한 손길과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 뿌리의 기능은 보는 이들의 감정적 상황에 따라 달리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작가의 화면은 보는 이들에 불안의 감정에 따라 그리고 각자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읽을 수 있다. 가방 속을 들여다보는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내면세계로 언제든지 인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장승희_불안예찬-bud_한지에 석채_90.9×116.7cm_2018
장승희_불안예찬-ear_한지에 석채_90.9×116.7cm_2018

또한 화면에서 볼 수 있는 눈은 이러한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제3의 감정으로 환기의 장치라 할 수 있다. 그 눈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검은 눈동자로 마치 유리거울처럼 사물을 투영한다. 그 눈에는 생명이 존재하고 눈을 통해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은 다양한 생명력이 함께 부여된다. 눈으로 하여금 작품은 생명체가 되어 보는 이들에게 본인의 시선과의 소통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 없는 눈빛은 보는 이들에게 불안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압도적인 힘인 치유의 역할을 함께 형상화한다. 만다라(mandala, 曼茶羅, 우주 법계의 온갖 덕을 망라한 진수를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의 하나)에서는 모든 감각의 중심은 눈이라고 한다. 인간의 의식에 대부분은 눈에서 수집된 정보에 의존하며 모든 에너지는 눈으로 방출된다고 하였다. 만다라는 눈을 통해 명상하며 마음의 정화를 한다. 이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와 정신의 깨달음을 얻는다. 이러한 치유의 상징물로서 눈은 작가의 작품에서도 작동된다. 내면이 불안한 감정을 눈을 통해 이완시켜주고 정서적 무의식을 통찰 할 수 있도록 명상의 과정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내면세계를 외부의 현실세계와 연결시켜주는 수단으로서 작용된다.

장승희_불안예찬-시선Ⅰ_한지에 석채_33.3×45.5cm_2017
장승희_불안예찬-시선Ⅱ_한지에 석채_33.3×45.5cm_2017

또한 그러한 불안한 감정을 이완하며 불안을 두려워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성장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한 치유의 시간을 만나게 된다. 또한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 과정을 통해서도 작가는 마치 자기 수양의 마음과 자세로 역시 치유되는 과정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자아인식의 과정 속에서 늘 존재의 불확실함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작품을 통해 불안과 소통의 가능성을 말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얻기 위한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미량

Vol.20180620c | 장승희展 / JANGSEUNGHEE / 張丞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