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메멘토, 동백 Ⅱ. Memento, Camellia

강요배展 / KANGYOBAE / 姜堯培 / painting   2018_0622 ▶ 2018_0715 / 월요일 휴관

강요배_동백꽃 지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6×162.1cm_199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0525a | 강요배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

4·3을 그리며 ● 내 고향 제주. 이 스산한 인생의 소년시절을 회상한다. 장구한 세월을 모질게 불어오던 북풍. 그 시린 바람에 살점을 씻긴 채 뼈 마디마디로만 수백년을 자라온 동네 어귀의 팽나무. 잿빛 창공에 거대한 곡선을 이리저리 그으며 바람과 희학질하던 수천, 수백 마리의 시커먼 바람까마귀떼. 제삿날 저녁 어머니를 따라 이웃마을로 들어설 때면 어스름 속 뿌연 하늘을 가로막으며 음산하게 다가오던 높직한 성담. 온갖 사물에 붙은 바람소리, 끊임없이 귓전을 스치는 알아들을 수 없는 귓바람소리. 흑·회·갈색의 척박한 땅, 그러나 그 땅을 사람들은 인고로 일구어 맑은 가을이면 축축 늘어진 누런 조이삭들이 밭마다 가득했고, 고구마덩이들이 이랑을 벙글며 맺혔다. 그러한 날에, 갓 찐 고구마를 한 구덕 가운데 놓고 팽나무 마디 같은 손을 한 할머니들이 손자들과 모여 앉으면, 하얀 고구마 속 같이 해학이 피어나는 절제된 풍요도 있었다. 이렇듯 어린 시절의 제주 풍광은 인간의 삶을 부정하지도 치장하지도 아니하였다.

강요배_한라산 자락 사람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93.7cm_1992

고향을 떠나 20년을 방황하면서 나는 조금씩 사회와 역사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고, 땅의 시련보다 더욱 가혹한 것이 역사의 시련이었음을, 어리석게도 이제서야 늦은 공부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 혹독한 바람은 수백 년을 두고 외세의 침탈로 몰아쳤다. 참으로 독한 바람은 내가 태어나기 4년 전 오랜 식민지 백성이 해방의 깃발을 휘날리던 날, 저 태평양을 건너와 이 작은 섬을 후려치고 삼키었으니 이 피의 바람이 바로 4·3이다. 그리고 독한 바람에 맞서 그것을 갈라친 저항이 4·3이다.

강요배_깊고 깊은 바다 밑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333.3cm_2015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면 누구나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과거에 대해 검은 장막을 드리우고 산다. 어디 제주도 사람뿐일까? 분단 조국을 사는 사람이면 누구든 그럴 것이다. 가슴속 깊이 울분과 공포가 뒤섞인 알 수 없는 응어리를 묻어둔 채. 이제 제주섬은 여기저기 독버섯들이 피어나듯 외지 자본에 절경들을 장악당한 채, 부정한 풍요의 기운에 휩싸여 떨고있다. 이러한 풍요는 제주의 것이 아니다. 자애로운 땅. 피땀으로 지켜온 선조들의 땅.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선조들을 받들고 기려 그 뜻을 따라 사는 그 후손들의 땅이어야 할 것이다.

강요배_횃불 시위_종이에 목탄_76×55.3cm_1991

역사의 맑은 바람을 쏘여 내 가슴속 응어리의 정체를 밝혀보고자 시도한 것이 제주민중항쟁사 연작 그림이다. 그러나 나의 일천한 인생 경험, 그 짧은 호흡으로는 역사의 심연 저 깊이로 잠수해 들어가기가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그 실체를 손상하지나 않았는지 심히 걱정스럽다. 제작과정에서 조언을 구하느라 여기저기 말을 퍼뜨린 것이 빈 수레가 요란한 격이 되고 말았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어떤 점에서 상상력을 매개로 세계 사물을 형상적으로 인식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활성적인 상상력의 속성상 늘 새로운 인식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한 차례의 수확이 끝나면 그 밭을 다시 일구어 새로운 씨를 뿌리는 일과도 흡사한 듯하다. 나는 나의 그림밭, 영원한 원시의 손노동의 밭에 한 땅을 남겨둔다.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4·3을 경작하기 위하여. (「동백꽃 지다」 1992) ■ 강요배

강요배_젖먹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0×130cm_2007

Painting the Jeju·48 Incident ● My home Jeju. I reminisce the boyhood of this desolate life. The North wind that harshly blew over the long years. And the bare hackberry tree that grew for hundreds of years in the entrance of the village, its skin wiped by the cold winds, only leaving the nodes of its bones. The black flock of crows dancing along the wind, on the grey sky making massive curves. The bleakly approaching high castle wall, obstructing the murky sky at dusk, when I visited the neighboring village with my mother in the evening of memorial rite days. The sound of wind, attached to all objects, and the obscure sound endlessly grazing through my ears. The black, grey, and brown barren land. However, people cultivated this land with endurance, and in the clear Autumn, the drooping yellow ears of millet filled the fields and chunks of sweet potato grew in furrows. On days like this, when grandmothers with hands like hackberry nodes, gathering around a basket of freshly steamed sweet potatoes with their grandchildren, there were humble indulgences of blooming happiness, like the white core of sweet potato. The scenery of my boyhood in Jeju never denied nor adorned the life of the people. ● I gradually opened my eyes towards society and history after I left my hometown and strayed for 20 years, and only realized now after belated studies, that the hardship of history is much more brutal than the ordeals of the land. The harsh winds, as the foreign plunders, gusted over hundreds of years. The tempest crossed the Pacific and arrived and swallowed this small island 4 years before my birth, on the day the colonized nation finally waved the flag of freedom; this wind of blood is the Jeju·48 Incident. The resistance that faced and pierced this tempest is the Jeju·48 Incident. ● Anyone born and raised in Jeju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lives with a cast of black curtain of the past. This is not only relevant to the people in Jeju Island. Anyone living in a divided nation probably has a cast of black curtain of the past, burying in one's heart the unknown bitterness muddled with resentment and terror. Now, Jeju Island is trembling; its magnificent scenery dominated by the foreign capitals like toadstools blooming everywhere, and engulfed with the energy of corrupt luxury. These indulgences do not belong to Jeju. The benevolent land. The land of our ancestors, protected by their blood and sweat. And this land must belong to the descendants who honor and tribute these ancestors and comply with their will. ● My attempt to trace and identify the bitterness in my heart by exposing it to the clear wind of history is the Jeju People's Resistance series. However, with my limited life, the shallow breath was beyond my capacity to submerge into the abyss of history. I was awfully concerned that I would even harm the history. Spreading word here and there to be advised during the work process became an empty vessel making the loudest noise. The act of painting, could be said as figuratively perceiving objects in the world, with imagination as medium. Thus, as active qualities of imagination, painting may only constantly go forward into new cognition, similar to cultivating and seeding the field after harvest. I leave a portion of my painting-field, the field of eternal primitive hands-on labor. To plant the Jeju·48 Incident once more, when it is time. (The Camellia Has Fallen」 1992) ■ Kang Yo-bae

Vol.20180622c | 강요배展 / KANGYOBAE / 姜堯培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