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LE CITY Ⅱ

원범식_이원철_류주항展   2018_0614 ▶ 2018_0731 / 일,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8_0614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더트리니티 갤러리 THE TRINITY GALLERY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옥인동 19-53번지) 1층 Tel. +82.(0)2.721.9870 www.trinityseoul.com

THE TRINITY GALLERY는 원범식, 이원철, 류주항 국내 사진작가 3인의 2018『MIRACLE CITY II』전 을 갖습니다. 3인의 작가는 앞서 2017년 개최했던 『MIRACLE CITY』전을 통해 시공간이 얽힌 신비롭고 경이로운 도시를 각자의 조형적 표현으로 창조하며 호흡을 맞춘 바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도시 건축물을 작업의 재료로 삼고 콜라주 작업을 통해 새로운 건축을 설계해온 원범식의 「건축조각」연작, 세계 각 도시의 시계 침이 흐려진 시계탑을 모티브로 우리에게 시간에 대한 물음을 던져온 이원철 작가의 「타임」연작, 태초의 자연과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가공의 것이 공존하는 중간 풍경을 이야기하는 류주항의 「mixed light_inter-landscape」연작 총 15여 점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세 명의 작가가 도시를 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탐미하고 확장해낸 2018 미라클시티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더 트리니티 갤러리

MIRACLE CITY Ⅱ展_더트리니티 갤러리_2018
MIRACLE CITY Ⅱ展_더트리니티 갤러리_2018

세 사진: 시간에 관한 세 알레고리 def. 알레고리Allegory : 다른 것을 빌리고, 빌린 것을 모아서 다른 것을 이야기하기 기능 : 하나로는 말할 수 없는 것, 직접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기 습성 : 그들, 현대의 예술가는 다르게 말하고픈 이들이다 효과 : 그 말하고 픈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읽기를 강요한다

MIRACLE CITY Ⅱ展_더트리니티 갤러리_2018
MIRACLE CITY Ⅱ展_더트리니티 갤러리_2018

원범식 : 상상력의 알레고리 ● 세계 그 자체는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세계에 특정한 질서(시공간적 질서, 물리 법칙)를 부여한다. 그것은 기실 하나의 믿음일 뿐이지만, 도전받지 않는 합리성의 자리를 꿰찬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세계에 부여한 합리적 질서는 어느새 우리 자신의 행동의 폭, 마음의 한계를 규정하는 족쇄가 된다. 그는 이 족쇄가 못마땅하다. 편리, 목적, 믿음이 우리의 한계가 되어선 안 된다. 마음이 그 족쇄를 만든 것이라면 그것을 푸는 것도 마음이 해야 할 일이다. 시공간적 거리, 물리적 제약 때문에 하나로 모을 수 없는 것을 마치 하나인 것처럼 모아 내는 것, 그것이 본래 생산적 상상력, 혹은 생성 중인 느낌 그 자체의 능력이다. 그의 도시 건물은 그렇게 이음매 없이 하나가 된다.

MIRACLE CITY Ⅱ展_더트리니티 갤러리_2018
MIRACLE CITY Ⅱ展_더트리니티 갤러리_2018

이원철: 시(계)간의 알레고리 ● 나의 시간과 그의 시간,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의 시간, 물질과 생명의 시간, 시계의 시간과 존재들의 시간, 영속하는 듯한 도시 건물과 주변을 오가며 드나드는 인간의 시간, 물리적 시간과 삶의 시간, 과거, 미래, 현재의 시간, 공간화된 시간과 공간화되지 않은 시간, 영속하는 것과 순간의 시간, 절대적 시간과 상대적 시간, 이 시간들의 결합은 그 자체로 초현실적 풍경이다. 모든 존재는 시간 속에 살고, 시간에 의해 살며, 시간의 제약 속에 존재한다. 이 모두는 시간으로 사는 한 시간 안에서 하나이며, 이것이 곧 시간으로 존재하는 모든 있는 것들의 실재이다. 시간 존재의 알레고리...

MIRACLE CITY Ⅱ展_더트리니티 갤러리_2018
MIRACLE CITY Ⅱ展_더트리니티 갤러리_2018

류주항 : 지속의 알레고리 ● 그의 사진이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어긋나며 기묘하다고 느낀다면, 그의 사진에 낮과 밤의 시간, 공간, 빛, 색이 혼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낮과 밤의 개념적, 외형적 구분이 마치 실제적 구별인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낮이고 어느 때부터 밤인가? 어느 누구도 그 경계를 가를 수 없다. 해가 진 시간? 지구 반대편은 낮이다. 시간과 시간 속의 존재들은 방학 시간표의 선을 긋듯 구분되지 않는다. 카메라의 시간은 지속하고, 시간인 존재도 지속한다. 그에겐 또 다른 지속이 있다. 도시 문명과 자연, 물질과 생명의 지속... 그의 사진이 입증하듯 존재들의 외형적, 가시적 구별은 우리의 느낌 안에서는 그렇게 분명하지 않으며, 공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 조경진

원범식_archisculpture055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42×100cm_2018
원범식_archisculpture036c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70cm_2017
원범식_archisculpture046c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70cm_2016
원범식_archisculpture018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38cm_2013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는 한 명의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의 질서정연함을 아름답다 하였지만, 「건축조각 Archisculpture」 사진 프로젝트는 여러 건축가의 다양한 건축물을 촬영하고, 이를 콜라주 해 건축적 조각품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다. 따라서, 「건축조각」 사진은 자연 발생적으로 여러 건축가에 의해 이뤄진 고대 도시의 유기적 낭만성과 성격이 비슷하기도 하고, 또 다르기도 한데, 그 이유는 다수 건축가의 수많은 설계에 대한 본인의 주관적인 해석과 선택이기 때문이다. 사진에 '푼크툼 punctum'이 있다면, 분명 이곳에 사용된 건축물들은 어떤 면에선 작가의 '푼크툼'이며 이들의 조합이 바로 「건축조각」 사진이다. 또한, 정치, 경제, 사회의 상징적 건축물을 찾아 서로 연결하기도 하기에 감상자는 '스투디움 studium'을 통해 「건축조각」으로부터 대도시의 환영을 느끼기도 한다. 수집가가 획득물을 세심히 분류하고 정리하듯, 작가는 이곳저곳에서 채집한 도시의 파편들을 분석하고 이를 재료로 조각품을 만든다. 이때 개개의 건축물들은 통시적 또는 공시적 역사를 지닌, 혹은 그 모두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조각으로 재탄생된다. 이 과정에 사용된 콜라주 기법은 러시아 영화감독 에이젠슈타인이 몽타주에 관해 설명한 것처럼 각 요소를 충돌시키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본질에서 이것은 존재하지 않는 건축적 형태를 지닌 조각품의 사진이다. (작업노트 中) ■ 원범식

이원철_TIME-Sydney, Australia_C 프린트, 플렉시글라스에 페이스 마운트_162×115cm_2018
이원철_TIME_Havana, Cuba_C 프린트, 플렉시글라스에 페이스 마운트_93.3×75cm_2011
이원철_TIME_London, United Kingdom_C 프린트, 플렉시글라스에 페이스 마운트_75×96.4cm_2016
이원철_TIME_Beijing, China_C 프린트, 플렉시글라스에 페이스 마운트_75×96.4cm_2014

시계 밖의 시간 ● 2010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계가 완공되었다. 시계의 지름이 43m이고 수십km 밖에서도 시계바늘이 보일정도의 규모이다. 이슬람 성지가 있는 메카에서 가장 큰 시계를 완공하면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영국의 그리니치 표준시를 메카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지 시계의 물리적 규모가 큰 것뿐인데 표준시를 옮기려고 하는 이유치곤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왜 굳이 메카의 시간을 세계의 시간에 기준으로 삼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메카의 시간이 기준이 되면 마치 세계의 중심이 된 거 같은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유럽의 고건물들에 시계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시계가 있는 건물들은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상징성이 있는 것들이 많다. 인간이 높은 건물을 짓고 그 위에 시계를 설치하는 데는 단지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기능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시간을 품고 싶은, 좀 과장되게 말하면 시간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일 것이다. 그것이 군주나 종교에겐 절대적 권력을 상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현대사회에서, 특히 대도시에서의 시간은 어떠한가? 현대인들은 시계바늘의 지침에 따라 생활한다.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같은 시간에 기상하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퇴근하고, 잠을 잔다. 시계 속 시간에 맞춰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 이렇듯 시계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권력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일상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계 속에 시간이 존재할까? 농촌의 생활을 예로 들면,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시계 속의 시간은 무의미하다. 계절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 다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건 자연의 시간이다. 동지와 하지의 해가 떠 있는 시간을 비교해 보면 6시간가량 차이가 난다. 6시간의 차이는 도시에선 오차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큰 시간의 폭이다. ● 이처럼 시간은 모든 곳에 존재하지만 장소나 상황에 따라 상대적이다. 이번 작업에서의 주제는 '시간'이다. 촬영하는 소재, 대상은 '시계'다. 시계를 통해 시간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하며, 시계 속에서 시간의 존재를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이미지로 설명하자면, 시계 속에서 시간을 지시하는 시계 바늘을 사라지게 하고, 주변의 변화 (사람들의 움직임, 나뭇가지의 흔들림, 구름의 흐름)를 통해 시간을 보여주는 형식이다. 이렇게 생성된 이미지 속에 시계는, 눈금만 존재하고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바늘은 사라지게 된다. 그런 이미지는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되고 시간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됨과 동시에, (매체의 특성상) 시계에 대한 기록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작업노트 中) ■ 이원철

류주항_mixed light_inter-landscape#1_리넨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9×82cm_2018
류주항_mixed light_inter-landscape#2_리넨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2×137cm_2018
류주항_mixed light_inter-landscape#3_리넨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2×137cm_2018

'inter-' 와 'landscape'으로 조합된 단어는 '중간풍경' 을 의미한다. ● 나의 inter-landscape 연작의 작품 이미지 뒤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작물 중 하나인 '아마'로 만든 린넨 원단을, 밤에 촬영된 하늘과 낮에 촬영된 산의 이미지를 나란히 배열하는 구도의 프레임 방식을 취한다. 왼편의 이미지인 밤에 촬영된 하늘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조명으로 인해 '자연의 빛'을 대신하여 화려한 '인공의 색'과 '도심 속 먼지'가 만들어낸 하늘이다. 오른편의 이미지인 산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장의 산으로 조립된 산이다. 객관적 시점이 무시된 채 아래와 위가 뒤섞여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넓고 깊은 원시림을 연상케 한다. 건물과 도로, 기타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의 것들이 빼곡한 나무 사이에서 손톱만 하게 드러난다. 이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거대한 자연 속 인간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한다. 문명사회가 시작된 이래로 태초에 있었던 풍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하나의 생명체처럼 변화되는 도시는 태초의 것들과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사진에 담긴 이미지는 카메라 셔터가 기록한 시간이고, 사진에 담긴 풍경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기록되지 않는 시간이다. ●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온 도시가 어느 순간부터 어떠한 형태로 발전해 나가는지 도시의 본질을 탐색하는 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인간의 욕망은 그 자체로 순수하다. 순수한 욕망에 의해 변해가는 도시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다. 그 욕망은 태초의 것과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중간풍경'의 모습 속에 뒤섞여 나타날 것이다.' (작업노트 中) ■ 류주항

Vol.20180622e | MIRACLE CITY Ⅱ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