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라질맨 Fragile Man

김지훈展 / KIMJIHOON / 金志薰 / painting   2018_0627 ▶︎ 2018_0702

김지훈_후라질맨-Goal_장지에 먹, 채색_162×130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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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홈페이지_www.fragilekim.com

초대일시 / 2018_062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동덕아트갤러리 DONGDUK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68 B1 A관 Tel. +82.(0)2.732.6458 www.gallerydongduk.com

"옴작거리는 나를 잊지 말아요." ● 방호복 속의 누군가에게 왠지 모를 연민과 동정을 느끼는 것은 그도 '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타의 구분은 단지 '나'가 너무 많아 생긴, 투명하지 않은 구분이다. 수많은 '나'의 존재는 타에 의해 너무나도 가볍게 치부된다. (여기서의 모순은 그 타조차도 사실 '나'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나'는 가벼운 유리잔처럼 취급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감싸고, 보호한다. 그 포장, 그 보호 속의 '나'는 더 부서지기 쉬운(fragile) 것이 되었다.

김지훈_후라질맨-Goal_장지에 먹, 채색_130×97cm_2018
김지훈_후라질맨_장지에 먹, 채색_162×130cm_2018

'나'는 매 순간 평안히 잠들지 못한다. 끊임없는 실존의 위기(existential crisis)는 '나'를 불면에 시달리게 한다. '나'를 에워싼 주변에서 위협이 가해지고, 그 위협에서 '나'를 수호하고자 방호복을 입는다. 하지만 방호복 속에서도 인간은 잠들지 못한다.

김지훈_후라질맨-소풍_장지에 먹, 채색_91×72cm_2018

방호복을 입은 채 공사장용 라바콘을 들고 숲으로 걸어가는 한 남성은 나약하고 나이브(naive)하다. 숲은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된 안식의 공간이어야 한다. 아마 남성이 그리로 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하지만 숲속으로 들어가는 남성의 뒷모습은 가볍지 않다. 가지를 드리운 숲은 헐거운 보호막이 되어줄 뿐, 그 속에서도 그는 완전히 안전하지 않다. 숲속에서도 그는 공사장용 깔때기를 세우고 어딘가에 도사린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다.

김지훈_후라질맨-소풍_장지에 먹, 채색_162×130cm_2018

'나'가 여럿 모여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세 개의 얼굴이 바닥 한 곳을 꿰뚫으나,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못한다. 세 개의 방호복이 세 개의 '나'를 서로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이다. 화면 밖의 '나' 또한 화면 속의 그들에게 접근하지 쉽지 않다. 그들은 화면 밖의 '나'가 그들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공사장용 깔때기로 제지한다. '나'들은 화면의 안팎 그리고 방호복을 입은 '나'와 타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하지만 그 선은 깨지기 쉬우며, 선을 그은 그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 경계와 경계 속 '나'는 더욱 부서지기 쉬워진다.

김지훈_후라질맨-유치하게 유치권행사중_장지에 먹, 채색_162×390cm_2018

한편, 불면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 '나'도 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위협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불면의 고통에 너무도 오래 시달려 그 존재를 모르거나, 방호복을 입고도 입은 게 무엇인지 모르는 걸 수도 있다. 혹은 방호복이 다 닳아 헤져 고통이 피부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작가는 집, 보호구역을 통해 보호받아야할 곳에서도 온전하지 못한 '나'를 드러냄으로써 고통을 느끼지 않는 '나'까지 포괄한다.

김지훈_소년_장지에 먹, 채색_91×72cm_2018

이례적으로 방호복을 입지 않은 한 남성이 화면에 등장한다. 방호복을 벗은 그는 나이브하기에 너무나도 쉽게 손상된다(될 것이다). 이제까지 '나' 옆을 지키던 공사장용 라바콘은 어느 순간 '나'의 머리 대신 자리한다. 맨 몸의 '나'를 가리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다. 안타깝게도 그 보호는 허울에 불과하다. 깔때기는 눈만 가려, '나'가 타를 보지 못하게 할 뿐, 타에게서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

김지훈_친구,후라질맨-재열이_장지에 먹, 채색_91×72cm_2018

비닐하우스 속에서 한 남성이 걸어나온다. 외부가 투명하게 비치는 마루 없는 집. 그 속에서 남성은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걸음을 내딛는다. 집 속에서 조차 평안하게 걸을 수 없는 그 모습에서 어디에서도 온전하기 힘든 '나'를 발견한다.

김지훈_벽 뒤에서_장지에 먹, 채색_130×97cm_2018

이제까지의 설명과 상충되는 것 같으나 우리가 이제까지 본 '나'들은 약하지 않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로서의 나약함이지 '나'의 약함은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나'는 의도하지 않은 방향에 이끌리기도 하며, 폭압에 시달리기도 하고, 신경증에 때때로 개체 내부의 맹아를 잃기도 한다. 김지훈이 잡아낸 Fragile Man은 각자 나름대로 '나'의 맹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약한 인간이다.

김지훈_후라질맨-자아_장지에 먹, 채색_145×112cm_2018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이전보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더 많이 노출한다. 날 것의 상태에의 인간을 보여준다. 작가의 시선은 '구조 내의 작은 개체'에서 '작은 존재 그 자체'로 이동한다. 개체 바깥으로 향하던 일련의 갈등과 투쟁은 방향을 바꾸어 존재적 차원에서 안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안에서 옴작거리는 맹아를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를 감싸고 보호하는 인간으로서의 '나'. ● 작가가 빛을 비추는 '나'의 불안과 두려움은 불면을 지시한다. 그 지시는 인간으로서의 삶에서 잃어버린 맹아로서의 시간들을 촉발한다. 이 체험은 어쩌면 잊고 있던 당신의 실존적 고통 혹은 신경증을 일깨울지도 모른다. '환등'의 경험을 통해 인간으로서 당신이 노출된 고통을 충분히 느끼고 아는 것.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당신이 구조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깨워 평안히 잠들게 할 것이다. 당신이 잠에서 일어났을 때, 그 시간이 풍요로운 시간으로 조금이나마 바뀌어있길. ■ 김신지

Vol.20180627j | 김지훈展 / KIMJIHOON / 金志薰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