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티멘토

Pentimento展   2018_0629 ▶︎ 2018_0723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8_0629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공성훈_김범균_김상균_김진기 박경진_박근형_이정웅_장준원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아트비트 갤러리 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74-13(화동 132번지) Tel. +82.(0)2.738.5511 www.artbit.kr

8명의 화가들이 모였습니다. 모두 형상을 다루는 작가들입니다. ● 전시의 제목인 『펜티멘토(Pentimento)』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실수나 우연에 의한 것이든 애초의 계획이 수정된 것이든, 덮여진 자취가 어렴풋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용어가 '회화적 회화(Painterly Painting)'의 특징을 잘 대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완벽하게 불투명한 물감은 없기 때문에 회화적 공정(Process)의 모든 행위는 켜켜이 쌓여가는 레이어의 지층 속에 화석처럼 보존되어 때로는 감춰지고 때로는 희미하게라도 드러납니다. 몸이 움직인 흔적들은 동시에 화가의 마음이 움직인 여정의 표상이 되기도 합니다. 회화가 행위의 프로세스와 사고의 프로세스를 함께 보여준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하여 시간이 정지된 2D일뿐인 회화가 펜티멘토를 통하여,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수습하며 주저하다가 결단하고 어쩌다 얻은 행운을 간직하거나 망치기도 하는 우리의 삶과도 같은 한편의 드라마가 되는 것입니다. ● 살면서 경험하는 여러 감정들은 디지털 미디어에서처럼 간단하게 복붙(복사 후 붙여넣기)하거나 덮어쓸 수도 디가우징(Degaussing)할 수도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그림을 그리는 매 순간마다 자각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낡은 매체인 회화를 우리가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소박한 구실이기도 합니다. (2018. 6.) ■ 작가 일동

공성훈_바닷가의 남자_캔버스에 유채_116.8×80.3cm_2018

회화의 결 : Pentimento ● 미술이라는, 산업 주도의 쇼비지니스 형태로 빠르게 변형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에서 분투하고 있는 회화를 다루는 작가들을 위한 글을 쓰게 되었다. 인생이라는 거대담론과 그 아래 살아 남아가야-비애와 희망이 섞여있는-할 작가들의 사고가 어떻게 회화로 재현되었는지 말해보고 싶었다. 전시 서문이 종종 형식을 위한 형식이 되어 이미지와 관자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어 버리는 현학적이고 학리적인 실수가 되버리고 만다. 이러한 글의 실수가 드러나지 않게 적절히 이 글을 시술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글이 주목받아야 할 참여작가들의 이미지들이 필히 가져야할 영광들을 위해 겸손한 보조 장치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김범균_다랑쉬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14

"You were a boy before, you became a man I don't see the joyAnd you ran with your pals in the sunYou turned around and they were gone Again..." ● 지배층들이 만들어낸 지나친 쇼비니즘(Chauvinism)의 선동으로 대중 심리에 파고든 애국주의(Jingoism)가 지배한 십년은 국가와 개인들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남겨 놓았다. 특별히 미술은 예민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이 울타리 안에 만연히 자행된 폐해들은 정치 사회적 퇴행을 극복하는 전(全)사회의 진보적 노력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기존질서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근과거의 이상이었던 자유라는 이데올로기가 자유를 구원하지 못하는 시대로 바뀌고 우리 사회에서 간과된 개인의 심적외상에 대해 고민하며 그것들을 제고하는 단계를 넘어 사회의 정형을 바꾸려는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상균_작위#5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8

여전히 숙청(purge)이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기 위한 필요조건인지 혹은 발견되지 못한 공포를 억누르는 더욱 큰 공포로써의 기능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고 이를 위한 논공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았던 막다른 길을 마주한 것처럼, 변혁을 위한 변증법적 사고가 변질되어 양극화, 집단화 그리고 정치화되며 토론문화가 아사리판으로 고착하는 매너리즘에 사로잡힌 상태에 놓일 수 있는 우려도 있다. 게다가 멀티미디어 산업의 지나친 프로모션은 개인의 감수성이 분노와 와해라는 코드로 공유화, 양식화되며 진행되어 쌓여진다. 이렇게 진부함이 축척된 디지털 이미지들이 필요이상의 피로를 만들고 찰나의 속도가 정밀히 계산된 무한정한 기록 행위가 가치의 유무에 선행하고 있다.

김진기_해운대 동백섬에 어머니_캔버스에 잉크젯, 아크릴채색_80×116.8cm_2018

이런 상황들은 어떤 예술가들에게 자연스레 염세주의와 냉소주의에 천착하게 만들었다. 기억의 해리 덕분에 오로지 아름다움만이 남아있는듯 보이는 과거를 회고하는, 이 마지못한 대안인 로맨티시즘이 부활했다. 현실의 지루한 일상과 가상의 극적인 이미지들이 부딪히는 피로함과 재벌의 경제적 힘을 압도한 감성, 더불어 혐오스러운 과거의 잔재들이 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될 때 현세의저편에 있는 상황에 대한 욕망이 드러난다. 오감(五感)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한 현세에 사진과 영상이 담을 수 없는 영원히 볼 수 없는 것들을 향한 그리움들이 인류의 최고 발명품 중의 하나이자 영속히 등장하며 무적의 이데올로기처럼 보이는, 그리고 '운좋은 역설(good-luck paradox)'인 로맨티시즘 안에 현재의 많은 예술가들은 종속되어가는 듯이 보인다. 아마도 대체하기 어려운 이 개념의 포괄적이고 오랜 시간동안 양식화된 거대한 특성과 함께 문제의 대상조차 모호하여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현세에 대한 비관과 어느 세대에게 주어진, 끝없는 죽음과 다를바 없어 보이는 삶의 미스테리를 풀어내려는 무위(無爲)한 욕망의 반영일지 모르겠다.

박경진_마약사무실 폭파현장_캔버스에 유채_227.5×545.4cm_2018

디지털 영역 안에서의 죽음은 완전하지 않다. 매장이 아닌 석관(sarcophagus)을 만들어 불가피한 죽음을 은폐하고 신화한 것처럼 인류의 궁극적 문제해결인 극복된 죽음은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실현의 전단계인 표상으로-드러났다. 디지털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다중대체자아(multiple alter egos)들의 죽음과 부활은 데이터의 삭제와 복구일뿐이고, 이 영속적인 재현들은 다시 변형 가능하여 실존을 능가하고 자가변형의 기술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무한한 저장영역, 상상을 초월하는 처리속도, 그리고 바랜 과오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매체로써의 가상은 창조주의 부재 혹은 창조주와 피조물들이 일체화되고 분리되는, 여전히 구세의 공간이 아닌 자가적 낙원처럼 보인다. 이 가상 속의 여러 자아(egos)들의 양식화는 종국에 전체성 그리고 결집과 해체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개별성으로 가장되어진 사회적 정신(social ethos)들로 증식하고 있다. 더불어 세속주의에 걸맞는 단기주의(short-termism)의 경제논리 아래 발 맞추어 수학적인 템포로 작동하는 디지털 이미지 관리 산업들은 어그러진 완벽한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매체로써도 적합하다.

박근형_Untitled_나무패널에 유채_50.8×40.6cm_2018

미술의 기초매체중의 하나인 회화가 다시 근세의 사유인 로맨티시즘이라는 숙주(host) 혹은 수단(vehicle)을 이용하여 부흥하고 있다. 근세의 선조들이 발명한 '실패를 기약한 희망'처럼 기계가 생산하고 있는 미학의 메커니즘을 비관하지만 대안은 희미하다. 회화의 기능은 창작자와 관자 간의 소통보다 개인주의를 지탱하는 명상, 자아도취에 가까운 정신적 단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부 현대회화들이 문학이 차용한 회화적 소설(picaresque novel)이라는 글쓰기의 기술을 거꾸로 이야기를 회화 안에 종속시킬때, 예를 들어 일상의 물질들이 오브제로 활용되고 회화의 지면 위에 올려진 오브제들의 비정형적인 조합, 왜곡들은 원래 의미를 해리하고 다음 단계 혹은 그 위에 존재할 수 있는 마취(anaesthetic)로써의 미학(aesthetic)의 특질을 선험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정웅_The Mist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18

'손에 쥔 검은 거울(black mirror)의 문턱을 통해 욕망을 바라볼 때 나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들과 Alma Mater를 위하여' ● 회화 복원학에서 펜티멘토는 작가가 최고작(magnum opus)을 위해 노력한 실수의 흔적들이 작가 자신에 의해 변형 혹은 은폐된 흔적이다. 펜티멘티(펜티멘토의 복수형)는 단순히 면밀하게 관찰-고급 과학기술인 단순방사선(X-ray)이나 적외선 반사복사법(infrared reflectography)을 통해서만 관찰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함으로써 가시화되는 작가의 고뇌 혹은 주문자의 변심에 의해 변경된 가려진 기록들로부터 현대 미술에서는 하나의 눈속임(tromp l'oeil)인 시각효과-빛의 환영이나 물질의 운동성-를 표현하는 회화기법으로로도 응용되었다.

장준원_풍경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91cm_2017

디지털 이미지의 관리 방식과 달리 회화의 독특한 특성인 마른 뒤 젖은 물감을 바르는 행위(wet on dry), 실수가 고착되었을때 새로운 시도를 적용할 수 있는, 필연적인 기다림의 중첩은 디지털 이미지 산업에서 제거된 회화의 고유한 특성이다. 현대회화가 옛 회화들의 가시화된 은폐된 실수들로 부터 눈속임을 위한 계획된 실수, 자유의지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극적효과, 더 나아가 추상 표현까지 펜티멘티의 의미를 확장 시키고 있다. ■ 박근형

Vol.20180629d | 펜티멘토 Pentimento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