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and Forth

김은진展 / KIMEUNJIN / 金銀珍 / painting   2018_0630 ▶ 2018_0722 / 월요일 휴관

김은진_ocean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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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630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pm~07:00pm / 월요일 휴관

킵인터치서울 Keep in Touch Seoul 서울 종로구 북촌로1길 13 1층 Tel. +82.(0)10.9133.3209 keepintouchseoul.wordpress.com www.facebook.com/keepintouchseoul

김은진: Back and Forth-의도성, 회화, '진보'에 대하여 ● "나는 회화의 역사적 팽창을 인지하고 있는 동시에, 회화로서의 개별적/잔여적 특성을 함유하고 있는 회화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1) (Isabelle Graw- The Value of Liveliness: 당대 자본주의 시대에서 의지의 지표로서의 페인팅) ● Isabelle Graw는 자신의 2016년 에세이를 통해, 회화가 모든 예술작업의 의도를 지시할 수 있는 선천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은유를 지니고 있음을 제시한다. 어떠한 다른 매체도 자신의 매체로서의 특성을 그만큼 명시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새로운 매체들의 경우 그것의 역사나 구조는 대체로 숨겨진 채 '새로움', '유사성', '자발성' 등이 대신 강조된다. ● 그러나 Graw가 '잔여적 특성'을 통해 제시하였듯, 회화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그들의 개별적 흔적 -노동의 흔적, 사고의 과정, 신경과 판단, 수정 등- 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회화의 역할은 지속적이고 변치 않는 것인 동시에, 매 순간 필연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김은진_춤추는 상자와 뾱뾱이 새 Cardboard box dancer man with flying bubble wraps_ 캔버스에 유채_45×27cm_2017

김은진의 작업은 회화의 다양한 양태들 사이, 추상과 재현의 사이 또는 형식과 참조의 사이를 이동하며 회화에 대한 이 유용한 역설을 매우 효과적으로 직시하고 있다. 그의 작업들은 추상과 재현의 간극 사이를 항해하며 서로 반대의 지점을 취하는 듯 보이는 회화의 역사적 역할들을 섭렵하고 있다. ● 그는 재현적 양식을 통해 작가의 작업실 너머 세계에 대해 언급하며 사회적 효과를 지니는 회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의식적 노력을 기울인다. 반면, 추상적 접근의 영역에는 한 사람의 숨겨진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선험적인 기원이 담겨 있다. ● 김은진의 회화 작업들은 분명한 대척점들 사이의 지속적인 대화를 재현한다. 그의 회화들은 상호 반박적인 조건들과 상이한 필터를 사용하여 회화 자체와 세계를 바라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의도에 관련한 복잡한 문제들을 회화 안에 기술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그것을 만들 것인가?', '왜 하는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는 어떻게 예술사, 현재의 순간, 또는 미술시장을 다룰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이 이 복잡한 문제 안에 포함될 수 있다.) ● 김은진에게 회화는 이러한 질문들을 소거해 버릴 수 있는 고정된 학문적/양식적 위치를 거부하는 과정 자체인 듯싶다. 그에게 있어 회화의 모든 역사는 작업 과정에서 –모든 회화작가들이 실은 그래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영역으로 보인다. 당대 예술의 상황에서, 움직임에 관한 이와 같은 자유는 보다 넓은 비유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예술사가 진보적으로 나아가는 존재라는 전통적인 시점에 대해 의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은진_cactus fantasy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6

우리가 따라왔던 지시되고 규정된 경로들이 –추상 표현주의로부터,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관계적 미학, 제도비판, 최근의 디지털 아트에 이르기까지– 오롯이 진보적, 급진적, 해방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 경로라는 것은 빈번하게 제한적이고 배타적이었으며 악의에 찬 경제적 문제들에 단단히 묶여져 있기도 하였다. ● 가장 새롭고 역동적인 매체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독창적이지 않거나 순종적인 작업으로 귀결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사실 '최신의' 것으로 보이는 작업은 그것을 들여다 보았을 때 구시대적이고 불필요한 요소를 가진 경우가 빈번하다. 특정한 매체나 스타일 또는 페인팅의 양식을 선택한다는 것이 순전히 그것으로 인한 급진성이나 연관성 또는 지적인 가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 김은진의 다양한 작업들은 우리에게 진보에 대한 신화화와 물신화에 대한 의심과 허무함을 상기시켜준다. 그의 작업들은 문화의 종언 또는 당대성의 덫/경향을 벗어난 채,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큼 옆으로 이동하거나 또는 심지어 뒤로 움직이고 있다. 지속성을 거부하는 것은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분류됨을 거부하는 것은 상품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상품화(모든 의미의 몰수)에 대한 저항은 회화매체에 있어 특히 중요하다. 회화 가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큰 상품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으로 인하여 회화는 다른 매체의 예술가들에게도 분명하고 유용한 예시로서 기능할 수 있다.2)

김은진_Doomed Mr. Courbet_나무패널에 유채_29×21cm_2008

일관되고 상품화 된 회화작가는 단일하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으며 탐낼만한 제품을 재생산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진동, 불일치, 불확정성에 의존하는 회화작가는 유동적이고 탐색적인 태도로 인한 사회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 물론, 김은진의 작업들을 통해 따라갈 수 있는 몇 가지 실마리들이 있다. 전통적인 회화작업들을 미묘한 참조점으로 삼으며, 그의 작업은 유럽의 (종종 이탈리아의) 의사-풍경화의 전통과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회화작업은 차례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의 프레임에 맞춰지고 시적인 무대를 연상케 하거나 또는 고야(Francisco Goya)의 괴이하며 사람의 형상으로 가득 찬 산 속, 모란디(Giorgio Morandi)의 고요하고 형식화된 풍경, 미래주의의 도시 구조, 그리고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파악 불가능하며 그 자체로 단단히 완성된 폐쇄적 광장 등을 떠올리게 만든다. ● 또한 김은진의 회화들은 수행적 측면과 과정에 대해 언급하며, 많은 경우 친밀하지만 상대적으로 대담하고 심지어는 허무주의적인 순간과 제스처들을 통해 이를 전달한다. 우리는 그의 작업 속 건물 혹은 인물의 옆이나 위에 실상은 어느 정도 계획되고 조종된 비의도적 요소들 – 베이컨(Francis Bacon)이 'free marks'라 칭했던 -을 마주할 수 있다. (베이컨의 'free marks'는 그가 그린 무대에서 발견할 수 있다). ● 김은진의 회화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흔적들은 우리를 더욱 예기치 못한 곳, 이탈리아의 예술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로 이끈다. 사실 우리가 김은진의 회화 작업 내에 틈새가 있다거나 캔버스가 잘려 나간 부분이 존재할 수 있겠다고 상상하는 것이 엄청난 비약은 아니다. 이러한 몽상이나 추정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그의 회화 작업들이 물질성과 대상성에 관한 선천적 의식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김은진_Mont Blanc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5

오늘날, 스스로 비평적으로 첨예한 태도를 견지하고자 하는 장소나 공간에서 추상/재현에 관한 논의는 심각하게 뒤쳐진 것으로 평가 받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다중 언어 사용에 능수능란하고 유창하듯 모든 것은 동시적이다.) 우리가 다른 문화권에서 건너온 음식을 먹으며 범주화가 곤란한 종류의 음악을 듣듯이, 추상과 재현 사이의 구분도 점점 덜해지고 있다. ● 그러나 이 '깨달음'을 통해, 우리가 '역사의 종말'에 도달했다고 제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현재를 흐르는 뉴스는 여전히 이렇다: 우리를 여기에 이르게 만든 것과 유사한 변증법은 새로운 (즉 오래된) 종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새로운 보수주의자와 새로운 급진주의자. 역사의 종말은 없다. 역사는 자신의 꼬리를 먹고 다시 뱉어 낸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그리고 나선 희극으로' 등등…3) ● 그러므로, 우리는 '제3의 방식'으로서의 회화(추상과 재현 사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를 일종의 최종 목적지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추상표현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회화가 이런 식으로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라고 제안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 (비록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할지라도 말이다.) ●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예술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의미에서 더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불확실성에 대한 지표로 생각해야 한다. 자신 앞에 놓인 회화 작업에 진정으로 주의를 기울이며 관여하기에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작가, 김은진의 작업은 모든 예술가들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의도와 동기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 Sam Robinson(번역_이연경)

* 각주 1) Graw, I., 'The Value of Liveliness: Painting as an Index of Agency in the New Economy', in I. Graw and E. Lajer-Burcharth, (eds.), Painting Beyond Itself: The Medium in the Post-medium Condition, Berlin, Sternberg Press, 2016, p. 89 2) 더 많은 예는 존 버거(John Berger)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에서 확인할 수 있음. 3) 마르크스(Karl Marx)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The Eighteenth Brumaire of Louis Napoleon』에서 발췌한 어구. 전체 문장은 "History repeats ... first as tragedy, then as farce"이다.

김은진_sound of plant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7
김은진_Blossom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8

Eun Jin Kim: Back and Forth—On Intentionality, Painting, and 'Progress' ● "I would like to propose an idea of painting that, on the one hand, acknowledges painting's manifold historical expansions, while on the other hand, grasps its residual specificity".1) (Isabelle Graw-The Value of Liveliness: Painting as an Index of Agency in the New Economy) ● In her 2016 essay, Isabelle Graw suggests that painting contains an innate and irresistible metaphor for the intentionality of all art making processes. No other medium deals with its armatures so explicitly. The histories and frameworks of newer media are never so readily acknowledged—on the contrary, their 'newness', their 'alterity', or 'autonomy' is emphasized instead. ● But neither, Graw suggests by "residual specificity", do other media contain the ghostly presences of their individual makers so clearly: marks of their labour, of their thought processes, of their neuroses, decisions and revisions. In some ways then, painting's role is as a constant, unchanging pillar—but it is also unavoidably different—every single time. ● Eun Jin Kim's practice, which transfers between various modes of painting, between the abstract and the representational, the formal and the referential, might be especially indicative of this useful paradox. In navigating between representation and abstraction, she occupies seemingly opposing historical roles. ● Wrapped up in representation sits the conscious desire to make painting socially effective—to talk about the world outside the studio. While in abstraction, there lies the unspoken prayer that it might be transcendental—that it could somehow describe one's hidden, inner life. ● Kim's paintings represent an ongoing dialogue between these apparently polar impulses. They manifestly look at painting—and the world—in contradictory terms and through different prisms. In doing so, they describe complex problems of intentionality: what should I make? How should I make it? Why do it at all? Who is it for? How do I address history; or the present moment; or the art market? ● For Kim, painting seems to be a process of resisting fixed academic or stylistic positions that would remove these questions from the equation. The whole history of painting seems to be viable territory—as it should for all painters. In the current art situation, this freedom of movement has a wider, metaphorical value: it stands to question the supposedly linear and 'progressive' thrust of recent art history. ● The prescribed 'route' we have taken since abstract expressionism, through minimalism, conceptual art, relational aesthetics, institutional critique, and simultaneously into the digital, has not necessarily been a progressive, radical, or liberating one. In fact, it has often been restrictive, exclusive, faddish or closely tied to malign economic concerns. ● It is possible to make derivative or compliant work in even the 'freshest', 'most dynamic' media. Work that looks 'current' is, in truth, often immediately old-fashioned and redundant. The choice of any given medium, style, or mode of painting cannot, on its own, imply radicalism, relevance or intellectual value. ● A shifting practice like Kim's serves to remind us of the implausibility and fragility of these progress myths and fetishes. Across her paintings, what appears to be a sideways move, or even a backward one, might just as easily be seen as a move forward—out of a cultural dead end—out of another contemporary trap/trend. ● Resisting consistency means resisting categorization; resisting categorization means resisting commodification. The resistance of commodification (the stripping away of all meaning) is extremely important for painting, because it is more commodifiable than any other medium. As such, it is important as a clear, useful example to artists in other media.2) ● The consistent and commodified painter is tempted/encouraged to reproduce a single, recognisable, covetable product. The painter who relies instead on oscillation, inconsistency, ambivalence or irresolution is mobile, exploratory and becomes socially valuable. ● Of course, there are some threads we can follow through Kim's work. Subtly referential of classical painting tradition, her paintings seem to be in dialogue with a European (often Italian) quasi-landscape tradition. They are at turns reminiscent of Piero Della Francesca's framed, poetic stages; or Goya's odd, populated clearings; Morandi's mute, formal landscapes; Futurism's urban constructions, and De Chirico's intangible, self-containing piazzas. ● Her paintings also speak about performativity and process, often resolving themselves with intimate, but relatively bold, even nihilist moments and gestures. Next to, or on top of a figure or building, we come across an element of manipulated chance, what Bacon called 'free marks' (his also occurred on a painted stage). ● In Eun Jin Kim's work, these marks also lead us to a more unexpected door, that of another Italian, Lucio Fontana. In fact, it is not such a leap to imagine her paintings with slits in them, or with pieces of the canvas cut out. But what does this day-dream/extrapolation tell us? Perhaps it tells us that her paintings contain an innate consciousness of their materiality and objecthood too. ● Today, in places and spaces that consider themselves 'critically engaged', the abstraction/representation debate is thought of as deeply passé: we are multi-lingual, fluent and plural. We make less distinction between the abstract and the representational, we listen to music that defies easy categorization, while eating food born of other cultures. ● But in this 'enlightenment', we need to be careful not to suggest that we have reached our own 'end of history'. Look at the news: dialectics similar to those that brought us here are producing new (i.e. old) syntheses: new conservatives and new radicals. There is no end of history, it is eating its own tail and coughing it back up—'first as tragedy, then as farce' etc...etc…3) ● So, we shouldn't think of a 'third way' painting practice (one which moves freely between abstraction and representation) as some kind of final destination. It does us no good to suggest, like the abstract expressionists did, that all painting will be this way, and forever (even if we want that to be the case). ● Rather, we should think of it as indexical of wider, ongoing uncertainties—artistic,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A genuinely engaged and therefore shifting painter, Eun Jin Kim's practice poses questions of intentionality and agency that all artists ought to be asking themselves. ■ Sam Robinson

* footnote 1) Graw, I., 'The Value of Liveliness: Painting as an Index of Agency in the New Economy', in I. Graw and E. Lajer-Burcharth, (eds.), Painting Beyond Itself: The Medium in the Post-medium Condition, Berlin, Sternberg Press, 2016, p. 89. 2) See for example, John Berger's classic Ways of Seeing 3) From Marx's The Eighteenth Brumaire of Louis Napol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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