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풍경 LETTER LANDSCAPE

홍인숙展 / HONGINSOOK / 洪仁淑 / painting.printing   2018_0705 ▶︎ 2018_0729 / 백화점 휴점시 휴관

홍인숙_글자풍경-셔_드로잉, 채색_185.5×13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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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요일_10:30am~08:30pm / 백화점 휴점시 휴관

에비뉴엘 아트홀 AVENUEL ART HALL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월드타워점 6층 Tel. +82.(0)2.3213.2606 blog.naver.com/a_arthall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아트홀에서는 마음의 여유와 위안을 '문장'과 '그림'으로 나누고자 홍인숙 작가의 '글자풍경' 전시를 마련하였다. ● 민화인지 만화인지, 글자인지 그림인지 모를 독특한 화법(畵法)으로 가장 한국적 팝아트를 구사하고 있는 홍인숙 작가가 7년만에 여는 아홉 번째 개인전이다.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7년을 보냈다는 작가는 그간 쓰고, 정리하고 다스렸던 삶의 궤적을 이번 『글자풍경』전에 펼쳤다.

홍인숙_거룩한 썅_드로잉_168×134cm_2018

박제 된 글씨가 아닌 '살고 있는' 글씨 ●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시", "셔, "썅", "싸랑", "밥", "집" 등의 글자그림은 평범한 '한 글자'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크게는 2-3m, 작게는 1m남짓되는 널찍한 화판에 작은 꽃다발을 나란히 줄지어 만든 글자는 소박하여 오히려 의미심장하다. 작가는 왜 이 글자들은 선택했을까. 평소 글쓰기에 능한 작가는 일상의 사소한 생각과 메모, 낙서들을 그 때 그 때 남겨 두었다가 그녀만의 기발한 문장으로 만든다. 그 문장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간결한 단문_시어詩語가 되고 결국엔 이미지가 된다. 마치 수천, 수만의 의미를 담았을 일상 언어의 수고로움에 감사의 꽃다발을 건네는 것처럼 글자들은 작가가 만든 면류관을 쓴다. ● "사랑 지나니 싸랑, 싸랑 지나니 썅 / 거룩한 썅 /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썅을 봤나 / 한 사람이 중요하듯이 이 한 글자면 충분했다. / 박제 된 글씨가 아닌 살고 있는 글씨 / 십년 후에도 우린 사랑을 말하려나 / 사랑, 일상이었으면 좋겠다." (홍인숙) ● 이 작은 꽃다발들은, 밑그림을 그린 후. 그것을 먹지 위에 다시 눌러 검은 윤곽선으로 그린다. 이어 색깔 별로 판을 자르고, 롤러로 색을 칠하고, 그 색 판의 수만큼 프레스기를 돌려 판화라고는 하지만 에디션도 없는 그림을 완성한다. 고되고 어려운 작업이다. 요즘처럼 휘뚜루마뚜루 이미지가 생산되는 시대에 홍인숙의 작법은 미련하다 못해 신선하다. 제작과정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은 십중팔구 이렇게 묻는다. "왜 컴퓨터로 안 뽑으세요?"

홍인숙_사랑 지나서 싸랑 Love beyond love_드로잉, 프린팅_108×150cm_2009

가장 '홍인숙'다운 노동으로 태어난 작품 ● 그가 '가장 나다운 것'을 찾다가 고안한 이 방식은 드로잉처럼 빠르지도, 컴퓨터 작업처럼 매끈하지도 않다. 느낌이 좋아 사용하기 시작한 한지 위에 먹지를 대고 눌러 그릴 때 손의 압력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검정색의 느낌은 손그림과는 다른 '힘 뺀 그림'이 된다. 속에서 끓는 감정과 꼬리 무는 사유를 다스리고 다스리고 다스리다 나온 홍인숙의 '단문(短文)'이 구도자의 자세로 그려진 작법과 만나니 속스러운 것이 없다. "썅"이라는 글자가 이렇게 아름답고 거룩하게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속스러운 것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소위 '뽕끼'를 가진 홍인숙의 그림이 무엇보다 고운 이유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 "왈꽉 / 눈물을 / 웃음이 / 얼른나와 / 돌려보낸다. // 웃음이 / 눈물을 / 가르쳐준다." (홍인숙)

홍인숙_누이오래비생각_천에 물감_116×90cm_2011

가족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홍인숙의 신기한 그림 ● 이번 전시는 홍인숙의 작은 회고전 같다. 가족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자의 가차문자를 갖고 노는 말장난의 달인의 면모를 보였던 「後眞후진사랑」, 「큰 잘못」, 「무지개동산」 등 초기작품부터 글과 몸이 사라지고 덩그러니 얼굴만 그려 넣었던 「점점 동그래지는 얼굴」시리즈와 「명랑한 고통」시리즈, 그리고 2009년 이후로 서서히 그림과 글이 분리되어 「누이오래비생각 㝹二悟來飛生覺」시리즈와 「글자풍경」시리즈로 나뉘게 되는데, 각 시리즈의 대표작품들이 선보인다. 홍인숙의 문장과 그림을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그녀의 그림을 감상하게 될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최근 들어 그림과 글이 화면에서 점차 분리되는 것은 아마도 그녀의 삶에 군더더기가 빠지고 목적이 점점 단호하고 간결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에 늘 따라붙었던 시의 길이도 짧아진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홍인숙_글자풍경展_에비뉴엘 아트홀_2018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각인되는 작품들 ● 얼핏보면 추억의 만화가 떠오르고, 비례에 맞지 않는 커다란 눈에 꽃, 리본으로 장식한 소녀 등 작가의 독특한 회화 스타일은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도록 머리에 각인되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아버지의 낡은 책에서 발견된 어린 시절 자신의 낙서그림에서 비롯되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로 시작된 가족그림은 작가에게는 슬픔과 결핍에 대한 지속적인 재확인이자 치유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홍인숙_나무가 기도하는 집_천에 물감_80×116cm_2011

일관된 시점과 태도의 기록 ● 그 감정들은 작가를 끊임없이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해 마주하도록 만들었다. 일상을 읽고 사람을 사랑하고 주변을 애정하는 마음은 자기성찰과 반성으로 이어진다. 이어 작가가 선택하는 단어, 소재, 기법이 점점 하나의 목소리를 내게 하였다.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작가는 그림으로 자신을 둘러싼 일상에 일관된 시점과 태도를 잊지 않으려 차곡차곡 기록하는 것 같다. '사랑'에서 지나간 '싸랑'을, '시'에서 언어의 '위로'를, 대천의 욕지거리인 '썅'에서 '거룩함'을 새긴 것처럼 말이다.

홍인숙_스튜디오the소풍_2018년 6월 8일 촬영본 출고

들어가기는 쉬우나 나오기는 힘든 선문답 같은 그림 ● 시인 김민정이 이번 전시 서문에서 언급한 데로, '들어가기는 쉬우나 나오기는 힘든' 선문답 같은 그림들과 삶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여주는 이번 전시를 통해 마음의 휴식과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민화'를 가장 그럴듯한 팝아트라고 생각한다는 홍인숙의 작품은 이렇게 동시대의 삶, 마음, 언어를 담는다. 누구의 흉내도 아니고, 어눌하기 어눌한 이 그림을 우리가 '가장 한국적인, 어찌보면 가장 아름다운 팝아트'라고 부르는 이유다.

홍인숙_글자풍경-화해_천에 물감_116×90cm_2011

시인 오은, 박준, 김민정과 함께 홍인숙의 그림을 읽는 시간 ● 여름이면 갤러리들은 아캉스 (Art Vacance)를 주제로 전시를 연다. '예술로 보내는 바캉스'라는 의미로 단순한 바다그림이나 여름풍경이라면 그닥 재미는 없을 것 같다. 우리를 둘러싼 일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홍인숙의 '생각', '그림', '시어詩語', 그리고 진정 사람에 대한 '애정', '사람사랑'이야말로 예술로 하는 휴식이 아닐까. 전시 중 매주 목요일 밤(19:30, 에비뉴엘아트홀)에 많은 대중에서 폭넓은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오은, 박준, 김민정 시인과 함께 홍인숙의 그림을 읽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문학 안에서 그림과 가장 유사한 시詩를 통해, 풍경이 모여 글자가 되고 글자가 그 풍경을 아우르는 진기한 경험을 함께하기 바란다. ● "누군가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는 없더라도 아주 작게나마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삶은 사건 사고가 아니며 마음 때가 있어야 함을 알게 된다." (홍인숙)성윤진

홍인숙_스튜디오the소풍_2018년 6월 8일 촬영본 출고

이 여자의 미침에 미쳐보는 이야기-홍인숙의 『글자 풍경』에 부쳐"미친년이 그렸겠다. 그렇지 않으면 감당 못 할 큰 그림들이다. 곱게 미친년의 그림." (홍인숙) ● 그러고 보니 이 여자의 미침을 꽤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것 같다. 이 여자의 미침에는 다분히 미치지 않을 것도, 미치지 않을 곳도 없었으렷다. 다른 건 몰라도 내 그거 하나는 분명히 알았다. 그리하여 일찌감치 이 여자 몰래 이 여자를 좇아왔다. 그리하여 시종일관 이 여자가 그린 기린 그림의 세계를 좇아왔다. 이 여자의 미침을 쥐고 있는 이 여자의 붓끝을 좇아왔고, 이 여자의 미침을 수렴하는 이 여자의 말끝을 좇아왔으며, 이 여자의 미침을 발산하는 이 여자의 손끝을 좇아왔다. 순전히 내가 좋아서, 내가 미쳐서 행한 내 식대로의 사랑법이었다. 발소리가 들킬까 버선발로 땅을 쓸듯 그림자를 훔치는 사랑이었고, 말소리가 훼방놀음일까 전화는 먼저 걸지 않는 사랑이었으며, 그러나 글소리는 가장 먼저 지르게 하고 싶은 욕심에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당일배송 서비스를 자주 애용하게 만든 사랑이었다. 이 여자였으니까, 미쳐서 행하는 이 여자의 미침 끝에 저어기 내가 환장해 마지않는 예술의 본령이 요령처럼 소리 내고 있었으니까, 그거는 내가 진즉에 보아버린,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간절함의 두 손 모음, 그 뜨거운 깍지였으니까. ● 이 여자가 손에 쥔 붓은 하늘을 날게 하는 빗자루다 싶을 적이 매사였는데 그 위에 올라탔다 내리면 하여간에 펼쳐진 드넓은 대지가 신출이면서 기묘이기는 하였다. 낯섦이 주는 성근 외로움은 얼마 안 가 유일무이한 안도로 바뀌어 날 촐랑촐랑 뛰거나 저벅저벅 걷거나 누워 코 골게도 하였는데 이때의 자유가, 이때의 자연이야말로 이 여자의 미침이 내게 주는 축복만 같았다. 나로 하여금 완전 놀고 자빠지게 하는 힘의 주인인 이 여자의 미침은 그 즉시로 꽃은 괜히 피는 것이 아니고, 새는 괜히 나는 것이 아니며, 산은 괜히 서 있는 것이 아니고, 나무는 괜히 뻗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선문답 같은 것을 자문자답하게 하곤 하였다. 이 여자의 미침이 제 미침을 모르고 그려나간 세상, 그 안으로 들어올 때의 수월함과 달리 돌아나갈 때의 난감함은 특유의 리드미컬한 '뽕끼'와 '뽕맛'으로 경직을 벗어놓고 유연을 입게도 하는 바, 덕분에 나는 일상의 갑옷을 벗고 이 여자의 미침이 첫 한 모금이 된 해방에서의 해빙기를 자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처마 밑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나는 비가 아니라 눈물이라 한두 번쯤은 발음했던 것도 같다. ● 이 여자가 내뱉는 말은 정의하고자 하는 대상의 등짝을 구름판 삼아 더 높이 더 멀리 날게 하는 적이 매사였는데 그 와중에 착지를 하면 하여간에 펼쳐진 세상이 겹겹으로 살찐 모란꽃들의 군락지처럼 풍성하기는 하였다. '화해'라 할 적에, 그 화를 꽃이라 이름 할 적에의 뜻하지 않은 그 명명이 발화되는 순간 세상은 얼마나 환해지는가. 이 여자의 미침이 키워내는 말들은 풍년의 이삭으로 허리가 저리게 굽은 벼 같아서 그게 된밥이든 진밥이든 떡밥이든 죽밥이든 풍성한 저녁 식탁을 상상하게도 하는 바, 혀끝으로 살짝 침을 발라 창문에 붙이면 용케도 잔치가 되는 셀로판지의 재주처럼 이 여자의 미침이 우리에게 보내는 '뗄레빠씨'의 신기는 '신끼'라 하는 된장 같은 된소리에서, 사랑이 '싸랑'이 되는 쌍나팔 같은 기적에서, 샹이 '썅'이 되는 거미줄 같은 거룩함에서 무조건적으로 자발적인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하여 우리는 이 타이밍에 '복종'이라는 단어를 겁도 없이 갖다 붙일 수가 있게도 되는 것이다. 이 여자의 미침이 가장 뜨겁게 품고 있는 불씨야말로 솔직함이 아니던가. ● 이 여자가 쓰는 책은 입말과 글말 사이에서 춤을 추는 터라 읽는 우리들의 뼈와 근육이 제자리에 있나 하는 가늠을 매사에 하게 하는데 그때마다 무중력의 언어 부스러기들로 춤꾼의 사위를 선보이는 이 여자의 원심력에 나도 모르게 내 중심을 맞추는 나를 발견하게도 된다. 이 여자가 쓰는 책. 이 여자밖에 쓸 수 없는 책. 이 여자의 미침이 더더욱 회오리를 치는 책. 이 여자의 미침으로 더더욱 헤집어지는 책. 이 여자의 미침에 가늠좌를 떨어뜨려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이 여자만의 책, 결국엔 이 여자의 미침이라는 맹목적 놀이를 두고 한번 놀아봐라, 앞에서는 박수를 쳐주고 놀다 죽으면 어쩌나, 뒤로 돌아 기도하게 만드는 책. 그렇게 이 여자가 되는 책. 이 여자의 미침이 부리는 놀이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함일까. 메시지로부터 매 순간 미끄러지는 사유, 사유로부터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고집, 고집으로부터 두 말 없이 수갑을 차버리는 순종, 그 순종에 색동저고리를 입은 이 여자의 미침은 결국 마음으로 향해 가는 것이 아닐까. 그 마음으로 향해 가는 와중에 만난 삶의 개꼬리를 총채처럼 흔드는 것으로 삶의 이정표를 대신하려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여, 마음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 마음의 일상에서 '좋은 지금'을 말하려 하는 일은 얼마나 외로운가, 그 외로운 마음의 일상에서 맞닥뜨린 글자들의 풍경은 어쩜 이다지도 쓸쓸한가. ● 어렵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 마음이라 할 때, 그 마음의 이름을 창문이라 할 때, 이 여자의 미침이 파낸 창 하나와 우리는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이렷다. 호호 불어 닦을 것인가. 가만 쳐다만 볼 것인가. 돌 하나를 던져 파문의 파편을 사방팔방 튀게 할 것인가. 뭐 그건 당신들 마음에서 오는 자유자재의 필살기니 알아서들 하시라는 당당함의 이 여자, 앞에서는 그럴지언정 뒤에서는 무명수건 펑펑 적셔가며 울고불고 할 이 여자, ● 그러고 보니 이 미침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여태껏 나는 그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였구나. 그래서 누구라고? 홍인숙이라고! ● "妃 豆 理 如 多 情 韓 / 人 如 人 / 長 米 花 圓 / 宇 巨 眞 / 如 家 作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 장미 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김민정

Art Talk 시인이 읽는 그림 - 일시: 7월 5일(시인 오은_셔) / 12일(시인 박준_사랑) / 19일(시인 김민정_썅) 19:30 - 문학동네시인선의 베스트셀러 작가 3인, 오은, 박준, 김민정이 홍인숙 작가의   대표화제(畵題) 셔, 사랑 지나서 싸랑, 거룩한 썅을 읽어봅니다. - 장소: 에비뉴엘아트홀 (전시장內)

Vol.20180705e | 홍인숙展 / HONGINSOOK / 洪仁淑 / painting.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