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적는 생활 Re-Composed

민준기展 / MINJUNKI / 閔濬基 / painting   2018_0706 ▶ 2018_0719 / 월요일 휴관

민준기_re-composed_캔버스에 혼합재료, 한지, 콜라주_130×97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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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기 홈페이지_www.minjunki.com

초대일시 / 2018_0706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30pm / 월요일 휴관

메이크갤러리 MAKE GALLERY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89-16번지 2층 Tel. +82.(0)2.3141.1713 www.makegallery.net www.instagram.com/make_gallery

다시 적는 생활: 시간의 건축학, 사진의 기억술 1. 민준기는 일상(생활) 속 기억의 한 조각을 발견/발굴하고 감관으로 살펴 표상 화한다. 경험의 저장과 기명의 유지, 유지의 회상이란 온전히 독자적이며, 질량의 가늠조차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1) 작가는 그 개별적인 시간의 세계 속에 안착된 것들을 예술의 주제로 삼는다. 작가 또한 "나의 작업은 일상이며 생활이다."라며 "지나간 것들의 기억을 재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진을 통해 과거의 순간, 기억들을 담아 추억한다. 과거의 경험, 그것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아련함, 그리고 현재의 자신 또는 누군가가 내 작업의 주된 주제이다."라고 말한다.2) ● 이 주제를 간략하게 함축하면 '리얼리즘이 접목된 삶 속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재현'이다. "작업이란 내 생활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주고 또 나를 만드는 중요한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삶 속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재현은 사적 영역이며, 작가가 선택하여 보여주는 이미지들 또한 개인의 영역을 이탈하지 않는다. "그때의 그때를 지금의 내가 다시 만들어낸다."는 발언은 그렇기에 이해될 수 있다. ● 주제표명을 위해 먼지 켜켜이 쌓인 기억을 더듬어 그가 선택한 한 장의 사진은 시간의 발견 혹은 발굴의 시작이다. 사진을 덧댄 한지를 낱낱이 찢어 재구성한 일상의 이미지는 삶의 찰나로써 사라지는 어떤 것을 재현하는 통로이다. 이 가운데 찰나로써 사라지는 것들의 재현은 민준기 작업의 핵심이다. 어쩌면 '사라지는 것은 영원히 사라지지만, 그 사라지는 순간이 사진에 의해 정지될 수 있다'와 '기억이 그 순간을 되살릴 수도 있지만 기억이 되살리는 순간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부족하거나 왜곡된 두꺼운 시간이다.'3)과도 맞닿을 수 있다. ● '두꺼운 시간'은 멈춰진 시간 내 작가 자신에 의해 고공되고 조립되는 시간을 가리킨다. 하지만 조형에서의 '두꺼운 시간'이 대신하는 건 물질로써의 오브제 역할까지 맡는 한지4)다. 한지는 그저 물질이 아니라 유닛의 기억을 일체화하는 것이며, 하나의 구조물로 구축되는 기억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대상을 고스란히 옮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5) ● 그렇게 해서 드러난 결과물은 선후의 미적교차다. 다시 말해 작가는 한지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만나게 하고, 순서를 뒤바꾸며 기억 어딘가 접혀 있는 시간과 공간을 소환해 이미지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래의 위치가 온존한 공간과 시간의 혼합을 거쳐 시각화 된 이 한지조각과 이미지는 일종의 자기 방식적 '적어나가기'와 다름 아니며, '제시' 및 '읽어가기'의 연장이다.6) 작가는 이와 같은 프로세스를 통해 새로운 오늘을 복기한다. 작업의 이유를 찾는다.

민준기_다시 적는 생활 Re-Composed展_메이크 갤러리_2018
민준기_다시 적는 생활 Re-Composed展_메이크 갤러리_2018
민준기_re-composed_캔버스에 혼합재료, 한지, 콜라주_162×334cm_2018

2. 민준기의 작업에 부유하는 일상, 기억, 찰나, 재현, 재생이란 명사들은 언뜻 명료하지만 본래 비정형적이면서 추상적인 속성을 띤다. 사진은 또렷함을 증명하려는 반면 그가 다루는 주제와 의식은 사실상 반대이다.7) 그만큼 매체와 의도의 상반됨을 조형으로 실제화 하는 건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다. 조형과의 간극을 지닌 일반인은 당연하고 예술가 역시 이 지점에서 곤란을 겪기 일쑤다.8) ● 상념·개념 또는 의식내용에 버금가는 모든 일상의 요소(어떤 것에 대한 반응과 상황, 현상 등)들이 나와 우리의 지근거리에 다양하게 포석되어 있지만 그것을 미적으로 도출시키는 것 역시 쉬운 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인지하는 미적가치와 대상의 징발이란 기실 만민 동일 분동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러나 소통의 도구인 이성과 논리는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보편화화 하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를 묶는 예술가적 직관은 언제나 동일한 결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어떤 것을 재현하고 무언가를 반추토록하며, 자신만의 언표를 통해 메시지를 생성하기 위한 수고를 멈추지 않는다.9) ● 민준기도 그렇다. 때론 서정적으로까지 읽히는 여러 작업들은 하나의 논픽션 혹은 에세이처럼10) 놓이며, 그의 눈과 시선이 닿는 지점에선 실체의미의 불을 지피는 것과 소멸의 단락 사이에서 환유된 삶의 정적이 엿보인다. 그건 나름의 조형과정이나, 어떤 면에선 자신만의 언표11)를 생성하기 위한 고민이요, 산물이다. 그리고 이 언표는 곧 민준기 식 언어의 시작점이 된다. 또한 기 기술한 일상, 기억, 찰나, 재현, 재생이란 명사들을 기표화 하는 기본 알고리즘이다. ● 흥미로운 건 미적 태도가 형식이 될 때 감춰진 것들이 비로소 실체를 획득한다는 점이다.12) 거개의 예술이 그러하듯 굳이 문자화하지 않아도 느껴지고, 알거나 알게 되는 과정에서 머리보다 가슴이 앞설 때 자연스럽게 공감은 생성되는데, 민준기 작업 또한 궁극적으론 그곳을 향해 열려 있다. 때문에 그의 작업에선 그 어떤 불명확한 관념(그것이 사변적일지라도)도 형식미와 미적 태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경우 가시성은 공고해질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 사진을 베이스로 한 그의 작업들은 목소리가 크지 않으나, 선택과 조합, 조화를 동반한 시공의 테를 덧댐으로써 공유되는 소리들은 그리 나지막하지 않다. 작업 내부엔 욕망마저 비워버린 무언가가 똬리를 틀고, 시각적 범주에서 벗어나 세상 보기와 상상하기, 적어나기와 읽어가기에 방점을 두고 있는 작가의 의도가 감각적으로 개척되고 있다는 게 보다 강하다. ●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선택-시간-공간-한지-구성-재현이라는 재료를 통한 '시간의 건축학'으로부터 하나의 기억술을 더해 조형언어를 구축하는 민준기의 작업은 확장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더디고 더딘 발걸음을 담은 영상작품에선 심각하지 않은 내재율을 보여준다. 상영 시간은 짧으나 긴 여운을 생성하는 이 영상은, 작업의 지속성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자 작업의 일관성과의 개연도 짙다.13) 왜냐하면 민준기 작업이 내면으로 침잠하는 개인적 미학만을 쫒는 경향이 강한 것은 아니라는 점, 분리된 직관과 이성을 통해 예술성이 무엇으로부터 발현 될 수 있는지 진득하게 되묻는 탓이다.14)

민준기_re-composed_캔버스에 혼합재료, 한지, 콜라주_97×130cm_2018
민준기_re-composed_캔버스에 혼합재료, 한지, 콜라주_80×80cm_2018

3. 오늘날 민준기의 작업은 그 어느 때보다 내면의 세계와 확장된 메시지가 담긴 세계를 자유롭게 횡단한다. 숱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마주친 장면들, 잃어버릴 듯한 아슬아슬한 기억들을 되살려 나름의 스토리와 목적형 좌표를 사진으로 좌표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만든 자, 보는 자들 간 동시성의 거울이고, 작가에게 있어 그 거울 같은 공간은 그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집약하는 심원한 상징이다.15) 특히 적막하듯 일렁이는 장면들,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에게 엿보이는 불특정 다수의 멈춰진 귀정, 바다를 배경으로 삶의 어떤 찰나를 드라마처럼 구성한 작업들이 그 횡단의 거리를 보여준다. ● 민준기는 마치 연출가처럼 하나의 단초로부터 시작된 이런 유형의 작업을 통해 인지되어 넓혀지고 공감할 수 있는 시공을 화면에서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 시공의 재구성은 단지 가시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한편으로는 사람과 도시, 공간 속에 떠도는 숱한 말들의 결처럼 인식을 통한 현실의 직면, 소통의 미학에 무게16)를 보여주며, 사진의 기록성, 현장성이 존치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본적으로 사진의 역할도 포기되지 않고 있다. 특히 그 무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들은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으며, 내레이션에 대한 종속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 그보단 시공의 터전 위에서 발견 혹은 발굴된 장면, 저장되거나 공히 익숙한 사실성을 재생산함으로써 일정한 공유를 도모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사적인 것이지만 보편적 단락의 연속이면서 동시에 너무나 친숙해 발견되지 못한 것의 발견 또는 흔적의 열람을 통한 삶의 지층을 덮고 있는 어딘가를 건드리기 위한 시도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표피적인 현상의 적시가 아닌 존재성에 대한 고찰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민준기_re-composed_캔버스에 혼합재료, 한지, 콜라주_80×80cm_2018
민준기_re-composed_캔버스에 혼합재료, 한지, 콜라주_90.9×60.6cm_2018

실제로 그의 작업들은 분명 이야기가 있고, 그렇기에 드라마처럼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에 비유된다. 더불어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는, 하나의 층위에서 유동한 채 존재너머의 존재까지 열람하게 한다. 이는 지상적인 어떤 형상과의 결합 속에서 위치를 구성하는 방식으로써 자리하며 기록의 재구성을 거쳐 리얼리티를 상정하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사진 속 피사체의 형상만으로는 확인 불가능한 민준기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17) ● 다만 민준기의 작업에서도 아쉬움은 있다. 우선 탈경계의 시대에서 예술은 인문학적 집합소와 같다는 것을 유념하고, 매체의 확장성을 견고히 하여 거시적 관점에서의 의지도 요구된다. 그래야 화자의 말참견이 좌절되는 언어 저편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으며 망막에 호소하는 언어가 아닌 느낌과 감각으로 전유되는 인간 삶이 부여된 장소와 장면으로 스스로를 승화시킬 수 있다. 특히 자전성은 밀도가 높을수록 나와 우리라는 공동체 속 내밀한 역학관계가 희석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개인 내면의 목소리를 넘어 공간의 특성과 사회적 맥락, 그리고 탐색이 함의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적는 생활'에서 도약해 '다시 쓰는 예술'을 위해 말이다. ■ 홍경한

* 각주 1) 그것은 동시대미술의 속성처럼 자전적, 개별적이다. 2) 작가 민준기의 작가노트 3) 『사진매체의 윤리학, 기호의 미학』 주형일, 인영, 2006.08,18. 4) 여기서 한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 한지로 인해 사진은 거울과 같은 냉정함으로 외부를 베껴낼 뿐이라는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사진비판의 관점은 허물어진다. 5) 한편으론 믿어 의심치 않는 사진자체는 기억의 소환을 스스로 행할 수 없는 비의지적인 매체임에도 작가의 개입에 따라 기억의 수장고에 쌓인 시간을 불러내는 것이며, 그 불러냄을 한지라는 재료로 도출시킨다는 것에 근접한다. 6) 작가는 작가노트에 "어쩌면 나는 그린다보다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그때를 지금의 내가 다시 만들어낸다. 작업이란 내 생활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주고 또 나를 만드는 중요한 것이다. 일상이며 생활이다."라고 적었다. 7) 앞서도 언급했듯 추상적이면서도 관념적이다. 8) 일상, 그것은 누군가에게 예민한 촉수를 건드리는 시그널이 되지만 혹자에겐 단지 권태로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은 범인(凡人)들과는 약간의 차이를 지닌다. 일례로 보통의 사람들은 어떤 대상과 현상에 피동적이거나 수동적이지만 예술가들은 개인의 개체적인 상황과 환경이 다르고 조건과 가치관이 상이한 가운데서도 무언가를 선택하고 제시한다. 작가 스스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들, 발언이 요구되는 것들을 비롯해 여러 현실적인 조건들과 심리적인 가치들을 버무려 뜻밖의 결과물을 생산해낸다. 우린 그 결과물을 '표상'이라 부르고, 표상은 곧 역사적 동시대성에 속한 개별적인 속성의 예술가를 일컫는다. 9) 일례로 화가는 정신에 구현된 화상을 화폭 위에 풀어낸다. 소설가는 정신에 구성된 스토리를 종이 위에 그려낸다. 음악가는 쉽게 사라지고 마는 소리를 청각의 운율에 맞춰 거둬들인다. 이들은 모두 입체적 현실을 다층적 미학 아래 포획하며, 그 자체로 맞닿아 있다. 10) 문학으로 치면 에세이나 서정시에 비유될 만하다. 11) 이 부분에선 과거의 평론을 옮겨올 필요가 있다. 당시 필자는 그의 2011년과 2014년 평론을 연계하며 작가의 주제와 맞물린 형식적 변화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민준기의 사진 작업은 기억을 영원함 속에 포박함으로서 변하지 않는 카테고리를 생성하고, 그렇게 생성된 목록은 일개의 형식에서 벗어난 가시적인 것과 언표 가능한 것의 가변적 조합으로 재생산 된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장르 간 경계가 사라진 작금 그의 사진은 어떤 표현을 위한 적절한 장치이거나 작업의 주제를 더욱 주제답게 이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고 덧붙였다. 그런 그의 작업이 2014년과 2018년에 이르러 장르의 경계 넘기를 통해 또 한 번 새롭게 확장 및 전개되고 있다. 우선 2014년엔 기억을 쌓고 거두는 기존 행위를 확대한 작업으로 형식의 확산을 꾀하고 있는데, 지난 2011년 전시에서 보여준 낱장의 사진작업은 층을 이루고, 층을 형성한 사진들을 거푸집 내에 존재시킴으로써 보다 집약되는 결과를 내보이고 있다. 나아가 그 집약은 기억의 축적으로, 갇힐 수 없는 것들 혹은 갇히지 않을 것들, 갇혀야 할 것들을 편집, 누적시키고 포개놓는 방식 아래 이전 대비 훨씬 견고하게 옮겨 놓고 있다. 12) 만약 그가 발견하고 선택한 하나의 사진이 그저 그렇게 앨범 속에 놓이거나 기억 어딘가에 머물고 만다면 시각성은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민준기는 이 틈을 파고들어 조형언어로 치환한다. 13) 누군가의 발걸음을 느리게 보여주는 영상작품은 민준기가 설정한 배경과의 조화로움, 적절한 소리, 사고와 기억의 기술에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도록 한다. 그건 어쩌면 사실적 상상력이라 해도 무리는 없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2014년 작업에서도 선보인바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간의 순연' 드러내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접근법은 다르다. 일례로 2014년 전만 해도 작가는 일종의 비물리적 연속성을 따르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분절(分節)시키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캔버스에 덧입혀진 조각난 한지를 통해 드러내 왔다. 한지를 잘라 캔버스에 조각조각 덧입히는 과정은 그것자체로 기억의 찰나를 기록하는 행위라 해도 그르지 않았으며, 인간의 정신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단상들을 일일이 채록하여 안착시키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작업은 내용에 맞춰 형식은 얼마든지 다변적일 수 있음을 추구함이 읽힌다. 14) 이와 관련해 민준기의 2011년 전시에서 선보인 각각의 파편들은 시간의 순연에서 탈선해 그 자체로 유의미한 다양한 집결을 내보이는 체계를 규정했다면, 2014년 개인전 당시의 작업들은 탈구축이라는 방향선회를 통해 열린 체계를 보다 강조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흐름은 2014년 전시에서도 나타났는데, 당시 필자는 개인전 서문에서 "단일 형식으로 재현되었던 기억의 집약체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이는 오늘의 상황과도 맞닿는다. 정지된 것이 아닌 시간의 연속성을 가시적으로 증명하고 있으며, 이전 사진콜라주를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가물가물해지는 기억을 잡아들이려 했다면 이젠 하나의 영화 같은 흐름으로 근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썼다. 15) 이는 달리 말해 예술성에 있어 부재와 재생의 언표로부터 소통의 원형과 복원으로, 내구적 관점에서 외재적 시선으로의 옮김과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며, 사적으론 전혀 다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재상정하려는 의지의 부표와 갈음된다. 16) 이처럼 그의 작업은 스스로 선택한 가상의 세계, 리얼리즘이 바탕이 된 실제 현실이 덧입혀지는 세계에서 태도와 형식, 공간과 시간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예술형식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17) 민준기의 예술은 아직 혹은 미처 밖으로 나오지 않은 상태 또는 관념적 상태의 어떤 것을 실제로 이미지화한 것이랄 수 있다.

Vol.20180706f | 민준기展 / MINJUNKI / 閔濬基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