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현실이 되다.

강세경展 / KANGSEKYUNG / painting   2018_0711 ▶ 2018_0716

강세경_Seen201805_캔버스에 유채_65×91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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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711_수요일_06:00pm

가나아뜰리에 작가 기획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관훈동 188번지) 제3전시장 Tel. +82.(0)2.720.1020 www.insaartcenter.com

가나아뜰리에 강세경작가(44)는 '현실'과 '욕망', '개인'과 '군중' 등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보편적 이슈를 저마다의 발랄한 기지와 유희적 상상력으로 그려낸다. 극사실적이면서도 세련된 도시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그녀의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흑백과 컬러, 평범한 거리의 풍경과 호사스럽게 치장된 꿈의 자동차, 프레임을 경계로 갇힘과 벗어남 등의 상충되는 개념은 현실로부터 끊임없이 일탈을 꿈꾸게 하는 욕망의 충동적 속성과 반복성, 현실을 벗어나서는 이야기될 수 없는 욕망의 한계를 시각화하여 드러낸다. ● 2010년부터 가나아뜰리에에 입주하여 작품활동을 해 온 작가는 11일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시작한다. 견고한 액자 틀 밖으로온전하게 나오지 못한, 화려하게 채색된 고전풍의 자동차 그림으로 오랜 기간 작품활동에 매달려온 작가가 최근작 등 20여 점을 선보이는 가나아뜰리에 초대전 성격의 개인전이다. 한국 젊은 작가의 작품활동을 주도한 강세경작가의 작품을 통해 시대적 고민을 안고사는 현대인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작가정신을 탐색할 기회다.

강세경_seen201806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8

2일 가나아뜰리에에 만난 강세경 작가는 "모든 것은 내 머릿 속 기억들과 느낌을 점차 추구하였으며,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콘크리트 건물들 틈으로 다양하게 얽혀있는 공간의 이미지와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역동성과 정체성의 도시 이미지를 사람이 부재되어있는 건축물과 자동차들만을 흑백 이미지로 옮김으로써 실제 세상과 전혀 다른 비 실존감의 재 가공된 도시이미지를 통해 현실 세상의 저편을 한번쯤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흑백의 이미지가 얽혀있는 공간이 늘 등장한다. 그 속을 뚫고 나오려는 화려한 색상의 자동차가 꿈틀되는 이미지는 매우 복잡하지만 표면의 색채, 공간의 조합이 묘한 아우라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복잡한 그림보다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 초창기 평면회화에 흑백이미지를 주로 다뤄온 강세경작가의 작품세계는 가나아뜰리에에서 10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진화'를 거듭해왔다. 작가는 본인이 작품 속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주요 이미지는 하이퍼 리얼리즘의 주요 표현기법을 통해 도시라는 한정된 공간속의 현실적 모습과 비현실적인 개념적 이미지를 중첩시켜 보는 이들에게 잠재된 기억을 재생시키고, 모순된 도시 속에 존재하는 자아의 새로운 발견을 시도하는 것이다. ● 현실과 또 다른 현실을 결합시키거나 상징과 또 다른 상징들을 충돌시켜 전혀 새로운 공간개념과 의미들을 창출하는 것이 현재 내가 추구하는 작업의 주제라고 말했다. ■ 가나아뜰리에

강세경_Seen201707_캔버스에 유채_72×91cm_2017

작가 강세경의 근작에 대한 소론-강세경의 'seen' 비현실의 현실과 부재 속의 현존1.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의 『지각의 현상학』에 따르면, 사물을 본다는 것은 지각의 현상학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얻은 것이다. 세계는 미적인 것은 물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모든 관계의 원천이며, 특히 예술은 세계로부터 이탈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탐구한 결과이자 세계의 일부이다. ● 위 주장을 대입하면, 예술가는 그 세계 내 존재로서 '반응'하고, '반응'은 자신의 욕망 및 감정과 묶여 하나의 표상동기를 생성한다. 이후 조직화한 지각을 통해 일정한 표상체, 다시 말해 조형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방식이야 어떻든 조형은 세계로부터 취득 및 습득한 개체들을 예술가가 내재화‧동기화한 것이며, 이것이 효과적으로 옹립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미적 게슈탈트Gestalt는 완성된다.

강세경_Seen201707-02_캔버스에 유채_91×72cm_2017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예술적 결과물은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세계에 흩어진 낱낱의 것들을 각자 취사선택해 전체를 만들고, 우린 그 전체에 대해 특별히 추구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꽤나 사변적일 수도 있어 시시하거나, 때론 충분히 건설적인 논쟁의 이슈가 되기도 한다. 이때 수용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바쟁Andre Bazin의 말처럼 어떤 이는 '미라 콤플렉스'mummy complex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과거를 안치하는, 시간을 가두는 방식으로써의 예술을 보여주며, 또 어떤 이는 복제화 한 외부 세계의 동일한 대리물임을 다양한 흔적으로 보여준다. ● 작가 강세경의 경우는 전자에 충실하다. 캔버스는 일종의 주형mould이고, 이미지는 방부처리 된 시간이다. 인과적이고 실존적인 테두리에서 만들어지는 리얼리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필자의 이와 같은 시각은 "내 주변의 일상적인 모습과 사람들을 그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웠다."는 작가의 발언이나 "작품 속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주요 이미지는 극사실주의의 주요 표현기법을 통해 도시라는 한정된 공간속의 현실적 모습과 비현실적인 개념적 이미지를 중첩시켜 보는 이들에게 잠재된 기억을 재생시키고, 모순된 도시 속에 존재하는 자아의 새로운 발견을 시도하는 것이다."라는 작가노트에서도 확인된다. ● 이는 삶과 연계된 일상의 리얼리티(한정된 공간속의 현실적 모습)를 반영하려는 순수 미학적 열망과 세계 내 존재로서 지각된 무언가(기억의 재생과 자아의 새로운 발견)를 표현하려는 정신적‧심리학적 욕망이 고루 녹아 있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또한 지극히 정적인 실존성을 바탕으로 한 자기구성의 기술을 살필 수 있다.

강세경_Seen201703_캔버스에 유채_193×259cm_2017

2. 강세경의 작업(그 중에서도 「SEEN」 연작)을 굳이 분류하자면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계열에 속한다. 고도의 테크닉과 예술적 감수성으로 주변의 일상을, 대중적 속성을 미술이라는 명제 아래 수용하려는 미적 태도나, 우리 눈앞에 실재하는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주관에서 발현된 표상의 동기가 결과적으론 객관화, 중성화 되어 있고, 화면은 전반적으로 냉정함과 무표정함으로 드러난다는 것에서도 하이퍼리얼리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나아가 어떠한 비판적인 논리조차 부여하길 꺼려한다는 점에서 강세경의 작품은 분명 하이퍼리얼리즘의 형식을 따른다. ● 물론 외계의 실재를 파악하는 인식태도에서부터 사물의 객관적인 존재에 대한 신뢰, 있는 그대로의 주어진 현실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진실 되고 거짓 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나, 현실과 현실성의 문제를 다루며 '실재와 실재에 담긴 실재성'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탑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의 작업이 하이퍼리얼리즘임을 증명한다.1) ● 그러나 강세경의 작업은 비현실주의unrealism적인 흐름도 엿보인다. 극사실주의 작가들은 극히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이미지에 시선을 돌려 그것들을 확대하거나 실물처럼 재생시켜 영속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에 나름의 깊은 의미를 지니지만 강세경의 비현실주의는 사고를 유발하는 대상에 객관적, 구체적인 존재를 포함한 '존재 가능성의 실재성'까지 포섭하기에 하이퍼리얼리즘은 방법적 측면으로 귀속되는 감이 있다. ● 이런 논리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그의 작가노트에 대략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내 작업은)도시의 주체인 사람을 작품 속에서 배제시켜 비현실적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며 그 공간속에 현실을 하이퍼리얼리즘 기법과 흑백 이미지로 가두고 비대칭적 개념인 상상속의 공간을 의미하는 컬러이미지를 차용하여 재구성된 상상력의 도시를 만들어내며 그 속에 숨은 인간본성의 욕망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강세경_Seen201704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17

여기서 작가는 비현실, 다시 말해 현실과 현실이 아닌 현실을 컬러의 대비와 사물의 조응으로 풀고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대칭적인 상황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엔 컬러와 흑백의 배경이나 정지됨과 동적인 사물, 자연물과 인공물, 꽉 막힌 프레임과 개방된 공간을 관통하는 지속과 찰나, 과거와 미래, 일상과 미지의 영역이라는 개념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 이 가운데 자동차는 현실과 비현실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기표다. 누구나 알고 있듯, 자동차는 인간문명이 잉태한 물질욕망의 대리물(그것이 보기 드문, 소유욕을 증가시키는 클래식자동차라면 더욱 더)이면서 동시에 자유의 기호이다. 물리적으론 단지 쇳덩어리에 지나지 않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자동차는 분명 부의 차별화를 지닌 하나의 지표이고, 자동차를 탄 채 그랜드 캐니언에 돌진하던 장면이 인상적인 『델마와 루이스』의 두 사람처럼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하는 매개이다.2) ● 따라서 작가의 자동차는 정체되어 있는 현재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희망을 함께 담보하는 문법의 일부이며, 찰나의 오늘과 새로운 미래를 교차시키는 표지다. 또한 실재를 포괄한 현실의 상징이기에 가시적 혹은 심적으로 진실한 좌표를 제공하는 사물인 반면, 다른 세계로 연결하는 다리역할까지 도맡은 구동체이다.3)

강세경_Seen201709_캔버스에 유채_91×116cm_2017

3. 강세경 작업의 핵심적인 표상언어인 자동차 외, 작가의 작품에서 눈에 띄는 건 흑백의 배경과 화면주변을 에워싼 프레임Frame이다. 이 중 흑백배경은 누가 봐도 갇힌 현실, 현실이 아닌 현실을 의미한다. 매우 꼼꼼하게 그려져 리얼리티를 배가시키지만 어딘가 실재하는 듯한 느낌은 심어주지 않는 것도 현실과 현실 아닌 상황이 동시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 이에 관한 작가의 설명은 필자의 견해 보다 조금 더 자전적이다. 그는 흑백배경에 대해 "우리 눈에 비치는 현실적인 거리 풍경이지만 흑백으로 그려져 단조로우며 지루한, 나의 의지대로 사는 능동적인 삶이 아니라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의 형태, 우리가 일상적으로 추구하는 일차적인 욕망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 하지만 흑백배경은 여러 레이어를 갖고 있다. 작가의 의도처럼 '단조로우며 지루한, 나의 의지대로 사는 능동적인 삶이 아니라,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의 형태, 우리가 일상적으로 추구하는 일차적인 욕망'과 함께 힘들었던 작가의 개인사가 투영된 공간일 수도 있고,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의 자동차에서마냥 멈춰버린 기억의 저장소(지워버리고 싶은 혹은 그 기억 자체)로써 병치된 이미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세경_Seen201711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17

중요한 건 흑백배경에서의 '흑백'으로, 이것은 자동차나 여타 사물에게 부여한 색채(밝고 강한 색깔들)에서 비롯되는 것들, 즉 살아 있는 생명과 생의 리듬, 희망과 같은 것들이 배제된 현실을 말하고 있음에도 그 흑백배경이 없다면 내일/미래/희망 따위를 지정하는 것들과 현실을 딛고 다른 쪽을 바라보는 경험과 계기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흑백배경에 담긴 진정한 의미이다.4) ● 흑백배경에서도 동일하게 읽히지만 강세경 작업에 있어 또 하나의 유의미한 장치인 프레임은 현실과 비현실을 보다 강하게 묶는다. 우선 프레임은 자동차의 탈출하고픈 욕망을 일부분 제어하는 역할을 하면서 열려진 틈을 외면하진 않는 수동(갇힘)과 능동(벗어남)의 조형적 부호다.(약간 결은 다르지만 엄밀히 말해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프레임이야말로 강세경 자신의 삶을 특정 하는 이미지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당한다. 개인사를 적확히는 알 수 없으나 그림 속 프레임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결과들, 또한 안치되는 이미지가 기타 여러 것들과 호흡하고 있다. 따라서 프레임은 분명 조형적인 부분에 기여하지만 결국 자기 반영으로서의 표면에 대한 탐구라는 것이 옳다.(추측인데, 그 프레임과 삶의 관계는 지금도 지속적인 것으로 보인다. 슬프게도.)

강세경_seen201604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6

4. 강세경의 그림은 눈에 확 띌 만큼 치밀한 묘사력과 더불어 쉬르sur-한 인상을 심어준다. 허나 살짝 고개를 돌리면 매직리얼리즘magic realism, 다시 말해 의식적인 상황에 주술적이고 착시적이며 마술적인 것을 덧씌움으로써 '현실을 저버리지 않는 환상' 역시 느껴진다. 왜냐하면 이성을 토대로 문학적 상상력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타 리얼리즘 장르와 미묘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 탓이다. ● 화면 내 꼼꼼하게, 의도적으로 배치된 사물들은 한편으론 마치 과거 후기 르네상스시대 그림을 보는 듯 각각의 내용으로 유도한다. 그러므로 강세경의 그림은 시각적인 것을 넘어 '읽는 즐거움'까지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는 내적 바람 혹은 영원성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고, 지나칠 정도로 깔끔하게 소화되고 있다. 특히 전반적으로 비현실의 현실과 부재 속의 현존이라는 이미지는 작가가 의도하는 간절함과 유사한 속성을 효과적으로 발현시킨다. ● 실제로 흑백배경의 도시와 자동차, 프레임 등은 작가의 자아를 적극화하면서, 비현실의 체험을 현실의 그것으로 치환하는 유용한 도구다. 그리고 이런 치환의 매개를 통해 현실과 비현실을 하나로 통합해 지각의 리얼리즘을 제공한다.5)

강세경_seen201607-01_캔버스에 유채_80×116cm_2016

다만 그의 그림에서 아쉬운 건 서사적 긴장을 끝까지 견지하기 어렵고, 작가의 이상향이 비현실의 세계임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음에도 각각의 사물에 응대하는 친절한 각주로 인해 사유할 수 있는 여백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데 있다. ● 이는 좋게 말해 이해가 쉽다는 것이고, 다소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이미 빤한 여운을 내재하고 있어 현실과 비현실이 병치되었을 때의 긴장감이 느슨하다고 말할 수 있다. 더구나 하이퍼의 또 다른 특징인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만들어진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정의에도 부합하지 못해 하이퍼리얼리스트라고 고착화하긴 어렵다.(작가도 이에 동의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현실지평의 이탈과 비현실의 까마득한 피안을 배회한다. 일일이 섬세하게 다듬음으로써 생겨나는 남다른 효과(규정된 이미지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현실 외적인 순간을 통한 현실이 새로운 역사적, 실제적인 현실을 만들어낸다. 특히 비현실은 개인적 내러티브를 벗어나 오늘로써 존재하되 실체로는 확연히 잡히지는 않는 그 어떤 순간까지 불러들인다. 매체 확장에 관한 문제나 도식의 단출함에도 강세경의 작업은 그런 차원에서 흥미롭다.6) ■ 홍경한

* 각주 1) 작가 또한 여타 극사실주의자들처럼 억제된, 비감동적이고 있는 그대로의 현상세계를 다룬 점, 하찮고 별 것 아닌 것조차 아무런 코멘트 없이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만 취급한다는 점, 역설적이게도 사실에 대한 허구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강세겸의 작업은 하이퍼리얼리즘에 속한다. 2) 이와 관련해 작가는 "올드카는 현재 보기 힘든 오래된 대상물이지만 생생한 색채로 마치 현실인 듯한 오브제를 한 화면에 배치시킴으로써 현실과 욕망이라는, 절대 자유롭지 못한 영혼을 실존과 비현실의 세계 (상상의 세계)와 지루한 일상과 화려한 욕망, 정체되어 있는 현재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3) 필자는 이 자동차에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행복과 다중의 번영이 얼마나 허약하고 위험한 기반에 기대고 있는지를 깨우쳐주는 역할도 한다고 여긴다. 그만큼 자동차는 의미, 개념, 현실 측면에서 다층의 해석이 가능하다. 4) 작가는 사람이 부재된 건축물과 자동차들만을 흑백 이미지로 옮기는 이유로 현실 세상의 저편을 한번쯤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인다. 5) "현실과 현실을 결합시키거나 상징과 또 다른 상징들을 충돌시켜 전혀 새로운 공간개념과 의미들을 창출하고, 욕망이자 희망의 상징들을 통해 감상자들이 또 다른 세계이자 상상의 연결고리를 만들도록 하는 것."이 현재 추구하는 작업의 주제"라는 작가의 설명도 같은 범주에 놓인다. 그건 새로운 가치를 지닌 '의도된 현실'이다. 6) 마지막으로 현재 작업하고 있는 '배'도 자동차 못지않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자칫 장식적인 그림으로 전락할 수 있기에 유의할 필요는 있다. 필자는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500호 이상의 크기에 자동차든 배든 독자적인 모습이 아닌 복수로써의 이미지를 상상해봤는데, 만약 시도된다면 상당히 근사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선택은 작가의 자유이지만.

Vol.20180711h | 강세경展 / KANGSEKYUNG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