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적 물음으로서 얼굴성 II Faciality as an ontological question II

김상표展 / KIMSANGPYO / 金相杓 / painting   2018_0716 ▶︎ 2018_0806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0627a | 김상표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윤갤러리 YO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7 Tel. +82.(0)2.738.1144 blog.naver.com/yoon_gallery

'내 마음 속 작은 아이'에게 바치는 그림 ●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 / 비가 내릴 때 창가에 앉아 / 전 같으면 결코 시도해 보지 않았을 / 책을 읽고 싶다 / 무엇인가 증명할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 그냥 원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 / 내 몸에 귀를 기울이고 싶고 / 달이 높이 떠올랐을 때 잠들어 / 천천히 일어나고 싶다 / 급하게 달려갈 곳도 없이 / 나는 그저 존재하고 싶다 / 경계 없이, 무한하게"「작자 미상, '나의 소원'」 ● 어느 시집에서 작자 미상의 '나의 소원'이라는 시를 접하면서 떠오른 얼굴이 있다. 기대 수명 150세를 꿈꾸는 오늘날, 노화지연과 수명연장으로 인하여 오히려 정년연장에 모두가 전전긍긍하는 이 시대에 아직 한창 현역에서 일할 이른 나이임에도 이른바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하는 국립대학 교수에도 크게 미련이 없는 사람. 어린 시절 꿈이 농부였고 철학자인 것 같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 영혼이 자유로워 보이는 그를 이 시와 함께 연상하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운 것 같다.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8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8

월출산 자락 아래 영암에서 태어난 소년은 참으로 영민하고 마음 여린 아이였다. 산과 바다, 남도의 기름진 평야지대가 펼쳐져있는 너른 들판은 소년의 성장을 한껏 도운 보물들이었고 소년 역시 언제까지나 자연 속에서 그렇게 살리라 마음먹었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 가정에 무관심했던 아버지, 자식에게 냉정했던 어머니, 그 사이에서 소년의 삶은 자주 불안했다. 또래 아이들처럼 정신적 안식을 부모님에게 찾지 못하고 기대지 못했던 소년에게 마냥 어리광부리고 철없던 시절은 부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심의 세계에서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지닐 겨를 없이 마음 안에 사랑의 집을 짓지 못한 채 홀로 쓸쓸해진 나날들이 쌓여갔다. 남들처럼 평범한 아이였던 시절을 갖지 못했던 소년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자신의 상황과 내면의 상태를 들여다 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80년대 학번이 되어 격동의 역사를 온 몸으로 통과한다. 시절이 시절이었던 만큼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사회적인 이슈와 현실적 문제에 매달리면서 역사의 한 복판에 서야 했기 때문이다. 인간 자체가 부조리하기에 우리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생각과 함께 겉으로는 그 누구보다 합리적이고도 원만하게 사회에 잘 적응하는 시간을 어색하게 보내기도 했다. '감정노동'과 '역설의 경영'에 관심을 갖고 조직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그는 학자로서의 학문적 성취에서도 신선했다. 사춘기를 건너 뛸 수 없듯이, 왜 인생은 시기 마다 꼭 거쳐야 하는 것은 무심히 통과할 수 없는 것일까?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8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8

그가 살아가면서 찾고 싶은 것은 '내 마음 속 작은 아이'였던 것은 아닐까. 모내기를 막 마친 후 바다가 되어버린 것 같은 무논 사이를 송사리 피라미들과 함께 달려 다니며 행복했던 들판의 소년은 가장 행복한 자화상이다. 푸른 하늘 아래 헤아릴 수 없는 돌 봉우리들이 높고 낮게 굵다랗고 가느다랗게 뾰족뾰족 둘러서있는 사이로 피어나던 진달래꽃은 지금도 꿈에 그리는 아련한 고향 모습이다. 생각해보면, 소년에게 지고한 삶의 목표는 오로지 '단란한 가정'이었다. 그 누구보다 가정에서 사랑과 따뜻한 모정을 갈구했었고, 역설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울 것 같은 그의 바람을 이해받지 못했던 어린 날의 아이에게 그는 위로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마음 속 작은 아이에게 다가가 이제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함께 하는 단란한 가정을 이뤘으니 그 동안 고생 많았다"고 자신을 다독이고 싶었던 것 같다.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8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8

예술애호가에서 예술가를 꿈꾸게 되었던 계기는 그림이었고, 자화상이었다. 자아를 찾고 싶은 욕망을 꾹꾹꾹 눌러가며 살아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그림을 그리는 순간 폭발적으로 색채가 펄펄 뛰어올랐다. 손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호흡하다보니 열정적인 에너지와 공기가 뜨겁게 분출되었나보다. 겉잡을 수 없는 환희와 희열이다. 강렬한 바윗덩어리 같기도 하고 화석이 되어버린 눈물방울 같기도 하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살아왔던 지난날의 응어리진 억압과 강박이 해방된 듯 색채가 자유롭고 강렬하다. 아주 간명한 윤곽선과 단순명쾌한 조형성 속 자화상이 거침없어 행복해 보인다.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8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8

자아를 찾으려는 욕망에서 자신을 대상으로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으나 이제는 인간의 존재론적 표상인 얼굴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고 더 나아가 얼굴을 통해 인간과 조직, 사회와 세계에 대해 그는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들은 누구인가. 자기 방식대로 살기로 결정하고, 그리고 더불어 세상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는 뜨거운 열정에 박수 보내고 싶다. ■ 김은영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8

화가로서 얼굴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던지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 동안 인간과 조직 그리고 세계에 대해서 가졌던 인문과학적, 사회과학적 고민들이 또 다시 난입해 들어왔다. 당혹스러웠다. 아름다움의 구원이 내게도 찾아왔나 싶었는데 삶의 고민들이 반복강박처럼 다시 밀려왔다. 그림그리기가 결코 '자유로부터의 도피'일 수는 없다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종국에는 내 삶의 고민들을 떠안고 풀어가는 새로운 장이 그림그리기일 뿐이라는 명령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회화라는 영역에서 관념과 실천의 모험에 나서는 출발점에서 사뮈엘베케트의 다음 말을 마음에 새긴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아무도 실패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실패한다는 것". 그럼에도 이전까지는 조직이론가로서 중력의 영에 사로잡혀 엄숙하고 심오하며 장중한 삶을 꿈꾸었다면, 앞으로 화가로서는 가볍고 즐겁게 외출해서 존재와 깊고 강하게 마주하고 싶다. Amor Fati! ■ 김상표

Vol.20180716a | 김상표展 / KIMSANGPYO / 金相杓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