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UX

이정태展 / LEEJUNGTAE / 李正泰 / painting   2018_0717 ▶ 2018_0729

이정태_탱자꽃_캔버스에 유채_80×100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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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8:00pm

세종갤러리 SEJONG GALLERY 서울 중구 퇴계로 145 세종호텔 1층 Tel. +82.(0)2.3705.9021 www.sejonggallery.co.kr

나는 부산 영도의 바다가 보이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교사는 서향이었고 바다와 건너편 멀리 산자락이 있었다. 4층 미술반 실기실에서 거의 매일 보게 되는 일몰의 순간은 나뿐만 아니라 거의 전교생이 마주하는데 다소 통속적인 풍경이었지만 누구나 한마디쯤의 감흥을 늘어놓았다, 그 순간의 특별한 감동은 내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보았던 자연의 경이로움과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보여 지는 대기의 변화가 나에게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작업의 모티브가 되었다. 일몰과 일출은 밤과 낮이 바뀌는 순간이다. 이 순간을 마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이로움 혹은 절대적인 무언가에 대한 숭고함이나 지나간 과거, 가족, 두고 온 것들이나 잊고 있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노스텔지어를 느끼게 한다.

이정태_FLUX_캔버스에 유채
이정태_FLUX_캔버스에 유채_78×165cm_2017

2005-6년 그는 전업 작가로서 새롭게 출발하는데 이때부터 그의 작업은 좀 더 산수의 본질적 탐구와 필치의 자유로움을 획득한다. 실경의 풍경을 다루지만 형상보다는 자연의 본질인 음양의 흐름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변모하며, 특히 이 시기에 색에 대한 문제에도 관심을 보인다. 산수를 백색과 코발트의 단색조로 표현한다. 아무것도 아닌듯하지만 무한함을 담고 있는 백색, 우주의 근본색인 코발트색이 화면의 주조를 이룬다. 그는 매우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백색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접근한다. 무한한 가능태로서 존재의 시작과 끝으로 인식한 그의 사유 속에 음양(陰陽)과 이기(理氣)를 근간으로 하는 생성소멸의 동양적 사유가 그의 작품에 구체적으로 개입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이전의 작업보다는 좀 더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었다고 본다. (2017) ■ 김찬동

이정태_FLUX_캔버스에 유채_97×145cm_2018
이정태_FLUX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7
이정태_FLUX_캔버스에 유채_80×117cm_2017

'울산바위'의 설화를 보면 울산에 있던 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다가 주저앉아 지금의 울산바위가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에 대한 유쾌한 메타포다, 시간은 존재의 영원성을 부정하며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 흐름은 유기체적 작동원리이자 특성이다. 흐름이 멈출 때 부패하거나 탈 유기화해서 존재는 멈추게 된다. 존재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있음을 말한다. 존재는 고정불변이 아니라 흐름이자 형성적이며 다른 것과 접속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정체성으로 규정되어가는 것이다. 존재는 무수한 변화를 내재화하고 있다. 존재는 시간의 흐름과 리듬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진다. 흐르는 시간의 정지된 한 순간을 포착하여 시간에 대한 은유를 생성한다.

이정태_FLUX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8
이정태_FLUX_캔버스에 유채_117×273cm_2018

'흐름과 리듬'작업에서 대상은 실재하는 장소일 때도 있고, 화면에만 존재하는 가공된 장소인 경우도 있다. 실재하는 장소들은 임의로 재배치하거나 단순화하여 실재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이것은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과 단축된 공간표현으로 화면의 스케일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이정태_FLUX_캔버스에 유채_60×90cm_2018
이정태_FLUX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18

색의 제한을 통해 실재에서 물러나 사태에 집중하게 하였다. 영화 '문라이트'에서 흑인후안은 쿠바에서의 어린 시절 달밤에 뛰어놀던 때를 회상하며 "달빛 아래에서는 모두 푸른색으로 보여진다"고 말한다. 푸른색은 명상적이며, 추상화 된 색이다. 이것은 실재풍경의 재현이 아닌 대상이 가지는 본래의 의미나 내가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에 보다 적합한 구성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울러 화면의 상당 부분은 여백으로 처리하는데 이것은 드러나는 대상을 보다 강조한다. 여백은 함축하며 개연성을 부여한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글로 드러나지 않는 행간의 의미를 찾고 생각하듯이 생략된 부분은 변화하며 소멸되는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표현이다 (2016) ■ 이정태

Vol.20180717a | 이정태展 / LEEJUNGTAE / 李正泰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