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ART SPACE QUALIA 서울 종로구 평창11길 41(평창동 365-3번지) Tel. +82.(0)2.379.4648 soo333so4.wixsite.com/qualia
시각적 유쾌함과 유의미한 효과 ● 퍼즐H(김성호+조창환)의 협업 작업에서 눈에 두드러지는 지점은 독특한 재료의 사용에서 출발한다. 그룹 퍼즐H는 패키지 박스(Package Box)를 이용해서 작업하는데, 이 재료의 사용은 '계시적 사건' 혹은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시작된다. 어느 날 지인이 가져온 피자의 포장지 박스에 있는 디자인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그 후 패키지 박스로 작업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퍼즐H는 오랜 기간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제품의 브랜드 의미를 지우는 대신 패키지 박스에 있는 디자인을 이용한 작업에 치중하였다. 패키지 박스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의 포장지로 그 안에 상품을 보관하고 제품을 홍보하는 고유의 역할이 있고 또한 종이 재료로서 가볍고 파손이 쉬워 많은 한계가 있었음에도 퍼즐H는 이것들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패키지 박스를 이용한 퍼즐H의 작업에는 크게 두 가지 특성이 있는데, 그 하나로 패키지 박스는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 후 상품의 내용물을 개봉하면 폐품 또는 폐지가 되어야 하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버려진 혹은 남겨진 포장지를 예술작품의 재료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이런 방법은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사회 공동체의 정치적, 문화적, 환경적 조건을 고려해 해당 지역에서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게 만들어진 기술)'을 예술적으로 승화해서 '적정예술(適正藝術)'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패키지 박스의 표피를 장식하는 자극적인 원색의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i)'효과를 극대화 했다는 점이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살고 있는 인간은 온통 초정상 자극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범한 과일도 색체가 강렬한 것에 이끌리고 주변의 평범한 사람보다는 매력적인 연예인의 모습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이다. 퍼즐H의 작품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실재로 우리의 주변에 있는 현실에서 시각적 감동을 극대화한 아주 잘 디자인(well design)된 패키지 박스의 일상적 체험을 입체 작품으로 형상화하여 감상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무겁지 않은 시각적 유쾌함과 결코 가볍지 않은 유의미한 효과를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클로즈업, 관찰충동 & 그로테스크 ● 퍼즐H의 흉상 조각들을 살펴보면 첫째, 인간의 신체기관 중 외형적으로 얼굴과 머리 부분을 크게 과장하여 묘사한 것은 카메라의 시각화 기능 중 하나인 '클로즈업(close-up)'효과와 유사한데,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오래전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클로즈업 효과가 공간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바 있고, 광각렌즈를 근접 촬영하면 인물의 왜곡과 과장이 심화되어 공간 확장이 더욱 극대화 되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 외에도 클로즈업 한 대상을 집중해서 살펴보게 하는 측면이 존재하는데, 즉 머리 부분이 다른 부분에 비해서 시각적으로 크게 집중하게 한다. 작가에 의하면 아프리카 한 부족 마을에서 리더의 머리를 일부러 크게 만드는 편두문화에 착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한국의 옛 문화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측면이 있는데, 왕실에서 왕은 상투관을 썼고 왕비는 유난히 큰 올림머리를 해서 시각적으로 머리를 크게 보이게 했다. 이런 효과는 왕과 왕비가 신하들과 백성들 앞에서 대화를 할 때 얼굴에 집중하게 하여 권력의 지배를 곤고히 하는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런 사례를 비추어 볼 때 퍼즐H의 작업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동ㆍ서양의 문화를 융합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둘째, 관람객의 입장에서 국적이 불분명한 흉상조각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라캉(Lacan)식으로 해석하면 '관찰 충동(pulsion scopique)'을 유발하게 한다는 점이다. 관찰충동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려는 충동인데 이 작품을 자세히 관찰하면 거대한 마스크(mask)를 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흥미로운 지점은 마스크 효과에서 단순하게 융(Jung)이 언급한 페르소나(persona)를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나의 거대한 마스크를 한 얼굴로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상에서 어떤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마치 얼굴 자체가 마스크를 쓴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흉상조각은 그자체로 마스크 역할을 해서 그 이면에 페르소나를 인식하기보다는 기표적인 측면에서 마스크 자체인 것이다.
셋째는 첫째와 둘째의 효과가 맞물려서 결과적으로는 "그로테스크(grotesque)"한 이미지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마치 예술이라는 음식 속에 그로테스크라는 양념을 집어넣은 것처럼 해석되는데 이때의 그로테스크는 확정된 경계가 없는 개념을 생성한다. 그로테스크는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한 전통의 미(美)에서 벗어난 형식을 지니다가 이후 반 미학의 주류로 성장했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외곽에서 전통과 관습에 도전하고, 새로움과 변화에 대한 관용의 정신을 요청하며, 변화와 다양성의 촉매제이자 사회에 활력을 부여하는 요소로서 작용해 왔다. 근래 들어 그로테스크는 예술계를 넘어 우리 시대를 읽어내는 주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으며 포스트모던 사회의 전면에서 거대한 문화·사회적 현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퍼즐H의 그로테스크한 부분은 전통적인 아름다움의 형식을 벗어나 불균형적이며, 복잡하면서 뒤틀린 왜곡, 탈경계적 측면, 보편적 특성이 아닌 개별과 개성, 주류가 아닌 비 주류적 가치를 추구한다. 이런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는 앞서 언급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변화된 취미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과 맞물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상상의 정원과 그로테스크 ● 퍼즐H는 그동안의 전시를 통해 작가 자신만의 독특하고 생기 넘치는 그로테스크한 효과를 개발해 왔다. 이러한 효과들은 일상적인 오브제를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설정해서 새로운 세계를 표현한다. 16세기 그로테스크의 용어와 양식의 탄생은 이탈리아에서 그로테스크 장식화를 동반하는 인조동굴과 인조석굴 정원을 유행시켰으며 전 유럽으로 퍼진바 있다. 현대의 그로테스크에 관한 연구의 추세는 다원화를 향하고 있으며 정원학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원과 그로테스크는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퍼즐H가 패키지 박스를 이용하여 구현한 꽃과 별 모양 위에는 '상상의 정원'이 안착되어있다. 꽃과 별은 생명을 상징화하고, 마음속에 동경하는 아름다움처럼 상호 유사한 이미지의 원형을 간직한다는 점에서 동일성을 확보한다. 좀 더 구분하면 꽃은 현실성의 아름다움을 담보한다면 별은 이상적인 혹은 상상적 아름다움을 현실 속에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은 정원 속의 세상은 인공적인 자연과 더불어서 인간과 환경이 조화롭게 표현되어있다. 패키지 박스가 상품화된 세상을 상징적으로 묘사되었다면 인간과 자연의 모습은 자연친화적, 상호보완적인 이상적인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원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작가가 여행 중에 수집한 자그마한 자연석들과 나무와 식물의 미니어쳐 그리고 도마뱀, 양, 원숭이, 말, 사슴 등과 인간 형상의 미니어처가 함께 등장하는데 평범해 보이는 사물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재탄생 되고 상호간의 관계성을 통해서 순환된다. 상상의 정원에서 우리는 그 속에서 지탱하는 삶의 독특한 단편의 이야기를 바라보게 된다. 꽃과 별 속의 정원은 일상적 물체들이 일상적인 기능들을 초월해 존재하도록 허용하는 작가만의 독자적인 세계가 탄생 한 것이다. 패키지 박스 중심에 만들어진 '작은 세상'은 사물들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변화시키지 않고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적, 자연적인 질서 그리고 사물의 균형 잡힌 구성을 통해서 다른 사물과의 미묘하고 언캐니(uncanny)한 관계를 형성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퍼즐H는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패키지 박스가 상품 개봉 후 곧 바로 용도 폐기되는 현실을 '적정예술(適正藝術)'로 발전시켰고, 발견의 미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패키지 박스에 인쇄된 표피의 자극적인 원색을 '초정상 자극' 효과로 진화시켰다. '클로즈업' 효과를 적용해서 두상을 시각적으로 크게 집중시킨 국적 불분명의 흉상 조각에서는 관객의 '관찰 충동'을 유발시켰고, 마지막으로 꽃과 별 모양의 패키지 박스 위에 '상상의 정원'을 설치해서 작가만의 독자적인 세상을 만들어 냈는데, 이런 모든 행위는 내용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의미 표현'을 위한 '자기 목적성'을 짜임새 있게 구현한 것이다.
퍼즐H의 작업은 전통적인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감각적 사유에만 몰두 하지 않았으며, 재료 그 자체가 지닌 내용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재해석하여 매체에 내재한 문제의식을 그로테스크라는 시대적 정신과 부합해서 입체적인 형상으로 흥미롭게 전개된다. 현대사회에서 그로테스크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이슈를 가지고 있지만, 국내 예술계에선 아직 그로테스크 미학이 정착되지 않았다. 퍼즐H의 이번 전시는 그로테스크의 성과와 가능성을 미리 타진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 김석원
Vol.20180719g | 퍼즐H(김성호+조창환)展 / PuzzleH(KIMSONGHO+CHOCHANGHUAN)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