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기억

박이소展 / BAHCYISO / 朴異素 / installation   2018_0726 ▶︎ 2018_1216 / 월요일 휴관

박이소_마이너인저리_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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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료 / 2,000원 만24세 이하 또는 만65세 이상 무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토요일,문화가 있는 날(마지막주 수요일)_10:00am~09:00pm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월요일 당일 개관 후 그 다음 평일이 휴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Gwacheon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 (막계동 산58-4번지) 제1전시실 Tel. +82.(0)2.2188.6000 www.mmca.go.kr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박이소: 기록과 기억』전을 7월 26일(목)부터 12월 16일(일)까지 MMCA 과천 1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 전시는 한국 동시대 미술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작가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한국미술의 궤적을 그려보고자 한다. ● 박이소(1957~2004)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뉴욕의 미술현장을 이끄는 미술담론과 전시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한편 한국미술을 뉴욕에 소개하는 여러 전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두 미술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또한 당시 민중미술과 모더니즘으로 양분되어 있던 국내 미술계에서 그가 보여준 '경계의 미술', 예컨대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구호처럼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순적인 반응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그의 미술세계는 이후 세대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 한국현대미술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채색했다. 작가는 『광주비엔날레』(1997), 『타이베이비엔날레』(1998), 『요코하마트리엔날레』(2001), 『베니스비엔날레』(2003)등 국내․외 주요 전시에 참여하였고, 2002년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수상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던 중인 2004년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박이소: 기록과 기억』은 작가 사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그의 첫 개인전이다. ● 이번 전시는 2014년 작가의 유족이 대량 기증한 아카이브와 대표작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대규모 회고전이다. 당시 기증된 자료는 박이소가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1984년경부터 작고한 2004년까지 약 20년간의 작가노트를 포함한 드로잉, 교육자료, 전시관련 자료, 기사, 심지어 재즈 애호가였던 작가가 직접 녹음, 편집한 재즈 라이브러리에 이르기까지 수 백점에 이른다.

박이소_바캉스를 위한 드로잉_2002

전시는 서로 교차되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시간적 흐름을 따라 펼쳐진 한 축은 작가 박이소의 연대기다. 뉴욕과 서울로 이어지는 약 20년간의 작품 활동을 대표 작품과 드로잉, 아카이브 등으로 재구성하였다. 관객은 관람동선을 따라 걸으며 작가의 아이디어와 작품세계의 변천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을 자르며 가로지르는 다른 한 축은 세 겹의 층으로 구성된다. 가장 중심에 작품의 씨앗에 해당하는 20년간의 작가노트들을 두고, 드로잉을 포함한 아카이브가 이를 둘러싸고, 마지막으로 실제 작품이 그 모두를 한 번 더 감싸는 구성이다. 이 다층구조를 통해 관객은 하나의 아이디어가 싹이 튼 후 실제 작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작가노트 21권은 1984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졸업에서부터 2004년 작고 직전까지 작업과정을 꼼꼼히 기록한 것으로, 뉴욕 유학 당시 소수자로서의 정체성과 문화적 이질성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후기 대표작인 「당신의 밝은 미래」(2002) 아이디어 스케치까지 엿볼 수 있다. 설치 드로잉은 1990년대 중․후반 회화에서 입체와 설치로 확장․전환되는 시기에 다수 제작된 것으로 각각의 드로잉은 완결된 작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다양한 전시환경에 따른 전시효과를 검토하고 개념을 다듬기 위해 꼼꼼히 적은 정보와 지시문은 마치 설계도처럼 정교하다. 이번 전시에는 『2001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 출품한 '「무제」를 위한 드로잉'(2000)과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받은 해에 그린 '「바캉스」를 위한 드로잉'(2002) 도 소개된다. 이와 함께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 「쓰리 스타 쇼」, 「블랙홀 의자」, 「당신의 밝은 미래」, 「베니스 비엔날레」 등 대표 작품 50여 점을 통하여 박이소 작품세계의 전개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 뉴욕에서는 본명 박철호 대신 '박모'(某:아무개)라는 이름을 사용한 작가는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한 후 작품 활동과 사회적 활동을 동시에 펼쳐나갔다. 특히 브루클린 지역에서 실험적 대안공간인'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를 설립하여 미술계에서 소외된 이민자,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젊은 리더로서 주목 받았다. 당시 작가가 아닌 사회 활동가로서의 기록들과 서로문화연구회, 집필활동, 스터디모임 등의 자료들은 화려한 전시회 이면에서 진행되었던 박이소의 숨은 노력들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1995년 신설된 삼성디자인교육원(SADI)의 교수직을 맡아 귀국 후에는 '박이소'(異素: 낯설고 소박하다)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활발한 작품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새로운 방식의 미술교육을 정립하고자 애썼다. SADI,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작성한 강의계획서, 평가서 등 각종 교육 관련 아카이브는 당시 그가 고민했던 미술교육의 대안 모델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박이소_우리는 행복해요_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_2018

우리는 행복해요 ● 박이소 작가의 최후 작품으로서 아이디어 스케치와 지시문으로 남은 유작이다. 텔레비전에 방송된 북한 체제 선전물의 배경에 같은 구호를 새긴 입간판이 건물 옥상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작품 착안한 이 작품은 실질적인 노력보다 공허한 구호를 통한 이미지 조작을 즐기는 우리 현실에 대한 시니컬한 풍자이자 그 실현을 기다리는 은밀한 낙관주의가 복합적으로 표현되었다. 2004년 작가 작고 후 동료작가들의 노력으로 『2004 부산비엔날레』에서 처음 전시된 후 박이소 특유의 블랙유머와 역설이 웅변적으로 구현된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2009년 휴스턴미술관 전시에서 도로표지판 형태로 전시된 바 있다. 이번 전시와 연계한 야외프로젝트 「박이소: 우리는 행복해요」은 서울관 건물 옥상에 길이 약 25미터 높이 6m의 대형 입간판으로 설치될 예정이다. 촛불이 뜨거웠던 광장을 내려다보며 '우리는 행복해요'라고 외치는 아이러니한 문구는 우리가 진정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오히려 자문하게 만든다.

박이소_기록과 기억展_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_2018
박이소_기록과 기억展_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_2018

이와 함께 작가는 생전에 약 200여 개의 재즈 테이프를 직접 편집하고 만들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난 이제부터 남은 생애 동안 이것만 들을 생각'이라고 공공연히 밝힐 정도로 재즈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남달랐다. 특히 빌리 조엘의 'Honesty'를 한국어로 번안해 직접 부른 '정직성'은 "어떻게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서 "왜" 그리는가의 질문으로 초점을 바꾼 자신에게 던지는 답인 것처럼 그의 삶의 태도와 맞물려있다. ● MMCA 과천의 『박이소: 기록과 기억』전과 병행하여 MMCA 서울에서는 야외 프로젝트 「박이소: 우리는 행복해요」가 펼쳐진다. 이 프로젝트는 공공성 구현을 위한 환경 건축 프로젝트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서 박이소의 「우리는 행복해요」(2004), 「홈쇼핑」(2003) 두 작품이 전시기간 중 MMCA 서울 옥상에 설치될 예정이다. 특히 「우리는 행복해요」는 박이소 작가 타계 전 스케치와 지시문으로만 존재했던 작품으로, 그의 사후 2004 부산 비엔날레, 미국 LACMA, 휴스턴 미술관 등에서 재현되기도 했다. ●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박이소는 1980~9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라며, "작가의 작품세계가 집약된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뿐만 아니라 198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의 지형도에서 그의 위치를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http://www.mm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박이소_베니스비엔날레_2003

작가소개 박이소 Bahc Yiso(1957~2004)의 활동은 미국 유학길에 오른 1982년과 1995년 귀국 시점을 기준으로 뉴욕 시기와 서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한 후 작가는 '박모'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과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펼쳐나갔다. 특히 브루클린 지역에서 실험적 대안공간인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를 설립한 후 뉴욕 미술계에서 소외된 이민자,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젊은 리더로서 주목 받았다. 또한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미국 미술계의 최신동향과 이론적 흐름을 국내에 소개하는 한편 『민중미술』(1988), 『태평양을 건너서』(1993-1994) 등 한국미술을 뉴욕에 소개하는 주요 전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1995년 신설된 SADI(삼성디자인교육원)의 교수직을 맡아 귀국한 후에는 '박이소'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후 새로운 방식의 미술교육을 정립하고자 애쓰는 한편 활발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광주비엔날레』(1997), 『타이베이 비엔날레』(1998), 『도시와 영상-의식주』(1998), 『요코하마 트리엔날레』(2001) 등 국내외 주요 미술전시에 참여하였고 2002년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초대받는 등 국내외 미술계에서 활약하던 중 2004년 돌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큰 슬픔과 아쉬움을 남겼다. 그의 사후 2006년 로댕 갤러리의 회고전 이래 2011년과 2014년도에 아트선재에서 전시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이다. ● 특히 1980년대 이후 순수미술과 참여미술 진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국내 미술계의 상황에서 박이소가 선보인 경계의 미술은 또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무심한 듯 거리를 두면서도 미묘한 지점에서 강렬한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동시대 미술현장에서 두드러져 보일 정도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그 본질적인 차이는 질문의 차이일 수도 있다. 즉 지금까지 "어떻게 무엇을" 그릴 것인가의 질문으로부터 애초에 "왜" 그리는가의 질문으로 초점을 옮겨간 것이다. 작품 활동과 함께 작가 박이소가 보여준 다양한 활동들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고자 노력한 궤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박이소가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의 미술세계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 궤적이 조금이라도 더 뚜렷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박이소_호모 아이텐트로푸스_종이에 아크릴채색, 콜라주_76×56cm_1994

교육프로그램(안) MMCA 전시토크: 큐레이터와의 만남 일시 : 전시기간 중 1회 장소 : MMCA 과천 1전시실 대상 : 일반인 및 관련분야 전문인 내용 : 전시기획의도, 출품작 및 작가를 소개하고 관람객과의 질의응답 진행 작품해설 프로그램 MEG 일시 : 전시기간 중 매주 화~일, 14:00 장소 : MMCA 과천 1전시실 대상 : 일반인 워크숍 일시 : 전시기간 중 장소 : MMCA 과천 1전시실 대상 : 일반인 * 교육프로그램과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추후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http://www.mmca.go.kr)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 일반인 전화문의: 02-2188-6000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대표번호)

Vol.20180726d | 박이소展 / BAHCYISO / 朴異素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