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정원 PAPER GARDEN

성경희展 / SEONGKYUNGHEE / 成京姬 / painting   2018_0801 ▶︎ 2018_1031

성경희_종이정원_나무에 아크릴채색, 장지_48×63cm×2_201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 HOAM FACULTY HOUSE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 239-1번지 Tel. +82.(0)2.880.0323 www.hoam.ac.kr

틈이 만드는 아름다움 ● 봄날 바람에 가볍게 흩어져 날리다 모든 바닥에 달라붙은 그 얇고 보드라운 벚꽃 잎 같은 원형의 종이가 무수히 매달려있다. 흡사 겹겹이 쌓여가는 낙엽 같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제각기 달리 물든 단풍잎들이 가지런히 누워있는 마당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성경희의 작업은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한 그림이 아니라 종이로만 이루어진 콜라주다. 물론 약간씩 칠해지고 남겨진 종이의 잘려진 부분들, 조심스레 벗겨지고 뜯겨진 피부들, 그만큼 제각기 다른 형상을 지닌 장지의 피부와 살들이다.

성경희_종이정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장지_63×48cm_2015
성경희_종이정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장지, 스토운 파우더_63×48cm_2016

투명하리만큼 맑은 단색으로 마감된 캔버스 표면에 하나씩 오려 부착된 원형에 가까운 무수한 형태를 지닌 물질은 장지의 질감과 색채로만 혹은 제한된 단색의 물감 흔적을 슬그머니 상처처럼 간직하고 처연히 누워있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 종이의 얇은 피부/살은 저마다 달리 칼로 뜯겨져 있어서 그만큼 풍부하고 다채로운 색감, 표정, 질감을 안겨준다. 그림을 이루는 재료들이 지닌 물성과 존재성을 지극히 예민하게 피부화 시키는 작업이다.

성경희_종이정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장지_100×90cm_2014
성경희_종이정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장지_100×90cm_2014
성경희_종이정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장지_100×90cm_2014

이 작업과정에는 캔버스와 장지라는 재료의 선택과 그 위에 색채(붓질)의 침윤, 그렇게 본래의 종이와 부분적으로 착색된 종이를 오려서 가장 기본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지니면서도 부단히 그 윤곽이 무너지는 형상을 가시화하는 일, 그리고 그것들을 납작하게 표면에 붙이는 이른바 콜라주작업, 그리고 다시 그 콜라주 된 종이의 피부를 하나씩 벗겨내거나 뜯어내는 탈각의 절차가 복합적으로 숨 쉬고 있다. 주어진 물질의 본래 상태를 유지하고 그것을 최대한 존중하는 동시에 여기에 최소한의 인위적인 개입을 덧대고 이를 다시 조금씩 흔들고 해체해서 균형과 질서 안에서 무수한 변수가 들락거리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의도하거나 특정한 대상의 재현이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 지운 체 그저 무심하게 칠한 종이를 자유자재로 오려내고 이것들을 무작위로 화면에 배열하고 있을 뿐이지만 주어진 견고한 사각형의 화면 안에서, 그 주어진 실존적 조건 안에서 순응하는 이 지극히 자잘하고 카오스적인 미시적 존재들이 빼곡히 서식하는 장면은 자연계와 함께 인간이 모여 이룬 사회적 관계망을 새삼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된다. 혹은 저마다 다른 얼굴, 사연을 거느린 매개들이기도 하다.

성경희_종이정원_캔버스에 잉크스틱, 장지_100×90cm_2014
성경희_종이정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장지_90×130cm_2017

나로서는 화면에 붙인 작은 원형의 장지를 조심스레 뜯어나간 흔적이 무척 흥미롭다. 약간의 두께를 슬그머니 지닌 장지는 허물을 벗고 그렇게 종이의 예민한 피부가 손의 압력과 그 시간에 부여된 모든 감정과 몽상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지니며 보푸라기를 남기고 있는데 이는 차마 다 뜯겨지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뜯겼거나 완전히 표면에서 빠져나간 것 등등 여러 흔적, 깊이를 불가피하게 남긴다. 그로인해 그것들은 기이한 풍경, 표정을 안겨주고 보는 즐거움과 감각적인 맛을 지닌다. 그것은 작가의 의도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결과물로 남겨진 것은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거나 미처 예상하지 못한 흥미로운 우연의 결과물이다. 그렇게 이 작은 원형의 종이들이 스스로의 자존적인 생애를 방증하고 화면 위에 각기 개별적인 생애를 발설하며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적인 감각을 발생시킨다.

성경희_종이정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장지_90×140cm_2016
성경희_종이정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장지_150×120cm_2014

한편 얇고 투명한 원형의 종이가 겹쳐지면서 부착된 화면은 피부위에 얇은 깊이를 만들지만 동시에 그 원형 이미지가 마치 천천히 화면 하단으로 미끄러지는 듯한 착시를 안긴다. 피부가 벗겨진 것과 장지의 결과 색채를 그대로 지닌 것들끼리의 충돌, 겹침, 사이와 틈이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단순하고 절제된 형상이 화면의 평면성과 재료의 물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한편으로 그것들이 어우러져서 자연의 한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른바 천천히 스러지는 달의 이동 추이나 자연현상의 순리를 떠올리는 것이다. 붓질의 흔적이 강하게 감촉되는, 순발력 있게 칠해나간 붓의 결을 머금은 색채 종이와 그 색채를 부분적으로 드러내고 종이와 물감의 양쪽 생애를 동시에 간직하고 이를 균형 있게 보여주는 화면 역시 그러한 아름다움을 분유한다. 이처럼 성경희의 작업은 재료의 자연스러운 맛과 작가의 최소한의 개입 사이에서 이루어진 틈이 만드는 매혹적이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격조 있게 표명하고 있다. 이 깊이와 품격, 절제의 덕목이 무척 새삼스럽다. ■ 박영택

Vol.20180802d | 성경희展 / SEONGKYUNGHEE / 成京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