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남展 / YUNSUKNAM / 尹錫男 / painting   2018_0801 ▶︎ 2018_1020 / 월,공휴일 휴관

윤석남_네 친구들_한지에 먹, 채색_140×95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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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809_목요일_05:00pm

2018 해움미술관 지역콘텐츠 연계 기획展

후원 / 경기도_수원시 주최,후원 / 해움미술관

관람료 / 2,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해움미술관 HAEUM MUSEUM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133 Tel. +82.(0)31.252.9194 haeum.kr

해움미술관 2018 세 번째 기획전 윤석남展이 8월1일부터 10월20일까지 진행된다. 윤석남(1939~)은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주의 미술가로서 입장과 역할을 진지하게 수행해온 작가이다. 어머니 이야기로부터 출발한 작가의 작품세계는 모성에 대한 존경과 힘, 여성의 역사, 생명 등 다양한 주제와 실험으로 창작에 대한 열정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드로잉 100여점, 「너와」 3점, 「블루룸」, 한지 위에 채색화로 그린 「자화상」 신작 까지 다양한 형식을 선보인다.

윤석남_윤석남_블루룸Ⅱ

블루룸 ● 1995년 핑크룸부터 시작된 'ROOM 시리즈'는 블루,화이트,그린 으로 바뀌면서 진행해온 작가의 상징체계가 표상된 공간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발표되는 블루룸(2010)은 우리나라 최초 무가(巫歌)인 바리데기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바리데기는 남존여비사상의 희생자이자 전통적인 아버지의 계보를 거부하고 무속인의 삶을 택한 주체적인 여성이다. 작가는 잊혀진 설화적 이야기에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이를 새롭게 복원하는데, 여기서 블루는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바리데기의 푸른 생명수를 의미화한 것이다. 룸 연작에서 주목되는 것은 갖가지 문양의 도상학적 특징이 돋보이는 한지 오리기 작업이다. 평소 무당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무당이 굿을 준비할 때 만들고 굿이 끝나면 태우는 종이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단순 노동을 반복하면서 여성적인 재료인 한지를 오린 수공예 작업은 작가의 수행적인 미학을 환기시키며, 바닥에 흩뿌려진 푸른구슬과 자개장식, 채색목조각에서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드는 공예적 감수성이 돋보인다. 오려진 푸른색과 흰색이 섞인 한지는 여성,식물,기하학적 이미지로 각각 분할되어 벽면 전체를 뒤덮는다. 블루는 파랑새처럼 희망을 상징하면서 슬픈 외로움을 환기시키는 컬러다. 그래서 방 한가운데 앉아있는 바리데기를 형상화한 조형물은 해방된 여성의 주술적인 힘이 느껴짐과 동시에 슬픈 구원의 눈빛을 담고 있다. 간간히 보이는 핑크색한지, 쇠고리형상을 한 의자다리도 이러한 바리데기의 정처없는 불온함의 표현이다. 작가가 구현해낸 이미지의 세계는 방 한켠에 벽면 높이보다 낮게 설치된 거울을 통해 무한하게 증폭되며 그 안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바리데기의 밀려오는 슬픈 파도와 함께 유영하며, 푸르게 물들어 진다. ● "정신적인 방황, 자기를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의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이 무당이 굿을 하듯이 그림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한꺼번에 말하고 싶은 욕망이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이것이 나의 페미니즘이다." (윤석남)

윤석남_자화상_한지에 먹, 채색_139×96cm_2018

자화상 ● 「블루룸」과 함께 이번전시에 주목되는 것은 처음 발표되는 「자화상」 이다. 그동안 작가는 촉각적인 재료인 나무가 갖는 거친 옹이와 결을 따라 간결한 선묘로 여성의 얼굴을 그려왔다면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려온 자화상은 먹선으로 형상의 윤곽선을 긋고 채색을 입혔다. 아울러 자화상과 함께 책거리를 재현한 것은 민화풍의 느낌을 재현한다. 그러나 작가는 전통민화가 갖는 도상이나 색체의 개념보다는 단순 긋기 (畵,drawing) 와 칠하기 (繪,painting) 로 마감한다. 이는 자신을 치밀하게 관찰하면서 다회적인 필법과 섬세한 필치로 대상의 특질을 선으로써 해석하는 것이다. 인물의 자세나 인체의 부위는 대부분 흉상까지 그려지거나, 좌상을 취하기도 하고 허공에 두상 만 떠있기도 한다. 얼굴에만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구도와 정면으로 쏘아보는 듯 한 눈총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환기시키며 담대한 왜곡의 맛을 자아낸다. 전통 초상법인 전신사조(傳神寫照)는 얼굴에서 뿜어나오는 것과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신기(神氣)를 나타낸 그림을 뜻한다. 그 대표작으로 공제(恭齊) 윤두서의 자화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윤두서의 자화상을 마주했을 때 단순 외형적인 모사가 아닌 살아있는 혼기(魂氣)가 느껴지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고, 전통을 바탕으로 한 조형관이 새롭게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윤석남의 자화상은 자신의 지난 화업을 정리하듯 매서운 내성과 호소력을 갖는다. 일종의 텍스트로서 살아온 내력을 읽히게 하며, 강렬한 눈총은 보는이의 시선과 맞부딪히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전달한다. 작가는 그동안 어머니, 익명의 여성들을 모티브로 창작해왔다면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대담하게 꺼내고 날카롭게 마주하고자 한다. 근작과 함께 90년대 나무조각으로 꾸며진 미발표作인 자화상 1점도 발표된다는 점에서 작가의 솔직함이 느껴진다. ● 작가의 지난화업을 돌이켜보면 주체라고 규정지어지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성찰과 타자의 시선으로서의 조형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남성중심에서 지워진 여성, 인간중심에서 훼손된 생명윤리 등 작가는 예술적인 상상력 속에서 이들의 침전된 목소리를 견인시키고 새로운 주체로서 소통하고, 화합되길 염원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 윤석남을 수식하는 어구는 작품 만큼이나 다양하다. 시류나 이념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로 스펙트럼을 확장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작품세계는 40이 넘은 늦은 나이에 예술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는 절박함으로 시작되었다. 이제 팔순에 접어든 윤석남 작가는 이름 석 자만으로 수행적인 정신세계를 느끼게 하며 견실한 작가적 태도는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이번 개인전을 통해 자화상 속의 형형한 눈빛처럼 작가의 삶의 궤적이 오롯이 전해지길 바란다. ■ 유선욱

윤석남_자화상_한지에 먹, 채색_95×42cm_2017

윤석남-상징체계로 열려진 자화상 ● 윤석남의 근작은 종이에 그려진 자화상이다. 예민한 먹선으로 형상의 윤곽선을 떠내고 채색을 입힌 그림이다. 두루마리 형식의 프레임 안에 들어간 초상 내지 흉상, 또는 무릎 아래 부분까지 그려낸 경우도 있다. 상당수는 얼굴만이 단독으로 그려진 그림, 그래서 마치 공중부양하고 있는 두상도 있다. 공통적으로 정면을 매섭게 응시하는 눈이 핵심이다. 아마도 작가는 그런 눈빛, 모든 것을 투과하는 듯한 안광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이른바 윤두서의 자화상이 연상되는 그런 도상이다. 거울 속에 반영된 자기 얼굴을 냉혹하게 들여다보고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도 든다. 허공으로 날리는 머리카락은 마치 영기문과도 같고 또는 내면에서 바깥으로 번지는 기운이나 혼, 정신성의 가시화라는 장치에 해당하는 것도 같다. 숨길 수 없는 나이와 주름이 얼굴에 파고들어 생긴 흔적, 상처가 상형문자처럼 박혀있다. 배경은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있는 것들은 일종의 책거리를 연상시키는 민화풍의 그림이 정갈하고 소박하게 박혀있다. 그 개별 사물들을 공들여 그리고 채색을 입혔다. 즐거운 유희, 재미있는 그리기이자 회화적인 손의 노동을 온전히 투영하는 작업을 이런 식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동안 조각적이고 입체적이며 설치 작업(반드시 회화가 개입되긴 했지만)을 선보였던 작가가 전통적인 회화로, 그것도 동양화 재료를 통해 조선조 초상화와 민화를 차용한 그림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 우선 새삼스러웠다. ● 매체로 보아 분명 동양화 장르에 속하는 그림일 것이다. 사용하는 재료만 보아서는 그렇다. 그러나 종이와 먹, 모필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재료를 전통적인 동양화방식에서 구현하고 있기보다는 우선 재료 차원에서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기운생동하는 모필의 선과 깊고 맑은 채색의 맛으로 가라앉기에는 그만큼의 시간과 재료에 대한 체득이 요구되기에 그렇다. 물론 그 재료를 반드시 전통적인 방식으로 구사할 필요는 없다. 작가는 먹과 모필을 가지고 대상의 윤곽선을 그리며 채색물감으로 공들여 칠한다. 그것은 단지 전통적 재료일 뿐이지 그 사용법은 다분히 서양화 방식에 근거하고 있다. 아마도 이 재료에 대한 경험은 좀더 시간이 요하는 부분일 것이다. ● 나무를 활용해 그 표면에 부분적으로 인물의 형상을 얹혀놓거나 채색을 입히고 또는 분절된 나무와 나무 조각들을 잇대어 콜라주 한 윤석남 특유의 스타일을 대신해 정통적인 회화세계로 유턴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윤석남의 작업에서 회화가 떠난 적은 결코 없었다. 자연목의 형태를 자연스럽게 살리면서도 납작한 표면 처리를 한 후 이를 화면 삼아 드로잉을 해왔는데 그 그림들은 먹/ 검은색 물감으로 그려진 감필의 드로잉, 간략한 선묘로 포착한 여자의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근작은 화면이 얇은 종이/한지 바탕으로 이동했고 그 위에 모필에 의한 선묘 중심의 먹그림이 중심이 되었다. 또는 자화상과 함께 책거리를 재연한 것들은 채색 물감을 입혀서 민화 맛을 자아내고 있다. 이제 이전의 단단하고 무겁고 견고한 재료에서 벗어나 (동일한 나무이긴 하지만) 얇고 가벼운 종이로, 그 감각적인 단면의 피부로 이동했다. 그리고 온전히 그리기, 칠하기로 마감하고 있다. 동시에 자신(여자/딸)의 근원을 추적하거나 같은 여성들의 삶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두루 펼쳐내던 데서 이제는 거울 앞에 차분하게 앉아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온전히 자기 얼굴만을 뜯어보고 있다. ● 이전 작업이 정감 어린 꼭두와 같은 민속기물에서 연유하는 오랜 시간의 자취와 부분적으로 절취된 이미지(파편적인 화면)로 인해 향수와 상처 등을 연상시키는 편이었다면 근작은 철저하게 자신의 초상으로만 초점이 맺혀져 있고 그것은 현재의 가감 없는 자아의 실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말하기를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는 순간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그 그림에 크게 매료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근작은 이에 대한 반응인 듯 하다.

윤석남_자화상_한지에 먹, 채색_140×75cm_2017

옛사람들은 초상화 그리는 일을 이른바 빛을 그리는 일로 여겼다. 사조(寫照)가 그것이다. 그것은 빛에 의해 드러난 형체를 그리는 일이자 인간의 내면이 뿜어내는 모종의 빛을 포착하는 일이다. 얼굴의 생김새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베어 나오는 기운에 대한 주목의 형상화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얼굴 하나를 들고 살며 그 얼굴을 통해 자기 내면이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발설한다. 나름의 안색/빛을 펼친다. 그 빛은 한 사람이 살아온 생애와 이력, 그가 겪었던 삶의 굴곡과 주름을 죄다 드러내 보인다. 몸 안에 가득한 것들이 그렇게 방사된다. 그래서 얼굴은 일종의 텍스트가 된다. 보는 것만이 아니라 공들여 읽고 살피고 깊이 있게 헤아리며 저 안으로, 심연 같은 마음속으로, 정신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한 인간이 뿜어내는 모든 기운과 빛을 만나는 일이고 보는 일, 그것이 누군가의 얼굴을 접하는 일이자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다. 아마도 윤석남은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그것이 단순한 얼굴그림에 머물지 않고 신령이나 정신이 담겨진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 그림은 실재하는 인간을 대신하는 것이자 혼이 깃든 이미지다. 이미지는 단지 이미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가 실재를 대신해, 부재에 맞서 다시 눈앞에 현존되는 기이한 체험을 안겨준다. 동양의 전통적인 골상법(骨相法)은 형상의 묘사를 통해 정신세계를 그려낸다는 '이형사신(以形寫神)'이었다. 이는 단순한 사실적 모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형의 묘사를 통해 그 인물의 내면세계를 나타낸다는 것이고 그것이 인물초상화의 근본취지다. 그것을 '전신(傳神)'이라 칭한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소위 전신이란 인물이나 사물이나 자연세계의 내재적 정신 본질을 표현함을 뜻한다. 우리 전통 초상화가 추구하는 최고 경지인 전신사조(傳神寫照)는 얼굴에 깃든 정신을 작가가 관조(觀照)한 형상을 통해 드러내는 것을 의미했다. 윤석남 또한 그런 식으로 자기 얼굴을 그리고자 한다. ● 윤석남의 자화상에서 보여주는 매섭고 날카로운 눈매 역시 무엇인가를 방사하는 듯 하다. 보는 이의 의식에 호소하면서 이른바 상징적 공간을 열어놓는 편이다. 그림은 주어진 외형에 머물지 않고 표면에 안착된 기표들이 연쇄적으로 유희하고 충돌하면서 다양한 의미를 열어준다. 그것이 좋은 그림이 주는 힘이다. 따라서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다층적으로 무한히 퍼져나간다. 윤석남의 자화상이 지닌 의미 또한 그렇다는 얘기다. 물론 재료를 구사하는 힘이 더 진전된다면 그만큼 효과적인 초상화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얼굴은 단지 특정인의 얼굴을 그린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로부터 더 나아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하고 무의식의 지층을 건드리면서 다가온다. 그것은 언어와 문자를 무용하게 만들면서 파고든다. 그림을 보는 순간 한 개인의 살아온 그간의 역사와 시간, 정서와 여러 심성들이 스며들고 달라붙어서 여러 의미를 파생한다. 특정한 이의 얼굴을 재현한 그림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비시각적인 것까지 건드리면서 다층적으로 읽힌다. 따라서 윤석남의 이 자화상은 이른바 '열린 상징체계'가 된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그 상징적 공간을 열어놓고자 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초상화를 본다는 것은 개별인간의 초상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로 확산되고 진정으로 인간을 이해해 보는 일이 된다. 나아가 내 자신의 존재 근거를 질문하는 일도 된다. ■ 박영택

윤석남_자화상-책가도와_한지에 먹, 채색_90×65cm_2018

나는 40년 전 작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여성으로서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를 놓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당신은 여성이라는 한정된 주제에 집착하는가? 통상적으로 예술이란 무한한 자유를 구가하는 것인데 "여성"이라는 화두로 작업의 주제를 제한하느냐 라고! 나는 대답한다. 나는, 남성은 곧 인간이라는 커다란 하나의 개념으로 불릴 때, 여성은 그 인간 속의 한 부류로 분류되는 시기에 여자아이로 태어났고, 여자 아이로 키워졌고, 그렇게 자랐고, 교육받고, 직장을 다녔고, 그리고 결혼해서 며느리로 살았다. 그러한 시기를 통해서 나의 존재가 여성이라는 하위 개념으로 정의 내려지는 커다란 모순을 발견하게 되고 그 원인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하게 됐다. 거기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그림을 시작한 결과가 된 셈이다. 그러므로 나의 작업의 화두는 언제나 "여성인 나의 삶"에 집중되어 있다. ■ 윤석남

Vol.20180803h | 윤석남展 / YUNSUKNAM / 尹錫男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