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미래

이정展 / LIJUNG / 二井 / video.installation   2018_0804 ▶ 2018_0901 / 일,월요일 휴관

이정_섬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문화공간 양 CULTURE SPACE YANG 제주 제주시 거로남6길 13 Tel. +82.(0)64.755.2018 culturespaceyang.com

지나간 프리뷰 ● 『지나간 미래』의 레이아웃을 실제 전시장처럼 걸어보기로 한다. 공간 바닥에 낮은 투명도로 표시된 전시 이동 경로를 따라서. 오늘은 7월 29일이고 전시장의 이전 전시가 철수되는 날짜다. 그러므로 이 서문은 비어있는 주소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 전시기간보다 한참이나 앞서 있는 타임라인에 홀연히 초대된다. 이를테면 작가가 약속한 미래에 의해 보증된 행간 안에 서 있으며, 전지적 유령의 인격으로 10평 남짓 한 방들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 텍스트는 뒤에 도착할 관객들과 똑같은 순서로, 소리 죽인 걸음걸이로, 원하는 만큼 배회할 것이다. 이것은 유령의 무용을 기록하며, 이름 없는 관객의 초연으로서 참고 자료로 제공된다.

이정_체조하기_단채널 영상_00:01:03_2017
이정_무대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8

제주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자리한 최대 규모의 도서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지난 2016년 해군기지가 완공되었고, 다시 2025년까지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에 제2공항 건설을 앞두고 있다. 이는 제주에 관한 근래의 판타지가 구체적인 단위의 너비로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두 시설은 일종의 쓰임새로서 제주를 점령하기 위한 사업개요에 가깝다. 1825㎢ 면적의 외딴섬은 전략적 요충지와 특수 관광지 사이에 말없이 놓여있다. 와중에 2011년부터 시작된 생명평화대행진은 참여 인원을 두 그룹(동진, 서진)으로 나누어 정확히 반대 지점에서 조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행렬은 반 바퀴씩 둘레를 따라 걷고, 종래에는 한 바퀴 길이의 거리로서 합산되며 원형의 보행로를 남기게 된다. 해를 거듭하며 축적되는 회전운동의 양은 모종의 원심력을 형성한다. 이때 제주는 중력을 가지려는 천체와 같이 관측된다. 그러는 동안 「체조하기」 속 인물들은 둥글게 모여 선 채 같은 순서가 반복되는 율동을 끊임없이 수행한다.

이정_웰컴카드_현수막_90×300cm_2018

'낙원(Paradise)'은 그것의 표기 방법만큼이나 우연히 조합된 개념처럼 받아들여진다. 이상적인 장소를 지시하지만 절대로 그곳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언어로도 닿을 수 없는 독립적인 공간이다. 요사이 제주는 가장 가까운 바다 위로 이끌려 내려온 낙원의 한 구획으로 취급된다. 미디어는 국토부의 정식 인가 아래 제주를 인공 휴양지로 바꾸어가고 있다. 그 섬은 맑게 갠 해양 사정권과, 가장자리가 실종된 평화를 한꺼번에 제공해줄 것이다. 완벽한 조건의 수상 낙원이다. 한편 강정과 성산을 왕래하는 일군의 행렬은 멈추지 않고 둘레를 따라 돈다.

이정_오픈필드_단채널 영상_00:04:12_2017
이정_꽃놀이_플라스틱_가변설치_2018

다시 전시계획도 안으로 돌아온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 엽서 크기의 실내 도면은 외려 평면의 전개도처럼 파악된다. 임의의 선들로 대체된 기둥과 벽면을 따라 접으면 복잡하고 입체적인 부피의 구조물이 돌연 조립될 것 같은 모양새다. 그렇게 원래는 아무것도 없었던 '제주시 거로남 6길 13'이라는 가상의 주소지에 문화공간 양이 지어지고, 실제 축척의 지형과 풍경이 형성되며, 실제로 초대받는 과정에서 현실의 어디쯤을 점유하게 되는 것이다. 수직 시점의 실내 도면은 노지露地로서 열려있고, 그 안을 습기처럼 배회하는 동안 마침내 「체조하기」 속 노란 티셔츠 뒷면에 인쇄된 문장은 '평화야 고치글라'로 확인된다. ■ 신종원

이정_유니콘_튜브_가변설치_2018

전시 제목으로 사용된 "지나간 미래"는 1998년 한역된 독일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의 『지나간 미래』(라인하르트 코젤렉, 한철 역, 문학동네, 1998)를 인용한 것이다. (원제는 Vergangene Zukunft-zur Semantik geschichtlicher Zeiten로, 조금 더 정확하고 구체적인 표기법을 따른다.) 문법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이 터무니없는 비유는 "역사는 삶의 스승"이라는 옛 경구를 곧바로 상기시킨다. 코젤렉은 역사를 흐름 내지는 율동으로 이해한다. 그런 점이 '미래 자체를 예측하지는 않지만 가능한 미래의 조건들을 가르쳐 준다'고 내다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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