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스포라1 : 야곱의 사다리 (Auto-spora1: Jacob's Ladder)

갈유라展 / KALYURA / 葛儒羅 / video   2018_0810 ▶︎ 2018_0831

갈유라_오토스포라 : 야곱의 사다리 (Auto-spora1: Jacob's Ladder)_영상_00:16:00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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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온그라운드2 Onground 2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3 (창성동 122-12번지) 2층 Tel. +82.(0)2.720.8260 www.on-ground.com

경계의 자아를 체험하기 ● 『오토스포라 1 : 야곱의 사다리』(이하 『오토스포라』)1)는 교차된 세계(화면)들을 통해 주체의 이산(離散)과 경계로의 이동을 보여준다. 남북 정상 회담을 '골든 힐 로드 회담'으로 전유한 뉴스-내레이션으로 시작된 영상은, 원숭이가 곁을 동반하는 홍콩 금산로(金山路)에서 차를 마시는 여정과 아웃포커싱되는 차 밭 앞에서 잎을 따는 손동작들 사이사이로, 인도에서 불특정 사람들에게 말차 한 잔을 권하는 야곱의 퍼포먼스가 끼어드는 식으로 두 세계가 교차 진행된다. ● 금산로를 걷던 갈유라 작가가 마침내 당도한 곳에 펼쳐놓는 찻상의 빈자리 그리고 말차는, 따라오던 원숭이에 의해 우발적으로 선택된다. 이어 차 밭에서 녹차 잎을 따고, 말리고, 갈아, 체에 거르고, 통에 넣는 말차를 만드는 다섯 개의 수행 구문에 동반되는 청유형 문장들에서, 말차라는 대상은 "당신"으로 지칭된다. 내레이션에서 주체의 변용을 겪는 말차 대신, 정작 그것이 도달하는, 말차를 마시는 주체가 호명되지 않음으로써 현실-주체의 세계는 희미해지고 애매해진다. 느리고 견고한 어투에 약간 과잉된 예의를 차린 내레이션-주체의 '이상한 호명'('차 잎', '딴 잎', '말린 잎'…="당신")으로부터, 청자는 차 밭과 손 사이처럼 세계의 경계에 휩싸인다.2) 이 호명의 과정에서 차 잎은 말차의 가루로 변용되지만 결코 죽지 않으며, 모두 하나의 견고한 "당신"으로 호명된다. ● 사실 흩뿌려진(-spora) 녹차는 불특정 다수의 목구멍을 통과(dia-)하여 자리 잡는다. 끊임없이 변용되는 말차처럼 주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실례지만, 당신을 먹어도 되겠습니까?"를 잠재형으로 자연 품는 이전 문장들의 "당신"은, 알 수 없는 호의로 권해지며 순식간에 또 다른 당신들로 이동한다. 이는 경계를 이동하며 변용되는 주체의 생성 과정에서 비로소 새롭게 자기(auto)가 구성됨을 의미한다. 곧 '분리/구별(dia)의 자리를 메우는 흩뿌려지는(spora) 자기(auto)', 경계에 포획되는 주체의 영도가 곧 『오토스포라』의 세계인 것이다. 여기서 제목 'Auto-Spora'는 diaspora의 삭제된 어근, dia를 자연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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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야곱이 말차를 권하며 존재와 존재 사이에 '사다리'를 놓는 화면은, 이내 두 개에서 종국에는 네 영상들의 동시 다발적 병치로 '산포'돼 마치 CCTV의 감시인 양 하나의 시점으로 들어온다. 앞선 다도의 빈자리가 우연히 원숭이의 자리가 된 것처럼, 하나의 자리는 수많은 관계로 등치된다. 타자의 증식이 자아의 산포로 이어지며 주체는 전위된다. 경계 자체로의 이동과, 수많은 주체들의 자리바꿈·증식·생성으로 주체는 변용되고 확장된다. 마치 빈자리를 놓고 차를 건네는 행위가 나의 위상을 불특정한 너의 위상으로 바꾸는 제스처였다면, 차를 직접 건네는 행위는 타자의 자리를 대면으로 상쇄하며 반복하고 전환하는 생성의 적층이다. 타자에 함입되는 말차처럼 이런 전환 속, 야곱은 말차 자체일 것이다. ●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바에 따른 것'이라는 마지막 자막은, 나와 당신은 세계 바깥으로 나아가며 세계의 경계에서 맞물리는, 관계의 연기론적 세계를 지시한다. 말차의 이동이 곧 세계(의 이동)이자 나와 너의 공통적 존재의 만남/나눔이 되듯. 바로 직전, 어딘가에서 온 소포를 개봉하며 눈물 흘리는 야곱을 보여주는 장면은, 보온병을 들고 야곱이 바깥으로 나가는 맨 앞 장면에 선행하며, 선물의 경제학이 지닌 호혜 평등의 인과율(곧 증여가 아니라 신에게 받은 선물을, 또는 신의 육체를 후차적으로 나누는 것이다)을 나타낸다.3) 마지막으로 말차처럼 편재되는 신의 존재는 여전히 의문부호를 남긴다. 그것은 아마도 어떤 것이라고 확실시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말차가 전해 주는 것처럼 경계 자체를 넘는 행위에서 지각되는 어렴풋하지만 감각되는 기표일 것이다. ■ 김민관

* 주석 1) '야곱의 사다리'는 형 에사우의 위협으로 도망가던 야곱이 하나님의 계시 아래 꿈속에서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사다리를 보고 위안을 얻는다는, 성경에 등장하는 신과 지상을 잇는 상징적 메타포로, 참고로 인트로-내레이션에 발췌된 텍스트, 「제이콥에게 가는 길」에서 제이콥(Jacob)은 야곱을 영어식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2) 서양에서는 야곱에게 내려온 하늘의 사다리에 비유해, 구름 틈새로 비치는 햇빛을 '야곱의 사다리'라 부르는데, 마치 아웃포커스로 축소된 거리와 빛으로 덮인 세계에서 갈유라의 두 손은 앞을 향한 사다리의 도상으로도 읽힌다. 3) 시작과 끝의 장면이 도치돼 맞물림은 시간에 대한 인과율을 강조하는데, 한편 이와 같은 오프닝·클로징 시퀀스 삽입은 각각 시작에 대한 기대, 이후 「오토스포라」의 시리즈물로서의 성격을 암시하는 영화적 클리셰로, 실제 「오토스포라」를 감상하는 장소가 영화관 의자라는 사실과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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