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태도

허우중展 / HOHWOOJUNG / 許又中 / painting   2018_0810 ▶︎ 2018_0826 / 월요일 휴관

허우중_공든 탑_캔버스에 연필, 유채_259×194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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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810_금요일_06:00pm

후원 / 서울시립미술관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조선 GALLERY CHOSUN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4(소격동 125번지) Tel. +82.(0)2.723.7133 www.gallerychosun.com

허우중은 사회 내에 팽배한 냉소와 불신, 불안,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드로잉과 회화, 콜라주로 표현해왔다. 구작에서 드러나던 만화적인 표현, 상징은 기하학적 요소로 변화하였으며, 신작에는 시소나 저울을 연상하게 하는 균형 의식이 드러날 것이다. ● 허우중의 회화에 등장하는 기하학적 도형과 나뭇가지, 솔방울 등은 회화가 구축하는 서사를 중단시키며 자의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를 촉발한다. 각 형상은 가시적이지 않은 관계를 바탕으로 비전형적인 균형을 형성한다. 아슬아슬해보이는 화면은 보는 이의 공간과 사물, 인식론에 질문을 던진다. ● 정해진 목표가 없는 질문들은 불안을 야기하기 마련이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것이 아니고, 갈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갈 수 있는 길이 너무 많을 따름이다. 허우중은 우리 모두가 지나가고 있거나, 지나온 혹은 지나야 할 이 혼란을 담담하지만 결심에 찬 태도로 가로질러 간다. 작가의 이런 태도는 젊은이들이 향유하는 문화에 대해 사유하게끔 한다. 시대마다 '젊은이'로 명명당한 이들은 공통적인 관심사를 공유하고는 한다. 비건이나 요가, 가상현실, 미니멀 라이프와 같이 각 세대가 공감하는 문화적 행동양식에는 때로 그 세대가 공유하는 문제가 부제처럼 붙어있다. ● 허우중 작가는 균형을 만들기 위한 발판과 사물, 각 사물의 부피나 무게, 위치와 배열 등을 변형한다. 개인이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초과한 정보와 선택지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규칙을 가다듬고 균형을 잡으려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이러한 관객 각자의 태도를 담기 위해, 하얗고 고른 배경이 펼쳐져있다. 구작에서 단단하게 땅을 딛고 서 있던 도상은 이제 그 곳에 없다. 집은 허물어지고 인물은 도망친다. 땅은 멀어지고 하늘은 뒤집힌다. 진공과 같은 화면에, 모래성과 같이 아스라하고 불완한 형태만이 남을 것이다. 이 그림 안에서 무엇을 읽어내고 어떻게 대답할지는 각자 다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각 개인의 답은 묘한 합치점 보이며 무언의 공감대를 형성할지도 모른다. ■ 갤러리 조선

허우중_처음과 끝_캔버스에 연필, 유채_227×182cm_2018
허우중_나의 저울과 너의 저울이 같을 수 없는 것처럼_캔버스에 연필, 유채_65×50cm_2018

마음만 먹으면 세상은 언제든 나를 향해 벅차게 다가올 준비가 되어있다. 공기마저 먼지로 가득한 세상은 과거 공상과학 영화가 제시한 시대상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빠르게 그 모습을 바꿔가며 점점 더 비대해진다. 어쩌면 포화상태에 다다른 세상에 내가 뒤늦게 태어난 건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테크놀로지에 압도당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한참 전이라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물론 압도된다는 표현은 딱히 테크놀로지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매일 쉼 없이 쏟아지는 정보들은 가뭄을 모른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사회적 쟁점들은 하나하나 열거할 엄두조차 들지 않는다. 이 사회적 쟁점들은 타인을 한 번이라도 다시 인식하게끔 하고 서로 생각하는 바가 이렇게 다르구나, 그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실감케 한다.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얽히고설킨 사회 문제까지 들먹일 필요 없이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과의 문제만으로도 삶은 부지불식간에 복잡해질 수 있다.

허우중_권태의 필요_캔버스에 연필, 유채_227×182cm_2018
허우중_나의 저울과 너의 저울이 같을 수 없는 것처럼_캔버스에 연필, 유채_65×50cm_2018

뒤죽박죽 쌓여있는 문제들 중 무엇 하나 쉽사리 해결되는 것은 없다. 꼭 테트리스 게임 속 우습게 본 단순한 블록들의 낙하가 그 속도의 완급 조절만으로도, 또는 무심코 놓여진 블록 한두 개만으로도 금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처럼 단순한 문제들은 다가오는 그 속도와 방향에 따라 얼굴을 달리한다. 풀리지 않은 문제들은 또 어디 결코 도망가는 법도 없다. 차곡차곡 어디엔가 조용히 쌓이고 있다가 불쑥 그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에는 손쓰기에 너무 늦어버린 상태다. 살면서 마주하는 문제들에 대한 허용치라든가 수용 가능한 마지노선이 있다면 내 경우에는 어디쯤 도달했을까 생각해보다 어느 순간 벌써 한계치가 임박한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내 코가 석자란 말은 좀 슬프게도 어느 때나 딱 들어맞는다.

허우중_보기 힘든_캔버스에 연필, 유채_112×112cm_2018
허우중_나의 저울과 너의 저울이 같을 수 없는 것처럼_캔버스에 연필, 유채_65×50cm_2018

벅찬 세상이 눈앞에 서 있다. 언제 무너져도 딱히 놀랍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이 세상은 흡사 서커스의 곡예 장면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세상이 이렇게 불안정해 보이는 이유를 찾아보려 하지만 나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어 결국 아득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도무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적어도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무엇일까 다시 물어본다. ●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결국 내 한 몸이 살아가는 궤적에 한정되어있고,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듯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 또한 매번 제한적이다. 경험한 것과 미지의 것이 혼재한 세상은 그래서 영원히 불가사의인 상태로 남는다. 쉼 없이 자전하는 땅 위에 서서 이 찰나의 순간에 집중해본다. 비록 곧 스러질 모래성이라도 지금을 쌓아본다. 돌아오지 않는 어제와 붙잡을 수 없는 내일이 아닌 벅찬 오늘의 세상을 기꺼이 맞이하기로 한다. ■ 허우중

Vol.20180810d | 허우중展 / HOHWOOJUNG / 許又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