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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823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아트비트 갤러리 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74-13(화동 132번지) Tel. +82.(0)2.738.5511 www.artbit.kr
이동환이 어느 날 내게 장준하(1918-1975) 선생의 『돌베개』란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이 책의 주요 장면을 목판으로 새겼다면서 몇몇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동양화를 전공했기에 모필의 힘을 실어 이미지를 도상화 하고 이를 예리하게 칼로 새겨 찍어낸 목판화의 맛 또한 만만치 않음을 일찌감치 알고 있던 터였는데 이번에 새삼 그의 흑과 백으로 조율된 힘찬 목판화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더구나 특정 역사적 기록을 소재로 삼아 이를 연속적인 서사로 엮어낸 역작으로서의 의미가 무척 크다고 생각한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이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함께 책의 내용에 충실한 동시에 작가의 상상력과 형상화가 공존해야 가능한 작업인데 이는 사실 매우 까다롭고 힘든 작업이다. 또한 회화와 달리 목판화는 그림을 그리고 이를 다시 칼로 파고 찍는 몇 번의 과정을 통해 추려내는 복잡한 공정이 깃들어 있고 아울러 낭창거리는 모필의 탄력과 달리 단호하고 결정적인 칼의 선택에 의해 마감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의 차이도 있다. 동일한 평면 위에서 이루어지지만 판화는 나무의 표면을 절개하고 깊이를 만들어 파고 들어가 요철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이른바 조각적인 작업이고 그만큼 물질적인 성향, 촉각적인 지각을 예민하게 건드린다. 표면에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회화와는 분명 차원이 다른 작업이란 얘기다. 아울러 오로지 흑백의 단색 톤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결정지어야만 한다. 이 점에서는 수묵화와의 유사성을 어느 정도 거느린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유와 무, 검정과 흰색 두 가지 차원의 세계 속에서만 모든 표현을 이루어내야 하는 한계 안에서의 조형화라는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 하여간 이동환은 그와 같은 목판화 작업을 통해 장준하 선생의 지난 역사적 여정에 동행했다.
이동환의 작업을 보면서 앞서 언급했듯이, 문득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과 함께 웨이웨이와 선야오이의 『대장정』이 동시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와 함께 제주도 출신의 화가 강요배가 지난 1989년부터 3년에 걸쳐 '제주 4.3항쟁'을 다룬 그림 50점을 그려 전시와 함께 출판으로 묶어 낸 『동백꽃 지다』도 같이 떠올라주었다. 역사적 사건을 그림으로 형상화 한 일종의 역사화의 전통이 이 땅에서는 그다지 유례가 없는 편이어서인지 이동환의 근작이 퍽이나 의미가 있어 보였다. 특히나 목판화 연작을 통해 한 권의 묵직한 책을 모두 보여준 예는 더더욱 드물었던 것 같다. ■ 박영택
한 판, 한 판 숨을 몰아쉬며... ● 한창 국정교과서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던 그 무렵, 아마도 나는 거기에서부터 시작했는지 모른다. 우연히 들린 동네서점에서 집어든 이 '돌베개' 책은, 세월호 사건 이후 무기력에 빠져 있던 나에게 작은 위안으로 다가왔고, 한 번 읽고 책장을 그대로 덮을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엔 온통 진흙 밭을 뒹구는 장면, 타는 목마름, 목숨을 건 행군 그리고 벅차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로 가득 찼고. 그 동안 무심했던 지난 역사의 아픈 상처가 지금도 채 아물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뭐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스케치북을 꺼내들고, 연필을 쥐고, 조각칼을 잡고, 나무를 어루만졌다. 한 판, 한 판 숨을 몰아쉬며 걷기 시작했다. 아니 함께 철조망을 뛰어 넘고, 지쳐 잠들고, 목 놓아 애국가를 부르며, 험준한 파촉령을 넘어 임시정부의 충칭으로 향해 갔다. 그렇게 장준하 선생님을 뵈었고, 목판에 새기게 되었다. 비록 서툰 솜씨이고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장선생님의 말씀처럼 '못난 선배가 되지 말기를....' 나 역시 바라며, 여기에 작은 디딤돌이 되고자 한다. ■ 이동환
왜 지금 장준하인가? ● 나는 이 책의 줄거리가 다소 과장돼 현실성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장준하 선생의 사망과 관련해서는 충분히 소설로 읽힐 근거가 모자라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무사가 장준하 선생의 죽음과 연루된 것은 아닌지 궁금증을 떨칠 수 없었다. 아울러 장준하 선생 죽음의 근원이었던 항일 대장정을 얘기하지 않고서는 의문사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가 왜 친일파들로 추정되는 세력에게 죽임을 당했는지 이해하려면 그가 청년 시절 어떤 사색을 했고, 사색했던 것들을 어떻게 실천에 옮겨졌는지 꼭 알 필요가 있다. 「칼로 새긴 장준하」에 실린 이야기는 대부분 돌베개가 틀을 이루지만 소설 형식을 기초로 새롭게 창작한 내용이라 원서와 다른 부분이 많고, 상황에 대한 설명도 상당히 틀리다. 그래서 이 책을 보고 장준하 선생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면 꼭 돌베개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장준하 선생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했다. 그에 대한 좌우의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청년지식인이자, 항일투사라는 것에는 서로 의견을 달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수 쪽에서는 철저한 반공주의자,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조국의 분리 독립을 찬성하였으며, 조선민족청년회(족청)에 가입해 이승만의 자유당 창당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했다. 진보 쪽에서는 이승만 신봉과 맹목적인 반공주의에 반대해 김구계로 돌아선 인물, 같은 이유로 족청에서도 탕퇴했으며, 독재 정권 타도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운 투사로 기억했다. 특히 1972년 7.4공동성명 이후 조국통일을 최고의 과업으로 아로새겼던 민족주의자로 봤다.
왜 그런 것일까? 나는 장준하 선생이 삶을 살아가면서 조국의 산적한 문제들을 직시하며 현실적인 판단을 달리했다고 본다. 쉽게 얘기하면 좌우의 평가 모두 옳을 수 있다. 독자들도 학도병으로 끌려가 감옥같은 일본군에서 탈출한 뒤6천리를 걸어 광복군이 되기까지 과정을 복기하면 조금이나마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결론은 내기 쉽지 않다. 장준하 선생의 얘기를 직접 들어 본 적도 없고, 그의 자료가 새롭게 발견된 것도 없다. 객관적인 자료라고 하면 그가 쓴 『돌베개』와 『사상계』등의 잡지에 발표한 글이 전부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장준하 선생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 이동권
Vol.20180822b | 이동환展 / LEEDONGHWAN / 李東煥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