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MADIC DESIRE

이경희展 / LEEKYUNGHEE / 李京姬 / printing.painting   2018_0906 ▶ 2018_0916 / 월요일 휴관

이경희_Nomadic Desire 1715 (72.3-53.8)_우드인그레이빙, 수묵담채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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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홈페이지_lkh.gallery25.co.kr

초대일시 / 2018_0906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아트비트 갤러리 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74-13(화동 132번지) Tel. +82.(0)2.738.5511 www.artbit.kr

유목적 욕망이 자아내는 연기(緣起)의 미학 ●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그러나 웅덩이를 만들어 물을 가두는 순간부터 물은 썩기 시작한다. 우리의 욕망은 물과 유사하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욕망은 풍족한 것에서 결핍된 것으로 흐른다. 그리고 욕망이 억압되어 흐르지 못하면 마음에서 부패가 일어나 신경계를 교란시킨다. 질 들뢰즈가 말했듯이, 욕망은 영토화나 코드화 될 수 없는 것이며, 항상 흘러가며 사회가 허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대상과 유목적이고 다자간의 연결을 추구한다.

이경희_Nomadic Desire 1716 (96.3-69.7)_우드인그레이빙, 수묵담채_2017
이경희_Nomadic Desire 1717 (97-71.8)_우드인그레이빙, 수묵담채_2017

이경희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무의식의 웅덩이에 갇혀 있는 욕망을 흐르게 하는 것이다. "가장 무거운 욕망 덩어리를 가장 가벼운 기포와 꽃잎으로 흩날리게 하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자연이나 일상적 이미지들이 허공을 부유하며 낯설고 엉뚱한 결합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다소 답답하고 불쾌한 감정으로 내면에 감추어진 욕망의 소리를 경청하고, 그 자유로운 흐름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는 이성이 추구하는 안정되고 견고한 형식 대신 시간이 자아내는 지속적인 변화와 순환성에 주목하고, 삶에서 형성된 마음의 응어리와 집착을 풀어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 태도는 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불교의 연기론이나 괴로움과 번뇌를 소멸시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수행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 특히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그의 근작들은 자신도 알게 모르게 가두어 놓은 욕망을 원활하게 흐르게 하기 위해 세 가지 층위를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층위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융합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고유한 조형 규칙을 세우고 있다.

이경희_Nomadic Desire 1812 (26.8-39)_우드인그레이빙, 수묵담채_2018
이경희_Nomadic Desire 1818 (81-101.5)_우드인그레이빙, 수묵담채_2018

욕망을 포착하기 위한 첫 번째 층위는 '무의식의 층위'로서 의식화 되지 못하고 잠재되어 있는 꿈과 판타지의 세계다. 그는 우드 인그레이빙 기법으로 무의식의 지층으로부터 길어 올린 이미지들을 일상의 상식적인 맥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병치시키며 낯선 생태환경을 만들고 있다. 작은 화면에 작가 특유의 예리한 손맛과 극도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이 이미지들은 흑백의 묵직한 울림 속에 태곳적 신비를 떠오르게 한다. ● 1990년대 이후 그의 작업들은 이러한 무의식의 층위를 드러내는 것으로 일관되었다. 작은 화면에 매우 밀도 있게 새겨진 이러한 화풍은 20세기 초에 서양에서 유행했던 상징주의나 초현실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 뒤러의 정밀한 판화기법과 에른스트의 초현실성이 느껴지는 이러한 작품들은 놀랄만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현대성을 감지할 수 있는 시대정신이나 자신만의 양식적 독자성을 구축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는 이러한 자신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용기 있는 실험들을 진행하였다. 이번 전시회는 그 간의 새로운 실험들이 방향성을 찾으면서 자신만의 양식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경희_Nomadic Desire 1819 (104-88.5)_우드인그레이빙, 수묵담채_2018

무의식의 층위에 시대정신과 현실성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두 번째 층위는 '의식의 층위'이다. 이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세계로 최근 작품에 트레이드마크처럼 등장하는 쇼핑 카트와 핸드백, 하이힐, 모자, 비치볼, 호박, 자전거 등의 이미지들로 대변된다. 그것들은 우리 사회의 어떤 심오한 상징성이 담겨 있다기보다는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를 표상하는 이미지들이다. 거기에는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우아한 형태와 화려한 색채의 유혹이 있다. ● 프로이트가 예술의 원천으로서 무의식에 주목했지만, 사실 의식과 무의식이 명료하게 나눠지는 것은 아니다. 욕망은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혹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자유롭게 넘나들며 흐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의식의 층위를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욕망을 환기시키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무의식의 층위가 흑백의 판화로 제작되었다면, 의식의 층위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은 이와 대비되게 가는 붓으로 컬러풀하고 사실적으로 그렸다. 다소 앙증스럽게 그려진 이러한 이미지들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소소한 욕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경희_Nomadic Desire 1820 (72.8-105)_우드인그레이빙, 수묵담채_2018
이경희_Nomadic Desire 1821 (104-73.5)_우드인그레이빙, 수묵담채_2018

근작들에서 또 다른 주목할 만한 변화는 세 번째 층위로서 '자연의 층위'를 가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너머에 존재하는 자연의 층위를 도입한다는 것은 주체의 의지를 완전히 내려놓고 수동적인 태도로 자연스런 우연의 효과를 수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지나치리만큼 정교한 완벽성을 추구해 온 이전 작업의 조형방식에 물성과 우연성을 개입시켜 숨통을 터주는 효과를 얻고 있다. ● 이를 위해 그는 장지에 먹물을 번지게 한 뒤에 마음에서 느껴지는 형상을 따라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낸다. 그리고 다소 그로테스크하게 보이는 이 추상적 이미지를 장지에 꼴라주 한 후 이미 만들어 놓은 무의식적 층위의 판화 이미지들을 즉흥적으로 어울리게 배치시킨다. 그리고 의식의 층위를 상징하는 일상적 이미지들을 적당한 곳에 그려 넣어 작품을 완성한다. 이것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작업으로 이 과정을 거쳐 작품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유기체로 탄생된다. 이렇게 생명을 얻은 유기체는 구조적으로 의식의 층위가 뼈대를 이루고, 무의식의 층위는 근육을, 그리고 우연한 번짐이 지배하는 자연의 층위는 살을 이루며 짜여진다. ● 이러한 규칙에서 중요한 점은 하나의 층위로 귀속되지 않고 세 층위가 뼈와 근육과 살을 이루며 적당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층위의 세계를 종합하는 것은 양식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만약 표면적인 의식의 층위만을 다루면 팝아트로 흐를 것이고, 내면적인 무의식의 층위만을 고집한다면 초현실주의로 귀결될 것이다. 그리고 물성적인 자연의 층위만을 표현한다면 추상표현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서로 이질적인 이 세 가지 사조를 한 화면에 종합함으로써 어느 특정 사조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삼음으로서 정체성이 보다 뚜렷해졌다.

이경희_나의 신화 1726 (71.3-101)_우드인그레이빙, 담채_2017
이경희_나의 신화 1727 (69.5-100.5.)_우드인그레이빙, 담채_2017

이처럼 한 화면에서 여러 층위의 이미지들이 종합되면서 오브제들은 일상의 질서에서 벗어나 예상치 못한 즉흥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작가로서 그의 역할은 그 우연한 만남의 사건들에 미적 감각으로 천생연분 같은 필연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미적인 이상은 어떤 아름다운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뼈와 근육과 살이 이상적으로 조화된 존재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그는 의식과 무의식, 인간과 자연, 우연과 필연, 구상과 추상 등의 이분법적 구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경계를 와해시킨다. 그럼으로써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상호 관계하며 생기소멸하는 '연기'(緣起)의 세계를 표상하고자 한다. ● 다층의 세계를 유목적으로 넘나드는 욕망은 단순히 식욕이나 성욕, 혹은 단순히 상대적 결핍을 채우려는 의지가 아니라 연기의 관계망을 이루려는 우주적 욕망이다. 이 우주적 욕망의 흐름을 통해 그는 모든 세계가 하나의 그물망으로 연결된 '연기의 미학'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힘과 동화되어 에고의 집착에서 벗어나 평온의 미의식에 도달하는 것이 그가 예술을 통해 지향하는 궁극적 목적으로 보인다. 근작들에서는 그러한 연기의 미학에 접근하는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었다는 점에서 향후 더욱 풍요로운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 최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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