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새긴 35년

김준권展 / KIMJOONKWON / 金俊權 / printing   2018_0908 ▶︎ 2018_1114 / 월,공휴일 휴관

김준권_자작나무아래_가을_유성목판_101×187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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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 2018_0908_토요일_02:00pm                 2018_1020_토요일_02:00pm

1부_2018-2007년 / 2018_0908 ▶︎ 2018_1016 2부_2006-1985년 / 2018_1019 ▶︎ 2018_1114

관람료 / 1,500원 만 20세 이하 및 65세 이상 무료관람

관람시간 / 09:00am~06:00pm / 매표마감_05:00pm / 월,공휴일 휴관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 ALIVE JUNCHEON PRINT MAKING MUSEUM 충북 진천군 진천읍 백곡로 1504-10(장관리 732-19번지) Tel. +82.(0)43.539.3607~9 www.jincheon.go.kr

그의 목판화에 대한 열정은 교사직을 해직당하고 쉬게 되면서부터 더욱 불타올랐다. 그는 해직된 이후 1991년부터 1994년까지 4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절간의 대장경판을 살펴보기도 하고 탱화를 모사하기도 하였다. 또한 전국의 자연 풍경을 스케치하며 이를 재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전통 목판화 작업을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통 목판화인 '우끼요에(浮世繪)'의 정교한 기법까지 연구하며 이를 자신의 작품과 연결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다. 이때 작업한 작품 중에서 태백의 마을을 소재로 제작한 판화들은 특히 그가 추구하는 감정의 내면이 잘 표현된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그만큼 현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작품들이다. 필자는 한동안 태백을 묘사한 한 작품을 걸어놓고, 그 깊이를 느끼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괜찮은 방의 풍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듯 김준권은 4년간 쉼 없이 세상을 주유하며 작업을 지속하였음에도 자신의 작업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미진한 부분을 새로운 미술 양식을 연구하며 채우려 노력한다. 그 결과 1994년 중국으로 건너가 루신(魯迅)미술학원에서 4년간을 공부하며 중국의 전통 목판화인 '수인(水印)판화'를 집중 연구한다. 학위를 위한 중국행이 아니라 순수하게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목판화를 비교 연구하여 새로운 목판화의 길을 찾으려는 몸부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 공부를 어느 정도 마친 김준권은 한국에 돌아와 1997년 충청북도 진천의 한 산자락에 '한국목판문화연구소'를 개설하고, 그동안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새로운 목판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김준권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목판 문화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다. 그는 대장경판의 판각 기법을 연구하며 먹으로 목판을 부지런히 찍어 보았다. 이를 통해 먹물이 목판에서 한지로 넘어가 표현되는 과정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 전통 목판화 양식을 바탕으로 이웃 나라의 목판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수용하여 세계성이 있는 한국 목판화를 만들어내는데 있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제작 방식은 한국의 전래 목판화 제작 방식과는 그 표현 과정이 사뭇 다르다. 본래 한국의 전통 목판화는 보통 목판 하나를 제작하여 단색으로 찍는데, 한두 색이 더 필요하면 같은 판으로 채색을 달리하여 겹쳐 찍는다. 이러한 한국의 목판화는 본래 책을 간행하기 위한 목판에서 시작하였다. 이후 불경을 간행하며 책 중간에 '변상도'가 들어가며 회화 형식의 목판화가 만들어졌으며, 「부모은중경」이나 「삼강행실도」, 「이륜행실도」, 「오륜행실도」 등에서 한국 목판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오륜행실도」의 판화는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모본으로 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실용품이지만 편지 용지로 쓰는 '시전지(詩箋紙)'에 새긴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도안도 좋은 전통 목판화 중의 하나라 할 만하다. 이러한 경향은 근대기에도 이어져 잡지의 삽화 등으로 등장하며, 한국의 목판화는 여전히 단순한 형식의 전통 목판화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김준권_이 산_저 산_채묵목판_188×285cm_2017

이에 비해 일본의 '우끼요에'는 에도 시대 이후 급속도로 발전하여 정교하면서도 다양한 다색 채색판화로 자리 잡는다. 점차 판수가 늘어나 사십여 판에 이를 정도로 다양한 방식을 갖추게 되었다. 더욱이 그들은 그림을 그리는 화사와 판을 새기는 각수, 종이에 떠내는 인출장 등으로 분업화하여 더욱 정교한 작품을 만들어 사업적으로도 크게 성장한다. 이런 우끼요에는 서구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고흐나 고갱 등은 우끼요에의 매력에 빠져 그들의 작품에 우끼요에의 속성을 차용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각광을 받은 우끼요에도 근대기에 와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여 새로운 세대에 맞춰 양식적 변화를 이룬다. 작업 방식은 같으나 소재를 현대화하고 크기나 색감 등을 유럽 교양인들의 취향에 맞추어 새롭게 태어난다. 이를 '신판화'라 한다. 이렇듯 일본의 목판화는 여전히 민중들과 살아 숨쉬는 미술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중국의 '수인판화'도 우끼요에와 마찬가지로 사용하는 색깔의 수에 따라 다양한 판수를 가진다. 우키요에와 수인판화는 매우 정교한 묘사가 특징인데, 두 나라의 민족적 성향에 따라 표현 방식이 매우 다르다. 우끼요에는 불투명 물감으로 찍어 윤곽선이 강하고 채색이 진한 특징이 나타난다. 그에 비해 수인판화는 평판을 사용하여 수성 물감으로 찍기 때문에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고, 색감의 번짐도 많으며, 채색도 투명한 듯 은은한 느낌을 준다. 마치 먹과 수성 물감으로 그린 실제 그림과 같은 느낌을 준다. 유사한 방식이라도 나라에 따라 완성된 결과물은 큰 차이를 보인다. ● 김준권이 작업하는 목판화는 동양 삼국의 각 목판화의 장점을 한곳에 모아 새로운 형식의 한국 목판화를 이루어 내려는 의욕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기 위해서 세 나라의 목판화에 대한 연구를 학자 이상으로 진행해온 것이다. 그의 다색 목판화는 보통 적게는 다섯 판에서 많게는 사십 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매우 복잡한 만큼 정확한 계획과 계산과 실행이 필요하다. 종이의 종류와 물감의 종류, 그날의 습도에 따라 수없이 많은 조합이 나온다. 작업이 정교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데생하는 방식도 손으로 그리는 것에서 과학의 발전과 함께 사진이나 컴퓨터와 같은 기계를 이용하는 등 다양하다. 채색에 있어 그는 원칙적으로 먹을 중심으로 수성 물감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작품에 따라서 유성 물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그의 장점은 수성 물감을 사용하는 데 있다. 수성 물감은 한지에 은근히 번지며 배어 들어가는 속도감 있는 화면을 만들어낸다. 실제 그의 작업실에 수없이 많은 작품을 제작한 흔적을 보면 그가 수성 물감의 장점을 강조하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동양적인 풍경을 그리는 데에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는 속성이 강한 수성 물감의 성질이 더욱 어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록서문 중에서, 2018) ■ 황정수

김준권_변경_가을_Ed.16_AP_77.5×184cm_2017

김준권의 근작-寫意와 思意의 길항 ● 김준권은 민중미술 목판화가다. 1980년대의 전교조 미술교사, 민예총 임원, 민미협 사무국장 등을 거치면서 목판화가, 현장미술가, 미술운동가로 오늘에 이르렀다. 개인적 목판화 작업과 사회변혁을 향한 미술운동은 그의 미술행위의 요체다. 최근 박근혜 퇴진을 위한 '광화문미술행동'은 그런 김준권이 미술로 대사회적 실천을 증명한 실제적 예다. ● 그런 김준권이지만, 자신의 작업에는 운동에 비례할 만큼의 미적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90년대 후반 이래로 그의 작업은 '운동'과는 상관없는 순수미술의 영역에서 진행되어 왔다. 직접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가 거세된 화면에서 어떤 단아한 기호로서 자신의 내면과 감성을 담아왔다는 것이다. ● '국토'와 '민중'이 어우러진 90년대 진경으로부터 2004년 이후의 수묵(과 채묵)에 의한 문인화적인 내면 기호로서의 단색조 풍경을 거쳐, 최근엔 다시 그런 思意나 미감으로부터 일탈한 사실적 풍경으로 목판화의 영역을 넓히는 미적·기술적 실험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점은 오랫동안 지속하던 수묵·채묵 목판화와 달리 시도하는 최근의 대작 유성목판화에서 두드러진다. 작년부터 시도한 방식이다. ● 과거에도 물론 유성을 했지만, 지난 10여 년간 아주 깊숙이 수성의 수묵과 채묵 목판화 맛에 집중했던 김준권의 이력으로 보자면 유성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은 예측 밖이다. 그러나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구사되던 수묵과 채묵의 질료적 특성에서 적극적으로 이탈한 이 유성이란 재료 변화보다 더 눈에 띄는 건, 철저하게 다시 寫意로 기울어진 조형방식이다. ● 김준권은 과거 80-90년대에도 국토를 순례하면서 삶과 어우러지는 풍광과 이웃들의 정서를 사실적으로 포착했다. 겸재의 '진경/寫意'을 모델로 한 듯이 그것은 구체적이고도 객관적인 삶의 공간을 지향했다. 그리고 2007년 개인전을 전후해서 흑백 수성목판화로부터 시작되는 중첩된 산 이미지의 관념 산수, 혹은 작가의 내면을 관조하는 수묵과 채묵의 '심경心景'을 통해서 관조적인 화면을 견인해냈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한국목판화에 있어서 새로운 형식과 관점의 출현이었다. 그런데 최근작은 다시 그런 성공적인 자기문법과 양식과 스타일에서 훌쩍 벗어나버렸다. 코페르니쿠스 전회처럼 느껴질 정도다. 즉 결과로 남은 '이미지'와 함께,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인 '작업행위'에 대한 '삼매三昧', 그 지독한 노동의 자기 반복성을 통해 목판화란 장르적 속성에 대한 지독한 탐구적 입장을 노정한다. 마치 목판화에 대한 수행자처럼 그것은 철저한 장인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제판과 프린트 방식에 과학적인 옵셋 인쇄 원리를 도입한 것은 목판화의 작업프로세스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보일 정도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기계적인 정치(精緻)함으로 이행하는 화면은 지각적이고도 중성적 구조를 띈다. 메를로 뽕띠류의 현상학적 입장처럼 작업과정을 통한 자기반성적 접근이라고나 할까.

김준권_청죽 1302_167×90cm×3

이런 기조에서 제작한 2017년 이후 유성 신작은 대부분 사진처럼 사실적인 풍경화다. 「두만강가-혜산 부근」, 「변경-가을」, 「자작나무 아래」 연작, 「물망초 연작」 등 실제 풍경을 정밀한 기계성의 원색분해 방식으로 화면에 옮기는 재현 방식이다. 물론 90년대에도 김준권의 작업은 사실적인 풍경이긴 했다. 그러나 이번 최근작에서는 그런 정서적 요소보다는 차라리 목판화의 물질성과 거기에서 가능한 이미지의 극한까지를 체험해보려는 일종의 작업과정에서의 자기 환원을 통한 형식의 확인하려는 것같은 집요한 의지가 배어 나온다. 회화적 진술에 보태는 목판화가로서의 장인적 고집, 혹은 장르적 독자성에의 집착같은 것이랄까.   ●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이런 정교한 형식에 의한 대상을 정밀하게 이미지화하는 사의寫意 사이로 삐져나오는 국토와 목판화작업에 대한 경건한 태도, 작가 내면을 반영해주는 정제된 화면 사이에서 일종의 체질적 기표인 사의(思意)도 여전히 반영되어 나온다. 思意/寫意의 변별과 어우러짐이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과 통일의 길항관계가 바로 그의 최근 작업에서 보이는 주요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지난 35년간의 작업행보이기도 하고. ● 김준권은 일정한 기간의 작업적 성과를 왜 굳이 코페르니쿠스처럼 정반대의 작업형식을 통해서 변주하는 걸까? 전통 동양미학에서 寫意는 대상의 외적 재현을 하되 寫實보다는 작가의 마음속에 형성된 시각적 인상과 내면의 정신성을 중시하는 것을 이른다.  즉 대상에 대한 전이모사轉移模寫와 응물상형應物象形을 통해서 작가의 내면을 대입시키는 미적 방식이란 뜻이다. 거기엔 작가의 대상에 대한 감성과 사유, 그리고 주체적 세계인식이 함께 녹아서 어우러져 있다. 寫意와 思意란 엄밀하게 같은 의미항이 되어서다. ● 김준권의 이 길항작용은, 저항적 이미지를 통해서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하던 1980년대→ 풍경을 통해서 국토와 이웃의 삶의 정서를 형상화하던 1990년대→ 국토에 대한 전형적 인상을 문인화적 감성으로 기호화 한 2000년대 수묵작업→ 그리고 대나무라는 대상을 통해 '산' 작업보다 더 자신의 내면을 반복적으로 기호화하던 2012-2016년을 지나면서→ 더 철저할 정도로 표현성을 거세한 중성적 구조의 이 유성 최근작에 이르는 작업궤적의 미적 바탕이기도 한 그런 것이다.

김준권_山韻-0901_수묵목판_160×400cm_2009

2007년 김준권의 개인전 서문을 쓸 때 나는 그에게 이런 질문과 함께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오로지 흑백의 관념적 문인화 풍의 세련된 수묵의 「산으로부터」 연작이 진행되고 나면, 작가로서 기존의 민중미술가 이미지에 대한 부담도 있을 터이고 또 그 다음 작업에서 논리적 문맥이 막혀서 작업이 어려워질 것인데, 괜찮겠느냐고.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작업이란 것이 그 막힌 벽을 두드리는 것이므로 돌파하거나/실패하거나 둘 중의 하나인데 나중 일을 지금 걱정하지 않겠다고. ● 기실, 내가 보기에 김준권의 당시 수묵목판화는 이전 한국목판화에서 본 적이 없었던 획기적인 것이었다. 최소한의 이미지, 판과 종이의 물성, 수성의 담백함이 어우러지면서 성립된 기표로 기호화된 목판화의 형식적·관조적 미학이 도드라진 것이어서다. 그리고 그런 현상적인 측면이 강조된 작업을 하고 나면 이전 작업의 서사적 주제나 표현성은 점차 맥락을 잃어갈 것이기에, 주제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이미지에 방점이 찍혀야 할 목판화로서는 치명적인 자기한계를 노정할 우려가 있어서였다. 그러나 어쨌든 자기실존의 반영이자 결과물이 작품이고, 자신의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을 땐 서슴없이 작업을 포기하겠노라는 그의 강단에 난 그만 "멍" 해졌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 작가는 자기 벽에 부딪혀서 뭔가 새로운 변주를 끊임없이 시도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내 예측대로 지금 그는 자신이 만든 작업의 벽에 스스로를 부딪히면서 쉽지 않은 고행을 하고 있다. 그의 이 힘겨운 진행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현대목판화에는 또 다른 저변으로 넓어지는 긍정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작가의 작업이란 작가가 작업을 할 수 없을 때나 되어야 비로소 정확한 결과론적 판단을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 「산에서」 시리즈 이후 2012년경 김준권은 대나무 연작으로 다시 개인전을 했다. 산보다 더 표현성과 주관성을 거세한 하나의 기호로서의 소재와 프린팅 프로세스만이 화면에 남는 그런 지각적인 화면이었다. 이미 대나무라는 대상에 대한 사실적 재현을 넘어서서, 대나무 이미지가 끊임없이 반복된 판각과 프린팅으로 구축된 몰아沒我와 삼매의 기호공간이었다. 작업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려는지 그저 묵묵한 반복 행위들의 흔적만 화면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 사이로 「겨울바다/2011」 연작, 「백곡의 겨울/2013」, 「백련사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다/2015」 등의 작품에서는 예의 서정적 풍경의 짙은 감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렇듯 대상적 이미지의 거세와 작업행위의 과정에서 내면기호로 환원시키는 중성적인 대나무 그림과, 내면의 정서를 다시 서정적 풍경으로 표출하는 풍경화의 두 가지 문법을 동시에 견인하면서 김준권은 집요하게 작업에 매달렸다.

김준권_귀로-겨울강_유성목판_48×73cm_1993

2014년의 심장 수술과 '아라아트'에서의 대규모 회고전을 마치고 2년 정도 그는 침묵했다. 건강회복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서였다. 그러던 그가 2016년 연말 류연복 형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하야 정국에서 화가들도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당시 나무아트에서 급하게 게릴라 전시로 진행했던 『병신무란 하야祭』를 갓 마친 내게 함께 촛불현장인 광화문에서 현장미술을 하자는 거였다. 난 당연히 승낙했고, 그 순간부터 『광화문미술행동』은 광화문 텐트촌에 입주하며 활동이 시작되었다. 원포인트 프로젝트 팀으로 박근혜 하야 혹은 탄핵까지만 활동하기로 하고 4개월을 우리는 광화문 광장에서 함께 움직였다. 김준권은 자신에게로 환원되는 작업을 하면서도, 미술의 대사회적 기능과 실천에 대한 80년대 청년기의 뜨거운 본능은 여전히 있었던 것이었다. 작업이라는 벽에 부딪히면서도 늘 그 틀을 돌파하던 그의 기질이 현장미술에서 또 발휘된 것이기도 하고.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의 탄핵이 이루어지자, 우리는 약속대로 광화문텐트촌에서 미련없이 철수했다. 다시 각자들의 작업으로 돌아갔다. ● 이때쯤 나는 다시 김준권에게 역으로 '목판대학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목판화를 통한 커뮤니티 아트로 목판화의 또 다른 사회적 실천 프로젝트다. 바로 그때 그를 설득하러 간 진천 작업실에서 이 새로운 유성목판화를 처음 만났다. 원색분해 옵셋인쇄기법을 활용한 현재의 작업방식 말이다. 사실, 판각과 프린팅이란 재료와 물리적 작업조건에 묶여있던 목판화가, 다양한 기법을 수용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일본에서는 목판을 플레이트로 하는 석판화 기법의 제판과 프린팅 기법이 유행했고, 서구에서는 판각한 수레바퀴를 굴리며 프린팅을 시도한 이벤트, 초대형 공동작업, 타 장르와 크로스 오버 작업, 아티스트북 등의 다양한 형식과 매체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전통적인 목판화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고자 한 시도들이다. 그렇지만 목판화에서 원색분해기법을 활용한 아이디어는 없었다. 이는 기술과학적인 면에 있어서 목판화의 형식을 넓히는 시도와 실험의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기계적인 단순반복의 과정에 함몰될 위험성도 있는 기법이다. 이 작업은 목판의 물질성과 감성을 거세한 '이미지'와 '寫意'의 또다른 결절점과, 동시에 목판화의 개념적 변주에 대한 '思意'의 지점을 모색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기존 목판화 특유의 표현적 성질의 특성에서 보자면, 이는 반란에 가까울 정도로 탈감성적인 방식이다. 대상에 대한 거리두기와 카메라워크에 가까운 극사실적인 중성적 재현은 전혀 전래적 목판화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일탈은 그 다음의 또다른 변주를 향한 전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김준권_새야새야_고무판, 채색_182×90cm_1987

그래서인가, 그의 근작을 보면 이렇게 감성의 영역 바깥으로 나갔다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오려고 그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거론했듯이, 그에게 목판화는 작가로서의 표현방식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굳어진 틀을 돌파하는 개인적 실존의 미디어도 된다. 기존의 통념으로 개념화된 목판화의 잣대로 그의 작업을 일반화해서 보려는건 맞지 않을 듯싶다. 그것으로는 이 방식/저 방식, 좌충/우돌, 思意/寫意, 개념/표현, 서정/실험 등을 넘나드는 김준권의 저돌성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가 앞으로 이 기계적 프로세스 방식을 타파하고 더 깊어진 사유로 회귀할지, 혹은 더 놀라운 기술을 수용하며 목판화의 표현방법과 개념을 극한까지 넓힐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 쉬지 않고 지난한 노동으로 목판화의 새 방식을 모색하는 그에게, 작업은 그의 살아있음의 '과정'을 증거하는 행위다. 그래서 과거의 작품도, 근작도, 현재 진행중인 작업도, 일정기간 판단중지를 하고 지켜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 작업이 나왔을 때쯤, 지금 작업의 위치가 좀 더 정확한 맥락으로 가늠될 듯 싶어서다. (2018) ■ 김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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