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러운 적막 Deafening Silence

조민아展 / CHOMINAH / 趙珉娥 / painting   2018_0906 ▶︎ 2018_1013 / 일,월요일 휴관

조민아_낙원에서(In Paradise)4_장지에 채색_130×193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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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906_목요일_05:00pm

2018 OCI YOUNG CREATIVES

작가와의 대화 / 2018_0908_토요일_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요일_10:00am~09:00pm / 일,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수송동 46-15번지) Tel. +82.(0)2.734.0440 www.ocimuseum.org

그림 아래 가둔 현실의 요란함 ● 조민아의 그림은 어떤 형상들로 꽉 차 있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다. 등장인물들은 입을 다문 채 도통 표정이 없고, 사물과 풍경들은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무언가를 잔뜩 말하고 싶었는지 즐비한 형상들을 늘어놓았지만, 그의 그림은 별다른 속내를 내비치지 않고 있다. 언뜻 보기에 삽화풍의 그림에는 장황한 서사가 엮여 있을 것 같은데 정작 어디에도 서사는 없다. 이렇게 서사가 빠진, 혹은 서사를 대신한 조민아의 그림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의 이야기에 다가가고 있다. 그는, 지금의 현실이 만들어내는 중층의 서사를 가만히 서서 목격하고 있다. 그 시선을 담아, 현실의 빼곡한 풍경을 옮겨 놓은 그림에서는 익숙한 형상들과 모호한 상황들이 서로 느리게 교차한다. ● 이번 전시의 제목은 『소란스러운 적막』이다. 그동안 조민아의 작업을 되돌아보면 이번 전시 또한 그 연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가장 최근의 개인전 『오늘의 기약』(2017)으로부터 『숙련과 노하우』(2016), 『정글스토리』(2015) 등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의 그림에 묻어나 있는 공통의 정서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왜 나는 불편한가?" 그가 쓴 작업 노트에서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런 물음들이 종종 눈에 띤다. 그는 현실이 만들어내는 서사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그 서사를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노동과 자본에 대해, 성(性)과 세대를 구분 짓는 차이와 차별에 대해, 사회적 성공과 실패에 대해 그가 늘어놓는 속내는 불편함과 의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탓인가, 조민아는 현실의 서사를 그대로 옮겨오지도 않고 더 나은 미래의 서사를 새롭게 구축하려 들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서사의 한 대목들에 집중해, 그것을 골똘히 들여다보며 거기에 시선이 한참 머물러 있는 동안 떠오르는 현실의 또 다른 장면들을 같은 자리에 모아 놓는다. 때문에 (현실의) 서사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서사의 구조를 벗어나 (비)연속적인 장면들을 한데 배치하고 순서 없이 펼쳐놓음으로써 현실의 마술적인 맥락을 더욱 부각시킨다.

조민아_렙업(Level up)_장지에 채색_80×100cm_2018
조민아_무료한 때(Bored at the time)_장지에 채색_227×291cm_2018

폭이 약 8미터에 가까운 「낙원에서」(2018)를 보면, 그동안 조민아가 시도해 왔던 그림의 구조적인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캔버스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형상들은 동화책이나 교과서의 삽화처럼 어떤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 같지만, 무작위적인 콜라주 방식의 초현실주의적 편집으로 인해 화면의 논리적인 흐름을 단번에 알아채기는 어렵다. 그림 속 형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듯하지만, 도리어 그 형상들이 그림 안에 수많은 분할선을 그어 놓기도 한다. 말하자면, 일련의 기호처럼 펼쳐놓은 형상들은 어떤 희미한 연상 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연쇄하는 순환의 패턴을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수께끼 같은 단절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조민아는 신작인 「낙원에서」를 가로로 길게 제작하여 일종의 시각적 동선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작품의 제목 또한 이 넓은 캔버스의 화면이 "낙원"이라는 거대한 서사적 공간을 함의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더욱 강화시킨다. 때문에 관람의 시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이 복잡한 서사를 읽어내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화면 속 형상들은 큰 망설임 없이 뚝 잘려나가 있기도 하고 수없이 반복되기도 하고 이질적인 것들과 자리를 공유하기도 한다. ● 조민아는 이렇게 초현실적이고 마술적인 수법을 통해 그가 처해 있는 현실의 서사를 재조명한다. 현실의 시공을 살짝 벗어나 있는 「낙원에서」는 임의의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 인물들이 작은 무리를 이루어 각각 일련의 사건과 상황을 암시한다. 예컨대, 웅덩이에 (검은) 물을 쏟는데 열중하고 있거나, 고기 덩어리를 줄지어 나르거나, 끝을 알 수 없는 밧줄을 잡아당기거나, 널빤지 위에서 체조하듯 균형을 잡고 있거나, 다함께 상자를 옮기거나, 모래성을 쌓거나, 눈을 가리고 TV를 보거나, 다시 검은 물로 채워진 웅덩이에 앉아 책을 펼쳐 보고 있다. 이렇듯 등장인물들의 행위는 어느 정도 구체적이긴 하지만 서사의 맥락으로부터 분리돼 자신들의 행위에만 집중하고 있어 한결같이 그 폐쇄적인 상황에 고립되어 보인다. 끝없는 반복과 연쇄적 순환이 되레 폐쇄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때문에 그들의 행위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될 결과라든가, 이 행위가 성취하게 될 낙원의 풍경이 과연 무엇인지 쉽게 상상할 수 없다. 조민아의 그림에는 현재의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는 인물들이 있을 뿐이다. ● 그림 속 상황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커다란 화면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형상들의 면면을 다시금 살펴보면, 몇 가지 특유의 방식이 보인다. 조민아의 그림에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언뜻 봐도 단 한 사람인 것처럼 동일한 인물이 자리만 바꿔 계속 반복되고 있다. 나이와 성별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 익명의 인물은 표정 없이 단순하고 기계적인 동작만을 흉내내듯 다소 경직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 사람이면서도 다수인 그림 속 등장인물은 자신의 행위가 결코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순환하여 반복될 것만 같은 현실의 폐쇄성과 그 비극을 예고하는지도 모를 인상을 남긴다. 조민아는 이렇듯 폐쇄적 비극이 두텁게 잠복되어 있는 현실의 문제를 화면 위에 끌어들인다. 이를테면, 익명의 인물들이 수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단순한 비전문 혹은 비숙련 노동으로 언제든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있는 현실에서의 소외를 대표한다. 그들의 몸과 행위가 지닌 익명성은 현실에서 자신들의 고정된 자리를 찾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조민아의 그림은 소모되고 닳아 없어지면 다시 동일한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말하자면, 사물화 된 "어떤 노동"과 "어떤 역할"에 대해 조용히 환기시킨다.

조민아_목표물(Target)_장지에 채색_16×26cm_2018
조민아_순환의 고리(Loop of Circulation)_장지에 채색_145×112cm×2_2018

한편, 조민아는 「무료한 때」(2018)와 「순환의 고리」(2018)에서 보이듯 우연적인 이미지 연쇄를 통해 현실의 견고하고 무거운 서사를 해체하여 그 서사가 함의하는 맹목적 가치에 대한 확신 또한 스스로 거두어 놓는다. 사실 보여지는 풍경은 동일한 것들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낮은 채도의 경직된 형상들로 가득 들어차 있을 뿐인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노동의 행위는 끝없이 미끄러지듯 연쇄하며 현실의 복잡한 서사를 모방하려는 충동을 나타내곤 한다. 이에 비숙련 노동의 반복과 단조로움 속에서, 조민아의 그림은 그러한 노동의 집합이 구축하는 강박적인 피로감과 그에 따른 정서적 빈곤함 뿐 아니라 동시에 그것이 지닌 서사적 맥락을 찾아내 그 두께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러고는 결국 우회적인 태도로 이 현실의 서사가 지닌 불확실성으로 다가간다. 어쩌면 자신의 그림 속 등장인물이 조민아 자신일지도 모를 현실의 경험들 속에서, 조민아는 현실이 만들어내는 서사에 누구보다 깊이 연루되어 스스로 몰입하고 있지만 그것의 실체에 대한 회의와 물음은 어떠한 답도 얻지 못한다. ● 그래서 다시, 동일한 목소리로 되풀이하듯 나는 이렇게 말한다. 조민아의 그림은 어떤 형상들로 꽉 차 있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다. 등장인물들은 입을 다문 채 도통 표정이 없고, 사물과 풍경들은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무언가를 잔뜩 말하고 싶었는지 즐비한 형상들을 늘어놓았지만, 그의 그림은 별다른 속내를 내비치지 않고 있다. ■ 안소연

조민아_응시하기(Stare at)3_장지에 채색_72×72cm_2018

소란스러운 적막 ● 통근 지하철 찜통 객실은, 눌리고 치이는 신음, 최고 출력의 두 배로 켜 달라는 에어컨 민원, 주억거리다 보면 내 곡이 아닌, 쩌렁쩌렁 새는 옆 사람 이어폰 공공 비트, 부스럭 쩝쩝 막간에 배를 채우는 생존 이펙트, 좌우로 연지 곤지 수습 급급한 아가씨, 표정과 어조가 사뭇 조화롭지 못한 거래처 통화로 분주하다. 뚜껑 열린 압력솥 수증기처럼 환승 계단 한가득 들어찬, 숙연히 다문 입술 앞다투어 다급한 구둣발에선 요란과 일사불란이 겹쳐, 비장함을 넘어 어느 순간 거룩함마저 엿보인다. 당연하다. 그림 속 젠가처럼 쏙쏙 날 빼먹는 곳, 널린 빨래처럼 영혼이 빨리는 곳, 로또에 당첨되면 그만둘지 다닐지 늘 고민인 그곳으로 오늘도 향하니까. ● 그들 행렬 가운데서도 유난히 바쁘고 무뚝뚝해 보이는 젊은이들은 조민아의 화면 속 일터로 출근한다. 성별도 신원도 모르쇠 그저 심고, 썰고, 깎고, 당기고, 이고, 나르기에 여념이 없다. 줄지어 떼 지어 짜 놓은, 정체 모를 반죽은 식별 없는 자화상 같다. 꿈도 희망도 없이 무기력한 또래를 지칭하는 단어 'N포 세대'는 변수 N의 증가에 힘입어 늘 신조어이다. 어디까지 치솟을는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그들은 숙련과 풍요 건너편에서 단순노동에 불안한 영혼을 사른다. 그나마 이거라도 안 하면 좌초하여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기에. ● 그림을 채운 갖은 소란을 비웃듯 N포 세대는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가장 적막한 표정, 무표정은 어쩌면 또한 가장 풍부한 표정이다. 딱히 대단할 것도, 즐거울 것도, 삶의 고저도, 희로애락을 만끽할 겨를조차도 없는 편평 납작 무덤덤한 삶에 억눌린 얼굴일 수도 있다. 참을 인 자로 뒤덮인 상처투성이 포커페이스이거나, 낙오되지 않기 위한 생존의 비결일는지도 모른다. 어찌 될지 모를 비정규직 자리도 조마조마한 얼굴도 중립 기어, 기약 없는 'N 단'인 셈이다. ■ 김영기

Vol.20180909b | 조민아展 / CHOMINAH / 趙珉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