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Ⅱ: 세상을 향한 눈, 영원을 향한 시선

CRACKS in the Concrete Ⅱ from the MMCA Collection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특별展   2018_0918 ▶︎ 2019_0922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정기해설 / 화~일요일 01:00pm 제3전시실 앞에서 시작

관람료 / 2,000원 만24세 이하 또는 만65세 이상 무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토요일,문화가 있는 날(마지막주 수요일)_10:00am~09:00pm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월요일 당일 개관 후 그 다음 평일이 휴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Gwacheon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 (막계동 산58-4번지) 제3,4전시실, 2층 회랑 Tel. +82.(0)2.2188.6000 www.mmca.go.kr

세상을 보는 눈: 공동체와 개인 A Glimpse into the World: Community and Individual 오늘날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근대 시기와 비교해서 많이 변화하였다. '민족'과 '국가'의 독립과 번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던 시기를 지나 오늘날에는 개인의 가치가 점점 더 중시되고 커지고 있다. 글로벌리즘으로 인구 이동 현상이 크게 늘어나고 특정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는 노마디즘(nomadism)이 현대사회를 해석하는 코드가 되면서 공동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요구되고 있다고 하겠다.  ● 이렇듯 현대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확산되면서 개인의 자유와 그에 따른 자율적 선택이 보다 중요시되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다양한 이해관계, 다원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서 민족, 종교, 이데올로기, 지역, 성별 등에 바탕을 둔 요구나 주장들이 종종 상충되거나 갈등을 빚는 등 잠재적인 긴장 상태를 예고하고 있다. ● 이번 전시는 공동체가 지향하는 이상성과 개인이라는 실재 사이의 괴리를 들여다봄으로써 시스템에 가려진 우리의 균열을 언급하고 이를 통해 기존 체계와 사고에 균열을 가하려 했던 예술가들의 창조적 예술 작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를 탐구하고 되돌아봄으로써 다양하고 개별화된 개인의 차이를 인식하고 우리 공동체의 오늘을 탐색해 본다. ● 진정한 개인의 자유와 존엄은 개인과 공동체의 다양한 가치들이 상호 공존할 때 공동체적 노력에 의해 달성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이 동시대성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되돌아보고 공동체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1. 공동체의 재고 ● 공동체를 향한 작가의 시각을 국기이미지 및 아카이브 작업을 통해 살펴본다. 우리의 역사는 단일 혈통과 민족을 국가 정체성으로 삼아왔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 주변에 울타리를 친 채 외부의 것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며 그 안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국기는 상징인 동시에 이미지라는 점이 미술의 영역에서 회화적 기호로써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역사적 사건과 기록 자료를 기반으로 오늘의 민족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나현, 촬영자의 퍼포먼스를 통해 공동체의 지향성과 개인적 현실과의 괴리를 보여주는 오인환, 어렵게 완성한 이미지를 한줌의 모래로 환원시키며 견고할 것만 같은 국가 개념을 재고하게 하는 주세균, 여러 번의 매체 변화를 통해 강력한 상징 이미지의 변화과정을 제시하고 있는 하준수의 작업이 전시된다.

2. 역사적 재인식과 집합 무의식 ● 한국의 근현대사는 전쟁, 분단, 반공 이데올로기, 독재 정권과 같은 정치적, 역사적 상황에 따라 급변해왔다. 그 속에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와 가치도 함께 변화하며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쳐왔다. 분단국가 한국의 이면에는 상처와 소외로 얼룩진 또 다른 틈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상처와 소외를 들추어보고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내재해 있는 집합 무의식에 대해서도 상기해 보고자 한다. ● 우리 사회의 폭력과 억압의 기재를 특유의 유머와 풍자로 나타낸 조습, 정신과 의사와 고문피해자의 다큐멘터리 연극을 통해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결여된 것들에 질문을 던지는 임민욱, 법정에서 최후진술서를 잘 전달하기 위해 연기 지도를 받는 과정을 기록한 옥인 콜렉티브, 이주라는 상황이 만들어낸 모순적 현실을 이주 노동자의 연극을 통해 보게 하는 믹스라이스, 관찰자 시점으로 한국인의 보편화된 집합 무의식을 통찰, 기록하고 있는 조민호의 작품이 전시된다. 또한 독특한 방식으로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하는 정윤석, 한국의 분단 현실을 일상적 삶에서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는 노순택, 굴절된 한국사의 비극을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는 강용석, 개성적 화법으로 우리 사회의 본질적 인간성을 탐구하고 있는 안창홍의 작품과 도시의 재편성 과정에서 기존 공동체가 소멸되는 부조리함과 아쉬움에 주목한 강홍구의 작품이 제시된다.

3. 시스템과 그 틈 ● 사회적 시스템, 규율, 고정관념 속에서 그 틈을 예리하게 바라보는 작가적 상상력을 살펴본다. 이들은 기존의 질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스스로를 개인화된 주체로 인식하고 존엄한 개인으로써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참여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들은 단지 작업의 결과를 제시하기 보다는 작업의 의도와 과정에 중점을 두고 참여자들과 함께 작업을 수행하기도 하고, 심각한 주제들을 해학적이고 유쾌하게 접근하면서 현실의 비틀기를 시도한다. ● 성장위주의 경제개발로 형성된 도심의 자투리 땅에서 무의미한 반복적 행위를 통해 도심 속 욕망을 들춰보게 하는 고승욱과, 참여 프로젝트를 통해 빈부 격차, 청년 실업에 내몰리는 젊은이들에게 오늘날 주거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차지량, 직업의 목적, 노동의 조건 등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한 구민자, 사회 시스템 속에 진실과 가상, 믿음과 허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박재영의 작품 등이 전시된다.

4. 역사적 인식과 발언 ●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유신정권의 몰락, 518 광주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 등 반 군부, 민주화 투쟁이라는 구체적인 현실 문제에서 출발한 민중미술은 미술을 소통의 발언 방식으로 개발하고 소외 계층을 대변해온 미술 운동이다. 초기에는 독재정권과 형식주의 미술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면 점차 민중성과 민족성의 개념으로 발전하였고 미술 운동의 실천적 체계화를 위한 조직 운동으로 대두되었다. ● 인쇄매체에 등장하는 사진이미지를 이용해 대량소비사회의 물신성을 형상화하거나 사실적인 기법으로 한국 근·현대사 연작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또한 노동의 현장에 동참하여 이를 화면에 담아내거나 제작이 용이하고 복제 가능한 목판화를 다수 제작하여 대중이 공감하는 보편화를 지향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론 깊이 패인 노인의 주름과 풍부한 표정을 통해 우리 역사의 현재를 제시해 주기도 하였다. ● 이 섹션은 군부 정권과 가속화된 산업화, 도시화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세상을 보는 눈'을 제시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민족미술'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의미'를 재고하는 이번 기획의도와는 일정 정도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나현(1970-)은 역사적 사건과 기록에 관한 자료를 기반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역사학, 인문학, 문화인류학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직접 탐방하고 기획, 실천하며 또 다른 성격의 주관적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정지된 과정」(2015)은 2008-15년 동안 프로젝트의 진행 결과물이자 수행적 퍼포먼스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한민족의 시원이라 알려진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를 포함하여 근대 한국사의 한민족 이동경로들을 추적하여 쿠바, 경기도 안산 원곡동, 전남 신안 등지에서 다양하게 수집한 자료들과 오브제 100여점을 열람용 테이블에 담아낸 아카이빙 작품이다.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다문화 현상을 지켜보며 단일 혈통과 민족을 국가의 정체성으로 삼았던 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오늘의 민족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한 것이다.

오인환(1965-)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과 성찰에서 시작하여 사회와 제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개념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로 표현해왔다. 「태극기 그리고 나」(2009)는 국기게양대와 국기를 세 개의 화면으로 분리해서 동영상으로 촬영된 것이다. 작품의 촬영자는 국기에 대한 예의를 갖추듯 태극기를 향해 카메라를 들되 만세 자세를 취하고 정지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편한 자세 때문에 촬영자는 흔들리기 시작하고 뒤이어 신음소리를 내다가 결국 카메라를 놓쳐버리고 마는 장면으로 영상은 끝난다. 촬영하는 남자가 내는 신음소리가 절대성을 갖는 대상인 태극기의 이미지와 흔합되어 어딘지 모르게 음탕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을 만든다. 작가는 공적 상징성이 강한 오브제를 촬영자의 퍼포먼스를 통해 개인적인 맥락과 연결시키며 공동체의 지향성과 개인적 현실과의 괴리를 보여주고 있다.

주세균(1980-)은 공적 규범이 개인적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여 통용되는 기호, 이미지의 의미 체계와 관련한 작업을 하고 있다. 「Notional Flag」(2011)는 기존의 국기에 사용된 이미지, 상징을 새로이 조합하거나 변형해서 색모래로 그려진 설치 작업이다. 모더니즘의 유토피아를 연상하게 하는 격자 구조 속에 국기를 그려 넣어 국가 사이의 위계질서를 허용하지 않는, 수평적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라마승이 색모래로 만다라 그림을 그린 후 해체하듯 작가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며칠이고 모래그림을 그린 후 전시가 끝나면 그 모래를 쓸어 담는다. 이렇게 어렵게 완성한 이미지가 한 줌의 모래로 환원될 때 견고할 것만 같은 국가라는 개념 및 시각예술의 유한성을 상기시킨다.

노순택(1971- )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형식을 통해 한국의 분단 현실을 일상적 삶 속에서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는 작가이다. 「얄읏한 공」(2006)에 등장하는 흰 공은 평택 대추리에 있는 미공군기지 캠프 험프리의 군사시설인 레이돔(Radome)이다. 이것은 전투기의 공격력을 정확히 하기 위해 설치된 레이더 안테나 덮개로 군사시설이다. 노순택의 작품에서 이 레이돔은 골프공, 달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주되며 교묘히 정체를 위장하고 있다. 이렇게 변주되는 레이돔은 결국 대추리 한 가운데서 일상 속 주민들의 삶을 내려다보며 감시하고 있는 셈이다. 대추리를 3년 동안 관찰하며 기록한 「얄읏한 공」을 통해 작가는 대추리 주민들의 환경과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믹스라이스(조지은, 양철모)는 '이주'라는 상황이 만들어낸 여러 흔적과 과정, 경로, 결과, 기억들에 대해 탐구해온 작가 듀오 팀이다. 「'어떤 무대'에서 이어지는 노래」(2009)는 마석가구단지에서 오랜 기간 공연해온 연극을 기념하는 작업이다. 연극 커뮤니티 MMT(Maseok Migrant Theater)는 마석가구단지에 거주하는 방글라데시 이주민을 주축으로 연극을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이다. 창작극인 '불법 인생 2010'은 이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대본을 쓰고 직접 연출, 열연한 것이다. 이들의 불법 인생 이야기와 퍼포먼스, 어눌한 한국어 연극은 그들의 모순적 현실을 효과적으로 들추어낸다. 믹스라이스가 미술을 다루는 담론은 크고 무겁지만 그 복잡하고 불편한 이야기들을 어설픔과 우스움으로 융합하여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고승욱(1968-)은 비판 의식을 가지고 다소 심각한 주제를 매우 유쾌하고 해학적인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작가이다. 성장위주의 경제개발로 형성된 도심 서울에 방치된 자투리 땅에서의 유희적 퍼포먼스를 통해 오늘날 자본과 땅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노는 땅에서 놀기1」(2001)은 어느 학교 교정의 가로수가 뽑혀져 나간 자리에 곡괭이와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벗고 들어가 노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는 땅에서 놀기2」는 어린이용 물놀이 튜브와 삽을 들고 재개발을 위해 철거된 홍대 주변 공터를 찾는다. 흙을 물처럼 뿌리며 노는 그에게 용역업체 직원 같은 사람이 등장해 '노는 땅에서 노는 이'에게 소화기 세례를 퍼붓는다. 「노는 땅에서 놀기3」은 아파트 건립을 위해 철거된 주택지 공터에서 튜브를 낀 채 전진하는 모습을 담기도 하였다. 대도시 속 욕망의 빈틈을 드러내는 '노는 땅'에서 작가가 펼쳐 보이는 자학의 실천은 자신이 가졌던 세속적 욕망에 대한 징벌 혹은 속죄의식처럼 보이기까지 하다.

구민자(1977-)는 사회적인 틀, 행동적인 패턴 등의 고정관념을 재 사고하게 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스스로 실행하고 체험하며 특정 그룹의 사람들을 참여자로 만들면서 작업을 수행해 나간다, 작가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날카롭게 각을 세우기보다는 의도와 과정에 중점을 두고 사진, 영상, 설치의 방식으로 기록해 나간다. 「스퀘어 테이블: 예술직 공무원 임용 규정 마련을 위한 공청회」(2013)는 예술가 공무원 직렬을 신설한다는 가정 하에 진행된 퍼포먼스이다. 2차에 걸친 공청회에서는 국회 보좌관, 현 공무원, 미술전문지 편집장, 미술대학 교수, 예술가, 전시기획자 등의 참석 하에 예술가 공무원의 역할과 임무, 선발과 자격요건, 근무조건과 보수규정 등 제반 사항을 논의하였다. 이것은 직업의 목적, 노동의 조건 등 오늘날 젊은이들의 관심사이자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논의해보는 자리였다.

차지량(1983-)은 '시스템에 상상력을 제안하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 참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뉴미디어,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뉴 홈」(2012)은 아직 집을 갖지 못한 20-30대가 완공될 새 집을 일시적으로 점유하며 '뉴 홈'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이다. 2011년부터 1년 이상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는 온라인을 통해 모인 참여자들이 개발지역의 다세대 주택, 도시형 원룸, 신도시 아파트에 한밤중에 잠입해 들어간다. 참여자들이 이 공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다음 날 아침이 되기 전까지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종이로 물품에 이름을 붙이며 집안을 꾸민다. 작가는 빈부격차와 청년 실업에 내몰리는 젊은이들의 행동을 통해 오늘날의 집이 단지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영원을 향한 시선: 초월과 실재 Gazing into Eternity: Transcendence and Existence '영원을 향한 시선'은 '세상을 보는 눈'과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현세와 내세', '현실과 이상', '실재와 '초월'은 상보(相補)적인 개념이다. 종이의 앞뒷면처럼 불가분의 관계이자, 결코 닿을 수 없는 무한한 거리감을 지닌 개념이기도하다. '예술'은 살과 피로 뭉쳐진 연약한 육체의 '예술가'들이 잠시 세상에 머물면서 치열하게 추구하는 '영원(불변)'의 가치를 자신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여내는 행위이다. 이들은 비록 자신의 육신은 쇄하고, 소멸할지언정 그들의 작품이 품고 있는 이상적 가치는 영원하길 갈망한다.『영원을 향한 시선: 초월과 실재』는 우리를 현혹시키는 '현실과 실재'라는 한계에 매몰되지 않고, 영원한 이상과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분투와 그 결과물을 보여준다. ●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파헤치는 과학 문명 시대에도 '끝'과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영원'을 향한 갈망은 인간의 몸과 정신에 뿌리박힌 원초적인 본능으로 남아있다. 예술가들은 부조리한 한계를 지닌 현실의 단단한 껍질을 깨뜨리는 행위를 통해 시공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속적이며, 초월적인 단계를 갈망한다. 이러한 시도는 수많은 욕망이 얽히고설킨 현실을 부정하고 거부하며, 외면하는 망상이나 공허가 아니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발을 딛고 서있는 현실이라는 깊고, 어두운 숲을 과감히 헤쳐 나가려는 탐험가와 같다. 이들의 초월적 의지는 피상적인 세계의 두꺼운 장막을 뚫고 더 높은 세계로 날아오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들의 발자취는 비루한 현실의 숲을 통과하는 관객들의 방향을 안내하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1. 영원한 것은 아름답다. ● 영원한 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변치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탄생과 소멸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때문에 소멸의 운명을 지닌 인간은 '불변'과 '불멸'을 숭배하고 추구한다. 예술가들은 복잡하게 얽힌 세상의 난맥상을 바라보며, 세상의 혼란에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가치와 절대적인 미의 본질을 추구한다. 이들의 깊은 사유와 명상, 열정과 통찰력은 그들이 만든 작품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어있다. ● 고요히 타오르는 한 자루 촛불로 '소멸'의 운명과 '영원'의 욕망을 압축시킨 김희원 영상, 인류와 함께했던 달과 대량생산 전자 제품인 TV를 하나의 의미로 결합시킨 백남준, 한국추상회화의 선구자인 유영국, 만다라 연작을 통해 고고한 정신세계를 탐구했던 전성우, 빛과 색채에 대한 탐구로 파리에서 한국미의 정수를 널리 알렸던 이성자와 방혜자, 기하학적 추상 회화를 통해 빛의 효과를 파고들었던 하동철과 우제길, 눈부신 순백의 안료를 이용한 실험을 보여주는 최인선과 순백의 빛이 충만한 세계로 관객을 안내하는 한국 단색화의 대가 정상화, 정밀한 기계의 설계 도면처럼 기하학적 도상을 보여주는 이상남 등 한국대표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2.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다. ●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自然)'은 아무런 목적 없이 '스스로 그리고 영원히 존재' 할 것이다. 예술가들은 궁극의 절대감각으로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이룬다.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외양 뒤에 숨겨진 자연의 '본질'을 깨닫고, 그 '정수'를 작품 속에 재현하기 위해 평생을 몰두한다. 예민한 감각으로 보이지 않는 핵심을 형상화하는 작업은 깊은 명상과 사유를 통한 깨달음, 그리고 지난한 노동의 시간을 통해 완성된다. ● 넓디넓은 적막한 광야를 마음껏 휘몰아치는 바람의 기운을 연상시키는 독창적인 추상회화를 선보인 윤명로, 무심하게 툭툭 찍은 점묘를 통해 한국화의 전통과 현대적 미감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는 김호득의 한국화, 특유의 엄격한 구성과 절제된 표현과 달리 자유롭고 대담한 필체를 보여주는 이우환, 길게 늘어진 가을 햇빛이 그려낸 느슨한 그림자의 형상을 묘사한 곽남신의 연필 드로잉, 작은 조각의 철사를 용접하여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존 배의 조각 등 우리를 살게 하는 우리와 같이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자연의 존재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긴 그림들이다.

3. 시작과 끝은 하나다. ● 모든 존재는 '소멸'을 향해 달려간다. 소멸은 모든 것의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의 에너지이다. 세상의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의 씨앗을 품고 있다. 끝이 없는 시작도, 시작 없는 (무의미한) 끝도 존재하지 않는다. 끝과 시작은 하나다. 시작과 끝의 무한한 순환은 '영원'의 개념을 완성한다. 예술가들은 끊임없는 성찰과 사유를 통해 존재의 이치와 본질을 추구하고,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발언한다. ● TV라는 무생물의 존재를 인격화 하고, 단순한 조작으로 그어진 전자선을 통해 깨달음을 위한 선 수행을 하는 TV를 보여주는 백남준, 무심하게 그은 푸른 선으로 시작과, 소멸의 순환 고리를 함축시킨 이우환의 회화, 전통적인 한국화의 표현영역을 뛰어넘는 실험을 보여주는 권영우의 한국화, 거대한 핑크색 시퀸 작업으로 시각적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노상균의 대형 회화 등이 전시된다.

4. 보이지 않지만 기억할 수 있다. ● 피할 수 없는 소멸의 운명을 감당해야하는 인간에게 '죽음'은 치명적인 두려움의 대상이다.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죽음'과 '소멸'의 순간은 아무리 다짐을 하고 받아들이려 해도 감당하가 어려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소멸의 순간을 맞닥뜨린 예술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기억하고 애도한다. ● 갑작스러운 부친의 죽음과 그 과정이 압축된 GPS 기록과 심박수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 풍경과 가상의 풍경을 결합한 김희천, 역사의 비극 속에서 희생되고 잊힌 익명의 존재들을 현재의 시점에 재위치 시킴으로서, 비극적 사건 속에 사라진 존재들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송상희의 영상이 전시된다. 장민승과 송현숙, 홍순명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비극을 다룬 영상, 회화작품을 선보인다.

김희원_Someone's Candle_32인치 LED 디스플레이에 4K 영상_05:17:06_2015_작가소장

김희원(1982-)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디자인 개념에 빠져들었다. 작가는 사진, 영상, 인테리어, 인터페이스 디자인 등 순수 예술과 상업 영역을 아우르며 국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 하고 있다. Someone's Candle 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은유했던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니타스 회화처럼 고전적인 형태와 구도를 지니고 있다. 영상에 등장하는 가느다란 몸통의 흰색 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고요히 응시하고 있다. 고해상 카메라로 촬영된 극사실적인 영상은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관객들은 눈부시게 타오르는 촛불의 영상에 서서히 빠져들며, 부지불식간에 다가올 소멸의 순간을 대면해야하는 인간의 운명을 떠올리게 된다.

유영국_Work 작품_캔버스에 유채_101×101cm_1957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유영국(1916-2002)은 한국추상미술의 1세대 작가로 김환기와 함께 한국현대추상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작가는 한국의 자연 특히 '산'을 소재로 간결하고 과감한 선과 면의 구성, 정제된 원색의 조화가 돋보이는 독창적인 추상 미술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작품」은 모던아트협회 2회전(1957)에 출품했던 「노을」로 추정되며, 광복 후 1950년대에 유영국의 절대 추상을 대표 작 중 하나이다. 노을 진 하늘과 붉은 태양, 굴곡진 산의 실루엣을 연상시키는 굵은 검은 선과 원색에 의한 과감하고 단순한 면 분할은 한국의 자연이 지닌 따스함과 부드러움, 숭고한 아름다움을 응축하고 있는 듯하다.

방혜자_우주의 빛_부직포에 혼합재료_245×205cm_2001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빛의 화가 방혜자(1937-)는 1961년 프랑스 유학 이후 프랑스에 거주하며, 동양의 정신성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색채와 '빛'의 기운이 충만한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하였다. 작가는 닥지나 부직포에 천연염료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스며들거나 우러나는 효과를 이용하여 '빛'의 다채로움을 표현하였다. 「우주의 빛」은 부직포를 부분적으로 접어서 원하는 부분에 색을 들이고 말린 뒤 그 위에 덧칠을 함으로써 투명하고 맑은 색채를 통해 울렁이는 '빛'의 형상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빛'을 통해 탄생한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키우는 영적이며, 신비한 '빛'의 울림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존 배_누구의 형상으로_철사 용접_116.8×116.8×81.3cm_2009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뉴욕 프랫인스티튜드 명예교수인 재미 조각가 존 배(1937-)는 드로잉을 하듯 자유롭게 철사 조각을 반복 용접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그의 조각들은 가볍고 투명하며, 정교한 선묘가 두드러진다. 완성된 형태는 자연물의 유기적인 곡선과 구조적이며, 기하학적인 규칙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작은 사각형 모듈의 규칙적인 반복으로 만들어진 「누구의 형상으로」는 곡선과 직선의 요소가 절묘하게 결합되어있다. 작가가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언급한 바흐의 음악처럼, 보이지 않는 정교한 화음과 질서를 조형적으로 구현해낸 작품이다. 사각형의 단위가 반복되며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종료되는 방식은 선의 반복으로 그려지는 드로잉과 한개의 음에서 시작하여 교향곡으로 완성되는 음악의 구조와도 닮아있다.

이우환_선으로부터_캔버스에 석채_194×259cm_1974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우환(1936- )은 1960년대 돌, 유리, 철판 같은 실제 사물을 통해 존재의 관계성에 주목했던 일본의 실험예술경향인 모노파(物派)의 이론적인 토대를 세웠으며, 깊은 사유와 명상을 간결한 형식으로 재현한 회화, 조각 작업으로 잘 알려져있다. 「선으로부터」(1974)는 위에서 아래로 길게 그어진 푸른색 선의 흔적을 보여준다. 단순한 선의 반복과 단색조의 색채는 극도로 엄격하게 절제된 작가의 미의식을 보여준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차 희미해지는 푸른색의 선은 시작과 끝의 반복으로 구성되는 사물의 생성 원리를 함축하고 있다. 작품의 근본적 요소인 선은 동양적인 기(氣)와 생명력의 근본이자 출발점이 되고, 선을 긋는 일회적인 행위의 반복은 '무위자연(無爲自然)' 의 상태에 이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노상균_Another End_캔버스에 시퀸_194×259cm_1999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과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던 노상균(1958-)은 화려한 컬러의 장식용 플라시틱 시퀸을 덧씌운 다양한 형태의 평면, 입체 작업을 통해 음과 양, 성과 속, 실제와 초월의 개념을 녹여낸 작업으로 잘 알려져있다. 노상균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선보였던 3점의 회화 중 한 점인 「끝」(1999)은 화면의 중심에서 시작된 핑크색 시퀸의 패턴이 무한한 외부로 팽창하는 듯한 형태를 보여준다. 한 점에서 시작된 우주 탄생의 빅뱅처럼, 혹은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시퀸의 에너지는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시각적 환영을 제공하며 무한한 공간으로의 여행에 관객을 초대한다.

김희천_바벨_단채널 영상, 사운드_00:21:22_2015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건축을 전공한 김희천(1989-)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뒤섞인 현대 디지털 사회의 풍경을 주제로 한 미디어 영상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다. 김희천의 「바벨(Lifting Barbell)」은 갑작스러운 부친의 죽음과 그 과정이 고스란히 압축된 GPS 시계와 심박수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 풍경과 가상의 3D 풍경을 결합한 영상작업이다. 납작한 디지털 데이터로 압축된 부친의 이동 경로를 따라 촬영한 한강변 풍경과 구글 맵, 잠실 아파트와 롯데월드, 서울 지하철의 3D 그래픽 이미지 등은 실제와 가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압축된 세상의 풍경을 반영하고 있다. 여자 친구에게 보내는 서신 형식의 담담한 내레이션은 부친의 죽음에 대한 당혹감과 충격, 세상에 대한 혐오, 종말에 대한 갈망 등 당시 작가가 느꼈던 복합적이며 중층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홍순명_사소한 기념비_캔버스에 유채, 발견된 오브제, 랩핑, 코팅_가변크기_2015~7_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홍순명(1959-)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회화, 조각, 설치, 관객협업 프로젝트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사소한 기념비」(2015~17)는 '세월호' 사건을 주제로 제작된 작업이다. 인터넷에서 수집한 세상의 온갖 비극적인 사건의 이미지를 작업에 활용하던 작가에게 '세월호'의 비극은 직접적인 충격으로 다가왔다. 몸과 마음을 뒤흔든 거대한 충격에 한없이 무기력했던 작가는 팽목항 주변의 해안가에서 수집한 다양한 재료들을 조합하여 투명한 랩으로 수 십 겹을 씌우는 작업을 통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작은 기념비를 제작했다. 담당한 청회색으로 오브제를 묘사한 3폭의 초상화를 배경으로 바닥에 놓인 304개(세월호 희생자의 숫자)의 기념비들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 애도와 기억을 고스란히 응축한 채 투명하게 빛나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Vol.20180918i | 균열Ⅱ: 세상을 향한 눈, 영원을 향한 시선-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특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