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_봄이 오다 Agora_Spring Is Here

이종구展 / LEEJONGGU / 李鍾九 / painting   2018_0928 ▶︎ 2018_1021 / 월요일 휴관

이종구_학교 가자, 2반 – 세월_한지에 아크릴채색_65×91cm_201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304i | 이종구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8_0928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

그의 손끝에서 별이 된 사람들가슴 아프고 거룩한 섬광의 기억 판단이나 선택을 하기 어려울 때 찾는 사람이 있다. 나에게 이종구 화백은 그런 분이다. 그의 말을 따르면 지금은 곤란해도 나중에 후회할 일은 생기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 조언을 듣고 싶어 그에게 몇 번 전화를 걸었는데 그때마다 해남의 임하도에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시원한 섬에서 그림을 그리며 여름을 보내고 있을 그를 부러워하며 나도 그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 ● "선배님은 좋겠습니다." 그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모르고 그렇게 투정 섞인 말을 했던 나는 지난달 부평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작업실 벽 두 개를 꽉 채운 그림은 단원고등학교 열 개 반 아이들의 단체사진이었다. 작업의 규모에 대한 놀라움은 곧 전율로 바뀌었다. 열 폭의 그 그림에 담긴 아이들과 선생님들 가운데 눈빛에 영혼이 깃들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비슷한 눈빛도 하나 없었다. 눈빛만이 아니었다. 입술들은 다 서로 다른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손끝은 서로 다른 꿈을 가리키고 있었다. 열일곱 해 그들을 키워 올린 발목의 아래로 보이는 운동화는 아이들이 가지 못한 길을 향하고 있었다. 사진은 단체였지만 그림의 주인공들은 모두 서로 다른 영혼을 지닌 고유한 개인들이었다. 그것은 작가가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로 만나고 교감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그림들이었다. "이 많은 작업을 언제 다 하셨어요?" "임하도에 가서 작업했어. 세월호 뱃길이 보이는 그 섬에서." "힘들었겠어요." 끝내 인양하지 못한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이야기를 「세월」이란 소설로 쓰면서 여러 번 운 적이 있는 나는 그가 이 많은 아이와 선생님을 그리면서 얼마나 많이, 자주 울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애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어. 밤이면 잠을 자기가 무섭기도 했어." ● 그는 차마 인천의 작업실에서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없어 아이들이 떠나간 뱃길이 바라보이는 진도 앞바다 작은 섬의 폐교에서 작업을 했다. 3개월을 임하도에서 밤이면 떨려서 잠 못 이루고 낮이면 울면서 그린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한 정차웅 군도 있었다. 아무것도 움켜쥐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듯 두 손바닥을 활짝 펼쳐들고 학급 사진을 찍은 1학년 5반 단체사진을 그리며 그는 몇 번이나 어금니를 깨물어야 했을까. 급훈이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이었던 2학년 5반 아이들은 서른여섯 명 중에서 아홉 명이 살고 스물일곱 명이 희생되었다. 아이들과 최후를 함께한, 급훈을 낭중지추로 정했던 담임 이해봉 선생을 단체사진 속에 그려 넣으면서 작가는 몇 번이나 주머니를 뚫고 나오려는 송곳을 스스로 다스렸을까. 과장과 추상 대신 그가 선택한 방법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깊어지는 것이었고, 그는 자신이 지켜내야 할 그림의 대상이 지닌 근원적 표정에서 끝내 눈길을 떼지 않았다. 그랬기에 단원고의 아이와 선생님들의 표정은 깊고도 밝다. ● 그가 사진으로 남아도 될 사람들을 회화로 그린 것은 기록과는 다른 층위에서 기억을 다루는 일이 예술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세월호에서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죽었는지를, 권력이 어떤 사람을 버렸는지를 증명하기 위한 예술적 인양작업의 과정이고,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그렇게 인양된 사람들의 깊고도 밝은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그들이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잠든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광장으로 불러내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을 바꾸게 만든 구원자로서의 면모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봄의 근원은 바로 그들로부터 온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화폭에 소환하면서 그가 알게 된 사실과 느꼈던 감정을 부평의 작업실과 신포동의 막걸리집에서 주고받으면서 나는 아주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그림이 이미지가 아닌 서사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 "단원고 아이들을 위한 '기억의 교실'에 있는 쪽지와 편지들 봤지? 부모들과 친구들이 쓴 편지들 보면 가슴이 아프잖아. 그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한 아버지가 잃어버린 아이에게 보낸 편지였어. '네가 우리를 잘 좀 돌봐줘.'라고 한 대목이야. 그림을 그리는 내내 그 이야기가 가슴에서 떠나질 않았어." 무력한 희생자들인 줄로만 알았던 그 아이들이 그저 제 앞만 바라보는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구원하고 윤리를 상실한 권력을 바꾸고 있다는 것. 그는 감추어진 인간의 진실을 섬광처럼 포착하여 우리에게 주변이 어떻게 중심을 구원해냈는지를 눈앞에 보여준다. 그의 작품이 지닌 서정적 강렬함은 대하소설보다 장엄한 서사를 밑그림으로 깔고 있는 것이다. ● 시‧공간을 넘나드는 그의 서사적 상상력에 대해 나는 이미 오래전에 두 손을 든 적이 있다. 전쟁 중이던 2003년 이라크에 가서 그가 가장 소중하게 챙겨가지고 온 물건이 바로 버려진 교과서와 공책이었다. 요르단 암만에서 시리아의 아라비아사막을 거쳐 꼬박 28시간을 지프차로 달려 도착한 바그다드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가 챙겨온 그 물건을 보고 손을 들지 않을 작가는 없었다. 아이가 쓴 정성스런 아랍어로 빼곡한 공책이 어쩌다가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을까를 생각하며 생사를 알 수 없는 그 물건의 주인에게 공책을 돌려줄 수 있는 날을 그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이종구_세월 – 편지_한지에 아크릴채색_97×130cm_2018
이종구_천도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4×32cm_2015

부평 작업실의 다른 한 벽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은 광화문 광장의 사람들이었다. 단원고 열 개 반 아이들의 단체 그림에 이어 나는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황토와 갈색, 그리고 진도항의 짙푸른 색으로 이동해온 이종구 화백의 작품세계에서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빨강의 강렬함이 잠시 숨을 멎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회화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때로는 스텐실과 꼴라쥬 기법, 오브제 등을 세련되게 활용해온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토록 과감하게 빨강색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그는 칼라의 변화를 가벼운 농담으로 돌렸다. ● "물감 값 좀 썼어. 이거 예전에는 비싸서 못썼던 거야." 하얀 종이에 까만 글자만 써온 나는 물감 값이 칼라에 따라 다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빨간색이 어두운 색에 비해 몇 배나 값이 비싸다니. 피켓과 포스터, 방송 자막으로 깔아놓은 구호를 보고 나와 같이 작업실에 들렀던 후배는 그가 화가로서 미학적 손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는 아주 태연했다. "감수하려고." 그가 미학적 우회로를 스스로 봉쇄하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미학이 정신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을 때만 예술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면 피카소의 작품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이번 그림들은 예전보다 더 치열한 미학적 도전이라고 보아 마땅했다. 이종구 화백이 일관되게 그려온 사람들은 언제나 현실에서 분리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얼핏 광장으로 진출한 그의 그림에 담긴 인물들이 지금까지 그가 그려온 인물들과 다른 사람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광장의 사람들 중에서 굳건하게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촛불의 시작에서 끝까지, 개인으로부터 가족, 집단으로서의 시민에 이르기까지 광장으로 나온 사람들은 헛것을 쫓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가 변함없이 그려온, 땅에 발 디딘 채 견디고 버티며 살아온 사람들의 형제이고 자식이며 그 자신이다. ●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그의 그림을 보며 '이불변 응만변(以不變 應萬變)'이란 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안의 불변으로 만변하는 세상에 대응하라'는 이 말은 베트남 사람들의 영원한 아저씨, 호치민에 의해 역동적으로 갱신되었다. 그의 고향 '오지리'로 상징되는 땅의 사람들과 함께 긴 시간을 견뎌낸 이종구 화백의 미학은 바다의 슬픔을 품고 하늘로 날아올라 '지금 여기'의 광장에 착지하였다. 그가 1980년대 그림 속 주인공들을 위해 전시회를 열었던 오지초등학교는 분교로 바뀌었다가 이제는 아예 폐교가 되었다. 그가 그렸던 오지리의 장 씨와 이 씨, 문 씨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의 빈자리가 아니라 남은 한 사람, 문 씨의 시선이 가 닿은 지점이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유일한 오지리 사람, 문 씨의 시선이 광장의 사람들을 향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오지리의 사람들과 광장의 사람들이 바통 터치를 하는 이 절묘한 타이밍은 평생을 오지리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행운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농촌 오지리에 당도한 캘리포니아 쌀 포대와 주인을 잃고 바그다드 뒷골목에 버려진 어린아이의 공책이 한반도의 분단체제와 어떤 서사로 연결되는지를 아는 작가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다. ● 자기 안의 불변으로 변화하는 세상을 향해 새롭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이종구 화백의 「광장」 연작을 보며 나는 2016년 겨울밤 광화문에서 만났던 그를 떠올렸다. 그는 아직 건강을 염려해야 하는 깡마른 몸에 여윈 얼굴이었지만 늦은 시간까지 광장을 떠나지 않았다. 구두를 신은 이종구와 운동화를 신은 이종구, 두 이종구를 그린 작품은 시민으로서의 이종구와 예술가로서의 이종구가 다를 수 없음을 밝히고 있었다. 45개의 작품을 붙인 약 천 호 크기의 대작인 「16,894,280개의 촛불」 중에서 그는 한 개의 촛불로 빛나는 시민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미학관이 서 있는 자리를 뚜렷이 했다.

이종구_광장 – 봄을 위하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65cm_2018
이종구_광장 – 시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88cm_2017

부평의 작업실에서 나를 세 번째로 놀라게 만든 것은 광장이 만들어낸 싱그러운 봄이었다. 「봄이 왔다」 연작은 독립 70주년이 넘도록 휴전상태에서 '분단체제'를 이어온 남과 북이 서로의 손을 잡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감격을 담고 있다. 더 이상 남의 탓을 하며 외세에 우리의 운명을 맡겨두지 않기를 바라는 민족의 열망이 바닥에 깔린 제주도의 유채꽃과 머리 위의 백두산 천지에 새겨져 있다. 특히 마지막 그림 속 우리 소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그린 작품에서 송아지가 아닌 큰 소의 코에는 늘 코뚜레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봄의 푸른 초원을 거침없이 질주하는 두 마리 소는 코뚜레를 벗어던졌다. 코뚜레를 했던 흔적조차 없었다. 두 소가 내달릴 수 있는 푸른 초원을 깔아준 것은 광장의 촛불이지만 입체적 디테일은 코뚜레가 꿰인 소의 곁을 떠나지 않고 끈질기게 버티며 마침내 코뚜레를 벗겨낼 날을 기다려온 그의 지치지 않는 상상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종구_봄이 왔다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2×227cm_2018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종구 화백을 땅과 농민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탁월하게 그려내 온 화가로 인식한다. 나는 그 인식의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땅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애정을 나는 같은 학교에서 일하며 여러 번 확인했었다. 학생들이 농촌활동을 하는 곳에 찾아가면 언제나 그가 한 걸음 앞서 다녀간 다음이었다. 자기 주머니를 털어 해마다 막걸리와 삼겹살을 사들고 농민들과 함께 하려는 제자들을 찾아다니는 교수를 나는 그 이외에 본 적이 없다. 어떤 기억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농민들의 주름진 인생을 그가 맡아 그려온 것 또한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 인식의 절반만 맞는 이유는 그가 기울인 다른 관심과 그가 그린 다른 그림들,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작가로서의 선택과 도전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랍의 뒷골목에 버려진 교과서와 공책을 보면서 물건 주인의 운명을 떠올리는 지구적 상상력을 지닌 예술가이며 자본주의의 지구적 팽창 과정과 결과를 캘리포니아 쌀 포대에 담아 그려낸 세계 유일의 화가다. 그가 농촌과 농민을 그렸던 것은 그가 농촌화가여서가 아니라 삶의 근원적 형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아는 드문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 좋은 소설은 이미지를 이야기로 만들고, 좋은 그림은 이야기를 이미지로 만든다. 이종구 화백은 놓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할 서사의 맥락을 누구보다 잘 꿰뚫어보고 끈질기게 천착하며 뛰어나게 형상화해왔다. 별이 되어야 마땅할 서사의 주인공들에게 그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에 그는 게으른 적이 없었다. 그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만 오백여 명에 달한다. 그전에 그렸던 사람들을 다 합친 숫자보다도 많을 것이다. ● 그가 그린 별들이 어찌 오백여 개뿐이겠는가. 우리 시대를 구원하는 별이 된 단원고의 아이들과 선생님, 지구적 평화를 만들고 한반도의 봄을 이끌어낸 16,894,280개 광장의 별들까지 그 숫자는 셀 수없이 많다. 그 별들을 위해서라면 미학적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겠노라고 그는 말했지만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억해야 마땅한 아름다운 사람이 놓였던 자리를 분명하게 새겨두기 위해 거리두기라는 미학적 우회로를 봉쇄해버린 그의 선택으로 발생할 손해가 있다면 그건 예술의 손해이지 이종구의 손해일 수 없다. 그의 과감한 미학적 투지로 인해 그 어떤 예술보다 감동적이었던 현실이 비로소 예술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 방현석

방현석 l 주요작품으로 「새벽출정」, 「내일을 여는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세월」 등이 있으며 신동엽창작기금, 오영수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부총장을 맡고 있다.

이종구_별이 된 시인-윤동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97cm_2016

The People Who Have Become Stars in His FingertipsThe Memories of the Heartbreaking and Sacred Scintillation There is a person whom we seek when facing difficulty making a decision or a choice. Lee Jong-gu is that person for me. After being counseled by him, I may face complications right now, but would never regret my decision in the future. Last summer, I have called him a few times to ask for advice, and every time he told me he was at Imhado in Haenam. I was envious of him, presumably painting while enjoying the brisk island weather, and always had the same response. ● "You are so lucky." I used to grumble at him out of jealousy, without knowing what kind of works he was painting, and therefore completely astonished when I visited his studio in Bupyeong last month. The paintings that filled up two walls of his studio were of the group photographs of the children from all ten classes of Danwon High School. The amazement from the scale of the works soon turned into paralyzing shock. There was not one person in the ten paintings, whether a student or teacher, who did not have a gaze indwelled with their soul. There were no similar gazes, and it did not stop here. All the lips were telling a unique story; all the fingertips were pointing at different dreams; the sneakers visible under the different ankles that raised the individuals for 17 years was headed towards the paths the children were no longer able to go. The photograph depicted a group, but the protagonists of the paintings were all unique individuals who cherish distinct souls. Lee's paintings were impossible to achieve unless the artist has met and commune with each individual within. "When did you paint all this?" "I worked on them at Imhado, where the course of the Sewol Ferry is visible." "That must have been difficult." ● It was not difficult to guess how often Lee must have cried while painting all these children and teachers since I have also wept multiple times while writing Sewol, a novel illustrating the stories of the families of the still unrecovered Sewol Ferry victims. "It felt like the children were speaking to me. It was dreadful to sleep at night." Lee could not bear to comfortably paint in his studio at Incheon, so he worked in a closed school in a small island located offshore of Jindo. In the midst of all the people Lee has painted during the sleepless and tearful 3 months at Imhado, was Jeong Cha-Woong, the boy who took off his life vest to give it to his friend and was not able to escape himself. How many times would Lee have clenched his jaw while painting the group photograph of the children in Class 1-5, posing with their palms wide open as if they have let go of any greed to seize anything? ● 9 out of 36 students in Class 2-5 survived, and 27 were sacrificed. Their class motto was "Nang-Jung-Ji-Chu (囊中之錐)," meaning, 'an awl inside the pocket.' How many times would their homeroom teacher, Lee Hae-Bong, who was next to the children until the end, and who appointed the class motto, have attempted to tame the awl trying to penetrate his pocket? The method Lee Jong-gu has chosen instead of exaggeration or abstraction was to go in depth as always, and he has never taken his eyes off of the authentic expressions of his subjects, whom he must defend. Therefore, the expressions of the children and teachers of Danwon High School are bright, yet enigmatic and arcane at the same time. ● The reason why Lee has painted the people who could have remained in photographs lays on the fact that he knows better than anyone else that art is dealing with memories on a different layer than records. His work is the process of artistic salvage, to attest who have perished rather than how many, and what kind of people the authority has abandoned. Through Lee's efforts, we may now identify the bright, yet the enigmatic essence of the retrieved victims. What Lee has focused on is the aspect of these people as saviors who has awakened our sleeping souls, spurred us out to the agora to change the world, full of absurdity. The root of the spring we are now enjoying comes from these victims. ● As Lee and I discussed the truths he has uncovered and emotions he has felt as he summoned the victims of the sinking of Sewol Ferry in his paintings at his studio in Bupyeong and a Makgeolli bar in Sinpo-dong, I discovered a very amusing fact: that his paintings all begun from narration, not images. "You've seen the messages and letters in the 'classroom of memories' to commemorate the children of Danwon High, right? Your heart aches when you read the messages left by parents and friends. The one letter I cannot forget was written by a father to his lost child. It was the part where he writes, 'Please look after us.' The whole time I was painting, this passage has never left my mind." ● The fact that the children, who we only thought of as helpless victims were in fact, saving us, living as ordinary people who are only able to see what is right ahead, and changing the authorities who have lost morals. Lee captures the hidden truth of humanity like scintillation and demonstrates how the periphery has relieved the center. The lyrical intensity of his work has a narrative more magnificent than an epic novel as its foundation. ● I have already been astonished by Lee Jong-gu's descriptive imagination that transcends time and space. The things that Lee preciously brought back from Iraq, at war in 2003, were an abandoned textbook and notebook. I am certain that no fellow artist would not have been astounded by seeing what Lee has brought back from Baghdad, after a 28-hour Jeep drive trip from Amman, Jordan through the Arabian Desert in Syria, covered in dirt. As he considers how this notebook, filled with a child's sincere Arabic notes might have been thrown out in a pile of trash, Lee still awaits the day he may return this notebook, even though he may never know if its owner has survived or not. ● The works that took up another wall in Lee's studio at Bupyeong embodied the people of the Gwanghwamun agora. Following the group paintings of all 10 classes of Danwon High School students, I could only be astonished once again. The intensity of the red, rarely used in Lee's oeuvre that has been usually using browns and the dark blue-green of Jindo port, took my breath away. It was not his first time sophisticatedly applying stencils, collage, objet, etc. on the painting as the foundation, but he has never used the color red so boldly. Lee made a light joke regarding the change of color. ● "I spent some money on paint. I couldn't afford it before." I, who only used black ink to write letters on white paper, only found out that the price of paint was different according to its color. How red is a few times more expensive than darker colors? A friend who visited Lee's studio with me became concerned that his works may suffer aesthetic loss after seeing the slogans from pickets, posters, and broadcast subtitles. However, Lee was unconcerned. ● "I plan to put up with it." I could easily assume that Lee has made a choice to seal off aesthetic diversions and take the bull by the horns. If it is certain that aesthetic is only capable of becoming art when undetached from the mind, then these recent paintings of Lee's must be viewed as a fiercer than ever aesthetic challenge, as Picasso's works have been. ● The people Lee has persistently depicting were the people who lived lives that were bonded to reality. At a glance, it may seem as if the people in his paintings that have advanced to the agora are different from the figures he has been painting so far, but that is not true. There is not one person within the agora, who has not ardently set foot on reality in their life. From the genesis and the end of the candlelight, from the individual to the family, and to the citizen as the mass collective, the people who went out to the agora never led their lives after an apparition. They are the brothers, sons, and own-selves of the people who endured and lived grounded on the land Lee has been painting consistently. ● I could only think of 'E-Bul-Byun Eung-Man-Byun (以不變 應萬變)' while looking at Lee's changed yet unchanged paintings. This expression, meaning 'to respond to the ever-changing world through the permanence within myself,' has been dynamically revived by Ho Chi Minh, the eternal preceptor of the Vietnamese. Lee's aesthetics that has endured a long time alongside the people of the land symbolized through his hometown Oji-ri, embraced the sorrows of the ocean and ascended to the sky to land on the agora of 'right here, right now.' The Oji Elementary School where Lee has held an exhibition for the protagonists of his paintings from the 1980s became a branch school and now closed completely. The numerous Mr. Jangs, Mr. Lees. And Mr. Moons of Oji-ri that Lee painted passed away one by one over time. However, what we must pay attention to is not their vacancy, but the point where the remaining Mr. Moon's gaze lands upon. I am certain that the gaze of Mr. Moon, the only person from Oji-ri in this exhibition, is looking towards the people of the agora. This delicate and rare timing of the people of Oji-ri passing the baton to the people of the agora is a fortune only awarded to the person who never took their eyes off of Oji-ri all their life. It is also something that an artist who understands how the rice sack that has arrived at Oji-ri, a rural town in the Korean Peninsula from California and the lost notebook of a child thrown away in an alley in Baghdad connects to the system of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may only paint. ● While I looked at Lee's Agora series, which newly tells a story towards the ever-changing world through the permanence within, I reminisced of seeing Lee on a winter night in 2016, at Gwanghwamun. He was still very thin; his face was worn out, and must have been concerned for his health, but did not leave the agora until late hours. The painting depicting both Lee Jong-gu's, one wearing dress shoes and the other wearing sneakers, was illuminating that Lee as a citizen and artist cannot be separated. By not yielding even one place of a citizen twinkling through a single candlelight within the 16,894,280 Candlelights, a large size 1,000 painting with 45 smaller works connected to each other, Lee made clear where his aesthetic view stands. ● The third thing that surprised me at Lee's studio at Bupyeong was the flourishing spring generated from the agora. The Spring is Here series embodies the excitement of the South and North Korea preparing hand in hand for a new beginning, after retaining 'system of division' under the state of armistice even after over 70 years after liberation. The aspiration of the nation to no longer lay fault at others and leaving our fate on the hands of foreign influences is engraved in the Jeju canola flowers on the ground and the Heaven Lake of Baekdusan over the head. The cattle in the last painting were especially striking. Until now, all cows and bulls excluding calves in Lee's works always had cattle-leaders pierced in their nose. However, this time is different. The cattle unreservedly galloping the green grass field of spring took off their cattle-leaders. They did not even have a single trace of the pierced nose. The candlelight of the agora laid the green grass where the cattle may freely gallop, but the dimensional details were only able to become realized because of Lee's unsparing imagination, where he persistently endured next to the cattle that had cattle-leaders pierced in their noses and waited for the day to finally free them of it. ● More than a handful of people recognize Lee Jong-gu as an artist who has been excellently painting the land and its farmers, whom he has profound affection towards. I believe only half of this recognition is correct, and the other half is incorrect. I have witnessed many times as his colleague working at the same school his affection towards the people who live with their feet grounded on the land. Whenever students visit farms and rural areas to provide a helping hand, it was always one step behind Lee, as he always visited beforehand. I have yet to see another professor who buys Makgeolli and pork belly out of his own pockets every year to visit and encourage his students who are willing to accompany the farmers. Also, anyone would know that Lee has undertaken and painted the vanishing wrinkled lives of farmers, unable to receive attention from any memories. Yet the reason why only half of the recognition is correct is that it overlooks at Lee's different interests he had, different paintings that he painted, and his choices and challenges as an artist that made everything possible. ● Lee is an artist who bears a universal perception that enables him to imagine the fate of the owner of an abandoned textbook and notebook in an Arab alleyway, as well as the only artist in the world who painted the process and outcome of the global expansion of capitalism on Californian rice wrappers. The reason why Lee has been painting rural areas and farmers was not that he is an agricultural-artist, but because he is one of the rare artists who understand the reason to remember the underlying formula of life. ● A good novel constructs stories out of images, and a good painting renders a story into an image. Lee Jong-gu has perceived better than anyone, tenaciously digs into, and excellently embodied the context of a story that must not be lost nor renounced. He has been always diligent in providing a pedestal for protagonists who deserve to be celebrated. The figures that he has painted for this exhibition counts over 500. This is probably larger than the total number of the people he has painted in the past put together. ● How then would there only be 500 stars he has painted? From the children and teachers of Danwon High School who became the stars that enabled the redemption of our generation, to the 16,894,280 stars that entitled global peace and drew out the spring for Korean Peninsula, the numbers are countlessly large. Although Lee has stated that he gladly will bear the aesthetic loss for these stars in his works, however, this will never happen. If there is anything to be lost generated by his choice to seal off an aesthetic bypass of keeping distance to clearly engrave the platform where beautiful people must be remembered have once existed, it would be a loss for art, not Lee Jong-gu. Who could ever deny that through Lee's bold aesthetic determination, the reality that was more moving than any art is now, at last, a part of art? ■ Bang Hyeon Seok

Bang Hyeon Seok l Bang's major works include Off to Battle at Dawn, The House that Opens Tomorrow (1991), Time to Eat Lobster, When They Call My Name, Sewol, etc. He has received the Shin Dong-yup Prize for Literature, Oh Yeong-su Literary Award, and Hwang Sun-won Literary Award. He is currently a professor in the Creative Writing Department at the Chung-Ang University, and is serving as the vice president in the same university as well.

Vol.20180928c | 이종구展 / LEEJONGGU / 李鍾九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