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산보 雨中散步 A Stroll in the Rain

정원희展 / JUNGWONHEE / 丁元熙 / painting.drawing   2018_1002 ▶ 2018_1007

정원희_雨中散步 #18212013_캔버스에 유채_116×80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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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002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사이아트 스페이스 CYART SPACE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안국동 63-1번지) Tel. +82.(0)2.3141.8842 www.cyartspace.org

인간으로서 선을 긋는다는 것 혹은 시선을 둔다는 것에 대하여 ● 정원희 작가의 작업에는 인간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와 다양한 모습이 들어있다. 그런데 그의 표현 방식을 보면 자세히 묘사하기보다는 직관적인 방식으로 낙서하듯 자유분방하게 그리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캔버스 작업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붓이나 드로잉 재료와 같은 일반적인 회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낙서를 하듯 니들(needle)로 긁어서 그리는 방식이나 스퀴지(squeegee)로 밀어내 그리는 것과 같은 기법을 사용한다. 특히 소품의 경우에는 인간의 외형을 그리는 것과 함께 문자나 기호를 사용하면서 이를 말풍선 안에 담아 놓는 경우가 많다. 이같이 만화나 낙서를 하는 것 같은 자유분방한 표현 방식을 즐겨 사용하는 것을 보면 작가는 정교하고 완벽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마주치는 순간순간의 경험이나 그때그때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빠른 필치로 기록하고 저장해 두는 방식의 작업을 하기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원희_雨中散步 #18212010_캔버스에 유채_116×91cm_2018

그런데 하나의 사건, 하나의 순간들이 촘촘히 담겨 있는 듯한 그의 작업은 빠른 움직임들로 그려낸 것처럼 보이기에 이것이 손쉽게 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그가 반복적으로 이 작업들을 지속해 오는 것을 그의 많은 작업량 가운데 확인하게 된다면 그의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양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곳에 담긴 내용을 볼 때 그에게 있어서 작업은 하나의 개별 작품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의 경험과 감각을 기록해나가는 것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하나하나를 개별 작품으로 나누기 보다는 개별 작업들의 총합이 하나의 작업이자 이것이 그의 작업 전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가 인간 모습을 그리는 것을 반복해가면서 자신만의 방식에 의해 수많은 단편으로 포착하고 연속된 작업으로 축적해왔다는 점을 보면 그는 아마도 언제부터인가 인간 외부의 형상을 그려내는 작업 그 자체보다는 그가 바라보게 된 인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또는 이로부터 만들어지는 상황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의 작업을 다시 살펴보면 낙서하듯 움직인 선들이 만들어낸 형상은 인간의 형상을 닮아있는 듯하지만 구체적인 묘사라기 보다는 인간의 움직임 혹은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움직임들이 남아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감지될 것이다. 매우 간략하고 속도감 있게 그려낸 결과물들은 그것이 관찰 대상이었던 사람의 움직임을 그려낸 것인지 관찰자의 눈길이 흘러간 동선을 그려낸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지만 매우 단순하게 그려진 선은 인간에 대한 표현이건 인간을 향한 시선의 기록으로서의 선이건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의 수없이 많은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결과물들이자 접점일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되는 부분이다.

정원희_雨中散步 #18212014_캔버스에 유채_116×80cm_2018
정원희_雨中散步 #18212011_캔버스에 유채_116×91cm_2018
정원희_雨中散步 #18212012_캔버스에 유채_116×91cm_2018

작가는 '많은 대상 중에 포착되는 지점은 소수에 불과한 것'이라는 자신의 시각을 밝힌 바 있다. 그의 언급은 수많은 삶의 순간 중에서 시선과 대상이 마주치는 순간에 주목해 온 작가의 시각적 태도와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유추해 보도록 만든다. 즉 그의 작업들은 삶의 순간을 구성하는 시공간 혹은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관계에 대해 사색해 온 작가적 사유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에 비춰보면 그는 작업을 하는 가운데 하나의 움직임, 하나의 선으로 결정하게 되는 순간들 그리고 그 존재적 의미들에 대해 기록을 해온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가 그려낸 선들은 존재의 순간에 대한 작가적 해석이자 시각적 기표로 남기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작가의 사유 방식은 불교의 연기(緣起), 인연(因緣)과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업은 텅 빈 공간 안에서 선(線)이 창출되고, 사물(事物)이 만들어지며, 인간(人間)이 존재하게 되는 세계로서의 우주(宇宙) 혹은 공간(空間)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정원희 작가가 그려낸 것은 일견 인간의 외형으로부터 형상적 본질을 추구한 하나의 조형작업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결국 작가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이자 인간 존재의 의미론적인 본질을 추적해온 작가의 수행적 과정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정원희_雨中散步 #18212016_캔버스에 유채_116×80cm_2018
정원희_雨中散步 #1821101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1×92cm_2018

그러므로 전시 주제 '우중산보(雨中散步)'라는 말은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함축한 일종의 은유적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작업이 이 같은 지평에서 행해진 시선의 움직임과 몸짓들일뿐만 아니라 사유 행위의 궤적이었음을 이해하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재란 인간으로서 존재적 좌표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순간들 중의 하나일 수 있다. 또한 그것은 물이 대지(大地)를 순환하는 흐름 가운데 마주치게 된 빗속의 한 순간일 수 있으며 자연이 유기체적 생명체가 된 것처럼 호흡을 하는 도중 숨을 내뱉은 한 순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순간이 작가에게는 존재적 각성이 되는 찰나(刹那)와 같은 시간으로 다가오는 동시에 억만 겁(億萬 劫)의 시간처럼 수없이 많은 느낌들을 감각하게 되는 느릿한 산행(山行)을 하는 것과 같은 시간으로도 느껴졌던 것 같다.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이 순간순간을 하나의 획이 움직이는 시간을 넘어 감각이라는 세계를 향해 무한히 확장하는 가운데 그 속을 산보하듯 거닐며 느끼고자 것이다. 작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건들 사이에서 마주치게 되는 매 순간들이 바로 현실이고 이것이 실제임을 그의 작업을 통해 보여주면서 이로부터 그 존재적 위치를 순간순간 각성하는 동시에 시간을 초월한 감각의 영역에서 이에 대해 음미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인간은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수 많은 마주침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는 이 우연이자 필연의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이 모두를 자신의 시선 안으로 가져와 감각하고 선이라는 매개물 안에 수렴시킴으로써 그 의미들을 읽어가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라 봄의 시선에서 시작된 존재에 대한 질문들을 작가는 바로 선 긋기라는 이 수행적 행위의 과정에서 확인해내고자 한 것이다. 마치 멈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한히 쏟아져 내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한 빗속과 같은 이 세계 내에서 말이다. ■ 이승훈

정원희_雨中散步 #18212019_캔버스에 유채_65×53cm_2018
정원희_雨中散步 #18111010_종이에 아크릴채색_15×10cm_2018
정원희_雨中散步 #18111211_종이에 아크릴채색_15×10cm_2018

時中 ● 대충 그리고 싶다. 대충 그릴 것이다. / 고요함으로 던져진 돌멩이가 만든 곡선같은 완전하고 순결한 선을 치고 싶다. / 되지 않을 것을 찾아 구하고, 닿지 못할 곳을 찾아 그리며, 그러나 대충 그리고 싶다. / 불완전한 순간, 어느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남겨. 괜찮았다고, 다 괜찮다고 말할 것이다. (2018) ■ 정원희

Vol.20181003d | 정원희展 / JUNGWONHEE / 丁元熙 / painting.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