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길 Human and the Road

이응노_박인경 도불60주년展 The Commemorating for the 60th Anniversary of Visiting France-Lee Ungno & Park In-kyung   2018_1006 ▶︎ 2019_0526 / 월요일,설날당일 휴관

사람·길-이응노_박인경 도불60주년展_이응노의 집_2018

초대일시 / 2018_1006_토요일_03:00pm

박인경 화백 동양화 시연회 / 2018_1007_일요일_02:00pm

주최 / 홍성군 책임기획 / 박응주

관람료 / 어른 1,000원(15인 이상 단체 700원) 어린이,청소년,군인 500원(15인 이상 단체 300원) 6세 이하, 65세 이상, 장애인, 유공자 무료

관람시간 / 동절기(11~2월)_09:00am~05:00pm 하절기(3~10월)_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화요일 휴관

이응노의 집 Maison d Ungno Lee 충남 홍성군 홍북읍 이응노로 61-7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Tel. +82.(0)41.630.9232 leeungno.hongseong.go.kr

도불 60주년, 이응노·박인경展의 의미 ● 이 전시는 이응노·박인경 도불 60주년을 맞이하여, 전통회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발견함으로써 한국미술을 새로운 표현으로 국제화한 위업을 이룬 두 사람의 예술적 반려의 궤적을 그리고자 한다. ● 그것은 명실상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을 적절하게 한다. 해강 김규진의 문하에 든 어느 날 늦은 밤길 휘몰아대는 바람이 가르쳐준 죽비, 「풍죽風竹」. 있는 그대로의 사물. 있어야 할 모습으로서의 사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릴 것! '자연'으로부터! 리얼리스트 이응노의 탄생이었다.

이응노_꼴라주 풍경화_한지에 종이콜라주_164×83cm_1986

눈앞의 현실을 보아도 볼 수 없던 청맹靑盲의 시대도, 말류 신사조의 근원모를 국제적 양식에의 유혹도 그의 길이 될 수 없었던 이유다. 이는 그의 눈길, 그의 방향타가 '현대'로의 길이 아니라, '근원'에로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근원을 묻는다는 것, 서書, 쓴다는 것. "필筆은 신체의 확장이요, 먹墨은 영혼 속을 흐르는 피"와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대저 사물이 시선에 걸려든 저 밖의 무엇이 아니라 이미 내 마음에 들어와 있는 사태이기에 그림은 저 사물을 묻고, 묻는 나를 묻고, 실재the Real를 묻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박인경_숲4_한지에 수묵_137×70cm_연도미상 박인경_조약돌_한지에 수묵_137×70cm_2015
이응노_군상 1(선)_한지에 수묵담채, 연필_202×68.5cm_1978 이응노_군상 2(면)_한지에 수묵_202×67cm_1978

약관 20세, 오직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무작정 상경'을 결행했던 용기. 서른 즈음, 동양화의 새 길을 찾겠다는 결기로 감행한 도일渡日. 그리고 1958년, 유럽을 제압하겠다는 지사적 기백으로 그와 박인경은 불란서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의 육신이 태어난 고향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만 갔던 행로와 그의 그림이 태어난 이 땅의 근원에로 점점 더 가까워져왔던 빛나는 역설을 만나게 되는 곳이 여기다. 그의 그림은 구습舊習과 고루한 전통이라는 흙먼지 더께에 입바람을 훅- 불어 날리고 그 안에 웅크리고 있던 생생한 육체, 뛰어다니고 있는 사람을 되살려 발굴해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박인경_꽃의 편지_한지에 수묵_168×35cm_2014 박인경_꽃의 편지2_한지에 수묵_168×35cm_2014
박인경_길_한지에 수묵_135×100cm_2006

그리고 여기 또 한 사람, 그와 예술의 길을 함께 걸은 동반자 박인경 화백. '옹기장수'나 '공사장 인부'를 스케치한다는 일마저도 여성화가에겐 '금기'였기에 그저 먼발치에서나 스케치하곤 했던 한국 여성미술 1세대 나이 스물 넷의 박인경. 그녀는 처음 1949년 이응노의 전시를 만났다. 새로움이었고 당연함이었다. 예술의 태생적 본성이 그러함을 그녀는 자신의 인문성의 힘으로, 고루한 아카데미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 거기에 도달했다. 그의 예술은 섬광이었다.

이응노_구성_한지에 수묵담채_17×63cm_1959 이응노_풍경1_한지에 수묵담채_17×130cm_1959
이응노_구성1_한지에 수묵_12.5×19cm_1959 이응노_구성2_한지에 수묵_14×19.5cm_1959
이응노_군상_한지에 수묵_33×53cm_1987

1958년의 파리행, '추방'. 그것은 전통과 구습들이 명한 추방이었다. 그리고 60년의 세월... 이응노가 선線이라면 박인경은 면面, 그가 형形이라면 그녀는 지地. 형상形象과 여백餘白처럼, 그들은 머나먼 유배지에서 하나의 화면을 완성했다.

이응노_구성_한지에 수묵담채_176×96.5cm_1969

면, 지, 여백에 주목하는 한국화의 표현영역이라는 대목은 확실히 이응노와의 합주合奏이자 박인경만의 독주獨奏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나는 동양화에서의 선, 한자나 한글에서의 선의 삶과 움직임에서 출발, 공간구성과 조화로 나의 화풍을 발전시켰다"고 말하고 있던 때의 이응노의 과정을 마치 역순으로 전개하듯이 면과 지와 여백으로부터 먼저 출발시키는 방식으로 말이다. 역순, 그러나 그것은 같은 말이기도, 다른 말이기도 하다. 같은 말이라 함은 지배紙背를 철撤하곤 하는 중봉中峰이 그 설립을 시작하자마자 여백과 공간이 포치되듯이 서로 결구된 이치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응노와 바톤을 함께 쥐고 있다는 것이요, 한편 그녀는 (자신의 이지理智가 아닌 삶과 몸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로부터 먼저 출발해 그것과 균형을 이룰 기법을 선택하는 편이라는 의미에서 다른 말이라는 것. 그녀는 저대로 흘러가는 자연의 운행에 화가는 몸과 눈을 빌려줄 뿐, 그리하여 화면을 자연 그 자신의 구조가 되도록 돕는다. 자연 그 자신의 구조라는 것! 화가가 정념으로 투사하고 직조한 세계가 아니라 많은 화가들이 세계를 사용해왔으면서도 보지 못하고 지나쳐왔던 세계 그 자체의 시적인 구조를 구출하려한다는 것! 이 점이 그간의 한국미술사가 간과한, '이응노의 부인'으로 머물게 해왔던 다소 인색한 평가의 맹점이었을 지도 모른다.

박인경_무제_한지에 수묵담채_33×45cm_1959
박인경_구성_한지에 수묵_135×34cm_연도미상_부분 박인경_구성2_한지에 수묵_135×34cm_연도미상_부분
이응노_주역64괘차서도_한지에 먹_33×24cm×4_1974

두 사람의 그 길. 이는 '한국미술을 사랑하기'의 역설적 숙명을 따라갔던 그 길이었다. 그것은 불가능한 죄. 차라리 먹墨빛의 인애仁愛, 속절없는 사랑이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또 한 번의 역설 앞에 우리가 있음을 확인한다. 연약하고 부드럽고, 볼 순 없지만 항상 움직이는 무한한 대기가 모든 것을 품고 있다는 자연철학의 조형가들. 미망의 현대주의 선망羨望으로 미학적 영혼까지 잠식당해왔던 해방기 문화적 제국주의 시기가 그들의 시대였음을 기억해본다. 거기에 이응노의 '하늘과 땅과 사람의 근본의 그림' 혹은 박인경의 '자신을 말소시킨 그 자리를 온통 세계의 영광으로만 되돌려놓은 겸허한 미학의 그림'이 철저한 그늘 속을 지나갈 수밖에 없었던 한 세월을 나란히 놓아본다.

이응노_통일 조국 배게_나무_7×23×25cm_1970년대
박인경_나비 1_한지에 수묵담채_130.5×66.5cm_1964 박인경_연못_한지에 수묵담채_137×70cm_1964 박인경_겨울의 어느 날_한지에 수묵담채_131.5×68.5cm_1966

우리는 이곳에서 '흰 그늘'과 '검은 여백'을 본다. 우리의 미래, 과거의 우편배달부에 의해 전해 질 미래의 편지들을 만난다. 미궁의 바닥... 사랑할수록 검어지고 어두워지는 먹빛의 사랑, 현玄하고 현玄하다는 것. 그곳에서 한국미술의 빛을 본다. 이들 편지의 전언은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이다.

박인경_구름 1_한지에 수묵_130×120cm_2018
사람·길-이응노_박인경 도불60주년展_이응노의 집_2018
이응노_추상_캔버스에 종이 콜라주_124×191cm_1961

"묵중묵중우묵중 (黙重黙重又黙重) / 진리진리경진출 (眞理眞理更眞出) 먹은 무겁고 무겁고 또 무겁다. / 진리여 진리여 참된 것은 언제라도 다시 나타날지니"박응주

Vol.20181006c | 사람·길 Human and the Road-이응노_박인경 도불60주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