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주름

이윤정展 / LEEYOONJEONG / 李侖貞 / painting   2018_1010 ▶︎ 2018_1016

이윤정_춤추는 산_한지에 수묵채색_74×72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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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01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0)2.733.1045 www.grimson.co.kr

끈으로 산을 그린다. 바위를 그린다. ● 전통적인 동양화에서는 산수를 그릴 때 준(皴)이라는 선으로 대상을 묘사한다. 이때의 준(皴)은 한자로 주름준 즉 바위와 산의 주름을 따라서 선으로 그려내는 것인데 준법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대상의 형태는 물론이고 입체감, 양감, 음영까지도 표현한다. 산수의 특징에 따라 준법은 다양하게 발달하였고 전통 산수에서는 그리는 산과 바위의 형태에 따라 그것에 적합한 준법을 사용하여 산수를 묘사해왔다. ● 나는 끈을 그린다. 끈 그림을 그린 지는 십여 년이 훌쩍 넘은 것 같다. 한참은 끈은 은유였고 상징이었다. 끈의 얽힘과 꼬임이 인생의 굴곡이나 존재들 간의 관계를 나타냈다. 점차로 끈의 형태가 변화하고 의미가 변화하여 지금은 그저 끈은 끈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산수를 표현하는 준의 역할을 하는 끈이다. 대상 표현의 도구로서의 끈이다.

이윤정_춤추는 산_한지에 수묵채색_96.5×55cm_2017
이윤정_땅의 주름_한지에 수묵채색_104×75cm_2017
이윤정_춤추는 산_한지에 수묵채색_118×111cm_2017

레이스 끈에 먹물을 흠뻑 적셔 한지에 찍어내어 그 흔적을 나만의 준으로 여기며 산과 바위의 주름을 따라 간다. 구겨지고 꼬인 끈이 한지에 찍힌다. 그 흔적들이 겹쳐지면서 산과 바위의 형태를 만들고 덩어리를 만들면서 전통적인 산수와는 또 다른 산수화를 만들어 나간다. 끈으로 땅의 주름을 읽고 땅을 그린다. 이것이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첫 번째 과정이다. 이 위에 서로 다른 색을 여러 차례 겹쳐 입히고 끈의 꼬임을 강조하는 점을 찍는 과정을 지나면 서서히 끈으로 그린 산수의 모습이 드러난다. ● 산수의 모습이 완성되어 갈 즈음 그림에 칼을 댈 때가 있다. 준의 역할을 하며 산의 형태를 표현한 끈만 남기고 나머지 여백을 아낌없이 잘라낸다. 그러면 끈만 남은 부정형 형태의 작품이 남는다.

이윤정_바위_한지에 수묵채색_60×140cm_2018
이윤정_바위수집1_한지에 수묵채색_80×64cm_2018
이윤정_레이스 드로잉 1_한지에 수묵채색, 레이스끈_21×33cm_2018
이윤정_레이스 드로잉 2_한지에 수묵채색, 레이스끈_21×33cm_2018

'한지에 수묵 채색' 어떤 이는 그 부정형의 작품을 보고 수묵채색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수묵채색화여도 좋고 수묵채색화가 아니라도 좋다. 동양화의 번짐과 여운이 없고 디자인 도안 같다고 하는 이도 있다. 동양화여도 좋고 동양화가 아니어도 좋다. 그것은 산수로 보일 때도 있고 끈이 얽혀 있는 추상적 형태로 보일 때도 있다. 산수여도 좋고 추상이어도 좋다. 뭐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좋다. ● 그것을 벽에 약간의 공간을 띄워 건다. 여기에 빛을 쏘아주면 그림 아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또 하나의 끈의 얽힘이 나타난다. 흰 벽에 여백이 잘린 산과 바위의 부정형 덩어리가 걸린다. 그러면 그 흰 벽은 작품이 걸리는 배경이 아닌 끝없는 하늘이 되고 망망한 바다가 된다. 여백이 벽 위로 끝도 없이 확장된다.

이윤정_땅의 주름_한지, 레이스끈_44×55cm_2018
이윤정_풍랑_한지에 수묵채색_76×105cm_2017

주름은 세월을 보여준다. 그것이 지나온 수 만년의 시간동안 비바람을 맞고 온갖 시련을 견뎌낸 결과이다. 산도 바위도 비바람에 깎여 지금의 형태로 살아남았다. 그 주름을 따라 그리는 그림은 그 대상의 살아온 역사를 그리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주름도 다르지 않다. 사는 동안의 희로애락이 그 주름에 담겨있다. ● 그렇다면 끈으로 땅의 주름을 그리고 있는 지금 그리는 대상이 달라지고 형태가 달라졌지만 다시 십 수 년 전 끈 그림을 시작할 때에 표현하려 했던 것들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 이윤정

Vol.20181010f | 이윤정展 / LEEYOONJEONG / 李侖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