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의 편안한 잠

강승혜展 / KANGSEUNGHYE / 姜承彗 / painting   2018_1011 ▶︎ 2018_1020

강승혜_행복한 당나귀_합판에 목탄과 아크채색_80×11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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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0)2.738.2745 www.gallerydam.com

꽤 오랫동안 비현실과 현실을 한 공간에 중첩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 비현실이라는 것은 어린 시절의 기이한 상상이거나 자연의 유유자적함이기도 하고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공통적으로는 현실의 결핍을 형상화한 것이다. 목탄으로 그려진 동물들은 산수화 속의 작은 인물처럼 감정이입이 된 존재이며, 색을 지닌 평면의 환경 속에 놓여있다. 칼라와 흑백, 3차원과 2차원을 각각 현실과 비현실의 회화적 표현으로 상정했을 때 서로의 경계가 모호한 채로 공존함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첫 개인전 『거실과 다락』에서 언급했던 '현실과 비현실은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의 연속선상에 있다.

강승혜_여행_합판에 목탄과 아크릴채색_52×95cm_2017
강승혜_견디다_합판에 목탄과 아크릴채색_144×100cm_2015
강승혜_호두의 편안한 잠_합판에 목탄과 아크릴채색_73×100cm_2018

이번 작업 역시 표현의 맥락은 같다. 다만 '비현실'의 범위에 '죽음'이라는 개념, 사건, 느낌을 포함시켜 이를 중심으로 발전시킨 형상들이다. 즉 이번 작업에서의 현실과 비현실은 곧 삶과 죽음이며 이 두 가지가 중첩된 공간이다. ● 몇 해 전 세상에서 아주 소중한 두 존재를 떠나 보냈다. 듣기에나 익숙했던 죽음이 내 삶 안으로 직접 찾아왔을 때 그것은 평소에 느껴온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다. 그 공허함의 무게는 그 사건을 어떤 식으로도 규정짓지 못하게 하여 수없이 많은 종교적, 철학적 정의와 예측과 경험들을 뒤져보아도 비로소 '그런 거였어.'라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접어두고 다시 일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흐트러지고 뻥 뚫린 마음을 정리해주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겨울, 억지로 끌려가듯 나선 여행길에서 차창 밖을 응시하던 멍한 눈에 들어온 것은 앙상한 나무들이 촘촘히 꽂힌 산들의 둥글둥글한 능선이었다. 초록기운이 거의 없는 알몸뚱이 산들은 순간 엎드린 코끼리로, 겨울잠을 자는 곰으로... 둥글게 몸을 웅크리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잠을 자는 다양한 포유동물의 모습으로 보였다. '자연회귀'도 좋고 '애니미즘'도 상관없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던 한 현상과 화해하는 순간이었다.

강승혜_섬 고양이_합판에 목탄과 아크릴채색_80×100cm_2018
강승혜_낚시터_합판에 목탄과 아크릴채색_70×80cm_2018
강승혜_겨울잠_합판에 목탄과 아크릴채색_65×90cm_2018

그래서 이것은 어둡고 차갑지 않은 죽음에 관한 작업이다. 가버린 존재들에겐 진혼을, 남겨진 이들에겐 '그들은 사실 그리 멀리 가지 않았을지도 몰라.' 라는 위로를 담았다. 또한 언젠가 죽음이 나에게로 찾아왔을 때를 위한 마음의 예방주사라고 해도 좋겠다. 동물들이 정말 편안하게 잠들어있는 장소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평범한 산골마을, 작은 섬, 모처럼의 드라이브 길에 잠깐 차를 세워 쉬게 되는 저수지와 같은 흔한 공간이다. ● 임종을 앞둔 누군가가 고해성사를 위해 찾아온 신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천국에 가고 싶지 않아요. 거긴 내게 익숙한 곳이 아니니까요." ■ 강승혜

Vol.20181011e | 강승혜展 / KANGSEUNGHYE / 姜承彗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