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갈망 The Longing of Eternity

최종태展 / CHOIJONGTAE / 崔鍾泰 / painting.sculpture   2018_1011 ▶︎ 2018_1104

최종태_Face_브론즈_46.7×30.8×19.7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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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1011_금요일_05:00pm

입장료 / 성인 3,000원 / 소인 2,000원 단체 20명 이상 20% 할인 학생(대학생 포함), 7세 이하, 64세 이상, 장애 3급이상 무료입장 두레유 식사시 무료입장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28 (평창동 97번지) Tel. +82.(0)2.720.1020 www.ganaart.com

충만하면서 한도를 넘지 않는 절제된 형태가 지닌 아름다움 ●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진 대규모 회고전 이후 다시한번 규모가 큰 개인전을 위해 최종태는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내내 작업에 매진했다. 이번 전시에는 2017년 5월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린 얼굴드로잉으로부터 올해 집중적으로 그린 바다풍경 등의 평면과 함께 나무에 황토나 백토를 입혀 마감하는 새로운 실험에 의해 탄생한 조각에 이르기까지 신작중심으로 구성된 작품을 발표한다. 인사도 드리고 작품도 볼 겸 그의 작업실이 있는 자택으로 찾아뵈었을 때 책상 위에는 마침 한 화랑에서 전시 중이던 민화를 인쇄한 엽서가 놓여있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민화로부터 시작되었다. 팔순 중반의 조각가는 민화를 가리키며 조선 후기에 겸재 정선도 있었고 추사 김정희도 있었지만 민화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것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평생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묻고 그것을 찾고자 했던 이 노 조각가가 민화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민화에서 볼 수 있는 꾸미지 않은 넉넉함, 단순하면서도 꽉 찬 구성, 절제된 형태는 최종태의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최종태_Sitting Figure_나무에 채색_44.2×21.9×33.3cm_2018

최종태가 그린 얼굴은 언제나 원만하고 그가 만든 얼굴조각의 대부분은 둥글고 부드러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가 그린 풍경은 고요하지만 눈이 머물면서 고른 호흡으로 바라볼 풍부한 여백을 지니고 있다. 여백은 텅 비어있거나 아무 행위도 하지 않은 백지와도 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스토아학파에서 경험 이전의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했던 '타불라 라사(tabula rasa)'와도 같은 마음의 여유가 넓게 열린 공간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그의 인체조각은 동작을 최소화하고 있으나 정지된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함축하고 있다. 운동을 최소화함으로써 조각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의미는 더욱 분명하게 부각된다. 그것은 단순하게 처리된 얼굴에서가 아니라 맞잡은 손이나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는 손을 통해 드러난다. 이때 손은 얼굴의 표정을 대신한다. 묘사를 생략하고 번잡한 형태를 단순화할수록 작품의 견고성은 강화된다. 재료를 떠나 최종태의 조각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단단한 덩어리이다. 여기에는 설명적인 장치가 틈입할 여지가 없다. 단순하면서도 단단한 덩어리, 그것은 그의 조각의 명징성을 고양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가 민화에서 발견한 것도 이 명징성이지 않을까.

최종태_Untitled_나무에 채색_88×26.5×27.5cm_2016

2005년 자신의 고향에 있는 대전시립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졌을 때 그는 "평생을 예술이 무엇인지 찾고 물어보고 연구하였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깨달았다. 나는 아직 예술이 무엇인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을…"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 현장에 있었던 나는 그의 발언을 겸손으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의 말은 아직 생각하고 추구해야 할 것이 남았다는 심경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조각가로서 최종태의 삶은 예술로 향한 사색과 성찰로 일관해 왔다. 그것을 그가 쓴 에세이를 모아 출간한 많은 수상집을 통해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는 마치 무지개 너머의 세계를 찾아 나선 소년처럼 아름다움의 본질을 찾아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한 적 있다. 국전의 추천작가상을 받은 부상으로 그 당시로서는 결행하기 힘든 것이었지만 그는 일본과 미국을 거쳐 영국, 스페인,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이집트 등을 여행했다. 많은 박물관과 유적지를 돌아보던 중에 로마에서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파치니(Fericle Fazzini)와 같은 조각가를 만나 대화하기도 했다. 그 여행에서 그의 관심을 끈 것은 그리스로마의 고전조각이 아니라 이집트의 유물이었다. 그의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정면성과 부동성은 고대 이집트조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에 그친 것은 아니었다. 귀국길에 그는 타이페이에 들러 그곳의 고궁박물원에서 열리던 '도자기특별전'을 보고 서양과는 다른 동아시아의 예술이 지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귀국 후 그는 곧장 석굴암과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갔고 그곳에서 자신이 찾고자 했던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이 경험을 통해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정면성이 비단 이집트로부터의 영향에 머물지 않고 불상과도 연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에도 그는 여러 차례 경주를 답사했고 한국의 전통 속에서 자신의 조형언어를 길어 올리고자 했다. 이렇듯 그의 작품에 두드러진 정면성은 이집트, 한국의 불상은 물론 장승과 같은 민간예술에 대한 고찰의 결과인 것이다.

최종태_Untitled_나무에 채색_90.3×20.7×27cm_2018
최종태_Untitled_나무에 채색_64.6×31.4×25.6cm_2018
최종태_Drawing_종이에 펜_17.1×11.8cm_2017

그러나 정면성 못지않게 그의 작품 속에 흐르고 있는 정신성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최종태는 우리나라 추상조각의 개척자인 우성 김종영의 제자로서 그로부터 큰 감화를 받았다. 김종영의 생전에는 제자이자 동료교수로서 항상 옆을 지켰고 스승이 타계한 후 회상록도 출판하고 현양사업에도 누구보다 앞장섰다. 그러나 예술가인 그에게는 하나의 과제가 있었다. 존경하더라도 스승을 따라 하는 것은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김종영이 브랑쿠지의 길을 추구했다면 그는 쟈코메티로부터 자신의 방향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는 쟈코메티와는 전혀 다른 최종태만의 양식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최종태가 쟈코메티로부터 배우고자 한 것은 양식이나 형태가 아니라 그가 추구했던 고양된 정신성이었을 것이다. ● 김종영으로부터도, 쟈코메티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최종태가 평생 추구해온 사유와 한국적인 것으로 향한 탐구정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여름 그는 나와 함께 진행했던 구술채록 마지막 무렵 이런 말을 했다. "미술사로 들어갔다가 나와 보니까 미술사가 없어졌다." 그것은 선사(禪師)가 문득 깨달음에 이르러서 툭 내뱉는 말처럼 돈오(頓悟)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한 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 깃든 깊은 뜻의 끄트머리일지언정 그 의미의 심연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희미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 년 만에 만났을 때 그가 강조한 "민화에 대한 역사는 새롭게 쓰여야 한다"는 말의 진정성에 공감한다.

최종태_The Sea_종이에 파스텔_55.5×74.3cm_2018
최종태_The Sea_종이에 파스텔_69×99.5cm_2018

언젠가 나는 그가 종교 조각만을 모아 연 개인전을 열었을 때 쓴 글에서 그를 '미의 구도자'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것은 꼭 종교 조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를 만나서 대화하며 발견한 사실은 그가 언제나 사색과 성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대화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미술사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나아가 한국적인 무엇을 이룩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그의 작품도 자유로워지고 있다. 나무 위에 백토를 바르고 그 위에 화사한 색채로 채색한 조각은 납작한 목판을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언뜻 테라코타처럼 흙물을 바른 조각은 마침내 인체로부터도 해방되고 있다. 입방체 위에 얹힌 머리를 통해 무릎을 감싼 채 앉자있는 사람을 연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 단순성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마음이 풍요롭지 않으면 인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미술사와 은밀하게 만나고 있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만의 고유한 형태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충만하되 한도를 넘지 않는 절제, 그것이야말로 최종태가 추구한 미의 결정체이다. 최종태의 작품에 깃든 특징에 대해 '단순과 고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금방 요한 요아힘 빈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이 『그리스 미술 모방론』에서 그리스 조각에 대해 정의했던 유명한 개념인 '고귀한 단순(edle Einfalt), 고요한 위대(stille Groesse)'를 떠올릴 테지만 나는 최종태의 작품이야말로 단순과 고요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이 단순과 고요는 형태에 대한 탐색의 결과 도달한 마음의 평화로부터 비롯하고 있다. 장황한 수사가 아니라 시적인 함축을 통해 형태가 스스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 그것은 작가가 평생 추구해온 성찰을 자양분으로 성장한 미의 본질이 형식으로 구현된 결과이다. ■ 최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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