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지고

박성수展 / PARKSUNGSU / 朴成修 / painting   2018_1012 ▶︎ 2018_1028 / 월,공휴일 휴관

박성수_피고 지고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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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블로그_blog.daum.net/lightly1975 박성수 페이스북_www.facebook.com/binggomomo

초대일시 / 2018_1012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화,수요일_03:00pm~09:00pm / 목~토요일_01:00pm~06:00pm 일요일_01:00pm~05:00pm / 월,공휴일 휴관

도로시살롱 圖路時 dorossy salon 서울 종로구 삼청로 75-1(팔판동 61-1번지) 3층 Tel. +82.(0)2.720.7230 blog.naver.com/dorossy_art

파리의 로댕 미술관에 가면, 높이가 60cm 쯤 되는, 제법 큰 손 모양 조각상이 있다. 로댕이 말년에 제작한, 서로 마주 잡은 두 손을 표현한 이 조각상의 제목은 대성당 La Cathédrale (1908). 박성수 PARK Sung Su 작가가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며 보내 온 작품 이미지를 보면서, 나는 왜 로댕의 대성당이라는 제목의 거대한 60cm 짜리 손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인상적인 손이, 바로 이 작품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이 손 조각이 특별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대성당이라는 작품 제목 때문이었다. 서로 마주 잡은 두 오른손을 조각해 두고, 로댕은 대체 왜 대성당이라는 생뚱맞은 제목을 붙였던 것일까. 대체 그에게 손은 어떤 의미를 가지 길래, 이런 어마어마한 제목을 손에게 붙여주었던 것일까. 그런 생각들로 한참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던 작품, 로댕의 손, 대성당. 그리고 박성수가 내게 내미는 손들을 보면서, 똑같이 그런 생각을 했다. 왜? 갑자기 왜 '손'인가. 대체 이 손들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그렇다, 박성수의 손은 이야기를 하는 손이다.

박성수_이모 손이 말을 하는 것 같아요(못생긴드로잉)_30×24cm_2018
박성수_내 손모가지로 하는 일에 꽃 활짝 피우길 희망합니다(못생긴드로잉)_30×24cm_2018
박성수_오늘과 내일은 다르다(못생긴드로잉)_30×24cm_2018

"이모, 손이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작업실에 놀러 온 일곱 살 조카딸의 반응에, 작가는 정말 기뻤다고 한다. 그랬다, 그는 손을 통해 가만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얼마 전까지 빙고와 모모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했듯이, 이제 그는 자신의 손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수줍게,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전한다. 2016 년 도로시와 함께 진행했던 개인전 『별별사랑 Starry Love』 후, 작가에게는 개인적으로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자신과 역시 작가인 남편을 든든하게 지지하고 응원해 주던 어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고,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꽤 오랜 기간 동안 지내며 많은 것을 일구어 내었던 정든 하남 작업실을 떠나 새롭게 터전을 마련하여 이사했으며, 이번 개인전을 가열차게 준비하던 올 여름에는 눈 깜짝 하는 사이에 큰조카가 넘어져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여 마음을 졸이기도 했었다. 그래서일까. 이번 작품에서는 유난히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작가에게 아마도 지난 2년은 작가로서 자신의 아내로서의 삶, 딸로서의 삶, 그리고 한 여자, 한 사람 박성수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이 그 어느 때 보다고 깊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고민들은 새 작업에서 그의 두 손을 통해 고스란히 표현되어 우리에게 전해져 온다. ● "좋은 여자가 될게. / 좋은 친구가 될게. / 좋은 아내가 될게. / 좋은 엄마가 될게. / 좋은 딸이 될게. / 좋은 작가가 될게. / 좋은 사람이 될게."

박성수_잃어버린 약속_캔버스에 유채_34.8×27.3cm_2018

왼손에는 새하얀 진주 반지를, 오른손에는 푸른 까메오 반지를 끼고 있는, 맑고 고운 핑크 빛 바탕 작은 캔버스 화면 위로 그려진 그의 두 손. 무언가를 살포시 그리고 조심스럽게 감싸안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냥 가만히 두 손을 모으려 하는 것 같기도 한, 세심하고 조심스러워 보이는 그의 가녀린 두 손은 왠지 모르게 안쓰러우면서도 따뜻하다. 찬찬히 작고 고운 캔버스를 살피던 우리는 갑자기 그의 왼쪽 새끼 손가락에서 화들짝 놀란다. 예쁜 진주알 반지 낀 네번째 손가락 옆 새끼 손가락 끝 한 마디가, 그야말로 '댕강' 잘려져 있다. 이런, 쿵. 심장이 멎는 느낌.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이 잃어버린 약속이었구나. 새끼 손가락 꼭꼭 걸고 하던 약속. 그 약속을 우리는 언젠가부터는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그 누구와의 약속도 아닌, 나와의 약속, 그리고 가까이 있는 가족과의 약속에, 우리는 때로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약속보다 더 무심하고, 또 곧잘 이를 어기곤 한다. 작가 역시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과의 약속, 스스로의 다짐에 대해, 그는 자신의 두 손을 조심스럽게 내려다보며, 모아보며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자신이 했던 그 다짐들은 어디로 갔던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작가의 손을 떠나지 않는, 그래서 이번 전시 작품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왼손의 진주 반지와 오른손의 까메오 반지는, 그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선물한 것들이다. 진주 반지는 그의 사랑이자 삶의 동반자이며 든든한 작업 동지인 남편이 선물한 것이고, 까메오반지는 그에게 언제나 든든한 의지와 울타리가 되어주는 언니와 형부가 선물로 준 것이란다. 그렇게 그의 남편과 언니는, 삶에서 뿐 아니라 그의 그림 안에서도 끊임없이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지금까지도 일상을 함께 하는 그의 부모님이 계시다.

박성수_망각의 숲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4_2018

피고지고 Bloom and Wither(2018)와 망각의 숲 Forest of Forgetfulness(2018)은 박성수 작가의 부모님께 바치는 작품이다. 그가 정확하게 '바친다' 혹은 '헌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어도, 나는 안다. 이 작품은 두 분 덕에 나온 것이며, 두분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 두 작품 안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함께 해 온 박성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빼곡이 담겨있다. 작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은 부모님의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랐다며 그에 대해 감사함을 언제나 잊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정말 미쳐 몰랐단다. 든든한 부모님 덕분에 얼마나 편히, 걱정없이 살았는지를. 그러니 이제는 당연히 자신이 부모님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그는 정말 그런 것인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 종종 자문하는 듯 하다. 그리고 깨닫는다. 은퇴하신 부모님을 이제 자신이 모시고, 든든히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직도 자신은 여전히 든든한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으며, 부모님이 만들어 준 울창한 숲에 잘 숨어 편히 살고있다고. 그 울창한 숲은 세월이 흐르면서 늙어가는 부모님과 함께 노쇠했지만, 나는 이를 망각하고 여전히 그 어린 시절의 아이처럼 그 안에서 편히, 향기롭게 살고 싶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망각의 숲 안에서 종이 비행기를 접어 날리며 수풀 안에 숨기도 하고, 편안하게, 여유롭게 꽃 향기를 맡으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가만히 돌아보며 이제는 연로하여 청춘을, 푸르름을 잃어버린 내 부모님의 숲에, 그러나 이를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푸르른 망각의 숲에 버려진, 저물어 가는 영광 Fading Glory 을 반짝이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거대한 400 호 캔버스 안에서 오롯이 그의 손, 진주 반지와 까메오 반지를 끼고 있는 그의 두 손이 이야기 해 준다. 비단 작가 뿐일까. 우리 모두는, 그렇게 부모님의 청춘을, 부모님이 만들어 준 숲의 "나무와 풀과 꽃을 갉아 먹으며" 이만큼 자랐다. 그리고 이를 자주 잊고 산다. 우리가 "그 위에 지어 올린 망각의 숲" 안에서 말이다. ● 화사한 자주빛 꽃으로 가득한 피고지고는 사실 아버지의 장미무덤이다. 그리고 그 장미 무덤에, 막내딸의, 작가의 두 손이 자유롭게 노닐며 이야기를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딸이 경제적 어려움 없는 전문직 종사자로, 그리고 아들 딸 잘 낳아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길 바라셨던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박성수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인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는 이를 막지 않는다. 그저 딸이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바람 중 하나를 그림으로 그렸다. ● "후에 내 집 앞마당 장미 그늘에 묻어 달라"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에, 작가는 이번에도 역시 그림으로 답한다. 피고지고는 아버지의 장미 그늘이다.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그가 작가로 잘 살 수 있게, 아내로 잘 살 수 있게, 여자로 잘 살 수 있게, 그리고 딸로 잘 살 수 있게, 좋은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지켜주고 보살펴 주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이렇게 계속 오래오래 함께 해 달라고 바치는, 헌사이고, 찬사이며 또 기도이다.

박성수_갖고 싶은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사이_캔버스에 유채_40×100cm_2018
박성수_다정한 이별_캔버스에 유채_41×53cm_2018

왜 손이냐고, 왜 '손모가지'냐고, 끊임없이 작가에게 물었다. 사실은 알 것 같았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아주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다면 정확하게 듣고 넘어가고 싶었기에,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그렇지만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사실, 박성수는 강하지만 그러면서 수줍고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직접적으로 자기의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조심스럽게 한 발짝 물러서서 이야기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빙고와 모모라는 흰 개와 빨간 고양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아주 다 드러내는 것은 아니고, 이번 역시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을 통해 수줍게 이야기한다. 빙고와 모모가 남녀 간의 사랑을 더 많이 이야기 했다면, 이번에 그의 두 손은 가족 간의 사랑을 조금 더 많이 이야기한다. 사실, 빙고와 모모의 이야기에도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들, 언니와 조카들의 이야기가 제법 등장했었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빙고와 모모에 감정이입 되어 남녀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에 더 주목하고 귀를 기울였을 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박성수의, 작가의 두 손은 부모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가족 간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이 안에는 부부의 사랑, 그러니까 빙고와 모모가 이야기하던 것과 똑같은 남녀의 알콩달콩하고 저리는 깊은 사랑이 있고, 또 형제자매의 사랑, 그리고 조카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겨있다. 그에게 가족은, 사랑은 그림만큼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이를 그의 두 손이 이야기한다. 두 손이 주인공이 된 이유는 어쩌면 자연스럽고 간단하다. ● 사람의 손만큼 한 사람의 인생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들 한다. 얼굴은 고칠 수 있지만, 얼굴 표정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우리가 살아온 삶을 보여 주는데 두 손 만큼 솔직하고 완벽한 표정을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의 두 손을 통해 보여주는 그의 인생은, 그리고 그 인생의 뒷받침이 되어 주신 부모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잔잔히 선사한다.

박성수_운명_캔버스에 유채_33.4×24cm_2018
박성수_다 아는 비밀_캔버스에 유채_22×27cm_2018

"작업이랑 가족이랑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난 가족을 택할 거에요. 당연하지. 난 가족을 택할 거야." 기획자로서 작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조금 서운했다. 어쩌면 그 이전에 다른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림을 업으로 살겠다는 작가가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질책을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에 『피고지고』를 함께 준비하면서 분명히 알았다. 그렇다. 그에게 그림은 가족이고, 가족은 그림이다. 가족 없이 그에게는 작업도 없다. 작업 전에 내가 있고, 부모가 있고,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고 또 형제자매가, 사람이 있다. 행복할 때에도, 어려울 때에도 서로 의지하고 바라는 것 없이 사랑하는 가족. 박성수에게 그런 가족에 대한 사랑은 작업의 원천이고 힘이다. 비단 그에게만 그럴까. 아마도, 우리가 때로 잊고 살아서 그렇지, 우리 모두도 그럴 것이다. 각자 방식이 다르고 정도가 다르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것은 가족이고, 사랑이다. 2년 전 『별별사랑 Starry Love』으로 우리에게 별별스럽지만 반짝이는 사랑을 전해주었던 작가는 오늘, 『피고지고 Forest of Forgetfulness』을 선보이며 삶에 대한,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사랑의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그렇게 망각의 숲을 그려내며, 작가는 묻는다. "그래서 우리는, 피는 것인가요 지는 것인가요." ■ 임은신

Vol.20181012j | 박성수展 / PARKSUNGSU / 朴成修 / painting